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35mm SLR카메라 : 1936년 드레스덴이하게사에서 처음 소개된 카네 액재타(Kine Exakta) 모델

어두침침한 복도를 한 남자가 두개의 큰 통이 담긴 수레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복도의 조명은 낡은 백열등으로 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가끔가다 깜빡깜빡 거리기도 해서 이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곧장 눈이 침침해지곤 하였다.
오히려 복도 양 옆 사이사이 나 있는 문들에 뚫려있는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더 밝을 정도였다.
남자는 복도 제일 끝에 위치한 창살 창문으로 되어있는 큰 철문앞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창살너머로 그 방 안에 있는 물체들을 바라보았다.
방과 실외 사이에 난 창살로 햇빛이 비춰져 그 물체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사람, 그것도 여자들이었다.
이윽고 그 남자는 열쇠를 꺼내어 자물쇠를 따고는 문을 열어 외쳤다.

"식사시간이다."

문을 열면서 반대쪽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햇빛에 비춘 남자의 얼굴은 경훈의 얼굴이었다.
경훈은 주먹밥과 함께 국자로 소금국을 퍼다 그릇에 담아 나눠주었다.

"대체 이걸 먹고......어휴 참......나보고 이 여자들을 다 책임지라고? 겨우 이 주먹밥 하나로?"

경훈은 이렇게 주먹밥과 소금국을 주면서 자신에게 여자들 건강까지 떠맡기는 중대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들은 경훈에게서 맏은 주먹밥과 소금국을 자신들의 옆 사람에게 전달했다.

"이제 이것만 나눠주면 끝이군......이제 좀 눈좀 붙여야겠다."

경훈은 자신의 앞에있는 여자에게 소금국과 주먹밥을 쥐어줬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걸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전달하기를 머뭇거렸다.

"아니, 전달 안하고 뭐하는거야?"

경훈이 버럭 소리질렀지만, 여자는 주먹밥과 국을 손에 쥔 채 떨고만 있었다.

"이리 내놔. 내가 직접 주지. 하지만, 한명이라도 딴생각을 품고있다면 가만안둬. 뭐 나가도 사방이 군인들 천지니..."

경훈은 여자들이 못 도망치게 문을 수레로 막은 후 여자의 손에서 국과 주먹밥을 빼앗아 전달 받지 않은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자, 먹어. 오늘 점심이야. 어서 받아."

경훈은 주먹밥과 국을 여자에게 들이댔으니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용없어요. 얘는 밥을 안먹겠다고 하니......"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경훈을 말렸다.
하지만 중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경훈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뭐 알아들을 수 있어야지......이봐. 밥 안먹어? 이봐. 이봐."

한손에는 주먹밥, 한손에는 국을 들고 있었던 경훈은 여자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여자는 모아진 양 무릎쪽으로 얼굴을 숙인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 이봐! 이거 죽은거 아니야? 정신차려!"

'이거 큰일이다. 드디어 일이 터지는구나......'

경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걸 느꼈다. 중대장이 여자 중 한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날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으......으음."

순간 경훈의 귀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어? 이봐. 정신이 드는거야? 하하! 하하!"

경훈의 가슴을 짓누르고있었던 불안감이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경훈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밥과 국은 경훈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자, 정신을 차렸으면 이거 받아."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간 경훈의 마음속은 알수없는 울컥함으로 가득찼다.

자, 어서 먹어. 먹으란말야."

경훈은 밥을 강제로 여자 입에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밥알은 여자의 입가에 묻을 뿐 완강히 닫혀있는여자의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참는데도 한계가 있지."

경훈은 손에 들고있던 으스러진 주먹밥과 국 그릇을 내팽겨치고는 문 쪽으로 걸어가 수레를 끌고 문 밖을 나섰다.

"그래, 어디한번 쫄쫄 굶어봐라! 쫄쫄 굶어서 내 앞에서 밥 달라고 무릎꿇고 사정사정 빌어봐라. 그때는 아주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창고문이 쾅 닫히고 창고 안은 다시 여자들 술렁이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유유,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나중에 이 전쟁이 끝나면 헤어진 오빠도 다시 만나고, 좋은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가정 꾸리면서 잘 살아야지. 그 원하는 대학인가 뭐시긴가도 들어가고 말이야. 자, 내꺼 좀 남겨놨으니까 어서 먹어."

"그래, 어서 먹어. 우리가 보란듯이 끝까지 살아남는게 저 일본놈들을 이기는거야. 그러니까 어서 먹자. 응?"

하지만 유유라는 이름의 여자는 여전히 다른 여자들이 건네 준 밥을 입에 가져다 대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잔뜩 심통난 경훈은 창고 철문을 발로 뻥 찼다. 큰 충격음이 창고 안을 가득 울렸다.

"저 저 망할 일본놈! 퉤!"

여자 중 한명이 철문을 향해 침을 뱉고 욕을 내뱉었다.

한편 경훈은 마음 한켠으로 무언가 무거운것에 짓눌리고 있다는걸 느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자신의 행동이 좀 심했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점점 성격이 중대장을 닮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 마음을 가라앉히자. 박경훈!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왜 이렇게 변한거야? 아니, 무엇이 이렇게 변하게 만든거야?"

배식을 끝내고 창고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잠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던 경훈은 그 억눌린 마음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한편, 한 군인이 자전거를 타고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군인은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어 중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급전입니다. 출격일이 결정되었습니다."

군인은 서류철을 중대장에게 전달했다. 서류철을 받은 중대장은 서류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떨고 있었다.

"이봐 원진이! 중대장님께서 보자시는데."

한편, 비행장의 돌을 고르고 있었던 원진을 한 병사가 불렀다.
원진은 중대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어? 왔는가? 여기 좀 앉지."

중대장실 안으로 들어온 원진의 마음속은 중대장이 이번에는 왜 불렀을까? 하는 궁금함 뿐 이었다. 한동안 부르지 않아서 그런지 야마구치 상등병 관련 일은 무감각 해져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은 반백이 되었다.
중대장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야마구치 상등병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자네들을 이렇게 부른건 말이야. 자네들에게 임무를 하나 주려고 하는데......"

원진과 야마구치는 긴장된 모습으로 중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들 사진기 좀 다룰 줄 아나?"

"네, 저는 군 입대 전에 사진기사 보조로 잠깐 일한적이 있었습니다."

중대장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야마구치가 대답하였다.

"그래? 그거 잘됐군......원진 이등병 자네는?"

"저는 부두에서 일할때 사진기사가 사진 찍는걸 어깨너머로 본 적밖에 없습니다만......"

"그래? 괜찮군......간단해. 이렇게 여기다 눈을 대고 대충 사각형 안에 대상물체를 맞춘다음 이 단추를 이렇게 누르면 되거든. 총 쏘는거 보다 쉬워."

하지만 원진은 총 쏘는 법도 잘 몰랐다. 단지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간다는 것만 알고있을 뿐 자세한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내가 가르쳐준 대로 한번 찍어봐."

중대장은 원진에게 방금전까지 자신이 들고 찍는 시늉까지 했던 소형 사진기를 건넸다.
원진이 부두 노동자 시절 보던 대형 사진기와는 반대로 이 사진기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 손으로도 잡고 찍을 수 있도록 크기가 작았다.
원진은 중대장이 했던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 어디한번 볼까?"

중대장은 사진기에서 필름을 분리하여 전등에 비춰보았다. 필름에 밎힌 상을 보는 중대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였다.

"좋아. 바로 이렇게 찍는거야. 그럼 대충 사용법을 숙지했으니 이제 자네들에게 부여할 임무를 말해주지. 자네들 임무는 말이야......"

한편 창고 철문옆 의자에 거의 쭈그리다 시피 앉아있는 경훈의 눈에 복도 끝에서부터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그 남자가 경훈과 2미터가량 거리를 좁히고 나서야 경훈은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형, 여긴 웬일이에요?"

"그냥......그래, 이 일은 할만 하냐?"

원진은 경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하지만 경훈은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구나."

"말도 마세요. 이 안에 저번에 우리가 잡아온 여자들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이 어휴."

원진은 철문의 철창으로 방 안을 살펴보았다.

"저 여자 말이냐?"

경훈은 원진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
그곳에는 여자들이 한 여자를 둘러싸고있는것이 보였다.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한 여자는 바닥에 누워져 있었다.

"아 진짜 이번엔 또 무슨일이야."

경훈은 짜증을 내는듯한 목소리로 철문을 열었다.

"형님, 부탁하나만 합시다. 형님은 저 여자들 못나가게 문좀 막고 계세요. 제가 무슨일인지 한번 보고 올테니......"

"어, 그래."

방 안으로 뛰쳐 들어간 경훈은 여자들을 밀치고 쓰러진 여자를 일으켰다. 아까 밥을 먹지 않았던 그 여자였다.

"아주 쫄쫄 굶더니 결국 이렇게 쓰러졌구만......이봐. 이봐. 정신차려!"

경훈은 여자의 뺨을 툭툭 쳤다. 하지만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안돼. 이럴 순 없어. 형님! 잠깐 여자들좀 봐주고 계십쇼.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저, 저!"

원진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은채 경훈은 창고를 뛰쳐나와 복도 끝을향해 급하게 달려갔다.
원진은 창고 안으로 들어와 그 쓰러진 여자 코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았다.

"숨은 붙어있는데......온 몸이 불덩이네."

잠시 후 경훈이 다시 복도끝에서 부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주전자와 정체 불명의 종이 봉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간 경훈은 종이 봉지 안에서 웬 알약 몇개를 꺼내어 여자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주전자로 물을 조금씩 부어 넣었다.

"이건 뭐냐? 뭔데 먹이는거야?"

"해열제랑 영양제요. 원래 이렇게 막 가져다 쓰지 못하는 물건이지만, 의무실에 몇일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의무병 한놈이 있어 그놈 살살 구슬려서 좀 얻어왔어요."

약이 목에 붙었는지 여자는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훈은 다시한번 주전자를 여자 입에 가져다 대었고, 여자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훈은 한쪽에 여자를 바로 눞이고 다른 여자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여자 잠깐 눈좀 붙여야 하니까 상태 어떤지 지켜보고 있어."

하지만 여자들은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아 참 답답하네. 그러니까 이 여자 좀 자야 하니까 좀 보고 있으라고."

경훈이 손짓 발짓 써가며 말을 하자 이제서야 여자들이 알아듣는 듯 하였다.

"아 참 답답해서......"

원진과 함께 창고를 나온 경훈은 문을 잠그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이 일도 만만치 않네......"

"뭐 이 부대 모든 일이 다 그렇죠. 그나저나 형님은 어쩐일로 이곳에 다 오셨습니까?"

경훈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원진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응, 조금 있으면 난 좀 먼 곳으로 잠깐 갔다 올꺼같아. 한 며칠 걸릴꺼야."

"어디로 가시는데요?"

"아니, 중경......에 가서 사진 좀 찍고 오면 될꺼같아."

"네? 형님, 다시한번 말씀해주세요. 어디라고요? 중경?"

"그, 그래......중경......"

"거긴 적진 한 가운데 아닙니까? 아니 거기를 왜?"

"뭐 중대장 명령이나 할 수는 없잖냐......"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형님, 이참에 중경에서 열차를 타고 멀리 떠나십쇼. 상해? 아무튼 항구로 가셔서 밀항해서 조선으로 돌아가시면......"

"그럴 수 없어......"

"아니 왜요 형님?"

"나 혼자 간다면 좋겠지......하지만 야마구치랑 그외 몇명 더 같이 붙어서 가게 될꺼같아."

경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님도 참......"

"그러게 말이다. 내 인생이 다 그렇지 뭐......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다."

"아 저 형님!"

경훈은 돌아가려던 원진을 다시 불러세웠다.

"꼭 무사히 돌아오십쇼."

"그래. 그래야지......"

원진은 쓸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는 다시 돌아서서 복도를 빠져 나갔다.
경훈은 그런 원진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