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선장, 존스 박사, 데커드 형사…

굵직굵직한 영화에 다양한 역으로 출현했던 해리슨 포드. 때로는 강렬한 열혈 형사이기도 했고, 매너 좋은 신사였으며, 지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요원이기도 했습니다. 공포나 스릴러, 로맨스 영화 등 가리는 역할도 없었고요. 이처럼 해리슨 포드는 필모그래피도 화려하고 여러 방면에서 멋지게 활약한 배우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배우의 작품 목록에서 제일 중요한 영화 3가지가 따로 있다고 봅니다. 바로 <스타워즈>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이렇게 나열한 건 개봉순서 때문이지 무슨 영화가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 분야에서 하나같이 획을 그은 수작이자 대작들이죠,

<스타워즈>에서 해리슨 포드는 껄렁하지만 정감 넘치는 한 솔로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처럼 “I love you.”라고 말한 레아 공주에게 “I know.”라고 대답한 것도 해리슨 포드의 재치라고 하죠. <인디아나 존스>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아니면 다른 인디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이미지를 확고히 고정시켰고요. 오죽하면 많은 팬들은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 배우가 다시 4편 찍기를 바랄 정도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코믹 연기를 버리고 앞의 두 영화보다 더 진지한 모습으로 나왔는데, 이 역시 해리슨 포드만의 분위기가 한몫 했다고 봅니다. ‘인디 = 해리슨 포드’라고 할 정도로 고정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블레이드 러너>에서 해리슨 포드가 손만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죠. 웃길 때는 한없이 웃기지만 중후한 분위기 역시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이들 세 영화는 하나같이 장르 영화 쪽에 속합니다. <스타워즈>야 스페이스 오페라 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리즈고, <인디아나 존스> 역시 어드벤처 영화에서 정석으로 꼽히는 영화죠. 게다가 설정을 따지자면 나치가 성궤를 무기로 이용한다거나 성배에 든 물을 마시고 다시 살아난다거나 하는 판타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보니 둘 다 조지 루카스의 손길을 거쳤다는 것도 공통점이네요. <블레이드 러너>는 영화 쪽으로 보나 SF 쪽으로 보나 몇 손가락 안에 들 작품입니다. 어쩌면 해리슨 포드는 이런 장르 영화에서 유독 힘을 발휘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세 영화에 출현해 빛나는 업적(!)을 남긴 게 단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여러 역을 맡아서 장르 영화와만 연결 짓는 게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한편으로는 이 배우가 아직은 기력이 있을 때 SF 영화를 한 편 더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해리슨 포드가 출현한다고 해서 <배틀필드>가 <우주전쟁>으로 둔갑하는 건 아니지만, 배우의 역량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잖아요. <블레이드 러너> 이후로는 장르 영화에 거의 등장을 안 하기도 했고요. 최근에 숀 코네리와 같이 <인디아나 존스 4>에 나오네 마네 하는 이야기로 시끄러웠다고 하는데, 은퇴하기 전에 장르 영화에서 한 번 보고 싶습니다. (한 솔로 같은 코믹한 인물이 되든 데커드처럼 진중한 인물이 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