<<당신들의 문명은 매우 복잡하지만,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들은 비뚤어진 동물들이고, 당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존중할 줄 모르며, 유독 당신들이 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긁어모으는 데만 관심을 쏟는 동물들이다. 당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것은 크건 작건 간에 살인의 연속일 뿐이다. 당신들은 우선 죽여놓고 토의를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서로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소설 <개미의 날>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개미 103호가 텔레비전을 보고 난 다음 인간 문명을 판단하는 대목인데요. 보시다시피 평가가 아주 안 좋습니다. 인간이란 오만하고, 이기주의적이고, 서로를 죽이는 나쁜 동물이라는 거죠. 물론 이 다음에 예술과 인간애를 이야기하므로 결과적으로는 좋은 평가이긴 합니다만. 그렇긴 해도 왜 개미 입에서 저런 평가가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저 삶의 방식, 그러니까 자기 종을 위하고, 생존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건 지구상의 어떤 생물이더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벌레부터 인간을 거쳐 거대한 고래까지 이 별에서 사는 생물이라면, 당연히 자기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경쟁자를 물리치고, 주변 자원을 능력껏 사용합니다. 어차피 똑같은 환경에서 사는 동물인데 다를 게 없습니다.

 

흔히 SF나 판타지에서는 외계인이나 이종족이 인간을 평가한답시고 저런 소리를 합니다. 인간만 서로를 죽이고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고 하는데, 개체수가 과하게 불어나면 주변에 영향을 주는 건 다른 동물도 똑같습니다. 저 말을 한 개미도 매한가지입니다. 개미끼리는 서로를 안 죽입니까? 전쟁까지 벌여가며 죽입니다. 다른 동물을 존중해서 살육을 금지하나요? 가능한 한 먹이를 저장하려고 보이는 대로 잡습니다. 생득권을 인정합니까? 다른 종을 잡아 노예로 부려먹죠. 주변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하나요? 진딧물이 가득 끼어서 풀이 말라 죽는데도 오히려 진딧물의 수를 늘립니다.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는다고요? 그거야 그럴만한 머리가 없으니까 도구를 못 만들어서 그렇죠. 이 과정은 어느 동물 세계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그 어떤 종도 이런 투쟁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구라는 환경에서는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저런 비판을 하는 외계인이 지구 정복을 못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행성 생태조차 이해를 못하는데 어찌 그 행성의 생명체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유독 환경 변화에 적극적인 건 사실입니다. 확실히 이 부분은 비판을 받을 만하죠. 하지만 지능이 높으니 어쩔 수 있나요. 아마 다른 동물들이 우리만큼 지능이 높으면 비슷한 짓을 벌였으면 벌였지, 못하지는 않을 걸요. 그래서 환경보호 문제가 심심치 않게 터지긴 하지만, 인류는 그만큼 환경을 공부하고 보호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이렇게 올바른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열정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있는 한 인류가 파멸로 가진 않을 겁니다. 뭐, 인류라는 종 자체는 어떻게든 살아남겠죠.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이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다 그것 때문이니까요. 자신의 유전자를 간직한 종의 보전이죠.

 

수많은 SF/판타지에서 저런 구절을 볼 때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왔던 인류 평가가 얼마나 지적이고, 인간애가 넘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더글라스 아담스는 진짜 시야가 넓었나 봅니다.

 

‘인간 : 대체로 무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