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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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보이지 않으면 가족들이 서점이나 만화방을 뒤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정도로. 하지만 서점이나 만화방의 책은 한계가 있죠. 수는 많지만, 아무래도 종류가 적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는 도서관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사직동 어린이 도서관'이었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소중한 추억의 장소...
이번에 학교 도서관 저널에서 '여름 방학을 맞아, 놀러 쉬러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러 갈 수 있는 장소'의 원고를 청탁했을 때, `사직동 어린이 도서관`이 떠오른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릴 때 살던 집에서 버스로 왕복 1시간 거리. 초등학생에게는 작은 여정의 길이었지만, 매주 출근하다시피 찾아갔던, 지금의 제 자신을 만든 장소 중 하나입니다.
당시 여기에서 수많은 청소년 SF 작품을 보았고 그것은 어렸던 제게 막연하게 과학자의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뭐랄까... 당시 그건 제게 ‘과학 이야기’였고, 먼 훗날 제가 나설지도 모르는 우주의 모험이었거든요. 결과적으로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SF에 대한 흥미는 그것이 SF라는 것을 모른 채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SF&판타지 도서관이 탄생했지요.
그렇듯 소중한 장소... 하지만 몇 번이고 이사를 다니며 버스로도 가기 힘들만큼 멀어져-무엇보다도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추억 속에 잊고 있었죠.
기사를 쓰는 김에 다시 한번 찾기로 했습니다. 시험 기간이니 뭐니 해서 찾아가지 못하다가, 마감 날인 오늘에서야 가게 되었죠.
오랜만에 들러본 어린이 도서관은 역시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도서관은 평범한 빌딩 한 채였지만, 뭔가 화사하고 부드러워 졌거든요.
위치도 달라져 전의 도서관 자리엔 놀이터가 있고 그 안쪽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은 총 3층 구조로. 이중 1,2층에 열람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열람실은 엄청나게 넓습니다. 광장처럼 넓은 공간에 책들이 넉넉하게 꽂혀 있는 건 솔직히 부러운 일이죠.
[ 뜀박질하면서 책을 돌아보고 싶은 기분? ]
모든 걸 볼 때는 안쪽부터... 3층은 시청각 실이 있고 표지 전시전이 있었습니다. 조명도 꺼져 있어 썰렁한 느낌이었지만, 조명을 켜니 책 표지에 둘러싸인 테이블이 뭔가 사람을 모아서 책 얘기를 하게 만드는 느낌을 주더군요.
저는 특히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터라. 입이 간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2층은 자연과학 코너. 들어가서 사서 분께 사진을 찍겠다는 말씀을 드렸죠. 아무 말 없이 찍으면 실례라 생각하여 말한건데 행정실로 안내하여 팀장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몇 백자 밖에 안 되는 짧은 원고라 뭔가 지나친 느낌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격식으로서 "취재"라는 느낌을 더해주었지요.
명함도 드리고 제 소개도 간단히... 팀장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쭙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 기회...로 연기.
2층 자연과학 코너에서 가장 눈에 띄는건 -지금은 거의 대다수 집에서 사라졌을-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인터넷 세대가 되면서 정보는 검색하는걸로 바뀌었지만, 백과사전에는 지식으로서의 가치가 넘쳐납니다. 이따금 심심할 때 백과사전을 들추어보면 제가 생각치도 못했던 무언가와 만나곤 하죠. 검색을 하고 하이퍼링크로 `내가 관심있는 것`만을 따라다니는 인터넷 사전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정보는 낡았을지라도 그 안의 지식과 지혜는 충분한만큼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해요. 창작에도, 그리고 아이디어 발상에도.
[ 참고 도서란 항목으로 정리된 백과사전들. 최근 이걸 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
도서관에서 볼만한 책으로 뭘 소개할까 했는데 첫번째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꼽았습니다. 사실 요즘엔 도서관에 오지 않음 백과사전을 볼 수 없거든요.
한권을 펼쳐서 잠시 상상의 여정에 빠져들었다가 시간이 없는 걸 깨닫고 재빨리 책장을 덮었죠. 하마터면 오늘 SF&판타지도서관 문을 못 열 뻔 했습니다.
2층에서 또 하나 눈에 띈 건 로버트 윈스턴의 ‘인간’. 다름이 아니라 거대한 눈동자가 표지에 찍혀 있거든요. 뭐랄까... 정말로 내게 “날 읽어. 날 읽으란 말아.”라고 쏘아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내용도 충실한데 가격이 거의 6만원.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이런 책을 쉽게 만날 수 있죠. 공짜로... (그래서 도서관이 있으면 책이 안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도 그렇듯, 도서관을 자주 들를수록 책도 많이 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도서관은 이런 비싼 책을 기꺼이 사는 곳이기도 하죠. 공공 도서관의 수가 조금만 많으면, 그리고 예산이 조금만 더 풍부하면, 한국의 출판사들이 더욱 충실하게 발전할텐데.)
[ 책장에서 주시하는 모습에. 안 꺼낼래야 안 꺼낼수가 없었습니다. ]
1층으로 향하여 문학 코너를 살펴보았습니다. 1층의 사서 분께 “추천할만한 책 종류”를 문의드렸는데, 상당히 친절하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시더군요.
특히 제가 기억에 남는 건 매달 소개한다는 ‘장애인에 관련한 동화’였습니다.
이달의 ‘장애인에 대한 동화’는 “내 다리는 휠체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소년의 이야기인데, “우리는 걸어서 산책하지 않고 타고 산책한다.”라는 마지막 대목이 눈에 꽂히더군요.
우리는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여 측은하게 여기거나 차별하는데, 사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각과 시선, 그리고 마음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매달 한권씩의 ‘장애인에 대한 동화’ 추천서는 특히 어린이들이 잘 보았으면 좋겠더군요.
그 밖에도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이라던가, 흔한 추천작들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이벤트나 추천으로 잘 포장되어 좋았습니다. SF&판타지 도서관에서도 추천 판타지, SF 작품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자주, 다양하게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레 느낀 것. “책을 찾을 때 책이 나를 찾아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초원의 집”이었습니다.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은 기억할 겁니다. TV에서 매주 해주었던 마치 ‘미국판 전원일기’를 보는 듯 잔잔한 드라마를. 바로 그 작품의 원작인 것이죠.
소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국내에 출간되었고, 그것도 이렇게 만다는 건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즐거움이죠.
그리고 존 플래거넌의 판타지 모험물, “레인저스”를 만났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 “브라더밴드”를 보고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찾은 책이지만, 정판인데다 중고로도 구하기 힘들어서 보지 못한 작품이죠. 뭔가 눈길이 간다고 했더니 바로 이 책이었고, 전질이 다 있기 때문에 다음에 찾아오기로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찜!
[ 엄청나게 많이 본 책인지. 특히 앞권은 거의 부서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오래전 몇 번이고 빌려보며 상상을 키웠던 청소년 SF 전집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공 도서관에서는 때때로 책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그 때에 사라진 것이 아닐까요? 우리 SF&판타지 도서관처럼 한번 들어온 책은 절대로 놓지 않고, 가능한 보관하는 ‘전문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SF&판타지 도서관에는 그 같은 청소년용 SF 전집도 꽤 많거든요. 아이디어 문고도 몇 권. 여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렌즈맨 시리즈라던가, 에이브 88문고라던가.
이렇게 어린이 도서관을 돌아보니,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 눈에 띕니다. 건물도 바뀌었고, 구성도 바뀌었고, 당연히 분위기도 확 달려졌지요.
하지만 한가지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서관은 더 없이 행복한 공간입니다. 사방을 돌아봐도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 (어린이 도서관에는 적어도 ‘공부’를 하는 분은 안 계셨습니다.)
일본 SF 대회에서 SF팬덤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바노 타쿠미씨가
“여러분 옆을 봐주세요. 모두 SF를 좋아합니다.”라는 폐회사를 남기셨지만,
제게 있어 도서관도 비슷한 장소입니다.
“여러분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세요. 모두 책을 좋아합니다.”라고 말이죠.
오랜 만에, 거의 30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사직동 어린이 도서관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책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한, 그곳은 제게 있어 항상 행복한 추억의 장소로서 남게 될 것입니다.
[ 도서관이란 휴식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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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부지만 서점이 다시 문을 여는 일도 있더군요. 서점이 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점 밖에는 할게 없다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외국에는 뭔가 전문적인 서점들이 꽤 많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서점들이 좀 더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것보다는 소규모, 사람들이 찾아서 볼 수 있는 무언가로 말이지요.
어린이 도서관은 그런 점에서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도서관으로서 가치가 있고, SF&판타지 도서관은 SF를 중심으로 하는 도서관으로서 가치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전문적인 뭔가보다는 '포탈'로서의 뭔가를 찾는 경향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점차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실은... SF&판타지 도서관에도 전부터 <초원의 집> 시리즈 중 몇 편이 이미 있어 왔습니다.
"학원출판공사(학원사)"에서 나온 [ABE 전집] 중에 <초원의 집>이 세 편이나 있거든요.
[아동도서] 쪽에서 저자 이름을 "로러 잉걸스 와일더"로 하여 검색하시면 됩니다.
(드라마의 잉걸스 집안 둘째 딸 "로라"가 할머니가 나이가 되어 쓴 책입니다)
<큰 숲 작은 집> - 초원의 집1, ABE 전집 7, 학원출판공사
<초원의 집> - 초원의 집2, ABE 전집 34, 학원출판공사
<우리 읍내> - 초원의 집7, ABE 전집 48, 학원출판공사
어렸을 적에 주말마다 시내 서점으로 놀러갔습니다. 그때는 어쩐지 도서관보다는 서점에 익숙했네요. 번화가에 있어서 무슨 소풍 가는 기분이었죠. 그때는 책 포장 상태도 달라서 이것저것 실컷 볼 수 있었고요. 요즘에는 비닐 포장된 책이 많지만, 예전에는 거진 개봉한 상태로 진열했죠. (공룡 서적도 별로 인기가 없어서 보는 아이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작금의 공룡 서적이 얼마나 인기 많은지 생각하면 참….) 덕분에 도서관에 갈 생각은 별로 못했고, 그 점이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때 기분은 여전히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서점에 가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덕분에 쇠락해가는 시내 서점을 보면 섭섭한 마음도 들고 그러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