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분 정도 산을 오르자, 미라는 이 산이 일반적인 산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수풀이 좀 많이 자랐을 뿐, 별로 높지 않은 완만한 언덕과도 같은 산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길 여기저기가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산길은 다른 산길과는 다르게 조금 특이한 것이었다. 직접 들어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을 만큼 크게 눈에 띄는 특징은 아니었지만, 미라는 그 덕분에 이 산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닥이 온통 건물 잔해들이야. 그 위에 풀들이 자라면서 생긴 산인 것 같아...”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야트막한 구릉 정도로 보이던 산은, 잘게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잔해더미 위에 흙과 풀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산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또한 일반적인 나무가 아니라 덩굴 형태의 뿌리를 가진 나무들이 사방에 ᄊᆞᇂ여있는 백회색의 콘크리트 잔해들을 붙잡고 자라나 만들어진 형태였다. 식물들 사이로 튀어나온 잔해들과 그 사이에 벌어진 틈새들 때문에 걷는 데는 매우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앞으로 갈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미라는 예전에 거의 절벽을 오르듯 잔해와 식물 줄기들을 붙잡고 올라야 했던 산을 떠올렸다. 거기에 비하면 이런 낮은 산은 산책코스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라는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발아래에 얇게 자라난 식물 줄기를 걷어냈다. 그 식물 아래에 깔린 잔해에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듯, 무언가 긁고 간 것 같은 희미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이 이어진 길은 거울이 내뿜는 빛줄기가 향하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었다.

 

“...제이, 이 자국. 뭘 뜻하는 걸까?”

 

미라가 제이에게 말을 걸자, 가방에 매달려 있던 검은색 구체의 디스플레이에 동그랗고 파란 눈이 떠올랐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몇 번 끔뻑거린 제이의 눈은 이내 미라가 가리킨 방향을 향했다.

 

내가 보기엔 어떤 장비를 운반한 자국인 것 같아. 좀 오래되 보여서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30년 이내에는 누군가 이 잔해 위로 지나다녔을 거야.”

 

미라는 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잔해들의 틈 사이를 막기 위해 다른 잔해들로 틈을 막아놓은 흔적도 보였다. 크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라가 서있는 길은 충분히 다른 곳에 있는 잔해들 보다는 손질이 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긁힌 자국들은 그 길을 따라 이어지다가 누군가 일부러 길을 헤맨 듯,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더니 이내 갑자기 끊어져버렸다.

 

... 아무래도 누군가 입구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나본데.”

 

거울에서 나오는 빛도 이 근처에서 흩어져버려 더 이상 길을 찾기는 어렵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별로 없었다. 눈에 띌만큼 크게 튀어나온 잔해들을 제외하면, 산의 거의 대부분은 초목들로 뒤덮여 있어 어떤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산 높이가 그리 높지는 않았으니까, 이 근처에 어딘가에 무거운 장비를 끌고 들어갈 만한 입구가 있을 거야. 제이, 한번 살펴볼래?”

 

알았어. 잠깐만.”

 

명령을 받은 제이는 눈을 감고 음파탐지기를 작동했다. 잔해 더미 아래에 남아있는 공간을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성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잔해들 깊은 곳 까지는 탐지할 수 없었지만, 수 십 미터 정도의 깊이까지만 알아낼 수 있으면 입구를 찾는 데에는 충분했다.

 

으음... 이상한데...”

 

뭔데?”

 

하지만 제이는 자신의 탐지 음파가 잔해에 닿자마자 흩어져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경우는 보통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누군가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 잔해 내부 깊은 곳에서 일부러 약한 진동을 일으켜서 탐지에 혼란을 주고 있어. 어쩌면, 장비를 끌고 간 누군가가 아직도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로서 이 잔해 속에 있는 누군가가 외부인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아직까지도 잔해 내부로부터 방해가 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그 안에서 시설을 관리중이라는 뜻이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장비의 끌린 방향을 은폐한 사람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것은 미라에게 있어서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기도 했다. 당장에 가지고 있는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마당에, 산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쩔거야, 미라? 다른 방법이 있어?”

 

끄응... 가만있어봐. 생각 좀 해보게.”

 

미라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코트를 가져간 도둑, 그리고 제이에게 갑작스레 연락을 해왔던 누군가, 그리고 뭔가가 숨겨져 있는 듯한 잔해의 산. 모든 게 우연히 이 산 근처에 바이크를 세우면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산을 가리키고 있던 거울의 빛까지... 그녀는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운명처럼.”

 

그때였다. 그녀의 귀로 간질거리는 어떤 작은 속삭임 같은 게 흘러들어왔다.

 

뭐지?’

 

그녀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들려오는 방향도, 의미도 알 수 없는 어떤 중얼거림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내 그 속삭임은 점점 더 커져, 마침내 미라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되었다.

 

이쪽으로...’

 

! 저기야!”

 

, ?”

 

그 소리는 단 한순간, 방향을 특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들려왔다. 단번에 위치를 짚어낸 미라가 달려간 곳은 유난히 크게 자라난 나무의 밑둥 아래였다.

 

여기! 이 아래야!”

 

잔해들을 휘감고 자라난 나무의 밑동 사이에는 좁은 통로처럼 시커먼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희미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 아래가 어딘가로 향하는 입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이, 이 아래 좀 보고 와봐. 빨리.”

 

미라는 가방에 걸려있던 제이를 빼내 D형 고리에 줄을 걸었다.

 

... 뭐하려는 거야?”

 

갑자기 머리 위에 줄을 거는 통에 제이는 조금 당황했지만, 미라는 그에 아랑곳 않고 밑둥 아래로 제이를 내려 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제이의 검은 몸통에서 얇은 팔다리가 튀어나오더니 나무 밑동에 연결된 뿌리에 매달렸다.

 

미라! 난 어두운 곳 싫어!”

 

제이! 잠깐만 보고 오면 돼!”

 

그러면서 미라는 손가락으로 나무뿌리에 매달린 제이를 꾹꾹 눌렀다. 제이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엔 손이 미끄러져 뿌리를 놓치면서 어두운 밑동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제이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미라는 들고 있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외쳤다.

 

제이! 이제 불 켜봐!”

 

하지만 어둠 속으로 이어진 줄은 불안하게 흔들거릴 뿐, 그 아래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미라는 한 번 더 재촉했다.

 

제이!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불 켜봐!”

 

“*$#@..&^*...”


그러자 이윽고 알아듣기 어려운 중얼거림과 함께, 밑동 아래에서 환한 빛이 밝혀졌다. 줄 끝에 매달린 제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었다.

 

제이, 너무 화내지마. 생각보다 그리 깊지도 않네 뭐.”

 

미라의 말대로, 밑동 아래는 지상에서 고작 2,3미터 쯤 아래로 이어져 여러 잔해들로 들어차있는 공간이었다. 얼핏 봐서는 주변에 흔하게 널린, 잔해가 쌓이면서 우연히 형성된 공간처럼 보였다.

 

여기... ...”

 

뭐라고?”

 

그 공간 한가운데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제이는 단단히 삐친 듯, 팔짱을 낀 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 있다고...”

 

뭐라고? 좀 더 크게 말해봐! 잘 안들려!”

 

여기 문 있다고오!”

 

 

 

“...웃샤!”

미라가 밑동 아래로 내려오자, 그곳에는 잔해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그녀를 맞이했다. 잔해가 마구잡이로 쌓여 높게는 4미터에서, 낮게는 30센티쯤 되는 구불구불한 공간은 사방 곳곳에 틈이 있어 겉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매우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뿌리가 이 안쪽까지 뻗어있네.”

 

하지만 기둥처럼 지면을 뚫고 들어와 자라난 나무의 뿌리들이 잔해의 아래까지 뻗어 내려와 공간을 받치고 있어 그 안은 생각보다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핏 보기에 온 사방이 날카로운 건물 잔해들과 잔해의 틈 때문에 발을 디디기도 힘들 정도로 위험해 보였지만, 미라는 그 잔해들 틈으로 나무나 책상, 부서진 문 따위를 이용해 누군가 징검다리처럼 길을 만들어놓았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얼핏 봐서는 다른 잔해들에 섞여 널브러진 잡동사니들로 보일 정도로 교묘하게 연출한 숨은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어떤 문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제이, 여기 맞는 것 같은데?”

 

미라는 다시금 가방에 걸려있는 제이에게 말을 건냈지만, 제이는 단단히 삐쳐서 팔짱을 낀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이, 화 풀어. 내가 잘못했어...”

 

그녀는 자기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방 안에 손전등이 있는 줄 알았으면, 제이를 억지로 내려 보낼게 아니라 손전등으로 먼저 살펴봤어도 충분했었기 때문이다.

 

너무 급하게 가방을 챙기다보니까 깜빡했어...”

 

!”

 

, 그래도 네 도움이 필요해서 그랬던 거야. 너무 화내지마.”

 

구불구불하게 이어져있는 잔해들을 따라 문으로 향하면서, 미라는 이런 말, 저런 말들로 제이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큰 도움이 되었다.’, ‘네가 꼭 필요하다.’, ‘너 없으면 난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그녀는 제이가 뭐에 약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는 그녀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제이는 미라가 문에 도착할 때 쯤, 거의 완전히 화가 풀려있었다. 다만 팔짱만큼은 마지막 자존심처럼 여전히 꼬인 상태였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난 어두운 데는 무섭단 말이야...”

 

그래, 알았어.”

 

미라는 그런 제이를 보며 식 웃어보였다. 이로서 다음에도 또 제이를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