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여기 있었네?”
류는 아는 척했다. 단과대 도서관에는 비릿한 체취와 온기를 내뿜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응.”
“아침에 일찍 왔나봐?”
류는 주변의 눈길을 의식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험이니까.”
“하긴 너 소문이 자자하던데. 학점 잘 나온다고.”
“나가자. 여기서 떠들면 안돼.”
조는 류와 함께 복도로 나가 홀로 향했다. 조는 류의 큰 키가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의식하지 않는 척 하려 노력했다.
“오늘 무슨 시험이야?”
“철학개론.”
“작년에 우리 가르쳤던 교수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던데... 그 교수 문제는 어렵고 학점은 짜.”
류는 복사물을 뒤적거리며 투덜거렸다.
“어휴,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제논이 한 말이군. 화살의 운동을 순간순간 끊어서 보면 정지해 있다는 말이지. 애니메이션의 정지 화면을 합친 것과 같다는 거야. 화살의 고정된 위치의 총합은 결국 겉으로만 운동으로 보일 뿐 실제로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거지.”
“그냥 말장난이잖아?”
“맞아. 그래서 제논도 그렇고 소피스트들도 그렇고 철학자는 궤변론자라에 불과할 지도 몰라.”
“그럼 소피스트와 아테네 민주 정치의 연관성은 뭐야?”
“소피스트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성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통한다고 볼 수 있지. 어차피 민주주의에 있어 만장일치란 없잖아. 소피스트는 정치에 참여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며 먹고 살았어.”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아테네 민주 정치의 연관성은 또 뭐지?”
“소피스트와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했는데 아테네의 민주 정치와 소피스트는 그에게 그저 혼란스럽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 것이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절대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진리만을 믿었어. 그래서 소피스트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중우정의 어리석음을 최초로 지적한 게 소크라테스야. 하지만 민주 정치를 비판한다는 것은 아테네를 부정한다는 것으로 판단된 것이지. 역으로 비유하자면 유신 시절의 빨갱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독배를 마시게 된 거야.”
“왜 교수들은 너처럼 쉽게 설명해주지 않지?”
“그러니까 교수지. 나 같은 사람은 천상 교수는 될 수 없을 거야.”
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씩 웃어 보였다.
“넌 내일 거 다 해 놓았지?”
“대충.”
“그럼 나가자. 커피 뽑아서.”
“나 커피 안 마시잖아.”
“아, 자꾸 까먹게 되네. 중요한 게 아니면 쉽게 잊어버려. 네 취향까지 머릿속에 넣고 다닐 만큼 세상이 단순한 건 아니잖아. 복잡한 건 싫어.”
류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조는 소다수를 뽑아들고 단과대 건물을 빠져 나왔다. 햇볕 때문에 류는 왼손을 이마에 대고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조는 생각했다. 캠퍼스는 얕은 산등성이에 있었는데 단과대의 왼쪽으로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왜 철학 따위를 배우는 걸까?”
류의 뜬금없는 질문에 조는 쉽게 대답했다.
“태어났으니 죽어야할 운명의 인간이니까.”
“흐음.”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죽음?”
“응.”
“별로. 오늘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어. 게다가 내일은 제일 싫은 철학을 시험 보니까.”
“그런 식으로 일상이 쌓이다가 늙고 그리고 죽겠지.”
류는 조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웃음을 지으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고 산단 말야?”
“인간의 삶이 영원하다면 정말 일상이 무의미해질까?”
“얼씨구, 철학이 교양이 아니라 전공이었어야 했어, 넌. 난 아예 문과 체질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바람이 불자 벚꽃이 떨어지며 눈처럼 흩날렸다. 바람이 차갑지 않게 느껴진지도 꽤 되었다. 금방 더워지겠지, 라고 조는 생각했다. 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잖아. 아이는 부모의 분신인 셈이고 부모의 유전적 특징과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고.”
“나도 알아. 하지만 자식이 곧 나 자신은 아니잖아. 나와 우리 부모가 다르듯이.”
“혼자 쿨한 척 하더니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는군.”
류는 조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조는 길게 자란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류를 바라보았다. 염색을 하지 않아도 갈색 윤기가 나는 포니 테일을.
류는 아는 척했다. 단과대 도서관에는 비릿한 체취와 온기를 내뿜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응.”
“아침에 일찍 왔나봐?”
류는 주변의 눈길을 의식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험이니까.”
“하긴 너 소문이 자자하던데. 학점 잘 나온다고.”
“나가자. 여기서 떠들면 안돼.”
조는 류와 함께 복도로 나가 홀로 향했다. 조는 류의 큰 키가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의식하지 않는 척 하려 노력했다.
“오늘 무슨 시험이야?”
“철학개론.”
“작년에 우리 가르쳤던 교수하고 똑같은 사람이라던데... 그 교수 문제는 어렵고 학점은 짜.”
류는 복사물을 뒤적거리며 투덜거렸다.
“어휴,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제논이 한 말이군. 화살의 운동을 순간순간 끊어서 보면 정지해 있다는 말이지. 애니메이션의 정지 화면을 합친 것과 같다는 거야. 화살의 고정된 위치의 총합은 결국 겉으로만 운동으로 보일 뿐 실제로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거지.”
“그냥 말장난이잖아?”
“맞아. 그래서 제논도 그렇고 소피스트들도 그렇고 철학자는 궤변론자라에 불과할 지도 몰라.”
“그럼 소피스트와 아테네 민주 정치의 연관성은 뭐야?”
“소피스트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성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통한다고 볼 수 있지. 어차피 민주주의에 있어 만장일치란 없잖아. 소피스트는 정치에 참여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며 먹고 살았어.”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아테네 민주 정치의 연관성은 또 뭐지?”
“소피스트와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했는데 아테네의 민주 정치와 소피스트는 그에게 그저 혼란스럽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 것이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절대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진리만을 믿었어. 그래서 소피스트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중우정의 어리석음을 최초로 지적한 게 소크라테스야. 하지만 민주 정치를 비판한다는 것은 아테네를 부정한다는 것으로 판단된 것이지. 역으로 비유하자면 유신 시절의 빨갱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독배를 마시게 된 거야.”
“왜 교수들은 너처럼 쉽게 설명해주지 않지?”
“그러니까 교수지. 나 같은 사람은 천상 교수는 될 수 없을 거야.”
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씩 웃어 보였다.
“넌 내일 거 다 해 놓았지?”
“대충.”
“그럼 나가자. 커피 뽑아서.”
“나 커피 안 마시잖아.”
“아, 자꾸 까먹게 되네. 중요한 게 아니면 쉽게 잊어버려. 네 취향까지 머릿속에 넣고 다닐 만큼 세상이 단순한 건 아니잖아. 복잡한 건 싫어.”
류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조는 소다수를 뽑아들고 단과대 건물을 빠져 나왔다. 햇볕 때문에 류는 왼손을 이마에 대고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조는 생각했다. 캠퍼스는 얕은 산등성이에 있었는데 단과대의 왼쪽으로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왜 철학 따위를 배우는 걸까?”
류의 뜬금없는 질문에 조는 쉽게 대답했다.
“태어났으니 죽어야할 운명의 인간이니까.”
“흐음.”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죽음?”
“응.”
“별로. 오늘을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어. 게다가 내일은 제일 싫은 철학을 시험 보니까.”
“그런 식으로 일상이 쌓이다가 늙고 그리고 죽겠지.”
류는 조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웃음을 지으며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런 쓸 데 없는 고민을 하고 산단 말야?”
“인간의 삶이 영원하다면 정말 일상이 무의미해질까?”
“얼씨구, 철학이 교양이 아니라 전공이었어야 했어, 넌. 난 아예 문과 체질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바람이 불자 벚꽃이 떨어지며 눈처럼 흩날렸다. 바람이 차갑지 않게 느껴진지도 꽤 되었다. 금방 더워지겠지, 라고 조는 생각했다. 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잖아. 아이는 부모의 분신인 셈이고 부모의 유전적 특징과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고.”
“나도 알아. 하지만 자식이 곧 나 자신은 아니잖아. 나와 우리 부모가 다르듯이.”
“혼자 쿨한 척 하더니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는군.”
류는 조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조는 길게 자란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류를 바라보았다. 염색을 하지 않아도 갈색 윤기가 나는 포니 테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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