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lycaon.jpg

[먹이를 되찾기 위해 하이에나를 습격하는 리카온 무리.]

 

사바나 초원엔 다양한 동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리카온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 포식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의 육식동물 하면, 다들 사자를 떠올릴 겁니다. 혹은 요즘에 인식이 좋아진 하이에나가 나올 수도 있죠. Big5 중에 하나인 표범도 빠질 수 없습니다. 비공식적인 적으로는 비비 원숭이처럼 성격 더러운 놈들도 있죠. 원숭이 따위 뭐가 무서우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비비는 깡패입니다. 표범과 앙숙이라 보는 족족 서로 물어 죽이려고 하며, 어린 표범은 커다란 수컷 비비에게 끔찍하게 당하기도 합니다. 리카온은 이렇게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공격적인 포식자로 살아갑니다. 웃긴 건 개체 차이로 따지면 리카온이 다른 대형 식육류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체급이 딸린다는 겁니다.

 

단순히 몸무게로 따지면, 사자는 200kg이 넘어갑니다. 하이에나가 그 뒤를 이어 약 60kg. 표범은 30~70kg 사이. 표범과 하이에나가 개체 간으로서 대등하죠. 비비가 15~30kg. 리카온은 15~35kg 정도 나가니 표범, 비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체형이 다릅니다. 비비와는 어떻게 맞설 수 있겠으나 표범 정도만 해도 개과와 고양이과라는 차이가 생기죠. 신체구조상 살육에 유능한 육식동물은 고양이과. 표범은 완벽한 암살자이지만, 리카온은 육식 병기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하이에나와 일대일로 싸운다면 발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자는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입니다. 사실 위치만 따지면 자칼보다 나은 정도로 치타와 비슷한 위상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스펙을 따지면 치타가 30~60kg 정도로 훨씬 낫죠. 깡말라서 체구는 별로 안 커 보이지만.

 

이처럼 리카온은 하나씩 따지면 그리 대단한 동물은 못 됩니다. 가장 번성한 식육류 중 하나인 개과 동물로서 육식동물의 일반적인 조건은 갖추었으나 특별히 힘이 세거나 민첩하거나 무기가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는 지혜를 갖추었으니 무리 행동이 그것입니다. 리카온은 문자 그대로 개떼처럼 몰려다니고, 번식과 사냥, 싸움에서 무리 행동을 함으로써 살아남았습니다. 힘을 합쳐 자기 몸무게의 10배도 넘어가는 초식동물을 쓰러뜨리고, 깡패 같은 하이에나와 비비를 쫓아내고, 사냥과 경계, 육아 등 업무를 분담하죠. 약자의 위치에서 강자다운 행동을 한다고 표현하면 좋을 겁니다. 특별히 강한고 날랜 것은 아니나 협동심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는 것. 참으로 특기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 물론 리카온 무리가 생존 능력이 강하다고 해서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아프리카 생태계의 장엄한 풍경을 연출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체구가 작다 보니 성격도 신중해서 만용을 부리는 일이 없거든요. 어미 누한테서 새끼를 떼어놓지 못해 사냥을 포기한다든가 열 마리가 넘는 놈들이 워터벅 세 마리를 잡지 못해 몇 십 분이고 주위만 맴돈다든가 하는 걸 보면 좀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기껏 잡은 먹이를 사자 한 마리 때문에 뺏길 때도 있죠. 하이에나나 표범이라면 바락바락 개기겠지만, 리카온은 잽싸게 한 입 뜯고는 바로 자리를 뜹니다. 하이에나야 몇 번 물리거나 할큄을 당해도 살지만, 리카온은 죽거든요. 이 동물들이 뛰어난 생존자임에도 주요 관광수단이 안 되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멋이 없거든요. 십 몇 마리가 드넓은 평원을 달리며 사냥하는 게 장관이긴 한데, 그걸 제외하면 그다지.

 

하지만 그 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입니다. 그걸 제외하고 식육류 생존자로서 본다면 리카온은 관찰할 게 꽤 많은 동물입니다. 최상위 포식자들과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는 와중에서도 꽤 번성했고 사회 체계도 뚜렷하니 개과 맹수 중에서 이놈들만큼 특이한 것들이 또 있나 싶기도 합니다. 전세계를 석권한 카니스 루푸스(Canis lupus)보단 못해도요. 어차피 루푸스가 아무리 많이 퍼졌다고 해도, 자연적으로 퍼진 게 아닌 딩고까지 합친다고 해도, 결국 아프리카 사바나에는 발을 붙이지 않았죠. 그렇게 본다면 체구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이쪽 지역에서는 리카온이 다른 루푸스와 비슷한 위상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리카온을 제외하면 자칼 말고는 딱히 개과 맹수(Canini)에 들어가는 놈들도 없고.

 

참고로 국내에선 아프리카 들개(African Wild Dog)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부릅니다. 영어권에서 저 이름을 많이 쓰다 보니 국내에서도 들개란 명칭으로 번역을 많이 하거든요. 대부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리카온이란 이름은 안 쓸 겁니다. 만일 쓴다면, 자체 제작한 작품이거나 혹은 비영어권 번역작이겠죠. 뭐, NHK 등에서도 들개란 명칭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본 책에서 리카온이란 이름을 먼저 접해 이쪽이 더 친숙합니다. 제대로 된 이름이라기보다 학명인 Lycaon pictus를 이름처럼 부르는 것입니다만. 영어권에서도 이걸 이름처럼 부르는 사례가 많으니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듯.

 

안타까운 건 이들이 멸종위기종이라는 것.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이들의 생존은 오직 보호와 관심에 달렸다.라고 했습니다. 해결이 요원한 문제라서 갈 길이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