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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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근대 시대 조선, 그리고 명/청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그리고 인도의 무굴제국이나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보다 기술적으로 뒤졌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유럽은 방대한 식민지를 얻고 나중에는 이들 나라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 더 정확히는 아시아의 기술력이 유럽에 비해서 뒤진다는 것은 굉장한 착각입니다. 기술력을 이른바 '무기 기술' 만으로 생각하기에 나오는 오류죠.
기술은 크게 '삶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주로 생활을 위한 기술, 즉 의식주와 예술과 놀이 같은 문화, 여기에 의술 등 건강을 위한 기술을 가리키며, 후자는 바로 '군사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군사 기술은 대개의 경우 생활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군사기술은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의 기술 발전에는 군사 기술이 도움을 준 사례가 많죠.(GPS나 레이더, 그리고 화학 병기 개발 과정에서 화학 기술의 발전 등)
하지만 '전쟁이 기술 발전을 가져온다.'라는 생각과는 달리, 대개 삶을 위한 기술 발전은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 이루어진 경우가 더 많았고, 설사 전쟁을 하더라도 평화로운 후방에서 전쟁 기술과는 무관하게 발달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술 상당 수는 전쟁과 무관하게 발전한 것이며, 군사 기술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기술 발전은 민간에서 생활에 사용됨으로써 이루어졌으니까요.
그것은 '투자'의 문제입니다. 기술 발전에는 당연히 투자가 필요한데, 군사 기술에 투자가 집중되면 자연스레 군사 이외의 기술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분명히 앞서 말한 아시아-중동의 강대국을 압도할 수 있는 군사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편 전쟁 같은 상황이 이를 잘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그들의 '생활'이 그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의 생산력은 아시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낮았으며, 생활 수준은 더더욱 낮았습니다. 심지어 산업 혁명 이후에도 그들의 생활 수준은 그다지 높아지지 못했습니다. 실례로 유럽과 아시아를 비교할 때, 유럽의 평균 수명은 -전쟁 등의 요인을 제외해도- 아시아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낮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시아-중동인들 만큼 잘 먹지 못했고, 의료 수준도 낮았으며,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 환경이 훨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근대 중기, 아니 후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군사 기술을 제외한 대부분을 아시아-중동으로부터 수입했습니다. 산업 혁명 이전까지 유럽에선 면조차 사치품이었고, 비단은 더욱 그랬습니다.
유럽인들은 중동이나 아시아인들처럼 풍족하게 먹고살지 못했으며, 의복과 주거지 모두 수준이 떨어졌습니다. 한가지 발전한 것이 있다면, 오직 전쟁 병기에 한정되는데, 그것은 중국의 명/청, 인도의 무굴제국,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같은 거대 국가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아시아-중동과 달리 유럽은 소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 무굴제국, 오스만투르크는 강력한 군사적 우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워낙 크기가 작아서 그들을 위협할 수 없었거든요. 설사 기술이 어느 정도 높다고 해 봐야 이들 대제국을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아주 작은 기술 차이만으로도 군사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생산성을 높이고 군사력을 높이는데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군사력에서 뒤지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국민들을 잔뜩 쥐어짜면서 군사력에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실례로 일본의 경우 수많은 영주가 대결했던 전국 시대에 군사 기술 발전이 아주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전국시대 말기엔 동시기의 유럽보다도 강대한 군사력을 가졌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일본이 화승총 기술을 일찍 받아들여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도 전국 시대가 오래되면서 군사력 발전에 필요한 기술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전국 시대, 오호십국처럼 수많은 나라로 갈라져 경쟁하던 시기엔 군사 기술 발전 속도가 높았습니다.
때문에 유럽은 군사 기술에서 굉장히 탁월한 수준에 오르게 됩니다. 그에 반비례하여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생활 수준의 향상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좁은 땅에서 그야말로 자원을 마구 낭비하게 되니 자연스레 토지의 질도 떨어졌고 농업 생산성도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에 비해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군사기술에서는 앞서 있었을지 모르지만,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 일반 기술은 유럽이 훨씬 뒤졌기 때문이며, 국민의 생활보다는 나라의 존망에 필요한 군사력에만 투자를 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은 기술 후진국이었을까요? 네, 중국, 일본에 비해서 기술력이 떨어진 것은 맞습니다. 우선 중국, 일본에 비해서 경제력이 뒤졌습니다. 중국와 일본은 조선보다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았습니다. 일본만 해도 조선의 두배가 넘었으니까요. 당연히 경제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기술이 뒤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식생활에 가장 중요한 그릇을 만드는 기술, 다시 말해 자기 기술을 생각해 보죠.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조선보다 군사력이 높았지만, 조선에 와서는 심지어 개 밥그릇까지 챙겨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도자기 기술은 조선에 비해서 훨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에 비해서 뒤졌던 것은 비단 도자기 기술에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가구를 비롯한 목공술, 공예품 기술, 직물 제조 기술도 뒤졌습니다.
이는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과 조선의 교역 상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은'을 비롯한 귀금속을 제외하면 수출품이 거의 없었던 반면, 조선의 물건은 도자기, 공예품, 면포 등의 직물, 서적에 이르기까지 압도적인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일본에서 영주들은 신하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귀한 물품을 선물하곤 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조선에서 나온 것이었고, 이로 인한 무역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의 은이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내부의 경제 상황이 취약해졌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은을 화폐처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군사 기술에 투자를 계속했기에 세금을 지나치게 걷었고 농민들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전국 시대 일본에서는 대기근이 자주 있었으며, 농민 반란도 잦았는데 그것은 기후 등의 외부 요인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영주들이 사람들의 삶이 어려울 정도로 착취하여 군사 기술과 부하의 호감을 얻기 위한 사치품에만 투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발발 요인으로서 이와 같은 무역 불균형이 중요한 요인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생필품의 제조 기술에 있어서는 중국과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일부 물품은 도리어 중국에 수출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삶이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이 기술력이 뒤졌다는 것은 무기 기술 밖에는 보지 못한 결과로 나오는 착각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무기 기술이 반드시 뒤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화포 기술은 비록 제철 기술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비해서 우수했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무기 기술이 주로 왜구를 상대로 하기 위한 목적에 맞추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군사 기술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군사 기술에 투자를 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것에 그쳤고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후 조선과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왜구의 위협도 줄어들었기에 더욱 군사 기술의 필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조선이, 그리고 중국의 청나라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여기에 인도의 무굴제국이나 중동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훗날 유럽에 비해서 군사 기술이 뒤지게 되는 것은 그들이 기술 발전을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군사기술보다는 자국민의 생활 안정과 삶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중동의 사람들은 유럽 사람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오래 살았고, 평균적으로 사치했으며, 평균적으로 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교육률도 더욱 높았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높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북한은 한국보다 기술이 뛰어난 것일까요?
군사만을 위한 기술이 기술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순간,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원래 멍청한 나라였어. 지배당해도 싸."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거죠.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에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 후기, 대한 제국 시기만 해도 사람들의 삶은 프랑스 혁명 전의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 전의 러시아처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대의 어려움은 제도적인 문제도 부패한 관료 조직이나 멍청한 왕실 등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조선이 급하게 군사력을 키우려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실례로 대한제국은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군사력에 투자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거의 북한 수준,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연히 세금은 높아질 수 밖에 없었고, 군사 이외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삶은 피폐해지고 국민들은 굶주리고,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상황이 청나라 말기, 그리고 무굴 제국이나 오스만투르크 같은 나라에서도 벌어집니다.(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후기, 그리고 대한제국이 지나친 국방비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조선이 그대로 망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없었지만, 조선은 후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높은 생활 수준과 우수한 교육, 그리고 안정적인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국민 대다수가 비교적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조선은, 그리고 한반도의 국가들은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었고, 그 기반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조선(한민족)은 멍청해서 지배당해도 싸." 같은 생각을 하고 자존감을 잃은 채 열등 의식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조선이 기술적으로 선진국이었다고 할 수도 없고, 문제가 많은 나라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출신 자체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본래 인간의 능력은 동일하고 단지 주변 상황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니까요. 조선, 그리고 아시아의 군사 기술이 떨어졌던 것은 본래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정이 따르지 못했고 그럴 필요성이 없었을 뿐. 결국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 그대로일 뿐입니다.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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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시계가 빠르게 발전한 것은 사실 항해술의 발전과 대항해시대라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시계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항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베네치아, 스페인, 포르투칼 등 수많은 항해 국가에서는 거의 국가 사업으로서 시계 제작과 생산에 투자했습니다.(실제로 포르투칼 등의 나라에는 당시에 왕족이 투자하여 만든 시계를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서양에 어떤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군사 기술에서 유럽이 탁월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모든 기술에서 앞서 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기술이 앞서도 뒤서고 하는 것은 시기에 따라 달랐는데, 조선의 문물은 주변 국과 비교해서 그다지 뒤지지 않았으며, 때로는 더 우수한 것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문물이 뛰어난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기술이 앞서 있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기술이 앞서 있었습니다.
후진 문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요
100가지 품목 중에서 1,2가지 경제적으로 5% 정도에 해당되는 물건은
앞서 있더라도 나머지 95% 해당되는 품목들이 뒤쳐져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문명이 뒤쳐져 있었다.라고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모두 뒤쳐진 것이 아니라. ~ 네 맞습니다.
다만 비교할 수 있는 품목들~ 그리고 기술에 정교함 정도는 모두 서양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중국-조선 관계서도 조선의 문물이 가장 떨어졌구요.
(전국시대 일본은 제외해야~ 다이묘들의 영지 크기가 경상도 1/2 정도라서)
대부분 기술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군사적인 이유와 사치품 수요 같은 이유입니다.
두가지에 집중하면 백성들이 못 산다는 것이? 유교식 세뇌라고 봅니다.
실제 역사를 보면 군사기술이 발전한 만큼 민간용 기술도 발전했고
사치품 수요가 높아지면 거기에 따라 기술이 발전했고 다시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물건들도 품질이 좋아졌습니다.
애초에 한쪽 기술이 발전한다고 다른 기술이 약해진다는 것은
전시생산 체계 아래서나 그런 것이지 대부분의 경우는 오히려 군사 기술이
민간 기술을 선도 합니다.
대략 서양에서는 1500년대 초반(임진왜란 90년전)
군사적인 이유로 용광로 생산이 시작됩니다.
10미터급 크기를 갖는 거대한 용광로의 투자에 의해
철이 대량생산되었고 그로 인해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철 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용광로 같은 소재 기술은 대량 소비와 군사적 사용을 전재로 하는데
이것이 있어야 민간용 기술도 발전하는 것은 1500년대 부터 동일한 매커니즘이엿습니다.
(1780년대 용광로 때문에 오해가 많은데 이것은 석탄 기반의 용광로고
숮 기반 용광로는 1500년대 이미 등장했고 1550년대 넘어가면 공개기술이 됩니다.)
어쨋던 군사에 대한 투자가 기술을 만들고 ~ 그 기술을 민간인들도 수혜를 입는 것입니다.
조선의 경우는 동양의 기술력을 따라갔는지도 의문입니다.
즉 명나라와 조선의 기술력 격차도 상당했습니다.
즉 동양이 서양과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조선은 동양의 다른 문명에 비해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위에 말한 유리는 정확히는 투명유리라는 것으로
기술적으로는 1400도 정도의 고온에서 3일 정도 기포를 빼야 합니다.
광학유리는 칼륨 유리에서 더 등급이 높구요.
동양에서는 같은 유리하고 하더라도 색유리와 뿌연 흰색 유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가
1700년대글 기점으로 서양 유리를 따라했고 ~ 곧 투명유리를 만들어서
전신거울을 복재해냈습니다.
즉 동양이 서양 기술과 비슷하다는 것은 꽤 근거 있죠.
반대로 서양역시 고령토의 비밀을 획득한 순간
50년 만에 동양 도자기들을 훌쩍 뛰어 넘어 버렸죠.
동양이 더 우월하다는 근거도 약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설사 동양이 기술력을 가졌더라도 조선은 동양이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양이라고 할때 명나라는 서양의 기술을 어렵지 않게 복재했지만
조선은 유리 기술은 손도 못댔습니다.
동양을 말하면서 은연중에 명나라 기술을 내새우는데
설사 명나라 청나라 기술이 서양과 비슷했다 하더라도
조선은 명나라 기술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의 문명을 따진다고 할때는 동양 문명 어쩌고 하면 안된다는 거죠
같은 유리지만 유리 기술 중에서 조선은
유리 구술 혹은 법랑질이라는 유리질 코팅을 입히는 기술 정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동시대 서양에서는 납유리를 이용해 옥과 비슷한 색갈로 모방품을 만들어서
강옥(옥중에서 최상등급)의 것으로 모조해서 팔았구요.
유리 기술이 있다고 해도 렌즈의 사용되는 고급 광학유리 기술과 연마술~과
기껏 장신구에 들어가는 색유리 구술 만드는 기술은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색유리를 이용해 유리 오리나 신발을 만들 정도로
이미 명나라 때 그런 기술이 발전해 있었습니다.
(거울에 사용되는 투명유리는 또 등급이 달라서)
하지만 조선문명에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상용품이 뛰어나다고 할때
일상용품도 증거가 없습니다.
수레,벽돌,도르레를 사용하지 않았고
다른 문명은 저걸 사용해서 일상생활도 풍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무기 기술만큼 일상용품 기술도 발전합니다.
마치 별개로 무기만 발전했고 그렇지 않다. 라고 하는데
무기 기술이 발전한 만큼 일상 기술도 발전합니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에 토대가 되는 실린더를 만드는 기술은
바로 대포의 내경을 깍는 기술에서 나왔으며
철의 대량생산 기술인 용광로 기술에 투자하는 이유역시
군사적인 이유입니다. 그렇게 획득된 기술이 민간에 영양을 끼치면서
민간용 기술도 함께 발전하는 것이지 대부분의 경우 별개의 기술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지만, 유리가 없었다고 해서 조선의 기술이 뒤졌다는 것은 역시 착오입니다.
제가 쓴 글을 잘 읽어보시죠.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과 왜(일본)의 무역 상황을 말이지요.
명나라와 조선을 비교한다는 것은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명나라의 인구와 경제 규모는 조선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시아라고 할때 명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나라는 당시 아시아에서 문화와 기술의 최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명나라에 조선의 물품이 꽤 많이 수출되었다는 점은 조선에도 나름대로 내세울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뜻 합니다. 게다가 명나라가 규모가 큰 나라 임에도 가격 경쟁력이 꽤 있었다는 말입니다.
만일 조선이 동아시아에서 문화의 최후진국이었다면, 조선과 일본과의 무역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나라와도 일방적인 수입만이 진행되었겠지요. 크지는 않지만, 주로 명이나 일본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쪽과도 교류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조선의 상품 중 인기 품목은 존재했습니다. 당시 동남아시아의 기술 수준은 명나라보다 많이 뒤졌고 좋은 것도 있었지만, 나쁜 것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무역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일본에서는 조선의 물품을 수입했을까요?
물론 당시 일본에도 조선보다 뛰어난 기술은 많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의 물품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그들 물품이 일본인들이 보기에 좋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본이 사간 것은 주로 명나라(청나라)와거래 할 수 없어서 조선을 통해 가져간 것이 대부분입니다.
조선산 물건 중에서 인삼 같은 것이 수출품이였는데 이건 특산품이지 ~ 기술력을 논할 수 없습니다.
조선산 인삼이 특산품으로 불릴만 해진 것은 인공경작이 가능해진 정조 사후의 일이고
기술적으로는 홍삼 이후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국에는 특산품이지 기술적으로 좋다를
따질 부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노력해서 만든 특산품이라면 의미가 있지만 아니라면 그냥 자원일 뿐입니다.
그 밖에는 중계 무역의 이익이 주였습니다.
다만 전국시대 일본은 아직 통일하기 전
겨우 경산도 1/2 크기의 영주들끼리 난립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서로 독립국 관계였을때 약간 우위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을 논해서 조선이 우월하다면 당시는 국력의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도 통일된 후 100년 정도 이후에는 면포가 따라 잡히는 시기와 동시에
모두 따라 잡힙니다.
반면 일본의 수출품을 보면 이와리 자기 처럼 그냥 보더라도
기술력이 좋네 라고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반명 조선은 그 정도까지 기술력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문명과 문화는 구분해 주셨으면 합니다. 문화는 상대주의로 어느 문화던 존중해 줍니다.
문명의 척도가 비교 대상이지 문화는 그리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기술력의 척도가 되는 제품들을 볼때 일본은 테엽으로 작동하는 자동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차도 따르고 활도 쏘고 그러던데~ 그냥 보더라도 기술 수준 좋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꽤 정교한 시계도 복재했습니다. 이건 추로 돌아가는 시계긴 하지만 여러 장비들이 정교했죠
수입과 수출로 뭔가 조선에 있었다고 한다면 뭐냐고 묻고 싶습니다.
대체로 정교한 것들이 아니라 단순히 손노가다 제품이나 주로 천연 자원입니다.
이런것들은 아무리 팔더라도 하급 문명국이라는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쨋던 무역이 있었으니까 보다는~
일본이 만드는 자동인형 보다 더 정교한 인형을 만들고
일본이 만들던 추식 시계 보다 더 정교한것을 만들었다면
문명이 높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과 관련없는 제품은 특산물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고
문명을 비교할 수 있는 수공예품이나 기술들은 낮았습니다.
무역으로만 본다면 문명수준이 높은 나라도 얼마든지 적자가 납니다.
19세기 영국이(아편전쟁이후) 에도 중국을 개방시켰는데도 적자가 난 것 처럼요.
그 나라가 후지기 때문에 하류층들이 소비를 안해서 입니다.
문명은 무기 기술이나 기계의 정교함으로 비교하는 것이 옳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자동 인형 같은 정교한 수준에 도달한 적이 언제 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조선의 군사기술적 후진성은 당시 건국 초기부터의 주적인 여진의 후진성에 기인한다고 보면 됩니다. 여진인들 막는데는 건국 초기 개발했던 병기로 충분했으니까요. 그나마 왜란쇼크는 그 면에서 꽤 큰 이슈였죠.
게다가 이괄의 난과 호란이 일어남으로써 다시금 무인이나 무기에 대한 불신이 일어나고...또 기술적 낙후가 진행되고...조선 문명의 후진성이라기보단 '우리 그냥 이렇게 살게 냅두세요.'에 가깝지, 꼭 인종적 후진성에 기인하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사대부만 아니라 왕과 왕족조차도 검소함을 강요받던 나라에서 사치품이 자생하기에도 힘들고요.
서양에 도자기가 없듯 동양에는 유리가 없었죠.
서양의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동양보다 뛰어나다.라고 하기에는
서양 기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포켓시계를
대략 1550년 대 부터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포켓 시계는 직관적으로 아 기술력 높구나 할 수 있는 물건이라서~
그리고 당연히 포켓 시계에 쓰이는 테옆도 동양에 없었죠.
서양의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동양보다 뛰어나다.라고 하는 논리로 따지면
서양에는 있는데 동양에는 없는게 더 많습니다.
그리고 동시대 오스만 이나 인도 문명은 더 뛰어났구요.
우가우가 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포겟 기계 같은 것도 서로 잘 복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