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선은 250노트로 속도를 줄이고 외계물체에 아주 천천히 접근하면서 가능한 모든 관측모드를 가동시켰다. 저주파와 고주파는 물론 알려지지않은 우주의 미확인 파장까지 모두다 관측할 수 있는 몰프 시스템을 작동시켰으나 외계물체에서 나오는 어떠한 파장도 관측하지 못했다. 모선은 외계물체지역에 점차 접근했으며 폭스중위의 정찰선이 통신장애를 일으키기 시작한 지점까지 도달했다. 모선은 조용했으며 별다른 이상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제레미대위를 비롯한 모든 승무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브릿지에서 모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폭스중위는 의무실에서 휴면상태로 누워 있었다. 갑자기 그의 상태를 보여주던 'lim' 시스템의 수치가 마구 상승하기 시작했다. 의무대에 누워있던 폭스중위의 눈동자가 급속하게 흔들렸다.

알렉스박사는 갑자기 발생한 폭스중위의 이상을 보고 긴급히 함장에게 연락을 취하고자 주조종실 호출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순간 알렉스 박사는 의무대에 앉아있는 폭스중위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동작을 멈췄다. lim 시스템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폭스중위는 아무말 없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잠시 숨을 죽인후 알렉스박사는 폭스중위의 얼굴을 보기위해 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순간 그는 온몸이 방전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그로인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온몸은 강한 자기장이 덮친듯한 충격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알렉스박사는 그 순간에도 고통을 참으며 폭스중위를 쳐다보았다. 폭스중위는 온몸이 탈색되어 있었다. 눈동자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투명한 무기질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인간의 형체는 머리털 하나도 바뀌지않아 있었지만 온통 희뿌연 색으로 탈색되어 있었다. 그의 몸에는 강한 자기장의 울림이 진동하고 있었다. 울림은 그의 몸에서 자신의 몸으로 퍼져갔으며 천천히 벽을타고 의무실전체로 퍼져나갔다. 주변은 순식간에 방전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났고 화염이 일었다. 알렉스박사는 점차 혼미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썻지만 아무소용이 없었다.

의무실을 모니터하던 화면이 갑자기 나가버렸다. 순간 주조종실에서는 차례로 모든 모니터가 터지며 화면이 나가기 시작했다. 제레미대위는 순식간에 의자에서 뛰쳐나가며 자리를 피했다. 곧바로 모든 기기에서 폭발이 일었다.

톰슨부함장은 문쪽으로 뛰어나가며 폭발과 화염을 피했다. 순식간에 자동소화 장치가 작동했다. 이미 우주선 전체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우주선 자체가 폭발하지는 않았다.

제레미 대위는 어느정도 블꽃이 잡히자 겨우 주조종실을 돌아볼수 있었다. 모든 모니터는 나가 있었지만 기기에는 불에탄 흔적만이 있었고 크게 박살나거나 물리적 손상은 없는것 같았다.

우주선은 비상모드로 전환되어 점차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다. 마치 엄청난 폭죽이 한번에 터진것 같았다. 우주선 여기저기에서 계속하여 폭발음이 끊이질 않고 울렸다.

"이런 제길 결국에..." 제레미대위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던 제레미대위는 입구에서 쓰러져있는 라이너함장을 발견했다. 폭발으로 벽에 튕긴 라이너함장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바닥에는 라이너함장의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톰슨 부함장 역시 폭발의 충격으로 다리가 꺽여 있었다. 피로 물든 둘의 모습을 보자 제레미대위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보조전원은 작동되고 있었다. 제레미대위는 보조컴퓨터 시스템을 작동해 현재상황을 체크했다. 외부적으로 물리적 피해는 아직 없었으나 내부 산소시스템은 역시 전원이 끊겨 작동이 정지 되있었다. 서둘러 비상데스크를 열고 우주복과 비상배낭을 꺼냈다. 여기저기서 산소가 새어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계속 일어나는 폭발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없었다.

제레미대위는 문앞의 톰슨부함장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는 실신해 있었고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배낭속에 들어있던 응급키트로 그의 다리를 지혈했다. 그의 머리에 비상 산소 마스크를 씌운후 조금은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복도를 바라보던 제레미대위는 우선 시급한 산소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한시라도 빨리 산소제어기가 있는곳으로 가야 했다.

얼마 안있어 메인전원이 완전히 끊겼다. 아직도 우주선 곳곳에서 연속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지막 산소공급장치는 작동되고 있으나 보조전원과의 연결이 필요했다. 비상산소 마스크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자욱한 연기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은색 전조등이 복도를 따라 길게 뻗어있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보였고 사물이 모두 흐릿해 보였다. 우주선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자꾸 올라가고 있었다. 숨이 점차 차올랐다. 비상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온도조절이 되질 않아서 숨이 답답했다.

A-6블럭을 지나 중앙부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는 둔탁한 철제문이 가로막혀 있었다. 오른편에 조작 콘솔은 아무런 표시등도 들어와 있질 않았다. 오픈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철제문은 아무런 미동도 하질 않았다. 중앙부로 들어가야만 메인제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제어실에는 거대컴퓨터 에이서가 작동되고 있었다. 함내온도가 더 올라간것 같았다. 두꺼운 안전복은 움직일 때마다 자꾸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냈다.

"attention attention..."칙칙한 기계음이 통로에 울려퍼졌다.

"우릴 구하러 구조대가 올 수 있을까? 말도 안돼는 생각을 하는군" 제레미대위의 혼잣말은 산소 마스크속에서 웅웅거렸다. 아무말 이라도 중얼거려야지 힘이날것 같았다. 등에진 배낭은 더욱더 무거워 지는거 같았다.

배낭을 열고 디지털 키트를 꺼냈다. 고장난 철제문을 열기위해 필요한 도구로 이번에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었다. 5년전 고등훈련소에서 본적은 있었다. 케이블을 뽑아낸후 조작 콘솔에 연결했다. 보조 전력 스위치를 on 시킨후 덮개에 쓰여져 있는대로 조작했다.

"키이익" 마지막 동작버튼을 누르자 철제문이 움직였다. 연기가 철제문 틈새로 물 흐르듯 빠지자 오렌지빛 밝은 조명이 문틈에서 비쳤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철제문이 열렸고 틈새사이로 중앙부의 넓은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갈래로 갈라져있는 통로는 각각 의무실과 거주구가 있는곳 화물칸과 격납고가 있는곳 그리고 제어실과 엔진실이 있는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중앙부는 큰피해가 없어 보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이곳은 우주선의 윗부분과 연결되어있어 승강기를 타고 상층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당연히 승강기는 이미 작동하지 않을것 같았다. 무심코 윗부분을 바라보던 제레미대위의 눈은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기둥에는 폭스중위의 상반신이 매달려 있었다. 그의몸은 온통 회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고있던 옷에서부터 모든 부분이 다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기둥에 붙어있었는데 팔과 다리는 거의 파묻히다시피 달라붙어 있었다. 회색의 기둥과 거의 구분이 가지 않을정도였다. 주변은 자기장과도 같은 파동이 일고 있었다. 그는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다.

놀라움과 공포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제레미대위의 시선은 그의 얼굴쪽으로 고정됐다. 제레미대위는 그의 입술을 보았다. 죽은줄 알았던 그의 입술이 열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해석할 수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변의 파동이 서서히 날개모양으로 변해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점점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순간 그는 정신없이 다른 통로로 뛰어 들어갔다.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그가 뛰어 들어간곳은 너무나도 넓은 곳이었다. 끝이 보이질 않을정도로 넓고 어두웠다. 순간의 적막감이 그를 둘러쌌다. 한가운데는 조그만 풀장이 있었다. 풀옆에는 길다란 비치의자가 있었고 한 여자가 누워있는게 보였다. 제레미대위는 그녀에게 도움을 받으려 다가갔다. 그녀에게 말을 걸려했으나 그의 입은 더이상 그의 통제가 되질 않았다. 그녀는 너무도 어두운 곳에 있었다. 풀의 푸른 출렁거림 밖에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희미하게 윤곽만 보였다. 잘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내가알던 여자였다. 언젠지는 모르나 그녀를 만났었고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줬던거 같았다. 그녀를 만지려 손을 뻗었으나 그의 몸은 점점더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풀장이 아득해질 정도로 눈앞에서 멀어지자 그는 이제서야 이건 환상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는 혼신을다해 환상에서 깨기위한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그는 하얀타일이 깔려있는 방으로 떨어졌다. 여긴 우주선내부의 무중력실이었다. 이곳에서 무중력 적응훈련을 받곤했는데 지금은 작동되질않고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잠시 엎드린채로 그대로 있었다. 중앙통로에서 분명히 이방으로 뛰어들어온것이 분명한것 같았다. 문을 여러개 통과했어야 하지만 문을 지나온 기억은 나질않았다. 탈출해야한다는 생각이들자 그는 힘겹게 일어나서 입구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순간 문에 아까보았던 파동이 다시 일고있는 것을 보았다.

"이... 이런제길..." 제레미대위는 뒷걸음질치며 중얼거렸다.

파동은 점점 더 문에서 벽과 바닥을 뒤덥고 제레미대위가 서있는 곳으로 퍼져왔다. 구석에 몰린 제레미대위는 자신의 발에서부터 온몸으로 올라오는 파동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차리기위해 애썼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갔다. 그의 두눈은 공포에 휩싸였으나 이내 모든것이 아득히 멀어져 갔다. 미지의 트라이 앵글조각이 거의 사라져버린 우주의 한계지역에는 멈춰버린 거대한 헤일즈호만이 정처없이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