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높은 인구 밀도.
높은 빌딩들.
잿빛 하늘.
교통 체증.
이기주의.
눈물.
피.

그리고,
내가 사는 이곳.


도시의 아침은 어둡다.
나즈막하게 뜨기 시작한 태양이 비추더라도 잿빛 하늘에 의해 그 밝음은 상쇄되어, 옅게 낀 안개와 함께 아침을 어둡게 만든다.
도시의 순환도로는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의 후광에 힘입어 교통체증을 더한다.

그리고, 그 순환도로 옆의 고층 아파트의 수많은 창문 중 하나의 커튼이 열린다. 물론 그 창문들은 거대 괴물의 눈처럼 많아, 그 누구에게도 신경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창문을 연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창문을 연 사람은 바로 나다.

하늘이 회색이라도 회색빛의 광선이 들어오진 않는다.
다행이다.

끼익 -
문이 열리고 내가 나온다. 지난밤의 숙면의 영향으로 아직 눈빛은 흐리지만, 할 일 정도는 어렸을때부터의 반복 훈련에 의해 터득하고 있다. 몸을 씻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덜컹-
토스트기에서 연갈색으로 데워진 빵이 튀어 나온다.
어제 남겨둔 우유와 곁들여 노란색 사과잼을 발라 입에 구겨 넣는다.

그러고선-
역시나 또다시 무료한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 해가 딸기잼의 색에서 갓 구워진 밀크식빵의 색으로 변할때까지, 난 아침잠에서 좀처럼 깨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
멍하니 앉아서 TV가 멋대로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 즈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문이 열린다.
아 그랬던가. 생각해보니, 이집에는 나 혼자만 사는게 아니다. 동거자가 있다.

"일찍이네."
"비꼬는 거야?"
"메모리에 이상 있는거야?"
"단순한 건망증이야."
"그래."
"오늘은 어때?"
"어두워."
"그것 외엔?"
"없어."
"당연한건가."
"당연한거지."

잿빛 하늘의 캔버스에는 상업기가 기다란 비행기 구름을 만들면서 하늘을 날고 있다.

"할꺼야?"
"응."
"자. 그러면."
"응"

가만히 누워 그녀의 품에 안긴다. 편안히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다. 심박수는 빨라지고, 모든 느낌을 피부에 집중한다.

"준비 되었어."

싸늘한 기운이 상반신 전체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두개의 뾰족한 송곳니가 팔에 꽂힌다.

아프다.
나를 배려해서 천천히 하는 거지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프다.

"윽."

아랑곳없이 그녀는 송곳니를 더 드민다. 그리고, 흡혈을 시작한다.

"흐음 - ."

어울리지 않는 콧노래. 그녀의 흡혈 습관이다. 그 콧노래는 저기 멀리서 들려오다가, 나중에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된다.

쾌락
이 오기 때문이다.

흡혈이 시작될때의 아픔은 이미 사라졌다.
흡혈이 되는 양에 비례하여 쾌감은 점점 더해간다.

눈 앞이 하얗게 된다.
귀에서 환청이 들린다.
몸이 붕 뜨는 기분.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희열에 불타오르고 있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쾌락을 맛보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아주 조금만 더!

"오늘은, 아슬아슬 했네."
"응."

흡혈은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회사 다녀오지."
"잘 다녀와."

난 김등용. 26세. 男.
집에 흡혈귀를 키우고 있다.



ps)
왜 일반으로 했냐고 물으신다면
언데드 헌터가 없어서 라고 웃지요

왜 언데드 헌터란에 안썼냐고 물으신다면
권한이 없다고 웃지요

왜 멀쩡한 사람 본명쓰느냐고 물으신다면
만만해서라고 웃지요

왜 언데드 헌터를 안쓰느냐고 물으신다면
노트북이 온천에 가라앉아서라고 웃지요

왜 사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웃지요

Igne Natura Renovatur Integ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