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걸 부끄러움이라고 하나요? 심박수가 빨라지는 느낌인데요?”

옷을 벗고 내앞에 서있는 제인은 그말 한마디만 하고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참 이상하다. 헬렌의 벗은몸을 본게 한두번이 아닌데 단지 의식이 바뀌었다고해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해지다니....

“인간의 번식행위에 대한 많은 데이터가 있고 이곳의 의학자료들을 다 참고했읍니다. 그런데도 익숙하지가 않네요”

나는 가만히 제인의 말을 듣고 있다 대답을 했다.

“이런건 ‘번식행위’라고 하지않아, ‘사랑을 나눈다’라고 하지.”

제인이 또 무슨말을 하려고 할때 나는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가락 하나를 제인의 입에 대고는 조심스럽게 제인을 눕혔다.

2.
제인과 잠자리를 같이 한뒤 나는 매일같이 동굴내 자료보관소에서 의학관련서적이란 서적은 모조리 꺼내 보았다.

나는 눈치도 빠르고 상황분석도 잘하지만 머리가좋거나 암기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을 보면서 노트 한권 분량정도의 자료를 다시 만들고 다시 내용들을 훑어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갖고 매트릭스에서 나온뒤에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적은 없었다.
제인은 배가 불러오면서도 그렇게 공부하는 내 옆을 떠나지 않았고 종종 나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3.
어차피 이곳은 핵전쟁을 대비해서 만들어진 대피시설이라서 의료시설부터 도서관까지 다양한 시설이 들어있고 또한 일곱 번째 시온을 만들기위해서 시설 유지가 잘되어있는 편이었다. 의사가 없는건 둘째치고 그나마 시설마져 갖춰지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절망했을것이다.

“조금만 참어!! 이제 거의 다됐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조그마한 핏덩어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를 않았다. 나는 겁에 질려서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고 그제서야 아이가 울었다. 하지만 뭐랄까. 책에서 본거랑 느낌이 달랐다. 딱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아이가 무언가 굉장히 익숙해 하는 듯 했다.

“제인 이거봐 우리 아이야. 한번 안아봐.”

제인은 힘겨운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는 웃었다. 그러나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네오님의 말은 이해했지만 이게 진짜 마지막인가보네요. 아이를 한번 더보고 싶은데 눈이 잘 안보여요. 혹시 저한테도 천국이라는게 있을까요? 그곳이 어디라고 불리우든 당신을 기다리고 싶은데........”

아이를 안고있던 제인의 팔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고 제인의 고개도 푹 떨구어졌다.
아이가 갑자기 울기시작했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네오의 말뜻을 알았다. ‘너무 많은 고통을 주지 말라’는 말.

어차피 제인의 몸도 아니었고 프로그램으로써의 제인이 겪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마치 컴퓨터 하드에다 대고 전기스파크를 튀기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제인 말좀해봐!! 제인!!! 제인!!!!”

아이의 울음을 무시하고 몇 번씩이나 제인을 흔들었지만 제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포대기에 가만히 아이를 감싼다음 아이를 안고 병실의 한구석에 계속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나는 동굴 입구 근처 볕이 잘드는 곳에 제인의 무덤을 만들었다. 햇볕의 강도는 예전보다 약해졌지만 아직도 따가웠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온몸이 벌게질때까지 제인의 무덤곁에 있다가 동굴안으로 들어왔다.

아기는 울다 지쳤는지 조용히 자고있었다.

4.
“조안나!! 아빠 엿보지 말랬지?”

딸 아이의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있다. 제인이 죽은뒤 이름을 조안나로 지었다.

태어날때부터 잘 울지 않았을뿐 아니라 이상하게 조안나가 배고파하면 나도 같이 배고파 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무슨 단어를 가르쳐야지 하고 이름을 말해줄 물건을 집으면 내가 말을 하기전에 자기 혼자서 옹알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려니 했는데 내가 책에서 본것보다 아이가 말을 좀 빨리 배우기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조안나에게서 등을 돌린채 식사준비를 할때 잠깐 제인생각을 하면서 우울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안나가 내 뒤로 쪼르르 와서는 내다리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빠 아퍼?”

그리고는 갑자기 조안나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조안나에게 아무말도 못했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조안나를 보다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조안나가 또 한마디를 했다.

“아빠 무서워?”

나는 머리카락이 쭈볏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아이는 내 딸이다. 만약 내가 여기서 태연해 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큰 상처를 입을것이다. 이 아이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조안나 어서 밥 먹어”

그 이후 조안나는 내가 허락할때만 내 생각을 엿보았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가끔 내가 조안나를 혼내기 직전이나 조안나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 잘못을 숨기려고 할때 내 생각을 엿보았다. 하지만 조안나에게 생각을 엿보는 재주가 있다면 나는 눈치를 보는 재주가 있기 때문에 조안나한테 쉽게 지지는 않았다.

나는 조안나가 쓴 받아쓰기 답안지를 들여다 보았다. 조안나는 답안지를 들여다 보는 나를 보면서 이야기 했다.

“아이쿠, 또 그거 틀렸네. 아빠 봐주라 이번에도 또 틀린갯수만큼 꼴밤 때릴꺼야? 딱 한개 틀렸는데?”

나는 조안나를 보면서 씩 웃었고 조안나는 나의 미소를 보면서 대답을 했다.

“아빠 감사합니다.”

조안나는 말을 마치자 마자 내 볼에 뽀뽀를 하고는 자료실로 달려갔다. 어차피 장난감이나 놀것이 없는 이곳에서 조안나에게는 책들이 장난감이었고 독서가 놀이였다.

5.
나는 궁금하다. 조안나가 어떤 방법으로 생각을 엿보고 엿본 내 생각을 어떻게 느끼는지 말이다.

사람의 기억은 정밀한 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왜곡된 사진이라서 기억을 하기위한 꼬리표같은 도구가 필요한것이다. 그리고 그 꼬리표에는 감정이 묻게 되어있고 말이다. 어차피 기억자체에는 문장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있다.

예를 들자면 멋진 스포츠카가 내 눈앞에 있다. 만약 내가 그 스포츠카를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한다면 색깔이나 형태를 꼬리표처럼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그러다 어느날 그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하는 비슷한 색깔이나 형태가 눈앞에 보이면 그 스포츠카를 기억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멋진’이라는 형용사가 감정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이런게 딸아이 말로는 이렇게 비친다는 것이다.

‘빨간색, 스포츠카, 멋지다.’

물론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와 색감, 감정이고 게다가 아직 조안나는 어린아이라서 어른의 감정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기본적인 감정정도는 파악을 한다.

6.
가끔씩 날이 흐려질때 나는 조안나를 데리고 제인의 무덤에 간다.
기상상황도 조금 나아져서 흐린날은 동굴밖으로 나가도 된다. 하지만 맑은날은 아직 위험하다.

“엄마 보고싶지 않아?”

나는 제인의 무덤앞에 서있는 조안나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보고싶으면 가끔 아빠 기억속에서 찾아보면 되는걸, 물론 그 기억에서 슬픔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엄마모습 볼수 있어.”

나는 딸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지금 이아이의 능력은 발전하고 있는것이다. 이제는 타인의 기억을 자기가 골라서 볼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았으면 한다. 다행히 아직 딸아이의 주변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지만 혹시 다른 사람들과 섞여살게 된다면 잘못하면 딸아이는 매우 큰 상처를 입고 자기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매우 크다.

“아빠 걱정하는구나?, 아빠 여지껏 나 잘 키워줬잖아. 나 믿지?”

하긴 딸아이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이니 오히려 너무 많은 걱정은 아이가 싫어할 것 같다.

7.
“너 속옷 빨래 안가져 온지가 몇일이야!! 아빠가 힘들다고 빨래 쌓아두지 말랬지!!”

역시 사춘기라서 그런지 요즘은 조안나를 대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빨래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행동중에서 문제가 터지면 나도 짜증이 난다.

“아빤 뭐 그런거갖고 화를 내고 그래?”

딸아이는 나를 째려보고는 갑자기 동굴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는 아직 위험하고 지금은 날이 맑아서 더 위험하다.

“조안나!! 나가지 마!!”

나는 소리를 질렀으나 조안나는 이미 동굴 입구쪽으로 뛰어가고 난 뒤 였다. 나는 별수없이 조안나의 방에 쳐들어 가기로 했고 거기서 조안나의 속옷을 챙겼다.

조안나의 속옷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나는 아차 싶다는 생각과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하는수 없이 나는 조안나의 방에 편지를 써놓고 난뒤 조안나를 찾으러 동굴 입구로 갔다.
분명 자기 엄마 무덤으로 갔을것이다.

8.
동굴 입구로 막 나섰을때 눈부신 햇살을 가리는 거대한 검은 형체가 동굴앞에 서있었다.

센티널 이었다.

9.
하지만 지금 동굴 입구에 햇빛을 등지고 서있는 센티널은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이전 센티널의 한 4배 정도?

내가 놀라서 주춤하는 동안 센티널의 앞부분이 둘로 갈라지고 거기서 사람 한명이 걸어나왔다. 하얀 피부를 가진 잘생긴 소년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이마에는 깨알만한 검은 점이 박혀있었다.

“안녕하세요? ‘구 인류’이시군요. 저는 ‘외곽 신경망’ 제 3지구에 거주하는 ‘주형 32번’의 4번째 클론, EN 3-32-4 입니다.”

나는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아주 잘 보존된 ‘유적’이군요. 선생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상황파악이 안돼었다. 하지만 일단 자기소개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네, 저는 알렉스 헤니건이라고 합니다. 일단 밖은 위험하니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 하죠"

10.
나는 소년에게 차와 과자 등을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차피 조안나도 밖이 위험한걸 알기 때문에 금방 들어오리라 생각을 하고는 조안나가 들어오면 이 소년을 소개시켜주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이 동굴안으로 걸어들어오자 센티널도 강아지가 주인을 따르듯이 동굴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일단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구 전체에 강한 emp를 발생한 이후 그 emp의 전자기파 영향으로 기계와의 전쟁때 생성된 스모그와 오존 화합물이 강한 산성비가 되어서 지표면에 내려와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타격을 입혔고 산성비로 인한 해수면의상승은 식수나 해수 마저도 산성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가 그친후에는 지구의 성층권에서 지구에 직사되는 자외선 등을 막아주는 오존층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동안 인류의 인구는 10/1 정도로 줄었고 게다가 인간들중에서는 스스로를 '프로그램된 인류'라고 칭하며
기존의 인간들을 '하급 인류'라고 부르고는 '시온재건'을 위해 자신들에게 '복종' 할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물론 기존의 인간들은 '프로그램된 인류'와 아주 원시적인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그 결과 인류의 인구는 5/1로 줄었다고 한다. 물론 지구 전체에 내렸던 emp의 영향으로 기존의 전자 기기를 사용하는 무기들은 전혀 가동이 안되었고 결국 칼과 몽둥이를 사용하는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쟁이 계속 되다가 기존의 인간들은 우연한 기회에 히말라야 산 부근에서 기계와의 전쟁을 피해 무기와 각종 설비등을 보관한채 동면에 들어간 인간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깨우게 되었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 부근은 높이상 기계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기위한 스모그 층속에 있었고 기계들은 그 스모그 층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스모그층은 인간들에게도 유해한 것이어서 인간들은 히말라야산 정상부근 스모그층 속에서 동면에 들어가서 후일을 기약한것이라고 한다.

기존 인류와 동면되었던 인류의 연합은 프로그램된 인류와의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으나 재 부팅되어 백지상태가 된 매트릭스를 재 구축하고 산성비로 파괴된 매트릭스를 보수하기위해서는 프로그램된 인류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매트릭스를 재 구축하면서 '공통의식'이라고 칭하고 더이상 의자식의 매트릭스 접속장치가 필요없이
이마에 부착된 작은 접속장치로 언제든지 매트릭스에 접속할수 있게 만들었다. 그 이후 매트릭스 나 매트릭스 접속장치는 전화기나 생활용품과 다름이 없게 되었고 센티널들이나 모든 기계의 조종도 이마에 부착된 매트릭스 접속장치를 통해 매트릭스에 접속한뒤 조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매트릭스라부르지 않는다. '공통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예전의 매트릭스처럼 단지 매트릭스상에서 상대를 만나지만 매트릭스 밖에서와 같이 대화나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지만 '공통의식'에서는 '공통의식'에 접속된 순간 커뮤니케이션이 필요없이 바로 의식이 공유된다는 것이다. 마치 조안나가 내 생각을 엿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가만히 생각을 했다 만약 조안나라면 접속장치가 필요없이 항상 '공통의식'을 오갈수 있을것이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서 소년에게 조안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소년은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없이. 소년은 과자를 다 먹자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면되었던 인류와 프로그램된 인류는 '공통의식'에 쉽게 적응을 했으나 기존의 인류는 '공통의식'에 적응을 못해서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숨어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구의 emp 사건 이후 동면되었던 인류와 프로그램된 인류는 이상하게도 자손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인류는 자손을 갖을수 있으나 '공통의식'에 적응을 못하고 점점 그 수가 줄어든다는것이다.

그래서 결국 생각한 방식이 '클론 제조'였으나. 이 마저도 한 사람의 체세포로 만들수 있는 클론이 4명이상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었다. 항상 5번째 클론은 수명이 짦거나 기형, 정신 이상등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래서 '공통의식'은 5번째 클론의 생산을 금지시켰다.

줄어가는 기존인류의 체세포로 클론을 만들다보니 그 숫자가 줄어들게 되었으나 일단은 기존 인류 이후에 생존하게 된
프로그램된 인류와 동면되었던 인류 그리고 기존인류의 클론등은 이마에 접속장치를 부착시키고 항상 서로의 의식을 교환하면서 스스로를 '신 인류'라고 부르게 되었고 산성비와 자외선등의 영향으로 파괴된 시설중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시설들을 '유적'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

이제 '신인류' 들에게 기계와의 전쟁이나 '매트릭스'등은 마치 '선사시대'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