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잘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 적어봅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프로스타글란딘을 억제하는 물질입니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세포막에서 생성되는 지방산유도체로 혈압의 상승 및 하강, 혈액 응집, 이온수송, 근육수축 등 다양한 분야에 관여합니다. 

심지어 바이러스 감염억제나 심혈관계 질병에도 관여하며 다량 투여할 경우 임신중인 사람이나 짐승을 유산시키기도 합니다. 

특히 프로스타글란딘은 염증에 관여하는 물질로 말초신경에서 발생하는 통증과 연관이 있습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타이레놀이라는 제품이 출시됩니다. 

성분은 단 한가지, 100퍼센트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제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보다 유명한 약은 아마 아스피린 정도밖에 없을 것 같군요.) 


1970년대에 과학자들은 이 아세트아미노펜이 간세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간세포 내의 글루타티오닌을 고갈시킵니다. 

글루타티오닌은 강력한 항산화물질의 한 종류로 Free Radical을 억제합니다. 

그런데 아세트아미노펜이 이 글루타티오닌을 고갈시키므로 

그 결과 글루타티오닌이 다시 복구될 때까지 간세포가 지속적으로 파괴됩니다.  


거기에 대한 해결방안도 제시됩니다. 

N-아세틸시스테인(NAC)을 아세트아미노펜에 포함시키면 

NAC가 글로타티오닌을 빠르게 복구시키므로 간세포가 보호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한 비타민 제조업자가 아세트아미노펜에 NAC를 결합시킨 약품의 제조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FDA는 이미 시중에 존재하는 약을 조합한 신종 약을 제조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약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온갖 서류작업과 기나긴 임상실험, 그리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모두 거쳐서 신약을 등록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1억불 정도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업자는 신약의 등록을 포기하는 대신 아세트아미노펜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기로 합니다. 

1980년대 말 FDA는 이 업자의 공장과 사무실을 급습합니다. 

이들이 제조하는 제품이 FDA규정을 어겼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결국 1990년대 초 FDA는 이 업자가 생산한 비타민의 겉포장에 들어가야 할 문장이 

누락돼 있었다는 이유로 이 업자를 기소합니다.  

정작 소비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타이레놀은 아무런 규제도 없이 팔려나가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2002년, 한 독립 과학자 단체가 아세트아미노펜의 위험성을 FDA에 경고합니다. 그러나 FDA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2004년에는 FDA 산하 연구그룹이 아세트아미노펜이 치명적일 수 있다며 

타이레놀 등 제품의 포장에 경고문을 부착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나 FDA는 이를 거부하고 고작 2만불의 예산을 책정해서 일선 약국 등에 홍보물을 돌리는데 그칩니다. 


타이레놀이 그렇게나 위험한 물질이라구요? 


수많은 음모론 가운데 하나인 것은 아닐까요? 


미국의 Poison Control Center에는 매년 약 10만건의 아세트아미노펜 중독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5만6000건은 응급실에 실려가는 케이스이며 2만6000건은 입원, 

그리고 아세트아미노펜 오남용에 기인한 간 기능 장애로 매년 450명이 사망에 이른다고 합니다. 

(숫자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참조를 붙여봅니다. Nourjah P, Ahmad SR, Karwoski C, Willy M. 

Estimates of acetaminophen associated overdoses in the United States. Pharmacoepidemiol Drug Saf. 2006 jun;15(6);398-405)


간 기능 장애는 주변 기관인 신장에도 여파를 미칩니다. 

타이레놀이 등장한 1950년대 미국 내 신장암 발병이 126% 급증합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아세트아미노펜이 Free Radical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백내장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동물실험에서 이를 확인합니다. 

하버드대 연구에서는 여성이 아세트아미노펜을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 

3년 내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타이레놀 포장에는 이런 경고문구가 단 한줄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2008년에 마황이 포함된 체중조절 약품으로 인한 단 한건의 사망사례에 대해 

FDA가 해당 제품의 전체 라인을 리콜하고 생산을 금지시켰다는 점입니다. 


450건의 사망, 그리고 1건의 사망...


아세트아미노펜은 어마어마한 부의 원천이죠.  

FDA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2009년. 결국 FDA는 거듭되는 학계의 권고를 수렴해 

타이레놀 등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된 진통제에 대해 광범위한 규제를 실시합니다. 

포장에 경고문구를 삽입하고 1일 최대 허용량을 현재의 4g에서 3.25g으로 줄입니다. 


FDA의 이 같은 움직임에 한국 식약청은 일선 의사와 약사에게 '의약품 안전성 서한'을 발송해 

이들 약품의 부작용에 대한 복약지도를 강화하고 처방에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실질적인 조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뒤이어 조선일보 등 언론들도 아세트아미노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기사를 하나 둘 씩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 


저는 "숙취에 타이레놀이나 게보린이 좋다"는 어이없는 얘기를 한 어르신에게 듣게 됩니다. 


음......


알콜로 한바탕 난리친 간을 확인사살하는데는 좋겠지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간장약도 드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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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담인데 글루타티오닌이나, NAC, 제산틴, 아스트라산틴, ALA, COQ10 등등 

이름도 괴이쩍은 이런 것들을 미국에서는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홀푸드 같은 식품점에서 팔거든요. 헬스푸드 스토어라고 전문점도 많고.. 

매체에서도 많이 다루다보니 일반인들 중에 이런 쪽에 해박한 사람도 많습니다. 

참 희한한 나랍니다. 

한편에서는 머리아프다고 타이레놀을 우걱우걱먹고 

다른 한편에서는 건강해지겠다고 비싼 아미노산을 우걱우걱먹고 

그 덕에 신물질 특허를 가진 일본회사는 돈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