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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타타-

 

쉴 새 없이 울리는 총성. 비명소리. 매캐한 화약냄새와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폭발음. 승철은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관성중화장치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양팔로 전해지는 뻐근한 감각마저도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쉴드1, 탄막 때문에 표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격을 중단하는 편이......”

 

당연한 생각이었다. 초음속으로 대전차용 탄환을 연사하는 토르소총(Thor Rifle)10정이 넘는다. 소형미사일 포드를 장착한 강화복을 걸친 병사도 둘이나 있다. 화염방사기, 네이팜, 심지어는 이제 막 테스트 단계에 들어선 레일건까지. 하나같이 일개 소대병력이 가지기엔 지나치게 강력한 무장들 뿐. 그것들을 일제히 발사하고 있으니 표적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단순히 생각해 보아도 표적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탄약을 아끼는 차원에서도 사격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정석이리라.

 

그럼에도,

 

아니, 이대로 속행한다. 후송부대로 녀석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게 해.”

의미가 없습니다, 쉴드1. 녀석은 우리 따위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강화전투복의 육중한 팔이 목부분을 움켜쥔다.

 

닥치고 계속 사격해. 멈추지 말라는 말이다.”

, 라져.”

 

멈출 수는 없다. 승철이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면 강화전투복 3기가 완파된 시점에서 퇴각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그런데도 승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퇴각명령을 내리는 순간. 녀석에게 등을 보이는 순간 녀석의 희고 긴 촉수가 뻗어와 자신과 아직 살아남은 부대원 모두를 학살할 것만 같았다.

 

오랜 기간 전쟁터를 떠돌면서 절망적인 상황은 몇 번이나 경험했다. 보급부대가 습격당해 보급품 없이 본대에 합류해야 했던 적도 있었고, 무너지기 시작한 전선의 후위를 맡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전투의지조차도 보이지 않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만큼 죽음을 가깝게 느낀 경우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6년 전 처음 괴물이 나타난 이후로 이 세계 자체가 이상해져 버렸다. 작은 소도시에 나타난 괴물을 해치우기 위해 투입된 병력은 1만명. 전차가 85대 전투기가 20.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마리의 괴물에게 전멸 당하다 시피 패배했다. 군은 폭탄을 사용했다. 세계에 산재해 있는 을 반응시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신무기라고 했다. 괴물은 퇴치했지만, 폭탄이 사용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km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커다란 크레이터에는 아직도 어떠한 동식물도 자생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읽은 적 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세계는 미쳐버렸다. 단 한번 논의조차 되어본 적 없던 국제연합이 가맹률 98%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를 보이며 출범하고 상설 실행부대로서 심연이 조직되었다. 국가급, 그것도 강대국 수준의 전력이 일개 조직의 실행부대로 편제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그 실행부대의 활동을 지원하고 자국 영토 내에서의 치외법권 및 활동을 묵인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약까지 맺어졌다. 강화전투복이며 강화전투복을 입은 병사 전용으로 조정된 토르소총 등 부가장비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개발되었다. 용병으로 전쟁터를 떠돌던 승철의 관점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을 상대하겠다는 의도로 벌인 그것들은 미친짓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승철은 출발 전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서던 상관의 얼굴을 생각했다.

 

이기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특수 타격대가 갖춰지지 않은 지금 우리만으로 녀석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애당초 무리다. 이번 임무는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보급선을 유지하며 녀석을 묶어두는 게 목적이 될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다. 보급품만 충분하다면 작은 국가하나를 점령할 수도 있는 전력으로 고작 지원임무라니,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대장님 빠르게 정리하고 오늘 저녁 바에서 한잔 어떠십니까?”

 

평소였다면 임무 전에 너무 풀어지지 말라며 주의를 줬을 테지만 승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는 2m남짓한 인간과 유사한 형태. 팔 대신으로 달려있는 기다란 촉수를 휘둘러 시설을 파괴하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공격의사를 보이지는 않는 적이었다.

 

네가 산다면 생각해보지.”

히야-, 그건 좀 곤란한데요. 월급날 직전이지 않습니까. 가끔은 소대원을 위해서 베풀 줄도 아셔야 좋은 소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큭큭, 어차피 네놈은 술만 사주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잖냐.”

무슨 소리야, 술을 사주는 사람은 당연히 좋은 사......”

 

수송기 아래에서부터 하얗고 뾰족한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

 

그것에 관통당한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나머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헨리!”

젠장, 전투준비!”

 

이미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 수송기에서 탈출하듯 강하했다.

이 개자식이 헨리를......!”

가지마!”

 

양쪽 손목에 위치한 슬롯에서 포스나이프를 빼어 든 병사가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승철이 손을 뻗어 병사를 막아서려던 그 찰나의 순간, 이목구비조차도 없는 새하얀 몸뚱이를 이쪽으로 향한 녀석은 긴 촉수를 움직여 강화전투복의 다리를 쥐고 들어 올린 다음 그를 유류고에 처박아버렸다. 그 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아 몸을 일으키던 그의 몸을 너무도 간단히 세로로 두 동강 냈다.

 

으아아아!”

 

강화전투복 한기가 앞으로 나서며 소총을 발사했다.

 

우직- 우지직.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 기화되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제가 빠르게 기화되는 소리. 강화전투복의 오일, 어쩌면 파일럿의 피일지도 모르는 검붉은 액체가 스크린을 적시고, 다음순간 승철은 슬러스터를 전개해 반대편으로 물러나며 외쳤다.

 

사격개시! 물러서면서 전선을 형성해!”

 

얼빵한 상관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는 기분으로 시작한 작전. 그러나 순식간에 부대원 셋을 잃은 상황에 이르자 녀석을 잡을 수 있다는 당치도 않은 생각 따위 이미 사라져버렸다. 멀리서 추락하는 수송기의 폭발음이 들려왔고 토르소총이 불을 뿜었다.

 

승철은 피가 흐르도록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처음 압도적으로 자신을 속박하던 두려움이 가시고 나자 남은 것은 무력감. 아직 17기의 강화전투복 부대가 탄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승철의 지휘가 뛰어나서도 승기를 잡아서도 아니었다.

 

녀석은 처음 3기를 처치한 후 아예 승철과 그의 부대원들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다가 이따금 생각난 듯이 건물을 두동강내고 길가에 세워져 있던 차량을 박살낸다.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그런 느낌이었다.

 

젠장, 젠장!”

 

탄 소비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중위. 페이스를 조절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인공지능의 경고에도 아랑곳 않고 승철은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총열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페이스를......

 

닥쳐.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가 아니면 보고를 생략해라.”

라져.

 

승철의 스크린에 후송부대 차량을 향해 뻗어가는 촉수가 비춰졌다. 차량이 뒤집히고 그것을 향해 뛰어드는 강화전투복 한기의 모습도 보였다.

 

빌어 처먹을!”

 

승철이 소총에 내장된 대검을 뽑아들며 달려드는 것과 놈의 촉수가 그를 향해 날려진 것은 거의 동시. 불과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차이로 강화전투복에 닿기 전 승철은 녀석의 촉수에 대검을 쑤셔 넣고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소대장님!”

경고, 공격행동을-

 

피했다고 생각했다. 좌측면에서 채찍의 형태로 휘둘러지는 또 하나의 촉수를 피하는 것은 몸을 살짝만 움직이면 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촉수는 승철에게 닿기 직전 갑자기 궤도와 길이를 바꾸어 사선에서 승철을 휘감듯이 휘둘러진다.

 

긴급! 흉부장갑 대파, 방호력 60%까지 감소, 부스터 모듈 파손, 회피가 불가능합니다. 즉시 전투지역을 이탈하십시오. 즉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깨닫는 것보다도 빠르게 피드백 장치를 통해 전해지는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내달렸다. 시선을 움직여 자신의 강화전투복이 흉물스럽게 내부 장치를 드러낸 채 건물 더미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대장님!”

난 괜찮다. 작전실패, 전 소대원은 포인트 R 지점을 향해 후퇴를......”

 

지직- 지지직- 쉴드- 지직-드 측 아무나 응답바람, 여기는 스피어헤드.”

 

그들의 큐사인은 스피어다. 그들이 올 때까지......’

 

원군이 온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이거 안 되잖아, 출력을 올려!”

, 쉴드1. 감도양호. 작전은 중지됐다. 귀소측 당장 퇴각하......”

뭐야, 들리는 거였냐. 대답을 제때 하길 바람. , 그러니까 제군들 고생했다. 목 빠지게 기다리던 응원군이 지금 도착했으니 목표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기 바란다, 이상.”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놈에겐 당할 수 없어, 당장 후퇴......”

현재 본 작전의 지휘권은 귀소측에서 당소측으로 이양되었으니 불만은 듣지 않겠다. 거리를 벌려라.”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냐고 쏘아붙이려했다. 하지만 턱 끝까지 올라온 그 말을 승철은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섬광. 푸른빛의, 섬광이 녀석의 촉수하나를 꿰뚫는다. 레이더에 반응이 있었다. 소형 비행물체. 자신이 모르는 신병기인 것일까. 그것의 반응은 점차로 멀어져간다. 그리고 다시 한방 섬광이 작렬한다. 레이더 반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위치. 승철은 레이더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방, 양털뭉치 구름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내며 지근거리에서 쏘기라도 한 듯 정확히 녀석의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

 

괴물의 촉수가 격하게 떨렸다. 발성기관도 확인되지 않은 녀석이 포효했다. 아니, 그것은 포효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비명, 그것도 공포에 찬. 한참을 꿈틀거리던 녀석의 촉수가 크게 길이를 늘이며 짐승처럼 천공을 향해 내달린다. 수송기를 저런 방식으로 공격했던 것일까. 그러나 지상에서 쏘아 올려진 순백색 촉수가 짐승이라면 그에 대항하는 청백색 섬광은 맹수. 내질러진 촉수를 뚫고 그대로 녀석의 어깨 죽지를 관통해 한쪽 촉수를 녀석의 팔에서 난폭하게 떼어낸다.

 

, 망원렌즈 최대로.”

라져.

 

승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전투의 피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쳐 제거하지 못한 나머지 촉수하나를 향해 내질러진 섬광. 그 섬광을 내지른 이형의 라이플과 기이하게도 큰 라이플을 강하하며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지향사격자세로 든 채 발사하는 실루엣 탓이다.

 

여성, 그것도 아직 채 성인이 되지 못한 소녀. 강화전투복도 없다. 관절부위를 보호하는 보호구와 호완, 얼굴전체를 가리는 고글과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섶단 같은 머리칼. 그녀가 걸친 장비 중 가장 육중해 보이는 것은 등에 백팩 형태로 짊어진 자세제어로켓이었다.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살짝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그녀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섬광을 쏘아낸다. 두발, 세발 단 한발도 어긋나지 않고 정확히 그리고 확실하게 녀석의 몸을 물어뜯어 간다. 그녀는 강하를 계속해 이미 파란 불꽃을 내며 타들어가는 파편 몇 점이 남아있을 뿐인 폐허위로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여신의 강림, 바로 그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라이플이 빛 입자 같은 것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어깨보다 조금 안쪽에 위치한 버튼을 눌렀다. 고글이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벗겨지고 드러난 피부는 희고도 매끈했다. 이스턴우드 사막의 모래바람 사이로 나타난 신기루처럼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심연 한국지부 특수타격팀 소속 준위 린입니다. 인증번호는 S178840 협조를 요청합니다.”

, , ! 필요하시다면 뭐, 뭐든.......”

 

승철이 얼뜨기처럼 대답하자, 소녀는 갑자기 불어온 모래바람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승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물 있으세요?”

?”

 

이스턴우드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이 소리를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