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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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OM : Self Defense #027 -Tea time (1)
1999년 5월 1일.
나른한 오후. 스며드는 햇빛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하라도 몸은 알아서 반응하고 만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진한 커피 향이라도 맡지 못한다면 금새 잠에라도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긴 사무실이라고 해 봤자 두 사람이 쓰기에도 좁은 곳이지만. 아니, 생각해보면 그래도 두 사람까지는 쓸만했던 것 같다. 역시 셋이 되기 전에 함부로 속단은 금물이다.
"어이, 설마 조는거야? 그래가지고 월급 받겠나."
젠장,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 바로 마주보는 책상, 문제의 세 번째 사무실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이 눈치 빠르게도 듣기 싫은 잔소리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신입 주제에. 잔뜩 쌓여 있는 서류 더미가 표정을 가려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마치 심심해 죽겠는데 좋은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한 기세를 보아 여기서 잘못 대꾸했다가는 오늘도 밀린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분명 또 다른 방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눈길이 저절로 가운데에 위치한 신 대위의 빈 자리로 향했다.
"보고서도 아직 다 안 썼지? 도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제 삼의 인물은 공격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다시는 그 무서운 얼굴을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섣부른 판단이었음은 독일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채 안 지난 시점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사무실 인테리어가 바뀐 것쯤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새로 생긴 책상에 유유히 앉아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다시 염색을 한 듯 질끈 동여 맨 새까만 머리칼, 그리고 정장처럼 보이도록 노력한 티는 보이지만 분명 틀림없는 점원복을 입고 있는 아가씨는 서란 이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 오랜만이야. 말단 양반."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반갑게 첫 인사를 해 주었다.
"서로 구면이겠지요? 오늘부터 새로 배속된 서란 씨입니다. 처음이니 아무쪼록 잘 대해 주시길."
그리고 신 대위는 심각한 골칫덩이가 굴러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운 불청객을 전혀 흔들림 없는 태도로 대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번에 보아하니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는 서란의 얼굴은 왠지 분노보다는 허탈감을 불러 일으켰다. 명목은 독일 지부에 파견 근무를 하던 정보국의 엘리트가 전출되어 이곳으로 온 것이라곤 하지만 말 그대로 명목상 뿐인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전장환경분석 따위와 한가롭게 외국 물이나 먹던 성격 나쁜 여자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뭐, 나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녀의 특기는 이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게다가 엄연히 민간인 신분이고.
"뭐 요즘은 물가도 그렇고 외국보다 국내에서 근무하는 게 벌이가 더 좋다더군."
왜 하필 이곳으로 왔냐는 추궁에 가까운 질문을 서란은 철저히 비논리적으로 받아넘겼다. 분명 독일에서의 변변찮은 성과가 이런 정보부 안에서도 외진 구석이나 다름없는 곳으로의 발령을 초래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상부에서 외계인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격투기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어디 가?"
"보고하러 간다."
머리를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출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상태다. 단지 변한 것은 시끄러운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 뿐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녀는 오자마자 어딘가로 격리되었다. 그런데도 신 대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점 더 일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그런 일이겠지. 뭐라도 좋으니 무언가 설명을 듣고 싶다는 충동을 참을 수 없다.
"이젠 땡땡이까지 치는 거야?"
서란의 고함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 피차 그쪽도 밀린 보고서가 산더미니까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좁고 긴 통로를 한참 동안이나 걸어 간 끝에 임시로 설치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불안한 흔들림은 생각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신 대위가 있는 곳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기지 뒷산을 뚫고서 그 안에 대규모 시설을 갖추는 대공사가 진행중인 곳,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소에 그녀가 있다고 들었다.
이쪽이 주로 맡고 있는 것이 수집된 온갖 잡다한 정보를 검토라고 분류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라면 그동안 신 대위가 해 온 일은 그보다는 훨씬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데이타베이스와 연결된 컴퓨터와 단말기들을 빼고는 변변찮은 기기도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최근 그녀가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듣기로는 공사가 한창인 기지 뒤쪽의 새로운 시설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첫 출동 이후로 한가하기로 유명한 우리 과이기에 과장이 그런 잡일을 도맡아야 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로써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얼른 새로운 전투 분대라도 창설해서 지긋지긋한 사무실 업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상부는 관심은 커녕 예산을 삭감할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으니 아무리 바래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예산 뿐만 아니라 이미 한 차례의 임무에서 분대가 해체될 정도의 피해를 입은 데다 온갖 외교, 경제적 손실까지 발생했을 테니 더이상 새로운 부대를 창설할 엄두조차 없을 것이다. 아마 국경 경비대의 확충에만도 벅찰 것이다.
뭐, 애초에 무능한 지휘관이 가장 큰 걸림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부대라고 하니까 독일에서 보았던 기지가 생각난다. 그 날 이후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또한 출장에서 돌아온 뒤 할 수 있는 만큼 정보를 긁어 모았지만 어떠한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날 본 것은 거대한 사기극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 만큼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깥 경치였다. 전면을 채운 관측 창으로는 우뚝 솟은 산맥들과 함께 동해의 푸른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빈 상자들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경치 좋은 휴게실이 될 장소지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창가 한쪽에 쌓인 상자 더미 위에 앉아 있던 신 대위가 먼저 반겨 주었다.
"여긴 무슨 일인가요? 중위."
반갑다기 보다는 의혹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은테 안경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이 이쪽을 향해 온다. 요즈음 아무리 자리를 비웠다 하더라도 신 대위는 여전하다.
"실은..."
갑자기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바보같이 달랑 빈 파일 하나만 들고 왔을 뿐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하고많은 결재 서류들을 왜 몽땅 빼 놓고 왔을까? 새삼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차라도 한 잔 하려고 왔는데- 대위님께서는 왠일로..."
순간적으로 구석의 자판기가 눈에 들어온 것은 행운이 분명하다.
"차 마시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
물론 어떤 할일없는 공사장 인부도 여기까지는 안 올 것이다.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가. 그렇다면 이제는 근무지 무단 이탈에 대한 추궁에 대해 대비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나 말고는.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차나 한 잔 하죠."
희미하게 웃음짓는 그녀의 손에는 이미 새하얀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오늘은 참 오래간만에 행운이 따라주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1999년 5월 1일.
나른한 오후. 스며드는 햇빛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하라도 몸은 알아서 반응하고 만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진한 커피 향이라도 맡지 못한다면 금새 잠에라도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긴 사무실이라고 해 봤자 두 사람이 쓰기에도 좁은 곳이지만. 아니, 생각해보면 그래도 두 사람까지는 쓸만했던 것 같다. 역시 셋이 되기 전에 함부로 속단은 금물이다.
"어이, 설마 조는거야? 그래가지고 월급 받겠나."
젠장,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 바로 마주보는 책상, 문제의 세 번째 사무실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이 눈치 빠르게도 듣기 싫은 잔소리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신입 주제에. 잔뜩 쌓여 있는 서류 더미가 표정을 가려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마치 심심해 죽겠는데 좋은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한 기세를 보아 여기서 잘못 대꾸했다가는 오늘도 밀린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분명 또 다른 방향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눈길이 저절로 가운데에 위치한 신 대위의 빈 자리로 향했다.
"보고서도 아직 다 안 썼지? 도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라곤..."
제 삼의 인물은 공격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다시는 그 무서운 얼굴을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섣부른 판단이었음은 독일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채 안 지난 시점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사무실 인테리어가 바뀐 것쯤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새로 생긴 책상에 유유히 앉아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다시 염색을 한 듯 질끈 동여 맨 새까만 머리칼, 그리고 정장처럼 보이도록 노력한 티는 보이지만 분명 틀림없는 점원복을 입고 있는 아가씨는 서란 이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 오랜만이야. 말단 양반."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반갑게 첫 인사를 해 주었다.
"서로 구면이겠지요? 오늘부터 새로 배속된 서란 씨입니다. 처음이니 아무쪼록 잘 대해 주시길."
그리고 신 대위는 심각한 골칫덩이가 굴러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운 불청객을 전혀 흔들림 없는 태도로 대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번에 보아하니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는 서란의 얼굴은 왠지 분노보다는 허탈감을 불러 일으켰다. 명목은 독일 지부에 파견 근무를 하던 정보국의 엘리트가 전출되어 이곳으로 온 것이라곤 하지만 말 그대로 명목상 뿐인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전장환경분석 따위와 한가롭게 외국 물이나 먹던 성격 나쁜 여자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뭐, 나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녀의 특기는 이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게다가 엄연히 민간인 신분이고.
"뭐 요즘은 물가도 그렇고 외국보다 국내에서 근무하는 게 벌이가 더 좋다더군."
왜 하필 이곳으로 왔냐는 추궁에 가까운 질문을 서란은 철저히 비논리적으로 받아넘겼다. 분명 독일에서의 변변찮은 성과가 이런 정보부 안에서도 외진 구석이나 다름없는 곳으로의 발령을 초래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상부에서 외계인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격투기를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어디 가?"
"보고하러 간다."
머리를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며 자리에서 일어 났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출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상태다. 단지 변한 것은 시끄러운 동료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 뿐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소녀는 오자마자 어딘가로 격리되었다. 그런데도 신 대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점 더 일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그런 일이겠지. 뭐라도 좋으니 무언가 설명을 듣고 싶다는 충동을 참을 수 없다.
"이젠 땡땡이까지 치는 거야?"
서란의 고함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성큼성큼 문을 나섰다. 피차 그쪽도 밀린 보고서가 산더미니까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좁고 긴 통로를 한참 동안이나 걸어 간 끝에 임시로 설치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불안한 흔들림은 생각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신 대위가 있는 곳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기지 뒷산을 뚫고서 그 안에 대규모 시설을 갖추는 대공사가 진행중인 곳,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소에 그녀가 있다고 들었다.
이쪽이 주로 맡고 있는 것이 수집된 온갖 잡다한 정보를 검토라고 분류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라면 그동안 신 대위가 해 온 일은 그보다는 훨씬 중요하고 복잡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데이타베이스와 연결된 컴퓨터와 단말기들을 빼고는 변변찮은 기기도 없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최근 그녀가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듣기로는 공사가 한창인 기지 뒤쪽의 새로운 시설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첫 출동 이후로 한가하기로 유명한 우리 과이기에 과장이 그런 잡일을 도맡아야 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로써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얼른 새로운 전투 분대라도 창설해서 지긋지긋한 사무실 업무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상부는 관심은 커녕 예산을 삭감할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으니 아무리 바래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예산 뿐만 아니라 이미 한 차례의 임무에서 분대가 해체될 정도의 피해를 입은 데다 온갖 외교, 경제적 손실까지 발생했을 테니 더이상 새로운 부대를 창설할 엄두조차 없을 것이다. 아마 국경 경비대의 확충에만도 벅찰 것이다.
뭐, 애초에 무능한 지휘관이 가장 큰 걸림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부대라고 하니까 독일에서 보았던 기지가 생각난다. 그 날 이후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또한 출장에서 돌아온 뒤 할 수 있는 만큼 정보를 긁어 모았지만 어떠한 흔적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날 본 것은 거대한 사기극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 만큼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깥 경치였다. 전면을 채운 관측 창으로는 우뚝 솟은 산맥들과 함께 동해의 푸른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그것도 잠시, 이내 시선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빈 상자들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경치 좋은 휴게실이 될 장소지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창가 한쪽에 쌓인 상자 더미 위에 앉아 있던 신 대위가 먼저 반겨 주었다.
"여긴 무슨 일인가요? 중위."
반갑다기 보다는 의혹에 가득 찬 목소리와 함께 은테 안경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이 이쪽을 향해 온다. 요즈음 아무리 자리를 비웠다 하더라도 신 대위는 여전하다.
"실은..."
갑자기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바보같이 달랑 빈 파일 하나만 들고 왔을 뿐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하고많은 결재 서류들을 왜 몽땅 빼 놓고 왔을까? 새삼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차라도 한 잔 하려고 왔는데- 대위님께서는 왠일로..."
순간적으로 구석의 자판기가 눈에 들어온 것은 행운이 분명하다.
"차 마시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
물론 어떤 할일없는 공사장 인부도 여기까지는 안 올 것이다. 이 정도로 넘어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가. 그렇다면 이제는 근무지 무단 이탈에 대한 추궁에 대해 대비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나 말고는.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차나 한 잔 하죠."
희미하게 웃음짓는 그녀의 손에는 이미 새하얀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오늘은 참 오래간만에 행운이 따라주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