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고래류 중 향유고래만큼 사람들의 호기심과 공포를 한꺼번에 불러일으키는 존재도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 동물이 ‘최대’라는 타이틀을 그만큼 많이 보유했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큰 포식 포유류, 가장 울음소리가 큰 동물, 가장 귀가 밝은 포유류, 가장 깊이 잠수하는 포유류, 가장 큰 먹이를 사냥하는 포유류, 가장 이빨이 큰 포유류 등 가짓수도 상당하죠. 옛날부터 포경선의 가장 큰 적수이기도 해서 무서운 바다괴물로 통했습니다. 오늘날은 이미지 개선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2,000m가 넘는 심해에 들어가 10m 길이의 대왕오징어를 잡아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경이로운 존재입니다. 아직도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를 사냥하는 장면은 직접 촬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몸에 남은 빨판자국, 뱃속의 오징어, 오징어 조각을 물고 수면으로 귀환한다는 점 때문에 추측만 할 뿐이죠.

 

그런 만큼 향유고래는 꽤 괴상하게 생겼습니다. 사실 대형고래는 바다에 적응하면서 어류 형태로 변했기 때문에 고래류가 일반 포유류와 달리 이상하게 보이긴 합니다만. 향유고래는 특히 더합니다. 다른 고래가 빠른 속도로 물을 가르게끔 유선형인데 반해 향유고래는 직사각형에 가깝습니다. 머리가 뾰족하지 않고, 직각을 이루었죠. 이 직사각형 머리는 전체 몸길이의 1/3을 차지합니다. 머리가 엄청나게 큰 동물인 셈입니다. 하지만 큼지막한 대두인데도 주둥이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작습니다. 꼭 작대기를 붙여놓은 것 같아요. 이빨고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빨은 아래턱에만 있을 뿐이고요. 가슴 지느러미가 작아 몸에 딱 붙이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등지느러미는 없고, 대신 삼각형의 돌기가 열을 지었죠. 일반 포유류가 아니라 다른 해양 포유류와 비교해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는 모두 향유고래가 심해로 잠수해 오징어를 사냥하기 위한 결과입니다. 큰 머리통은 기름으로 가득한데, 이를 굳히면 밸러스트 탱크를 채운 잠수함마냥 깊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향유고래에게 중요한 건 더욱 더 밑으로 내려가 오징어를 찾는 것이지 빨리 헤엄치는 게 아니니까요. 그 거대한 머리는 부력을 조절 가능한 무게추인 거죠. 가슴 지느러미가 불필요하게 길 이유도 없습니다. 작대기 같은 주둥이는 오징어를 단번에 낚아챌 때 좋습니다. 일반 어류를 잡기엔 모자라지만, 어차피 다른 물고기를 먹기보다 주식은 정해졌습니다. 거기다 오징어를 잡아서 물어뜯는 게 아니라 그냥 삼키니까 굳이 이빨이 발달할 이유도 없고요. 전문적으로 대왕오징어만 상대하도록 몸이 발달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놀라운 동물이지만, 향유고래가 오징어 매니아가 된 까닭은 사실 다른 포식자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다른 포식자 무리, 그러니까 상어나 수염고래, 돌고래 등과 비교해서 향유고래는 너무 느립니다. 경쟁 포식자가 먹이를 다 빼앗아가도 대처할 방법이 없을 정도. 게다가 이빨이 난 주둥이로는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플랑크톤이든 물고기든 큰 몸집을 유지하려면 대량으로 먹어야 하는데, 고래상어나 돌묵상어, 혹등고래처럼 큰 입이 없는 향유고래에겐 불가능한 소리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경쟁자가 없는 수심을 찾아야 합니다. 복작복작한 수면에서 부대낄 게 아니라 수염고래와 돌고래, 상어가 없는 1000m 가까운 심해로 내려가는 게 답입니다. 물론 이만큼 어두우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2~300m만 내려와도 빛이 닿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음파 탐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고, 음파를 더욱 멀리 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목청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몸이 크면서도 자기만큼 느려서 충분히 쫓아가 제압할 수 있는 먹이를 찾아야죠. 어류 중에서는 이만한 먹이를 쉽게 볼 수 없으니 다른 쪽에서 찾아야 하는데, 두족류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대왕오징어는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금상첨화.

 

향유고래는 대왕오징어만 사냥하도록 진화한 동물이며, 오징어 하나에 종의 미래를 걸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먹이 하나에 의존하는 습성이 전체적으로 생존에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 먹이가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면, 먹고 사는 방식을 재빨리 바꾸지 못해 멸종하니까요. 대왕오징어 사냥에 최적인 향유고래는 대왕오징어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대나무가 사라지면 굶어 죽는 판다나 유칼립투스 나무가 없어서 먹고 살기 힘든 코알라처럼요. 물론 향유고래의 사정이 이들 동물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판다나 코알라는 서식지 하나를 정해놓고 살아가는 초식동물이고, 향유고래는 대양을 떠도는 육식동물입니다. 대나무, 유칼립투스는 한정적인 지역에 살아가는 나무지만, 대왕오징어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퍼져 사는 동물이죠. 그리고 대왕오징어가 과연 그렇게 쉽게 사라질 존재인가 하는 문제도 있고요. 오징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해양동물 중 하나니까요. 큰 오징어가 사라질 리 없으니 향유고래도 굶는 일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렇긴 해도 향유고래가 편식이 심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동물 앞에 붙은 최고 타이틀은 그만큼 오징어 사냥에만 발달했고, 다른 분야는 취약해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이한 외모와 신비로운 생태 역시 편식 때문에 생겨난 거니까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향유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과 잠수 능력, 음파 탐지, 대왕오징어와의 싸움 등을 통해 종종 바닷속 최강 포식자 자리에 등극하곤 합니다. 현재로서 함부로 건드릴 동물이 없다는 게 사실이긴 한데. 느린 수영속도와 편식하는 습성, 경쟁자에게 밀려 심해로 내려갔다는 것 등을 보면 최강 포식자라고 하기엔 좀 무리인 것 같습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적극적인 육식을 위해 태어난 백상어나 그야말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범고래와 달리 향유고래는 한쪽에만 치우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