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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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떠오른 생각을 급히 적습니다.
밥을 짓다가 갑작스럽게 남군(南郡)을 떠올렸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강릉이 있는 군으로 나오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만요. 그러면서, 강릉이 초(楚)의 도읍이었던 역사를 떠올립니다. 진(秦)이 초를 치면서 적국의 수도인 영(郢)까지 점령하면서 그 자리에 남군을 설치한 상황까지 되돌아봅니다. 이렇게 쓰니 한 무제 유철이 지배하던 시설에 위만조선을 멸망하고 나서 왕검성이 있던 지방에 낙랑군을 설치한 일까지 머리 속에 살아납니다. 조선에 있었던 사례를 쓰라리게 느끼지만요.
글을 쓰는 도중에 떠오른 사감을 적으면서 남군이 어느 시기에 설치되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급하니까 위키백과에 검색했습니다. 남군(중국) 항목을 살피니 소양왕 29년, 서력으로는 '기원전 278년'으로 나옵니다. 초한대전이 기원전 206년에 일어났다고 치면, 대략 70여년 차이가 있습니다. 진이 영도를 점령해 초의 도읍이 있던 땅에 남군을 설치한 시기와 초한대전이 시작했던 시기. 이 두 시기의 차이요.
제목에 나타난 대로 <초한대전이 있었던 시기에서 남군에 살았던 이들이 어느 나라를 조국으로 삼았을까>하는 생각을 적습니다. 70여년. 길다면 긴 세월이 흘렸으니 남군으로 바꾼 영도 땅에 살았던 이에게 조국이 바뀔 가능성이 있겠다고 여럼풋하게 짐작하지만요. 거기에 고향으로 두더라도 계층에 따른 차이가 있겠다는 점도 생각이 미칩니다. 학문과 무술을 연마하다가 유력 세력에 몸담은 선비나 농민으로 지내다가 병사로 징집된 사람에게는 조국이 어떤 의미일까. 이런 식으로요.
서툴게 적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과 흥미롭게 얘기할 소재로 판단하니 잊기 전에 급히 적습니다. 이런 얘기가 역사 얘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처할 사람이 계속 있겠다고 여기면서요.
<오. 우리가 여기서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는 그대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우리를 잊지 마오.>
- 출처 : 듄 우리말 번역본(출판사 : 황금가지) 제 1권 177쪽
전쟁이 빈번한 봉건 사회에서의 농민의 애국심이라는 것은 굉장히 작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민은 군주에게 세금을 바치고, 군주는 무력으로 농민을 보호하는 일종의 계약 관계에 불과했으니까요. 군주가 바뀐다고 해도 그저 세금 걷어가는 사람이 바뀔 뿐이기 때문에 까막눈인 농민들이 별로 신경쓸 일이 없었을 겁니다. 당시에 전쟁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 죽이고 땅 빼앗고 약탈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항하고자 단합하는 마음이야 있겠지만, 나라 이름이야 초가 되었든 한이 되었든 진이 되었든 관심없지 않았을까요?
당시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더라도 그 지역에 자국민을 이주시키는 일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그 지역에서 사람들이 떠나 버리고 나면 그 지역은 거의 텅텅 빈 느낌이 되기 쉬웠다지요.
하지만 진나라 말기에 이르러 강제 이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이것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면서도 진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이바지하게 되지요. 원래 진나라에서 오래 살아오다보니 이주하더라도 진나라 사람임을 잊지 않고 전쟁이 나면 맞서 싸우려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으니까요.
나라라는 것...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게 오랜 것도 아닙니다. 특히나 중국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졌던 한나라조차 400년을 채울까 말까했고(그나마 전한, 후한을 합쳐서) 정말로 삼일 천하로 끝나버린 나라도 많았지요. 그래서일까요? 중국 땅의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히 미약했던거 같아요. 물론 70년이나 진나라 밑에서 살아왔다면, '나는 진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충분히 많겠지만...
문득 '나라는 영원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한국의 상황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