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D. 무어는 배틀스타 갤럭티카로 꽤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로 아직 또다른 시리즈를 제대로 만들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카프리카는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기대를 모았고 자체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지만 고작 1개 시즌 방영한 뒤로 시청율 저조로 끝장이 나 버렸죠. 조금 진도가 느렸긴 해도 상당히 좋은 물건이었기에 아쉬운 일이긴 합니다. 그나마 카프리카의 마지막이 그렇게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원래 다음 시즌 예고편으로 만들어졌던 영상을 끼워넣어 어떻게 결말 비슷한 것이라도 내 주었기 때문이긴 한데요.



-이름부터 The Shape of Things to Come이네요. 물론 애초에 예고편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 이 부분만으로는 맺어진 이야기가 별로 없어 그다지 훌륭한 결말이 못 됩니다만, 60년 후에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세계관으로 이어질 걸 감안하고 봤을 때는 꽤 괜찮아 보이는 결말이 됩니다. 결국은 유명 시리즈의 성공하지 못한 스핀오프라는 한계 내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결말인 거죠.

 아무튼 현재로서 RDM은 우주 전쟁물(블러드 앤 크롬)도 만들고 또 어른들을 위한 해리 포터 비슷한 물건(17th precinct)도 만들 거고 기타 등등 여러 분야에서 판을 벌이고 있는 중이지만, 갤럭티카가 꽤 잘나가고 있던 무렵에도 RDM은 역시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카프리카의 제작에 참여했던 마이클 테일러와 함께 또다른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이름하여 Virtuality, 가상 현실이라는 꽤 단순한 제목의 물건입니다. 여러분이 아마 이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없다면 아마 그건 이 시리즈가 제대로 제작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제작되지 못했냐면 2009년에 나온 파일럿 에피소드의 평가가 그닥 좋지 못했기 때문이죠. 왜 좋지 못했냐면요, 그냥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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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자체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요즘 SF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렇게까지 머지 않은 미래고(핵펄스식 추진장치의 개발로부터 대략 100년 후라고 하니 아마 2060년쯤?) 작중에서 뭔가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100년 내로 지구에 큰 위기가 온다고 합니다. 뻔하지만 별 도리 없이 다른 살만한 동네 찾아보려고 10.5광년 떨어진 엡실론 에리다니로 10인승의 유인 탐사선 페이튼(Pheaton) 호가 출발하게 되죠.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초의 유인 외계 탐사라는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대부분의 미래 우주선이 그렇지만 페이튼 호에는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과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또 기분나쁜 여자 목소리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고요. 이 드라마 제목을 상기해보시면 당연하겠지만, 가는 길 동안 승무원들이 심심할까 봐 최첨단 가상현실 체험장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네. 홀로덱이요. 뭐 고글 쓰고 하는 거지만. 승무원들은 심심할 때마다 가상공간에서 스키도 타고 콘서트도 가고 신나게 놀지만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벌어질 일이라곤 사고밖에 더 있나요. 갑자기 가상현실 속에서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지고, 뭔가 컴퓨터가 스스로 자아를 갖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고, 승무원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싸우기 시작하고, 사고도 막 터지고...기타 등등.

 아이디어까지는 괜찮아 보이지만, 배경이 외우주 탐사를 나가는 우주선이기에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인물들만 계속 나와야 하는 시리즈로서는 불행히도 그 강점을 살리지 못합니다. 10명이나 되는 승무원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고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프로페셔널 우주비행사라기보다는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듀서들이 일부러 갈등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원자들 속에서 '골라내 조합하는') 그룹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다양하기는 하지만 꽤나 인공적인 데다가 정 붙일 캐릭터가 없어요. 애초에 그럴 일도 없지만, '딥 임팩트'나 '선샤인'에서처럼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면서 비장한 대사를 교환하는 장면은 꿈도 못 꿀 정도죠. 이야기가 진행되면 좀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맥락에서 더 희한한 것은, 혹은 적절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로 리얼리티 쇼가 드라마 속의 드라마로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 탐사를 지원하는 거대 기업은 추가 수입을 얻기 위해 우주선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황을 지구에 중계하고 승무원들끼리 서로 언쟁이라도 벌이면 잔뜩 자극적인 멘트를 붙여서 광고까지 합니다. 미국에서조차 우주왕복선이 퇴역하고 우주탐사니 뭐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TV엔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만 넘쳐나는 21세기의 오늘날 세태를 비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인데다가 무엇보다 이건 SF잖아요. 로망을 빼고 나면 뭐가 남나요.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 파일럿은 적당히 짧은 떡밥을 뿌리고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빨리 잊혀졌고요. 그래서 길게 쓰고 싶어도 길게 쓸 거리가 별로 없어요. 아마 이 글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다만 개인적으로 신경쓰였던 건 작중의 페이튼호가 오리온 엔진을 사용하는 우주선이라는 겁니다. 요즘 물건답게 특수효과는 확실히 괜찮고, 우주선 디자인도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핵폭탄 터뜨려서 그 반작용으로 추진하는 우주선을 영상물에서 직접 묘사한 건 아마 이 녀석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딥 임팩트에서 나온 메시아호가 같은 방식이라는데 디자인 봐서는 도무지 믿기질 않고요.



  현재 기술로 성간 여행을 하겠다면 선택 가능한 거의 유일한 물건이 오리온 엔진입니다만, 보시다시피 드라마 내의 묘사는 그렇게까지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핵폭탄을 터뜨려 그 힘으로 추진제를 한쪽 방향으로 내보내고 그게 우주선의 충격판에 반사되면서 추진한다는 원리 자체는 같습니다만, 목성에서 슬링샷을 하고 나서야 쓰기 시작한다던가 핵펄스식 엔진으로 광속의 무려 90% 속도를 낸다는 기본 설정만 봐도 차라리 무슨 워프 엔진을 쓰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죠. 그래도 VFX 팀에서는 신경 꽤 쓴 것 같으니 디자인 관련된 그림만 몇 장 보고 넘어가도록 합시다.큰 이미지들이라서 외부링크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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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저장고의 이미지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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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딥 임팩트의 메시아. 디자인이 너무 다르죠.


 한편으로, 슬슬 다음주면 월드 인베이전이 개봉하고 폴도 그리 개봉이 머지 않은 것 같네요. 간만에 극장에나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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