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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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원진은 마을에 잘 적응해 나아가고 있었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간단한 중국어 표현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고, 덕분에 마을사람들과 간단한 대화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곳, 중국땅에 들어올때 중국어 인사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때를 생각해본다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원진은 마을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중국어를 밤새도록 열심히 익혔다.
지난번 원진에게 조선말로 대화를 시도하였던 호리호리한 사내는 전직 소학교 교사였다.
이름은 곽유.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곽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그를 존경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마을에서 일본어와 조선말을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도시에서 소학교 교사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이곳 마을로 돌아와 작은 밭을 일구며 마을 아이들에게 일본어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일본군 관할구역에 속해있는 이 마을에서는 일본어가 꼭 필요한 언어인지라, 마을 어른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곽선생에게 일본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원진 역시 그에게서 중국말을 배우는 중이었다.
물론, 이 마을에서도 역시 낯선 이방인인 원진을 경계하는 눈빛은 존재하였다.
특히 마을 젊은이들 중 그런 자가 몇몇 보이는데, 그 중 유창이라는 자가 그 우두머리로 보였다.
유창은 원진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때부터 경계의 눈초리를 한시라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곽선생을 찾아가 원진을 경계하는 말을 내뱉기도 하였다.
"선생님,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겁니까? 일본어와 조선말을 할 줄 아는 대신 우리 말을 잘 못하는거로 봐서는 낙오되거나 탈영한 일본군 병사이거나, 조선의 독립군 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안전에 위험이 될 요소는 즉각 내치는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저사람이 탈영병이거나, 조선 독립군 일 수도 있겠지...하지만, 분명한건 저 사람은 갈곳이 없으며, 눈빛 역시 악의에 가득찬 눈빛이 아니었어. 오히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눈빛에 가까웠지."
"하지만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만약 탈영병이나 독립군을 숨겨준게 발각되면 마을 전체가 위험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사람이 탈영병이나 독립군이라면,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면 되지 않나? 나느 저 사람을 가르쳐서 그렇게 만들겠네. 그리고 아직 탈영했다는 소식이 없는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탈영병은 아닐테지......그렇다고 소지품역시 독립군이나 임정에 관한 어떠한 물건도 발견되지 않았고 말이야."
"선생님!"
유창은 말을 계속 해봤자 자신에게 아무 소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논쟁을 중단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원진을 마을에서 내쫒을 궁리를 하는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편, 23사단 후방 보급창으로 밀려난 가토의 대대에서는 오타와 중위가 전입신고를 하고 있었다.
"왜 이제야 도착했나?"
"죄송합니다. 오다가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아, 아 변명은 필요없고, 여기 온 이상 이제 우리 대대 식구니까 할 일이 아주 많아. 전방 연대로 보낼 군수물자도 조달해야하고, 원정떠나는 기병대 물자도 조달해야하고......이런 젠장! 어쩌다 내 꼴이 이 신세가 되었지? 한창 전방에서 녀석들을 쓸어버려야 할 판국에......"
"죄......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나가봐! 아, 일은 후지와라 중위가 인수인계 해줄꺼야. 후지와라 중위는 그 잘나신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워낙 똑똑한 친구니 둘이서 잘 해봐."
"네, 알겠습니다. 하옵고......이번에 데려온 위안소 여자들 관리 문제 말입니다."
"에이 귀찮아! 자네 알아서 해!"
"네,알겠습니다."
오타와는 가토에게 경례를 부치고 가토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가토는 오타와가 나가건 말건 돌아보지도 않고 창문 밖 물자를 트럭과 열차에 실어나르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허연 담배연기만 뿜어댈 뿐이었다.
한편, 대대본부 앞에 정렬중인 오타와의 병력들 중 경훈은 만주에서의 첫 임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어느 병사들이던 간에 어려운 임무를 맡게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경훈은 무한을 떠나올때 원진의 전사소식을 들은지라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편한 보직이래봐야 짐나르는 일 밖에 없을텐데......후......갑자기 원진형과 태성이형하고 지내던 예전 생각이 난다. 원진형은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보고싶다......'
잠시 후 대대건물 안에서 오타와가 나오자, 병사들은 차렷자세로 대기를 하였다.
"자, 아까 각자 배정받은 막사로 해산한다. 그곳에서 짐들 풀고 중앙 연병장으로 나와서 다음 명령 대기하도록. 아참, 그리고 경훈은 잠깐 나좀 보지......"
오타와는 경훈을 데리고 어느 창고같은 건물 앞에 섰다.
"자, 여기 열쇠."
"이게 무엇입니까?"
"어젯밤에 자네들이 하는 이야기 다 들었네. 내 생각이 짧았어. 저 건물안에 자네 말동무들이 있으니 자네가 잘 관리해주게."
"제 말동무들이 누굽니까?"
"글쎄......보면 안다니까 그러네."
경훈은 건물에 뚫린 작은 창문 너머로 건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아로새겨졌다.
"열심히 해보게나."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경훈이 할 일은 예전처럼 단순히 여자들에게 밥을 주고 아픈것을 확인하는 일 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두가지 임무가 더 주어졌는데, 하나는 병사들의 군표를 수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사들에게 방을 안내하는 일이었다.
멋 모르는 경훈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는 곧 또다른 불행하고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게 될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