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백과 ~함선~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함선.
우주선, 전투함, 지상 전함, 이동 요새 등
우주선, 전투함, 지상 전함, 이동 요새 등
글 수 282
<<설명>>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기함. 카스트로프 동란부터 리프슈타트 전투까지, 키르히아이스 함대의 진두에 서서, 함대를 지휘해왔다.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기함이자, 제국군 총본영인 브륀힐트에 필적하는 미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가히 [홍옥]이라 부를 만하다.
라인하르트는 이 붉은 머리의 친구에게 브륀힐트와 같은 공정의 계열함을 권유했지만, 키르히아이스 자신은 외견과 색상도 다른 이 함선을 선택했다고 한다.
<<함명의 유래>>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별명-바르바로사(붉은 수염).
-참고:프리드리히 1세
슈타우펜왕조의 신성로마(독일) 황제(재위 1152∼1190).
국적 : 독일 신성로마제국
활동분야 : 정치
붉은 턱수염 때문에 ‘붉은 수염’이라 불렸다.(그의 별칭 '바르바로사'는 이탈리아어로 '붉은 수염'을 뜻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후에 우선 독일 국내의 치안확립에 힘쓰고, 이어 6차에 걸친 대규모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하였다. 롬바르디아도시동맹의 반항에 부딪히고, 1176년 레냐노 전투에 패하여 화의를 맺었다.
만년에는 그의 사촌이며 독일의 가장 유력한 제후(諸侯) 작센공(公) 하인리히 사자공과 대립하였으나, 마침내 1180년에 사자공을 추방하고 그 봉토(封土)를 몰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프리드리히 1세 치세기(治世期)에 오랜 부족태공(部族太公)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제국제후(帝國諸侯)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6차 이탈리아 원정(1184∼1186) 후, 제3차 십자군(1189∼1191)을 거느리고 소아시아를 원정 중 세우레키아에서 사레프강을 건너다가 익사하였다.
무장(武將)으로서의 완전한 자질과 예리한 웅변술을 갖추었으며, 인재등용에도 뛰어나 라이나르트, 폰 프라이징 등의 성직자를 등용하였다. 궁정기사 문화를 한몸에 모은 인물로 찬양되고, 중세 말기 이후에는 곤궁과 오욕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으로서 황제 전설 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었다.
[ 관련 이미지 ]
원문 이름 | Barbaros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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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전투함 |
등장 작품(시리즈) | 은하영웅전설 |
제원 | 소속 : 은하제국 길이 : 986m 전폭 : 257m 높이 : 231m |
<<설명>>
지크프리드 키르히아이스 제독의 기함. 카스트로프 동란부터 리프슈타트 전투까지, 키르히아이스 함대의 진두에 서서, 함대를 지휘해왔다.
카이저 라인하르트의 기함이자, 제국군 총본영인 브륀힐트에 필적하는 미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가히 [홍옥]이라 부를 만하다.
라인하르트는 이 붉은 머리의 친구에게 브륀힐트와 같은 공정의 계열함을 권유했지만, 키르히아이스 자신은 외견과 색상도 다른 이 함선을 선택했다고 한다.
<<함명의 유래>>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별명-바르바로사(붉은 수염).
-참고:프리드리히 1세
슈타우펜왕조의 신성로마(독일) 황제(재위 1152∼1190).
국적 : 독일 신성로마제국
활동분야 : 정치
붉은 턱수염 때문에 ‘붉은 수염’이라 불렸다.(그의 별칭 '바르바로사'는 이탈리아어로 '붉은 수염'을 뜻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후에 우선 독일 국내의 치안확립에 힘쓰고, 이어 6차에 걸친 대규모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하였다. 롬바르디아도시동맹의 반항에 부딪히고, 1176년 레냐노 전투에 패하여 화의를 맺었다.
만년에는 그의 사촌이며 독일의 가장 유력한 제후(諸侯) 작센공(公) 하인리히 사자공과 대립하였으나, 마침내 1180년에 사자공을 추방하고 그 봉토(封土)를 몰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프리드리히 1세 치세기(治世期)에 오랜 부족태공(部族太公)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제국제후(帝國諸侯)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6차 이탈리아 원정(1184∼1186) 후, 제3차 십자군(1189∼1191)을 거느리고 소아시아를 원정 중 세우레키아에서 사레프강을 건너다가 익사하였다.
무장(武將)으로서의 완전한 자질과 예리한 웅변술을 갖추었으며, 인재등용에도 뛰어나 라이나르트, 폰 프라이징 등의 성직자를 등용하였다. 궁정기사 문화를 한몸에 모은 인물로 찬양되고, 중세 말기 이후에는 곤궁과 오욕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으로서 황제 전설 속에 오래도록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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