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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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인간의 언어를 알지 못하고 C언어만을 구사합니다.
C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겠지요..
그럼, 그 아이는 인간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로봇에 가까울까요??
그리고, 맛이나 감정표현을 어떻게 할런지....??
뭐, C언어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기계어나 어셈블리어, 포트란도 상관없겠죠.
C언어는 기능의 구술일 뿐이지, 언어로서의 속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는 프로그래밍 언어 중에는 최소한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군요-0-;
따라서 애초에 불가능함.
저 아이를 키울 때 ' 인간적'으로 키운다고 명시하진 않겠습니다..
그냥 링겔로 영양공급하고 , 배설물도 자동으로 처리하고...
'일종의 연산장치' 로서 길러졌을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소설판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언자들과 유사하달까요...??
그런 그들에게 인간적 요소가 남을 수 있냐는 거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우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언어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건 사실이겠지만 언어 없이 자란 아이가 자연스레 체득하는 언어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서 언어를 배제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건 사실과 꽤 동떨어진 이야기 같군요.
실제로 그런 비인도적인 실험을 할 만한 가능성은 제하고라도
가끔씩 발견되는 늑대에게 길러진 아기나 혹은 말을 할 수 없는 양육자에게 길러진 경우등을 보아도
어떤 형태로든 언어라 하긴 어려워도 바디랭귀지 같은 형태의 것을 습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육아 발달을 연구하는 경우, 먹을 것이나 각종 조건을 모두 만족하더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생육과 발달에 큰 지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는 있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먹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근함과 따스함. 안락한 보육자라는 결과가 있긴 했지요.
하지만 언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도 종종 발견됩니다.
이 경우의 관심과 사랑은 언어와는 다른 문제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C언어를 통해 외부와 교류하는 법을 배운 아이가 있다면
언어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것들, 감정이나 아니면 다른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없는 것' 이 아니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이 되겠죠.
C언어에 가시광선에 대한 명시를 해주지 않아도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인지합니다.
언어가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구분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체득할 수 있지요.
다시 말하면 언어란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단이며, 그것은 하나의 방식일 뿐이지
그것이 인간을 본질적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독일어를 배운 아이가 영어를 배운 아이보다 호전적일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라는 한가지 문제이전에 언어와 결합된 문화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C언어를 대화소통의 방법으로 배운 아이라면, 분명 자신의 욕구, 배고픔이나 졸림 용변의 필요성, 온도등을
C언어를 통해 해결하는 법을 배우겠지요.
아이는 과연 기계적이 될까요?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개가 사람처럼 행동할까요?
개에게 고양이의 말을 가르치면 개가 고양이처럼 행동할까요?
인간이라면 늑대 무리에서 자라며 늑대처럼 행동할지도 모릅니다.
학습이 본능을 억누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C언어라는 건,.. 사실 매우 인간적인 언어입니다.
인간이 쓰려고 만든거고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조금만 배워도 어느 정도의 활용이 가능하니까요.
그 정도 배워서 가볍게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이 세상에 없지요.
언어는 문화의 일부이며, 문화에서 언어를 배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C언어를 통해 교통하고 생존하도록 길들여진 아이라고 해도 문화적 공통 코드를 갖고 있다면
매우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 추가된 부분에 대한 추가 커멘트입니다.
C언어가 아니라 일반적 언어를 배워도 그에 해당하는 문화적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같은 결론을 갖게 될 것입니다.....
C언어가 아니라 기계어라 해도 사랑받고 인간답게 키워진다면 인간이 될 것이고
어느나라 말을 배우더라도 비인간적으로 키워진다면 비인간적으로 자라겠죠.
그때의 가설은 '아이의 영혼은 천국에서 신의 언어를 들으며 살았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언어를 전혀 듣지 못한다면 천국의... 신의 언어를 하게 되지 않을까?'였습니다.
한 마디로 잘못된 가설에 의한 지나치게 무책임한 실험이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아무런 언어도 배우지 못하고 괴상한 소리 만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도 자체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한 사람을 사실상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종교를 따르고 믿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례일까요?)
이 글의 주제가, 일반적인 인간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통제된 상황에서 양육된 아이의 감정에 대해 논의하는 거라면...전 기계와는 거리가 멀 거라 봅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볼 때)동물의 감정표현에 가깝겠죠.
그게 아니라 '기계의 언어'를 배운 아이의 인간성에 대해 물으신다면...그건 더군다나 기계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계어부터 시작해서 모든 언어는 지극히'인간 지향적'입니다. 기계를 위해서 뭔가를 표현하는 구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의 구문은 기계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메모리 바이트를 여기 저기로 복사하고, 가산기와 누산기를 채깍채깍 돌리고, 버스와 인터페이스를 통제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유일한 언어로 배운다는 것은 '인간'이 '기계가 1인칭인 입장에서 2인칭인 인간을 위해 행동하도록 창조된 언어'를 '1인칭'으로 습득하는 행위이며, 이건 원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언어'로 인식조차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기계의 언어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기계의 '언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대상을 위해서만 존재하니까 말이죠.
-전략-
신생아는 모두 일종의 미숙아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제대로 사물을 볼 수도 없다. 단 청각만은 예외인데, 이것은 태아 때부터 이미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음성언어로는 임프란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생아여서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면 충분히 가능한 언어의 임프린팅을 소홀히 하게 된다. 언어 주입을 전혀 하지 않은 예로 아베론의 야생아(野生兒)를 들 수 있다. 동물의 무리 속에서 자란 이 아이는 인간의 언어를 전혀 몰랐으며, 발견된 후 언어교육이 이루어졌지만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즉 다 자란 뒤에는 임프린팅을 해봐야 효과가 없는 것이다.
모유어(母乳語)의 중요성
처음부터 언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 야생아에게서 나타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지 어떨지는 인간의 일이어서 실험할 수 없으니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 허락되지 않은 인간 실험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옛날 시칠리아에 프레드릭 2세라는 국왕이 살고 있었다. 학문을 좋아하는 국왕은 인간 언어의 원형을 알고 싶었다. 사람이 다양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있기 때문으로, 전혀 언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본래 내재되어 있는 이상적인 언어(프레드릭 2세는 독일어를 흉내내고 있었다고 한다)를 말하게 될 게 틀림없다고 믿은 국왕은 가혹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 실험을 위해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몇 명 선발되었다.
영양상태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양육이 이루어졌지만 일절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왕의 엄명이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사람은 먹을것만 해결된다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언어가 부여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후략-
출처 - 우왕좌왕하지 않고 세상 사는 지혜 : 도야마 시게히코
언어는 생각보다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 모양입니다.
언어가 없으면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야생아는 발견되기 전에 죽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벙어리 부부의 자식은 다 죽었겠죠.
인간이 언어를 획득하기 이전에는 자식이 생존할 수 없었을까요?
아이들이 사망했다면 그것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면역기능의 저하에 의한 질병등의 원인일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현재와 같이 의학기술이 발달된 상황에서는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최고수준의 양육, 그러나 충분한 스킨십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발육부진과 정서장애에 대한 내용이 다큐로 나온적이 있었습니다.
최고수준의 양육이란 단지 영양상태와 보온같은 외적 단순조건을 말하는 것이죠. 아마 위에 언급된
최고수준의 양육이라는 것도 언어만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스킨십과 같은 필요조건을 모두 배제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간해선 살아날 수 없겠죠.
인간은 잘 먹고 잘 싸고 한다고 살아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털이 없어 태어날때부터 체온을 필요로 하고
운동능력이 없어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충족되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우아아.. 굉장히 살벌하군요.
하지만 아예 전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렇게 언어를 배우려면 'C언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 들이 그 아이를 태어나면서부터 길러야 합니다. 언어 없이 사람은 살 수 없어요. 예전 로마였나에서 어떤 황제가 아기들을 키울 때 어떤 말도 사용하지 않고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언어가 무엇일지 실험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실패. 모두 죽었죠.
그 아이를 기르는 사람부터가 'C언어 인간' 이어야 하기 때문에 닭과 달걀같이 무한 루프에 빠져 버리네요...
지금 시간이 없어서 '만약 그렇게 자랐다면' 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