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년 03월 11일. 08시 50분. 워싱턴

워싱턴 근교에 자리한 통합 대테러 훈련 센터에선 포스 리컨 대원
들의 훈련이 마악 진행되고 있었다. 서로의 사각을 주의하면서 미로
처럼 꾸며진 '킬 하우스'(실내전 훈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훈련 공
간) 안에서 총을 든 표적과 인질을 정확히 가려내어 공격하는 그들
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맨 앞에 선 대원의 손에 들린 MP-47A1 기관단총이 소총탄을 내뱉
자 굳게 닫혀 있던 문 곳곳에 구멍이 뚫리면서 힘없이 열렸고, 안으
로 돌입한 대원들은 총을 들고 있는 모든 표적에 한 발씩 명중탄을
날렸다.
곧 훈련이 끝났고 그들은 쓰고 있는 복면을 벗자마자 길게 숨을 내
쉬면서 물을 마셨다. 이렇게 해서 오전의 훈련을 마친 대원들은 검
은색 버스에 몸을 실었고, 그 안에서 샤워를 하면서 서로 얘기했다.

"오늘 뭐 할 거야?"
"딱히 갈 데도 없으니 바에서 술이나 마실래."
"너는?"
"글쎄... 아직 결정한 건 아니지만 들를 곳이 있어."

3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변함 없이 포스 리컨에서 근무 중인
'마이크 키튼' 중위는 동료 대원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샤워
실을 나섰다. 곧장 정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알
링턴 국립 묘지로 향했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미 국회 의사당 건물을 바라보면서 실소를 머
금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초강국이
다. 하지만, 그 수도는 최악의 상태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
었다. 경찰들은 파업을 일으키고, 범죄율은 하늘을 찌르는 등 워싱
턴은 도시로서는 도저히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였다. 만약 미국 건
국에 이바지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이 부활해서 지금의
워싱턴을 보았다면 기절하고 말았으리라...
얼마 후 국립 묘지에 들어선 그는 씁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도 의장대와 마차 행렬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화
성의 사이도니아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쟁
초기 목성군은 생포한 연합군 포로들과 점령지 내의 민간인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악 행위를 일삼았다는 것과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도 거리낌없이 저질렀었다고 했다.
피고가 된 목성 연합의 수뇌부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
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주장했었고, 최고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자 재
판의 무효를 외치다가 헌병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면서 울부짖
음에 가까운 고함을 쳤었다. 어찌되었건 그들의 자백에 따라 확인된
장소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각 당사국으로 보내져 성대한 절차를 거
쳐 국립 묘지에 묻혔지만, 피해자들에겐 아무런 위로가 될 수 없었
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례식장에선 유족들의 울음과 목성인들을 끝
까지 저주하겠노라는 자들의 목소리가 가득 했다.
얼마 후 해병대원들의 유해가 묻힌 곳에 이른 그는 절친했던 전우
'케빈 글렌'의 묘비 앞에 이르자 자세를 낮추면서 혼잣말을 시작했
다.

"잘 지냈냐? 미안하다. 그 동안 찾지 않아서..."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린 그는 계속 말했다.

"네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개월 뒤에 전쟁이 끝났어.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2차 대전 때만 해도 1억명이나 죽고 6년이나 질질 끌었잖
아? 그런데 이번엔 눈 깜짝할 새도 없었어. 십 수억명이나 죽었는데
반년도 안 되어서 끝났으니 말이야.
전쟁이 끝나자마자 남을 맘이 없어졌는지 거의 다 떠났어. 돌로리스
소령님하고 마이클 까지 다 떠났어. 이제 나 혼자야..."

곧 일어서면서 그는 품 안에 넣어둔 작은 담배갑을 꺼냈다.

"이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잘 있어라."

곧 뒤돌아 서서 오던 길을 따라 걷던 그는 반대편에서 오는 파란색
머리카락의 여자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속
에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파란 머리? 혹시...'

곧 되돌아선 그는 허겁지겁 뛰어가기 시작했다.

'틀림없어! 그 여자다!'

어느새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메이저 루리. 저를 기억하십니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루리는 뒤돌아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 당신은...?"
"'마이크 키튼' 중위입니다. '케빈 글렌'의 동료였습니다."
"..."

루리는 애써 모르는척 가던 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키튼 중위는 계
속 그녀의 뒤를 쫓으면서 말했다.

"왜 도망치시죠?"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당신은 우릴 볼 낯이 없는 겁니다. 자
기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녀석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
고 계실테니까요."
"대체... 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
"저를 피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당
신은 에이미를 돌보아 주면서 케빈의 아이를 낳았고, 지금도 자신을
원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구가 된 케빈의 동료들에게 남몰래 생활
비를 대주셨잖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 잘못이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메이저 루리. 자신을 학대하지 마세요. 당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키튼 중위는 감정을 억누르다 눈물을 흘리고 만 그녀를 감싸 주었
다. 그 직후 루리는 들고 온 꽃다발을 케빈의 묘비 앞에 내려 놓았
고, 그는 뒤에 서서 이를 바라보았다.

"대부분 그렇게 떠났군요..."
"더 이상 남아있기 힘들었으니까요. 다들 전에 근무하던 병과로 돌
아가긴 했지만, 적응하기 힘든가봐요. 연락이 될 때마다 하는 얘기
들이 이래요. '그 때가 그립다.'라고..."

케빈 전우들의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벤치에 앉은 채 지금 이 순간에도 끊이지 않는 의장대와 마
차의, 유족들의 행진을 바라보았다. 간혹 길을 따라 지나 가는 아이
들이 두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어주었고, 키튼 중위는 씨익 웃으며
화답하곤 했다.

"이만 가겠습니다. 에이미와 케빈의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 만약 어
떤 녀석들이 세 사람을 위협한다면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에요."

곧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