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에 있는 의자는 좀 삐걱거립니다. 앉을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나요. 회전축을 담당하는 이음새가 벌어져서 이걸 조일 방법이 없거든요. 하지만 의자가 이 모양이 된 게 불량품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주인인 제가 너무 과격하게 이용한 탓이죠.


저는 FPS 게임에 몰두할 때마다 기이한 체험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건 1인칭 게임이죠. 게임 캐릭터의 시야가 마치 플레이어의 시야가 된 것인양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격렬한 전투에 임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게임 캐릭터와 저 자신을 동일시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적군이 바로 앞에서 총을 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부지런히 움직여 머리를 돌려야죠. 헤드샷을 맞기 싫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마우스를 돌리는 게 아니라 의자에 앉은 제가 상체를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캐릭터의 시야가 제 것이라고 느끼다 보니 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제가 피해봤자 어차피 제 캐릭터는 헤드샷~♬


이게 제일 심했던 게임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2>였습니다. 거기서 에일리언은 그냥 폴짝거리며 뛰는 수준이 아니라 몇 십 m를 날아다니거든요. 당연히 저도 모르게 의자 밖으로 몸을 던질 뻔한 적이 많고요. 그나마 덜했던 게 <로그 스피어>. 벽에 붙어서 고개만 살짝 내밀면 되니까 격렬한 몸동작이 필요없죠. 어차피 이 게임에는 점프 기능도 없고, 뛰어다닌다고 총알 피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저는 밀리터리 장르는 잘 안 하고 하이퍼 부류만 하는지라 외계인을 피해 들고 뛸 때가 많습니다. 요즘엔 <크라이시스>를 하느라 눈에 서리가 끼이는 중.


제 가족은 제가 가끔씩 이런 식으로 게임하는 걸 보면 웃기다고 합니다. 흠, 아마 웃기겠죠. 모니터 앞에 두고 마우스 대신 상체를 휙휙 움직이는 꼴이 어찌 우습지 않겠습니까. FPS를 손에 잡은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이러니…. 삐걱거리는 의자가 불쌍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