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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비경탐험물이자 잠수함 소설의 전형을 만든 <해저 2만리>]


해양소설은 예전부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인간은 뭍에 살기에 바다라는 공간에 적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바다가 무대이면, 모험물이나 공포물로 연결됩니다. 선박을 타고 나갔다 돌아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험한 일이었죠. 고산지대나 사막 같은 환경도 위험하긴 합니다만 망망대해는 육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데다 생존 자체가 힘드니까요. 덕분에 험한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숱하게 쓰였습니다. 19세기 들어 해양소설의 패턴에 변화가 하나 생겼는데, 바로 잠수함 때문입니다. 이제 인간은 바다를 그저 건너는 것만 아니라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어나 운디네의 도움이 없어도 자력으로 숨겨진 세상을 탐험하게 되었어요. 심해는 흔히 접할 수 없는 공간이고, 당연히 상상을 자극합니다. 환상과 공포를 체험하고 나오기에 딱 알맞죠. 이런 미지의 공간을 데려다 주는 잠수함은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잠수함이 활동하는 바닷속도 신비롭지만, 잠수함 그 자체도 기이한 병기죠. 전차나 항공기, 수상 선박 등 다른 탑승 병기들과 달리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번 숨으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아군조차 찾기가 어렵죠. 덕분에 여타 병기보다 훨씬 비밀스럽고 위험한 느낌을 풍깁니다. 하긴 최초의 잠수함으로 일컫는 터틀도 수중공격 하려고 만들었죠. 잠수함의 은밀한 위협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셈입니다. 심해의 저격수라고 할까요. 약소국이 괜히 잠수함에 열을 쏟는 게 아니죠. 적은 비용으로 강대국과 전력 대칭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바닷속은 극한의 환경이라 폐쇄성을 강조합니다. 승무원은 좁은 강철 덩어리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해요. 가뜩이나 사방이 깊은 물이라서 불안한데,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난리법석이 따로 없죠. 그러니 창작가들이 잠수함을 소재로 삼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잠수함을 타고 잃어버린 고대 유적을 찾거나, 거대한 해저 괴물과 싸우거나, 3차 대전을 막으려고 급급하기도 하죠.


잠수함은 새로운 소설 장르 탄생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경탐험 문학을 볼까요. 비경탐험물의 원조로 손꼽는 작품 중 하나가 <해저 2만리>입니다. 이쪽에 속하는 고전 탐험물인 <솔로몬 왕의 동굴>이나 <잃어버린 세계>보다 훨씬 앞선 소설입니다. 1870년에 출간했으니까요. 그저 일찍 태어난 선배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남들이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 등을 헤맬 때 심해라는 특이한 세계를 파고 들었거든요. 이는 노틸러스라는 걸출한 물건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죠. 작가인 쥘 베른은 기이한 장소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구 타고 하늘도 날고, 땅속으로 파고들기도 하고, 대포 쏴서 달까지 갔죠.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인기 있는 방법이 잠수함입니다. 그저 세계 해역만 돌아다니는 게 아닙니다. 별천지를 구경하고, 온갖 물고기와 노닐고, 아틀란티스를 발견하는 등 해저의 로망이란 로망은 전부 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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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메그>는 거대함을 강조하려고 괴물 상어와 잠수함이 대결하기도 했습니다.]


바다라고 하면 상어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해양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하위 장르가 바로 상어 문학이죠.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죠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게 끝나겠죠. <죠스>의 아성에 그나마 도전할만한 책이 <메그>입니다. 태고에 서식했던 거대 백상아리가 나온다는 설정 때문에 기존 상어 소설과 스케일이 남다르거든요. 그렇게 크기를 강조하는 요소가 바로 잠수함이죠. 거대 괴수가 나타나면, 당연히 그에 맞서는 거대 기계가 등장해야 인지상정. 메갈로돈을 잡기 위해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 571번 노틸러스가 출항합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고물이냐고 승무원이 반문하지만, 함장은 오히려 퇴물이기에 가능하다고 대답하죠. 전쟁 영웅으로 인기가 많아 환경 보호 단체의 압박에서 자유롭다고요. 하지만 너무 낡았기 때문인지 메갈로돈은 끝내 노틸러스를 침몰시킵니다. 아무리 노익장이라고 해도 상어한테 당하는 잠수함이라니, 좀 어이 없었던 기억도 나네요.


코즈믹 호러, 그러니까 우주적 공포도 바다와 뗄 수 없습니다. 이 장르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덕분이죠. 우주에서 온 신적 존재들이 바다에 잠들었다는 설정은 <다곤>, <크툴루의 부름>, <인스머스의 그림자>의 근간입니다. 크툴루 신화에 속하지 않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단편소설로 <신전>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표류하던 U-보트가 해저 도시를 발견합니다. 거기에 접근하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이내 잠수함은 광기와 혼돈에 빠집니다. 이 작품은 크툴루나 다곤 같은 외계 고대신이 나오지 않음에도 그에 못지않은 암울함을 자아납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해저 공포를 다룬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바다가 나오는 소설은 얼마 안 됩니다. 주인공이 심해까지 내려가는 줄거리는 손에 꼽을 정도죠. <다곤>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도 그냥 무인도나 항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작가가 구상하는 심해 풍경을 보고 싶다면, 이 소설이 적격입니다.
 

2차 대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쪽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소설이 <특전 U-보트>일 겁니다. 실제로 U-보트 탑승자였던 로타 귄터 부하임이 자기 경험을 토대도 쓴 책이죠. 이것 말고 잠수함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고 합니다. 지상에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있다면, 바다에는 <특전 U-보트>가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만. 솔직히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국내에는 정식 완역본이 나온 적 없어서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원작자 부하임은 피터슨 감독이 찍은 영화에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 영화의 고전이지만, 고증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고 하네요. 또한 전쟁의 공포에 물들어가는 승무원 연기가 너무 과장이라며 한 소리 했습니다. 실제 승무원 중에는 나치 독일에 충성하며 열심히 싸운 이들도 있긴 하니까요. 하지만 창작물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감독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을 듯. 영화가 유명한 만큼,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중역판조차 구할 길이 막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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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테크노 스릴러의 서막을 알린 잠수함 붉은 10월입니다.]


요즘 소설은 잠수함을 비경탐험에 써먹지 않죠. 오히려 군사 전문 쪽입니다. 테크노 스릴러의 대중적인 붐을 일으킨 인물이 톰 클랜시고, 클랜시의 데뷔작이 <붉은 10월>이니까요. 냉전 시대, 소련의 전략 원자력 잠수함 ‘붉은 10월’이 출항합니다. 함장은 소련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잠수함을 기회로 삼아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합니다. 소련은 이를 막기 위해 추적 함대를 파견하고, 이를 모르는 미국이 맞서면서 세계대전의 위기가 몰려와요. 줄거리를 보면 가상 원자력 잠수함을 묘사한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련과 미국의 갈등입니다. <특전 U보트> 같은 작품 때문에 종종 오해하는데, <붉은 10월>은 잠수함의 도피 항해를 내내 서술하지 않아요. 게다가 진짜 주인공은 소련 잠수함장이 아니라 미국 첩보요원 잭 라이언이죠. 붉은 10월은 다른 소설에도 별로 나오지 않으니. 그럼에도 잠수함을 테크노 스릴러의 중심에 끌어들인 공로가 크기 때문에 현대적인 해양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편입니다.


 
그 밖에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잠수함이 나오는 것도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세상의 종말과 잠수함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잠수하면 그만큼 피해를 덜 받으니까요. 수면 위의 세상이 어떻든 해저는 안전하죠. 그런 점에서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대피소’라고 할 수 있고요. <해변에서>는 방사선 낙진으로 멸망한 세상에서 생존자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들은 잠수함 스콜피온을 타고 항해하며, 도시를 둘러보고 멸망한 세상에 절망하죠. 잠수함이 주역은 아니지만, 핵전쟁으로 무너진 세계를 수면 밑으로 여행한다는 설정이 특이했습니다. 또한 <세계대전 Z>에 나왔던 정화 기함도 생각나네요. 좀비들이 들끓자 그걸 피해 물속으로 달아난 중국 잠수함입니다. 육지에서 사람들이 박살 나는 동안, 물속에서 조용히 숨어 지냈죠. 그 놈들이 결국 바다 밑바닥까지 돌아다녀서 문제였지만. 좀비를 피해 잠수함을 타고 심해로 도피한다는 발상을 보고,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었습니다.


잠수함 나오는 소설이라고 죄다 항해 장면을 묘사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골 때리는 책이 아리카와 히로가 쓴 <바다 밑>이었습니다. 해상자위대의 군사 항구에 웬 거대 가재들이 상륙합니다. 그것도 한창 사람들이 붐비는 휴일 기간이었죠. 배에 있던 해상 자위관은 일련의 아이들을 구하고, 어쩔 수 없이 오야시오급 키리시오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가재들을 퇴치할 때까지 그 안에 숨어서 며칠이고 버틴다는 줄거리. 괴물도 나오고, 잠수함도 나오고, 해상자위대가 주인공이니, 심해를 탐험하며 싸우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만. 그보다 아이들의 표류기에 경찰의 괴물 퇴치, 여기다 애틋한 연애를 섞은 이야기입니다. 소설 자체는 재미있습니다만, 어쩐지 기대를 빗나가는 듯한 느낌도 들긴 하죠. 작가도 그걸 아는지, 말미에 항해 장면을 쓰지 않아 내심 미안하다고 적어놨네요. 그래도 잠수함이 배경으로 주구장창 나오는지라 함내 생활의 고충은 잘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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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잠수함을 이용할 수도 있죠.]


이 밖에도 잠수함이 나오는 소설로 언급할만한 작품들이 한두 개가 아니겠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만 골라 봤지만, 독자마다 좋아하는 책이 하나쯤 있을 듯합니다. 똑같은 잠수함이라도 이처럼 여러 스펙트럼으로 나뉩니다. 기이하고 다채로운 심해를 방문하거나, 사나운 야수를 추격하거나, 외계 존재를 조우하고 공항에 빠지거나, 국제 분쟁의 무대가 되거나, 멸망한 세계의 대피소가 되거나 등등. 앞으로도 이런 소재의 해양소설은 꾸준히 등장할 겁니다. 해저는 닿기 힘든 곳이고, 인류에게 영원한 모험 대상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