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근대 시대 조선, 그리고 명/청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그리고 인도의 무굴제국이나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보다 기술적으로 뒤졌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유럽은 방대한 식민지를 얻고 나중에는 이들 나라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 더 정확히는 아시아의 기술력이 유럽에 비해서 뒤진다는 것은 굉장한 착각입니다. 기술력을 이른바 '무기 기술' 만으로 생각하기에 나오는 오류죠.


기술은 크게 '삶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생활을 위한 기술, 즉 의식주와 예술과 놀이 같은 문화, 여기에 의술 등 건강을 위한 기술을 가리키며, 후자는 바로 '군사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군사 기술은 대개의 경우 생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군사기술은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의 기술 발전에는 군사 기술이 도움을 준 사례가 많죠.(GPS나 레이더, 그리고 화학 병기 개발 과정에서 화학 기술의 발전 등)


하지만 '전쟁이 기술 발전을 가져온다.'라는 생각과는 달리, 대개 삶을 위한 기술 발전은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 이루어진 경우가 더 많았고, 설사 전쟁을 하더라도 평화로운 후방에서 전쟁 기술과는 무관하게 발달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술 상당 수는 전쟁과 무관하게 발전한 것이며, 군사 기술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기술 발전은 민간에서 생활에 사용됨으로써 이루어졌으니까요.


그것은 '투자'의 문제입니다. 기술 발전에는 당연히 투자가 필요한데, 군사 기술에 투자가 집중되면 자연스레 군사 이외의 기술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분명히 앞서 말한 아시아-중동의 강대국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편 전쟁 같은 상황이 이를 잘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그들의 '생활'이 그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의 생산력은 아시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낮았으며, 생활 수준은 더더욱 낮았습니다. 심지어 산업 혁명 이후에도 그들의 생활 수준은 그다지 높아지지 못했습니다. 실례로 유럽과 아시아를 비교할 때, 유럽의 평균 수명은 -전쟁 등의 요인을 제외해도- 아시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낮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시아-중동인들 만큼 잘 먹지 못했고, 의료 수준도 낮았으며,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 환경이 훨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근대 중기, 아니 후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군사 기술을 제외한 대부분을 아시아-중동으로부터 수입했습니다. 산업 혁명 이전까지 유럽에선 면조차 사치품이었고, 비단은 더욱 그랬습니다.



유럽인들은 중동이나 아시아인들처럼 풍족하게 먹고살지 못했으며, 의복과 주거지 모두 수준이 떨어졌습니다. 한가지 발전한 것이 있다면, 오직 전쟁 병기에 한정되는데, 그것은 중국의 명/청, 인도의 무굴제국,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같은 거대 국가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아시아-중동과 달리 유럽은 소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무굴제국, 오스만투르크는 강력한 군사적 우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워낙 크기가 작아서 그들을 위협할 수 없었거든요. 설사 기술이 어느 정도 높다고 해 봐야 이들 대제국을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아주 작은 기술 차이만으로도 군사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생산성을 높이고 군사력을 높이는데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군사력에서 뒤지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국민들을 잔뜩 쥐어짜면서 군사력에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실례로 일본의 경우 수많은 영주가 대결했던 전국 시대에 군사 기술 발전이 아주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전국시대 말기엔 동시기의 유럽보다도 강대한 군사력을 가졌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일본이 화승총 기술을 일찍 받아들여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전국 시대가 오래되면서 군사력 발전에 필요한 기술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전국 시대, 오호십국처럼 수많은 나라로 갈라져 경쟁하던 시기엔 군사 기술 발전 속도가 높았습니다.



때문에 유럽은 군사 기술에서 굉장히 탁월한 수준에 오르게 됩니다. 그에 반비례하여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생활 수준의 향상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좁은 땅에서 그야말로 자원을 마구 낭비하게 되니 자연스레 토지의 질도 떨어졌고 농업 생산성도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에 비해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군사기술에서는 앞서 있었을지 모르지만,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일반 기술은 유럽이 훨씬 뒤졌기 때문이며, 국민의 생활보다는 나라의 존망에 필요한 군사력에만 투자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은 기술 후진국이었을까요? 네, 중국, 일본에 비해서 기술력이 떨어진 것은 맞습니다. 우선 중국, 일본에 비해서 경제력이 뒤졌습니다. 중국와 일본은 조선보다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았습니다. 일본만 해도 조선의 두배가 넘었으니까요. 당연히 경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기술이 뒤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식생활에 가장 중요한 그릇을 만드는 기술, 다시 말해 자기 기술을 생각해 보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조선보다 군사력이 높았지만, 조선에 와서는 심지어 개 밥그릇까지 챙겨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도자기 기술은 조선에 비해서 훨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에 비해서 뒤졌던 것은 비단 도자기 기술에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가구를 비롯한 목공술, 공예품 기술, 직물 제조 기술도 뒤졌습니다.


이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과 조선의 교역 상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은'을 비롯한 귀금속을 제외하면 수출품이 거의 없었던 반면, 조선의 물건은 도자기, 공예품, 면포 등의 직물, 서적에 이르기까지 압도적인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일본에서 영주들은 신하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귀한 물품을 선물하곤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조선에서 나온 것이었고, 이로 인한 무역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은이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내부의 경제 상황이 취약해졌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은을 화폐처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군사 기술에 투자를 계속했기에 세금을 지나치게 걷었고 농민들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전국 시대 일본에서는 대기근이 자주 있었으며, 농민 반란도 잦았는데 그것은 기후 등의 외부 요인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영주들이 사람들의 삶이 어려울 정도로 착취하여 군사 기술과 부하의 호감을 얻기 위한 사치품에만 투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발발 요인으로서 이와 같은 무역 불균형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생필품의 제조 기술에 있어서는 중국과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일부 물품은 도리어 중국에 수출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삶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이 기술력이 뒤졌다는 것은 무기 기술 밖에는 보지 못한 결과로 나오는 착각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무기 기술이 반드시 뒤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화포 기술은 비록 제철 기술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비해서 우수했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무기 기술이 주로 왜구를 상대로 하기 위한 목적에 맞추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군사 기술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군사 기술에 투자를 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것에 그쳤고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후 조선과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왜구의 위협도 줄어들었기에 더욱 군사 기술의 필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조선이, 그리고 중국의 청나라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여기에 인도의 무굴제국이나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훗날 유럽에 비해서 군사 기술이 뒤지게 되는 것은 그들이 기술 발전을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군사기술보다는 자국민의 생활 안정과 삶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중동의 사람들은 유럽 사람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오래 살았고, 평균적으로 사치했으며, 평균적으로 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교육률도 더욱 높았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북한은 한국보다 기술이 뛰어난 것일까요?


군사만을 위한 기술이 기술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순간,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원래 멍청한 나라였어. 지배당해도 싸."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거죠.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후기, 대한 제국 시기만 해도 사람들의 삶은 프랑스 혁명 전의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 전의 러시아처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대의 어려움은 제도적인 문제도 부패한 관료 조직이나 멍청한 왕실 등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조선이 급하게 군사력을 키우려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실례로 대한제국은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군사력에 투자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거의 북한 수준,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연히 세금은 높아질 수 밖에 없었고, 군사 이외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삶은 피폐해지고 국민들은 굶주리고,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상황이 청나라 말기, 그리고 무굴 제국이나 오스만투르크 같은 나라에서도 벌어집니다.(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후기, 그리고 대한제국이 지나친 국방비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조선이 그대로 망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없었지만, 조선은 후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높은 생활 수준과 우수한 교육, 그리고 안정적인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국민 대다수가 비교적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조선은, 그리고 한반도의 국가들은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었고, 그 기반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조선(한민족)은 멍청해서 지배당해도 싸." 같은 생각을 하고 자존감을 잃은 채 열등 의식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조선이 기술적으로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도 없고, 문제가 많은 나라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출신 자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본래 인간의 능력은 동일하고 단지 주변 상황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니까요. 조선, 그리고 아시아의 군사 기술이 떨어졌던 것은 본래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정이 따르지 못했고 그럴 필요성이 없었을 뿐. 결국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 그대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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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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