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무협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김용 외 중국계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작품도 더 폭 넓게 볼 생각입니다. 무협을 좀 더 깊이 접근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협 소설을 본 것은 중학생 때로 기억합니다. 그 무렵 고려원에서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가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를 통해 무협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이지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같은 동네 살던 급우가 형과 함께 무협 소설을 자주 빌려 보았는데 제가 그것을 다시 빌려 보면서 익숙해졌지요.

 

  요즘은 찾을 수 없는 세로 쓰기 인쇄의 판형... 그때가 90년대초였는데 왜 그렇게 인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시 제게 그들 소설은 참 독특하다는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본 무협 작품이 거의 수백편에 이르지만, 아직 충분히 많이 보았다고 하기엔 어렵겠습니다. 김용의 작품은 거의 다 보았지만, 와룡생이나 고룡의 작품은 <초류향전기> 등 일부를 접해보았을 뿐이고, 우리나라에는 수천, 아니 수만?편의 작품이 있으니까요.

 

  고교 시절의 경험... 그리고 이후의 몇몇 작품과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무협 작품은 별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편중된 생각이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정말로 별로인 작품이 많습니다. 저는 어떤 책이건 일단 손에 들면 끝까지 읽는 편인데, 그런 제가 불과 몇 쪽 만에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도 적지 않지요.

 

  어떤 분야건 다양한 작품이 있고 좋은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무협의 '좋은 작품' 비율은 SF 보다는 확실히 낮습니다. SF 분야에서는 10 작품 중 절반 이상이 볼만한 작품이라면, 무협에서는 100편 중 몇 작품도 될까 말까... 하지만, 그것은 SF가 특히 좋다기보다는 무협 작품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이 많으니 쓰레기도 그만큼 많고, 대신에 좋은 작품 역시 그만큼 많은 것이겠지요.

 

  워낙 많은 작품이 있고, 작가도 많다보니 작가마다 몇 개를 골라보는 형식으로 접근하는데(물론, 도저히 못 봐줄 것들은 중간에 던져 버리는 식으로) 하루에 1,2 작품 씩 두 달 쯤 읽어보니 괜찮은 작가들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군요. (물론 피해야 할 작가들도...^^)

 

  작품 중에는 읽는 동안에는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읽고 나서 허무한 것도 꽤 있습니다. 굳이 누구의 작품이라고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먼치킨+하렘 스타일이 이런 부류이군요. 이야기의 전개가 항상 똑같은데다 왠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기 힘든 느낌. 에디트를 해서 게임을 즐기는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할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작가, 작품도 꽤 많이 보이고, 재미있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로 올 한 해 정도면 어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하나의 장르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SF나 기타 다른 책을 놓치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되는군요.

 

  그래도, 기왕 파고 들기로 했으니 좀 더 해 볼 생각입니다. 이게 끝나면 판타지나 추리 쪽도 좀 더 깊이 접근해볼 생각이고, SF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볼 생각입니다만, 애니메이션 <R.O.D.>의 주인공인 요미코 리드맨처럼 10분에 1권 독파...같은 비기라도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무협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두뇌 회전을 높이는 기술이나 동시에 책을 여러권 읽는 비기라던가...^^

 

  나름대로 책을 빨리 읽는 편이라 하루에 1,2편씩 보지만, 시간이 적지 않게 드는 것도 사실이지요. 1권에 30~1시간 정도. 3~4권을 보려면 2~4시간... 출퇴근 시간(왕복 2~3시간)에 기타 시간을 더해서 겨우겨우 보는게 현실입니다. 에공...

 

 

여담) 많은 무협 작품에서 주인공의 천재성을 부각하면서 10만권의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거의 책은 쪽수도 적도 글자수도 적다고 하나 10만권 독파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니, 그보다 그들 시대에 10만권의 책이 존재하기라도 했던가요? 칸트 시절(18세기) 국립 도서관에 고작 몇 천 권의 책이 있었다는데 말입니다.

  설사 10만권의 책이 있다 해도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혼자서 10만권의 책을 사서 모으는게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다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책이 천 권 정도만 되어도 그 부피가 적지 않고 보관하기도 힘듭니다.)

 

  물론, 두뇌가 무진장 뛰어나다면,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문고 크기 한 쪽 정도는 펼치는 순간 대충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한번 들으면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요.^^

 

여담) <수호전> 등의 작품 만이 아니라 <삼왕묘 설화> 같은 설화에서도 협(俠)의 정신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전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는 것은 대개 '충(忠)'이지요. 그래선지, 우리나라 무협에는 황실과 관련한 반역 사건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느낌입니다. 물론,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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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검과 막야검을 만드는 부부. 삼왕묘 이야기처럼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협'의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것이 수호전을 거쳐 무협으로 발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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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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