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연대기 - 작가 : magegarden
글 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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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9/12
작지만 분명한 총소리가 버려진 마을의 정적을 깨뜨렸다. 마뜩잖은 투로 지석은 뒤를 돌아보았다. 초저녁부터 하늘에 떠있던 커다란 루나인의 달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지석은 바위산을 기어올랐다. 이로써 두 번째다.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언덕을 기어오르?게.
기다리고 있던 아키텐과 메다산은 갑자기 나타나 숨을 헐떡거리는 지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석은 차오르는 숨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부스터를 찾았다.
지석은 부스터에 결합된 보조탄통에서 프레리 마스커를 꺼냈다. 프레리 마스커를 뿌리면 마찰이 사라지기 때문에 소음이 크게 줄어든다. 보병탐지장비의 기본은 소리이다. 따라서 소리를 줄이는 것은 보병 스텔스의 기본이다. 옷과 장비에 마스커를 뿌린 다음 총에도 마스커를 쏟아부었다. 마스커 한통을 다 쓴 지석은 소총에 탄창을 갈아끼우고 고글을 내렸다. 헬멧의 이음새가 소리없이 잠겼다.
"저 조장님.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지석은 아키텐을 돌아보았다. 아키텐은 여전히 왼팔에 천을 감아 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고글을 다시 밀어올리자 단색의 인광이 망막을 쓸고지나갔다.
"아키텐."
"예. 조장님."
"너 오른손 잡이지?"
"예? 예. 맞습니다. 오른손 잡이입니다."
"잘됐군."
지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한자리에 모아놓은 부스터에 기대져 있는 소총을 집어들었다.
"잡아."
"싸우는 겁니까? 적이 온 겁니까?"
"류사가 여기로 올지도 모른다. 류사가 오면......쏴라."
지석은 총을 내밀었다. 아키텐은 그 총을 선뜻 잡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류사 말입니까?"
어둠속에서 메다산이 물었다.
"조장님. 류사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고개를 돌려 메다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메다산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설마, 이 다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죠?"
지석은 담담한 기분이 되고 싶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멍청한 로봇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장님. 저 때문인가요? 요한과 류사가 싸웠습니까? 저 때??"
오른손의 총을 왼손으로 옮기고 지석은 눈가를 오른손으로 꾹꾹 눌렀다. 메마른 눈동자가 쓰라렸다.
"메다산. 그런 게 아냐. 그런 것 때문에 동료를 죽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석은 마음 속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게 설명했다.
"류사는 나와 요한을 향해 총을 쐈다. 죽이려고 했단 말이야. 이건 어쩔 수 없어. 하극상은 즉결 처분이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야. 메다산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류사가 그랬습니까?"
김오가 어둠속에서 킬킬거렸다. 메다산은 곁의 암반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다리에 감은 흰색 붕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요한은. 요한은 어떻게 됐습니까? 요한은 무사합니까?"
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다산은 반쯤 일어난 자세 그대로 입을 닫은 채 지석을 쳐다보았다. 입은 닫았지만 눈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너도 류사를 보면 주저하지 말고 쏴. 알겠어?"
메다산은 힘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총을 늘어뜨린 채 서있던 아키텐은 지석과 메다산, 그리고 눈 아래 웅크린 고고한 마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석은 모래를 짓밟으며 돌아섰다.
"조장님."
메다산이 불렀다.
"조장님."
지석은 멈추어섰다.
"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조장님. 제 말 듣고있습니까?"
메다산에게 등을 돌린 채 지석은 엄지손가락으로 총의 장전키를 꾹 눌렀다. 코일이 충전되며 노리쇠가 소리없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끝까지 전진한 노리쇠는 주퇴기와 맞물려 딸깍 하는 소리를 냈다. 소총의 주퇴기는 대구경 포의 그것과는 기능이 다르다. 이건 총류탄을 위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총열덮개를 분리하면 소구경탄 대신 총류탄을 발사할 수 있다. 물론 갖고있는 총류탄은 단 한발 뿐이었다. 그는 정찰하러 온 것이지 중전차를 상대로 육박전을 벌이러 온 게 아니니까.
"듣고 있다. 메다산. 말해."
장전키에서 손가락을 떼자 노리쇠가 후퇴하면서 레일에 탄환을 걸었다. 프레리 마스커 때문에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류사는 원래 군단 직할 특무대 소속 소좌였습니다. 장갑 척탄병이었죠."
특무대. 지석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포병대 사건 때 징계당한 사람중 하납니다."
"포병대 사건?"
"역시. 모르시는 거군요."
메다산은 말을 멈추었다. 지평선에 걸린 달이 긴 그림자를 지어내고 있었다. 지석은 메다산의 그림자를 밟고 서있었다.
"반년쯤 전에 저는...... 전 원래 류사 밑에 있었습니다. 요한도 같이요. 저흰 같은 조에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류사는 조장이었구요. 그런데 그 날 밤에 갑자기 저희 진지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참혹했습니다. 그리고 류사는......."
메다산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청음장치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비비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옷자락의 소음.
"류사는 저희에게 발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흰, 그냥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겁니다. 크게 잘못됐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게 나쁜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정당한 복수였으니까요. 물론 요한처럼 끝까지 거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조장님."
"계속 말해봐. 메다산."
"조장님."
"말해."
"전 상관없습니다. 전요. 하지만 요한은 안 그럴 겁니다. 류사가 잡혀갔을 때 요한은 증인으로 재판장에 들어갔습니다. 요한은 그 때 총을 안쏘려고 버티다가 류사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었거든요. 요한은 사형을 주장했습니다. 요한은 사령관에게 류사를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왜냐면 류사는........류사가 한 짓을 봤다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했을 겁니다."
지석은 고개를 돌렸다.
"3군단 직할 모바트를 말하는 건가?"
"예. 바로 그........"
메다산은 말을 얼버무렸다.
지석은 목구멍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지석은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가 증원군의 푸른 자켓을 입고 이 별에 상륙한 것은 넉달 전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모바트(MobAt:기동 포병)의 한 지휘관이 아군진지를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그자는 적에게 투항했다. 그가 스파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쇼크 여단이었다.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밤중에 아군의 포격에 죽어갔다. 클러스터 탄에 얻어맞은 막사에서 불구가 된 병사들을 끌어내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 분노한 쇼크여단의 생존자들이 동트는 새벽녘, 포병진지를 향해 돌진해 포병대를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복극은 잔인했다. 그들은 포병대의 병사들을 세워놓고 차례로 총살했으며 포병장교들의 시체에 줄을 달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목을 땄다.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뒤덮도록.
루나인 군대만의 특색인 쇼크 여단은 적에게 공포를 심어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대이다. 쇼크 여단은 언제나 최악의 병사들로만 구성된다. 그런 류의 조직이 흔히 그렇듯 루나인의 쇼크 여단도 맹렬한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다. 사건 직후 여단 지휘관은 책임을 물어 구금되었고 사건을 진두지휘한 몇몇 고급장교는 총살되었다. 그리고 대원 전원이 일계급 강등되었다. 3군단 특무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처음 지석이 이 행성의 대지를 밟았을 때 루나인의 군대는 그런 상태였다.
"3군단의 모바트라. 3군단의 모바트. 왜 미리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
"우... 우린 알고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쓴웃음이란 건 이럴 때 적절한 단어다. 진짜로 쓰디 쓰다. 총을 쥔 팔을 늘어뜨렸다. 소총의 짧은 탄창이 허리춤에 걸려 달그락거렸다.
"알고있는 줄 알았다고?"
지석은 메다산의 면상을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 난 인원만 요청했어. 작전단장이 편성한 조야. 난 출발하던 날 너희들의 얼굴을 처음 봤다. 당연히 작전 투입 전에 그런 말을 했어야지."
"저희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조가 편성된 거니까 조장님께서....."
메다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모래가 달빛과 함께 바스락거렸다. 바위에 기대서있던 메다산은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다리로는 피할 곳이 없었다. 지석은 메다산의 가슴을 밀어붙였다.
"당연히? 뭐가 당연하지?"
"임무.....편성할 때......"
"임무 편성? 허울 좋은 임무지. 좋아.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냐? 아니면 내가 이 전쟁에 가슴이 불타오르는 연방주의자야? 내 고향별은 여기선 보이지도 않아! 그런데 왜 내가 네놈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같이 싸워야 되지? 이 별은 너희들이 지켜야 돼는 거 아냐?"
"아닙니다 조장님. 예. 맞습니다."
"이제 고작 일주일? 아님 열흘? 너희들이 날 조장으로 여긴 적이 있었나? 어차피 끝나가는 전쟁. 알지도 못하는 남자 따위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면 된다고 생각한 거야. 안그래?"
"아닙니다! 아닙니다, 조장님!"
계속 물밑에서 움직이던 무언가가 갑자기 불쑥 수면으로 솟아오르듯 머릿속 가득 부글거리던 상념들이 분출했다.
지석은 마음속의 말을 모조리 게워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 그래! 이 병신 같은 전쟁에서부터! 머저리 같은 병신부대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날 보고!"
"조...조장님!"
"전쟁? 나보고 전쟁을 하라고? 애들 장난이야? 이게 애들 장난이냐?"
메다산은 힘없이 지석의 팔에 매달렸다. 그의 육중한 체구가 마치 젖은 솜처럼 느껴졌다.
"류사가 죽일 놈이라고? 좋아. 다 좋다고. 그런데 그걸 알고도 같은 팀이 되었단 말이야?"
지석은 메다산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물러섰다.
"이 망할 별에서 이 망할 임무. 대체 뭔가. 텅 빈 별에서 텅 빈 마을을 찾아가라.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통신기를 작동시켜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뭘 하는 거지?"
지석은 어둠을 노려보았다.
"한번 말해봐. 류사가 요한을 못알아봤을 리 없고. 너도 처음부터 알았을 거야. 메다산. 그런데 뭐지? 처음부터 이렇게 외딴 곳에서 한판 붙어볼 생각이었나?"
메다산은 입술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저희도... 저희도 싫었습니다."
메다산은 얼굴을 두 팔로 감쌌다. 지석은 동정보다는 구토를 느꼈다.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 임무에는 큰 게 걸려있었으니까요."
"큰 것?"
"이.... 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먼저 점퍼에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원한 겁니다. 수백 명이 자원을 했는데 그 중에서 뽑힌 겁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장님."
점퍼에 태워준다는 이야기는 퇴각을 준비 중인 수송선에 먼저 태워주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차피 이 별엔 이제 희망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퇴각하는 우주선에 조금이라도 빨리 타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자칫하다가는 포로 신세가 되니까.
"점퍼라. 좋아. 수송선을 탔다고 치다. 그 다음엔 어디로 갈 거지? 여기서 퇴각하고 나서 패잔병이 되면 그 다음엔 다른 별인가? 다른 별에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할 거야?"
"조장님!"
메다산은 우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흰 그저 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게 나쁜 겁니까?"
지석은 할말을 잃었다.
“그래. 메다산. 너도....”
너도 똑같은 말을 하는군.
그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인가? 이 곳에서는.
다친 한쪽 팔을 옷자락으로 감고 있는 운전병 아키텐은 석상처럼 우뚝 선채 거의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버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늘한 밤의 대기가 피부의 수분을 냉각시키고 마음속의 감정들을 빼앗아갔다. 아키텐의 옆모습은 의외로 단정한 데가 있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는 무심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지석은 알고 있다. 그는 달과 그 주변의 하늘을 보는 척 하면서 사실은 바로 곁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이다.
지석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메다산. 우리들은 이제 이 전쟁터를 떠날 수 없다."
헐떡거리던 메다산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 사령부가 유난히 조용하던 걸 기억하나? 그 때 사령부에 남은 병력은 아마 삼사백명 남짓. 2개 군단이 주둔하는 기지이고 행성 방위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야. 고작 남은 병력이 그만큼이라는 건 우스운 일이지. 갑자기 임무에 투입된 건 우리들만이 아니야. 사령부는 갑자기 부대를 완전히 소산시켰다. 말도 안되는 임무들을 줘서 말이지. 왜 그랬을까. 적이 사령부로 쇄도하는 마당에. 왜 그랬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조장님."
메다산이 코를 훌쩍거렸다.
"탈출선은 부족하고 사람은 많다. 일부만 빠져나가려고 하면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키겠지. 이 별의 군대라면 그러고도 남아."
작전단장은 아마 내가 좀 더 많은 대원들을 끌고 가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불행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작전단, 아니 군단과 방위군 사령부는 우릴 이 곳에 떼어놓고 자기들끼리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메다산. 점퍼에 태워준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우리가 돌아가도 점퍼에는 수송선이 없을 거다."
"정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조장님?"
이 별에 남겨진 것은 어쩌면 우리들뿐인지도 모른다.
모두 떠나고 우리들만 남아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명이.
"아키텐."
"예. 조장님."
메다산이 등 뒤에서 오열했다.
"내 마누라는 벌써 떠났단 말입니다. 크흑....나는 곧 따라간다고 그랬는데. 따라간다고 진짜로 금방 따라갈 수 있다고 그랬는데..........우린.......이제........."
지석은 아키텐을 쳐다보았다. 아키텐은 지석의 시선을 피했다.
"류사가 오면 쏴라. 네가 쏘지 않으면 내가 한다."
아키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비춘 달빛이 아키텐의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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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9/12
작지만 분명한 총소리가 버려진 마을의 정적을 깨뜨렸다. 마뜩잖은 투로 지석은 뒤를 돌아보았다. 초저녁부터 하늘에 떠있던 커다란 루나인의 달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지석은 바위산을 기어올랐다. 이로써 두 번째다. 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언덕을 기어오르?게.
기다리고 있던 아키텐과 메다산은 갑자기 나타나 숨을 헐떡거리는 지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석은 차오르는 숨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부스터를 찾았다.
지석은 부스터에 결합된 보조탄통에서 프레리 마스커를 꺼냈다. 프레리 마스커를 뿌리면 마찰이 사라지기 때문에 소음이 크게 줄어든다. 보병탐지장비의 기본은 소리이다. 따라서 소리를 줄이는 것은 보병 스텔스의 기본이다. 옷과 장비에 마스커를 뿌린 다음 총에도 마스커를 쏟아부었다. 마스커 한통을 다 쓴 지석은 소총에 탄창을 갈아끼우고 고글을 내렸다. 헬멧의 이음새가 소리없이 잠겼다.
"저 조장님.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지석은 아키텐을 돌아보았다. 아키텐은 여전히 왼팔에 천을 감아 몸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고글을 다시 밀어올리자 단색의 인광이 망막을 쓸고지나갔다.
"아키텐."
"예. 조장님."
"너 오른손 잡이지?"
"예? 예. 맞습니다. 오른손 잡이입니다."
"잘됐군."
지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한자리에 모아놓은 부스터에 기대져 있는 소총을 집어들었다.
"잡아."
"싸우는 겁니까? 적이 온 겁니까?"
"류사가 여기로 올지도 모른다. 류사가 오면......쏴라."
지석은 총을 내밀었다. 아키텐은 그 총을 선뜻 잡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류사 말입니까?"
어둠속에서 메다산이 물었다.
"조장님. 류사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고개를 돌려 메다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메다산은 자신의 다리를 가리켰다.
"설마, 이 다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죠?"
지석은 담담한 기분이 되고 싶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멍청한 로봇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장님. 저 때문인가요? 요한과 류사가 싸웠습니까? 저 때??"
오른손의 총을 왼손으로 옮기고 지석은 눈가를 오른손으로 꾹꾹 눌렀다. 메마른 눈동자가 쓰라렸다.
"메다산. 그런 게 아냐. 그런 것 때문에 동료를 죽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지석은 마음 속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게 설명했다.
"류사는 나와 요한을 향해 총을 쐈다. 죽이려고 했단 말이야. 이건 어쩔 수 없어. 하극상은 즉결 처분이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야. 메다산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류사가 그랬습니까?"
김오가 어둠속에서 킬킬거렸다. 메다산은 곁의 암반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다리에 감은 흰색 붕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요한은. 요한은 어떻게 됐습니까? 요한은 무사합니까?"
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다산은 반쯤 일어난 자세 그대로 입을 닫은 채 지석을 쳐다보았다. 입은 닫았지만 눈은 뭔가를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너도 류사를 보면 주저하지 말고 쏴. 알겠어?"
메다산은 힘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총을 늘어뜨린 채 서있던 아키텐은 지석과 메다산, 그리고 눈 아래 웅크린 고고한 마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석은 모래를 짓밟으며 돌아섰다.
"조장님."
메다산이 불렀다.
"조장님."
지석은 멈추어섰다.
"류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조장님. 제 말 듣고있습니까?"
메다산에게 등을 돌린 채 지석은 엄지손가락으로 총의 장전키를 꾹 눌렀다. 코일이 충전되며 노리쇠가 소리없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끝까지 전진한 노리쇠는 주퇴기와 맞물려 딸깍 하는 소리를 냈다. 소총의 주퇴기는 대구경 포의 그것과는 기능이 다르다. 이건 총류탄을 위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총열덮개를 분리하면 소구경탄 대신 총류탄을 발사할 수 있다. 물론 갖고있는 총류탄은 단 한발 뿐이었다. 그는 정찰하러 온 것이지 중전차를 상대로 육박전을 벌이러 온 게 아니니까.
"듣고 있다. 메다산. 말해."
장전키에서 손가락을 떼자 노리쇠가 후퇴하면서 레일에 탄환을 걸었다. 프레리 마스커 때문에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류사는 원래 군단 직할 특무대 소속 소좌였습니다. 장갑 척탄병이었죠."
특무대. 지석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포병대 사건 때 징계당한 사람중 하납니다."
"포병대 사건?"
"역시. 모르시는 거군요."
메다산은 말을 멈추었다. 지평선에 걸린 달이 긴 그림자를 지어내고 있었다. 지석은 메다산의 그림자를 밟고 서있었다.
"반년쯤 전에 저는...... 전 원래 류사 밑에 있었습니다. 요한도 같이요. 저흰 같은 조에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류사는 조장이었구요. 그런데 그 날 밤에 갑자기 저희 진지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참혹했습니다. 그리고 류사는......."
메다산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청음장치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비비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옷자락의 소음.
"류사는 저희에게 발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흰, 그냥 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겁니다. 크게 잘못됐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게 나쁜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정당한 복수였으니까요. 물론 요한처럼 끝까지 거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조장님."
"계속 말해봐. 메다산."
"조장님."
"말해."
"전 상관없습니다. 전요. 하지만 요한은 안 그럴 겁니다. 류사가 잡혀갔을 때 요한은 증인으로 재판장에 들어갔습니다. 요한은 그 때 총을 안쏘려고 버티다가 류사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었거든요. 요한은 사형을 주장했습니다. 요한은 사령관에게 류사를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왜냐면 류사는........류사가 한 짓을 봤다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했을 겁니다."
지석은 고개를 돌렸다.
"3군단 직할 모바트를 말하는 건가?"
"예. 바로 그........"
메다산은 말을 얼버무렸다.
지석은 목구멍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지석은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가 증원군의 푸른 자켓을 입고 이 별에 상륙한 것은 넉달 전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고 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모바트(MobAt:기동 포병)의 한 지휘관이 아군진지를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그자는 적에게 투항했다. 그가 스파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쇼크 여단이었다.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밤중에 아군의 포격에 죽어갔다. 클러스터 탄에 얻어맞은 막사에서 불구가 된 병사들을 끌어내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 분노한 쇼크여단의 생존자들이 동트는 새벽녘, 포병진지를 향해 돌진해 포병대를 학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보복극은 잔인했다. 그들은 포병대의 병사들을 세워놓고 차례로 총살했으며 포병장교들의 시체에 줄을 달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목을 땄다.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뒤덮도록.
루나인 군대만의 특색인 쇼크 여단은 적에게 공포를 심어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대이다. 쇼크 여단은 언제나 최악의 병사들로만 구성된다. 그런 류의 조직이 흔히 그렇듯 루나인의 쇼크 여단도 맹렬한 소속감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다. 사건 직후 여단 지휘관은 책임을 물어 구금되었고 사건을 진두지휘한 몇몇 고급장교는 총살되었다. 그리고 대원 전원이 일계급 강등되었다. 3군단 특무대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처음 지석이 이 행성의 대지를 밟았을 때 루나인의 군대는 그런 상태였다.
"3군단의 모바트라. 3군단의 모바트. 왜 미리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
"우... 우린 알고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쓴웃음이란 건 이럴 때 적절한 단어다. 진짜로 쓰디 쓰다. 총을 쥔 팔을 늘어뜨렸다. 소총의 짧은 탄창이 허리춤에 걸려 달그락거렸다.
"알고있는 줄 알았다고?"
지석은 메다산의 면상을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 난 인원만 요청했어. 작전단장이 편성한 조야. 난 출발하던 날 너희들의 얼굴을 처음 봤다. 당연히 작전 투입 전에 그런 말을 했어야지."
"저희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조가 편성된 거니까 조장님께서....."
메다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모래가 달빛과 함께 바스락거렸다. 바위에 기대서있던 메다산은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다리로는 피할 곳이 없었다. 지석은 메다산의 가슴을 밀어붙였다.
"당연히? 뭐가 당연하지?"
"임무.....편성할 때......"
"임무 편성? 허울 좋은 임무지. 좋아.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냐? 아니면 내가 이 전쟁에 가슴이 불타오르는 연방주의자야? 내 고향별은 여기선 보이지도 않아! 그런데 왜 내가 네놈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같이 싸워야 되지? 이 별은 너희들이 지켜야 돼는 거 아냐?"
"아닙니다 조장님. 예. 맞습니다."
"이제 고작 일주일? 아님 열흘? 너희들이 날 조장으로 여긴 적이 있었나? 어차피 끝나가는 전쟁. 알지도 못하는 남자 따위 그냥 되는대로 내버려두면 된다고 생각한 거야. 안그래?"
"아닙니다! 아닙니다, 조장님!"
계속 물밑에서 움직이던 무언가가 갑자기 불쑥 수면으로 솟아오르듯 머릿속 가득 부글거리던 상념들이 분출했다.
지석은 마음속의 말을 모조리 게워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 그래! 이 병신 같은 전쟁에서부터! 머저리 같은 병신부대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날 보고!"
"조...조장님!"
"전쟁? 나보고 전쟁을 하라고? 애들 장난이야? 이게 애들 장난이냐?"
메다산은 힘없이 지석의 팔에 매달렸다. 그의 육중한 체구가 마치 젖은 솜처럼 느껴졌다.
"류사가 죽일 놈이라고? 좋아. 다 좋다고. 그런데 그걸 알고도 같은 팀이 되었단 말이야?"
지석은 메다산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물러섰다.
"이 망할 별에서 이 망할 임무. 대체 뭔가. 텅 빈 별에서 텅 빈 마을을 찾아가라.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 통신기를 작동시켜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뭘 하는 거지?"
지석은 어둠을 노려보았다.
"한번 말해봐. 류사가 요한을 못알아봤을 리 없고. 너도 처음부터 알았을 거야. 메다산. 그런데 뭐지? 처음부터 이렇게 외딴 곳에서 한판 붙어볼 생각이었나?"
메다산은 입술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저희도... 저희도 싫었습니다."
메다산은 얼굴을 두 팔로 감쌌다. 지석은 동정보다는 구토를 느꼈다.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번 임무에는 큰 게 걸려있었으니까요."
"큰 것?"
"이.... 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먼저 점퍼에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원한 겁니다. 수백 명이 자원을 했는데 그 중에서 뽑힌 겁니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장님."
점퍼에 태워준다는 이야기는 퇴각을 준비 중인 수송선에 먼저 태워주겠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차피 이 별엔 이제 희망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퇴각하는 우주선에 조금이라도 빨리 타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자칫하다가는 포로 신세가 되니까.
"점퍼라. 좋아. 수송선을 탔다고 치다. 그 다음엔 어디로 갈 거지? 여기서 퇴각하고 나서 패잔병이 되면 그 다음엔 다른 별인가? 다른 별에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할 거야?"
"조장님!"
메다산은 우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흰 그저 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게 나쁜 겁니까?"
지석은 할말을 잃었다.
“그래. 메다산. 너도....”
너도 똑같은 말을 하는군.
그 말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인가? 이 곳에서는.
다친 한쪽 팔을 옷자락으로 감고 있는 운전병 아키텐은 석상처럼 우뚝 선채 거의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버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늘한 밤의 대기가 피부의 수분을 냉각시키고 마음속의 감정들을 빼앗아갔다. 아키텐의 옆모습은 의외로 단정한 데가 있었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는 무심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지석은 알고 있다. 그는 달과 그 주변의 하늘을 보는 척 하면서 사실은 바로 곁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이다.
지석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메다산. 우리들은 이제 이 전쟁터를 떠날 수 없다."
헐떡거리던 메다산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 사령부가 유난히 조용하던 걸 기억하나? 그 때 사령부에 남은 병력은 아마 삼사백명 남짓. 2개 군단이 주둔하는 기지이고 행성 방위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야. 고작 남은 병력이 그만큼이라는 건 우스운 일이지. 갑자기 임무에 투입된 건 우리들만이 아니야. 사령부는 갑자기 부대를 완전히 소산시켰다. 말도 안되는 임무들을 줘서 말이지. 왜 그랬을까. 적이 사령부로 쇄도하는 마당에. 왜 그랬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조장님."
메다산이 코를 훌쩍거렸다.
"탈출선은 부족하고 사람은 많다. 일부만 빠져나가려고 하면 병사들이 폭동을 일으키겠지. 이 별의 군대라면 그러고도 남아."
작전단장은 아마 내가 좀 더 많은 대원들을 끌고 가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불행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작전단, 아니 군단과 방위군 사령부는 우릴 이 곳에 떼어놓고 자기들끼리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메다산. 점퍼에 태워준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우리가 돌아가도 점퍼에는 수송선이 없을 거다."
"정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조장님?"
이 별에 남겨진 것은 어쩌면 우리들뿐인지도 모른다.
모두 떠나고 우리들만 남아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명이.
"아키텐."
"예. 조장님."
메다산이 등 뒤에서 오열했다.
"내 마누라는 벌써 떠났단 말입니다. 크흑....나는 곧 따라간다고 그랬는데. 따라간다고 진짜로 금방 따라갈 수 있다고 그랬는데..........우린.......이제........."
지석은 아키텐을 쳐다보았다. 아키텐은 지석의 시선을 피했다.
"류사가 오면 쏴라. 네가 쏘지 않으면 내가 한다."
아키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비춘 달빛이 아키텐의 얼굴을 하얗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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