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회담의 결과가 우리 종족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가 그 특수성을 잘 아시리라 여깁니다.

고요하다.

깊은 명상상태에서 의식세계의 수면위로 떠오른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회담에 투입된 파탄계급의 말라들이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면. 이후 옴"들의 영역에서의 라챠비와 우리 말라의 공조수사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상상도하기 싫지만 우리들의 우려가 사실로 판명될 경우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놓쳐서는 곤란하겠지요. 최고의회가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이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옴"들의 세계에 투입될 수 밖에 없는 말라들의 가장 최적화한 외형디자인의 완성입니다. 우리 심리학종사 계급원들이 산출해낸 우리들의 본체를 드러낼경우 옴"들이 공항상태에 빠질 확률은 무려 99.745%이니 말입니다. 전례를 보아도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사념의 힘이 온 주변에 공명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파문. 파장은 둥글게 둥글게 퍼져나갔다.

- 문제가 [ 이미지 ]라는 것은 여러분의 계급내에서 가장 우수한 재원들이신 분들이시니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종족의 특질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과거세대완 차별화된 새로운 세대로써의 말라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없는 개념입니다만......라챠비식 표현을 빌리자면-.

푸르스름한 보랏빛의 강력한 자외광선이 가득찬 자료보관실. 보통의 생물이라면 살이 타버릴 정도의 맹렬한 자외선이었으나 이 곳에 모인 자들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어보인다.

어떤 의미로 이곳은 방이라기 보단 생물에 가깝게 보였다. 방전체가 평범한 인간이 보았다면 구역질이 치밀며 현기증이 일정도로 끓임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시퍼렇다. 방이라기 보단 생물의 몸내부를 이루는 신경절이나 유기질덩어리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렁출렁 느릿느릿 호흡하듯 움직이는 양 벽면은 쉴 사이없이 변화하고 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끝이 않보일정도로 넓은 공간. 빽빽이 유리질의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는 보관함이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네모반듯한 칸 하나하나에는 투명한 역시 유리질의 3겹으로 꼬인 꽈배기모양의 정보저장용기가 레벨이 달린채 번호순대로 놓여 있다.

그 속에는 마치 에너지의 덩어리나 액체처럼 보이는 내용물들이 고농축으로 빼꼼히 들어차 있다.

환한식민성에서 바로 공수해온 이 작거나 큰 병들속에 24종족의 유구한 역사, 문화, 유전자적 특질, 모든 진화과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바로 말라의 과학자들이 수억년에 걸쳐 축적한 인간[옴"]과 아인간[아- 옴"]에 대한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다.

그러나 저것은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사냥감을 유인할 미끼에 불과한 자료일 뿐이었다. 이것만이 미끼인 것은 결코 아니지만. 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자는 심오한 눈으로 그것들에 잠시 시선을 두다 자신을 둘러싼 자들을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 [[ 믿음 ]]과 [[ 우정 ]]이죠.

그의 생각의 파장이 불러온 힘이 단호하게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주변의 기이한 공명음 한가운데 마치 어둠속의 불타오르는 석탄덩이같은 눈들이 활활 인광을 발했다. 그들은 중력을 무시한듯 허공에 반쯤 떠 있었다. 대화를 주재하는 자는 자신의 의견을 담아 생각을 사방에 발산시켰다. 이들의 의사소통은 공기를 진동하여 나타내는 목소리나 신체의 일부를 변화시켜소통하는 단계를 이미 지나있었다.

다른 말라들의 신중하면서도 무미건조한 생각이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곧 그에게 되돌아왔다. 그는 주의깊게 이번 회의에 참여한 말라들의 반응을 찬찬히 분석하고 관찰했다.

- Yi -Shar'. 외교임무에 적합한 형태. 라챠비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는 동시에 옴"들의 호감을 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 ......그러나 자료와 기록을 살펴보면 라챠비들이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우리 말라에 대한 적대감은 우리의 상상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옴"들의 경우는 우리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한 일이 없었으므로 선입관이란 것이 없지만 라챠비는 다르죠. 과거 저차원계에서 우리들의 양차원계로 대대적인 침공을 했던 Misyhe"-Tahrr'들을 물리치기 위해 휴전협정을 맺었던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빚어낸 일이었죠. 거의 몇억 세타르의 세월을 피로 피를 씻어온 두 종족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제의를 이렇게 순순히 일부나마 받아들였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Misyhe"-Tahrr'들이 멸종한지 이미 1만 세타르가 지났습니다. 이제와서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 그것은 지도자들이신 Ma"- Ha' tmar 와 Ma계급분들과 최고의회의 의회원들, 그리고 Patan" 계급이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문제겠죠. 마- 하"트마께서 이번 임무에 선택하신 계급은 파탄이지 우리 계급이 아닙니다, 융-먀자'흐. 우리는 지금 참관인에 불과함을 인지하세요. 이 자리에서 논의해야할 문제는 이번 임무에 파견될 말라들의 외형디자인에 한정됩니다. 회의의 논점을 흐리지 맙시다.

- 죄송합니다. 융- 먀햐'나, 그리고 여러분. 어쨌든 제가 우려하는 바를 말씀드리자면 우리와 그들은 매우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마-하"트마께서 추구하시는 정책을 지지하는 모든 계급의 말라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점이겠죠. 그들이 대사로 파견한 라- 칼리란 젊은 라챠비의 상위왕족은 포용력있는 사고력의 소유자라 듣긴 했지만. 과연 그 장점을 우리 말라에게까지 발휘할 것인가는 회의스럽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겠지만 라챠비들이란 대단히......

표현하기가 당혹스럽다는 울림이 물결처럼 그들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대부분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어떤 의미로든 이 문제는 그들 전부에게 있어 무척이나 골치아픈 문제였으므로.

- 우리에 대한 견고한 편견을 가진 라챠비의 반감을 줄이는 차원일 뿐 아니라 호감을 끌어낼만한 이미지라? 저희 계급으로써도 사실 그 정도 퀼리티의 작품을 만들어낼 시간치곤 너무나 촉박하단 점이 걸립니다. 이 단기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면 말라적 특질을 죽이는 방향으로 디자인의 컨셉을 잡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아니면 아예 옴"에 가까운 외형을 택하는 방식이겠죠......그러나 이것은 어느 쪽이든 의뢰하신 의도에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란 것은 압니다. 그러나 우회적인 방식이 아닌 정공법이어야 이번 임무가 진정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제의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니까요. 또한 우리역시 그들의 도움없이는 사태수습이 곤란합니다. 이번 회담이 어떤 결론을 얻든 우리는 행동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라챠비와 우리들 양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악의와 편견을 품은 종족 대 종족으로써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은 좀더 상호간의 이해를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 기대합니다. 여기엔 비공식적이긴 하나 이미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선례가 있었죠.

마-하'라가 팔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위 푸르른 유리질의 표면이 한번 출렁이더니 원과 도형을 그리며 하얀빛이 나타났다. 시시각각 형태를 뒤바꾸는 그 불꽃은 처음엔 온화한 우유빛이었다. 그러나 순백의 그 우유빛 빛은 점차 창백한 청보랏빛의 표면에 흡수되어 하나가 되었다.

빛무리가 그리는 도형을 바라보며 모두의 눈은 숙연해졌다.

- 이것이 최고의회와 [[ 마- 하"트마 ]]께서 바라시는 바입니다.

마-하"트마란 이름에 특별히 강세를 넣은 마-하'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좌중을 돌아보았다.

- 저희 아라계급의 명예를 걸고 Ma"- Ha' tmar 와 최고의회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라챠비들에 대한 데이타는 중앙에서 이미 막대한 자료를 다운로드받았으니까요. 이 곳에 있는 옴"들에 대한 자료를 대비하여 디자인시 참고자료로 삼도록 하지요.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작업에선 디자이너의 디자인만으론 부족합니다. 이번 임무를 떠맡게 될 외형을 변화시킬 말라들의 개인적인 개성이 못지않게 중요하죠. 형상을 입력시키고 프로그램만 끝내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로봇과는 다릅니다. 성격적인 면. 사상적인 면. 품격. 재능. 아주 사소한 특징이라도. 말라의 개성과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어 결합될 때 가장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니까요.

- 총 몇명의 말라가 투입됩니까?

- < 민 >계급 말라 한명과 < 파탄 >계급의 말라 한명입니다. 두명다 이번 임무를 맡기기 위해 주의깊게 선택된 젊은이들이죠. 그러나 라챠비와 직대면하게 될 말라는 라챠비의 경호를 전담하게 될 < 민 >계급의 말라 한명뿐이죠. 공식적으론 파트너이지만 실재적으론 라챠비가 옴"들의 영역인 3차원계에 도착한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차원으로 되돌아가기까지의 안전을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수행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위협에서 라챠비를 지켜내는 물리적 경호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라챠비가 받을 낯선 모든것들, 사상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올수 있는 모든 정신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우리들과 옴"들의 문화를 이해시켜야하는 막중한 자리죠. 그야말로 우리 두 세계의 [[ 가교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소리. 형태. 분위기. 태도. 습관.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않됩니다. 그의 디자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중점을 두시길 바랍니다. 나머지 대원들은 환한식민령에서 제작한 전투용으로 생체개조한 강화옴" 한팀과 최고회의에서 지정한 기술자계급이 직접 설계제작한 웜급 탐사용 로봇들 한 팀으로 이루어 지게 될 것입니다.

- 그들의 정보를 지금 이 장소에서 공개하실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자를 바라보며 그는 미소지었다.

온화한 표정이다. 표정만으로만 보자면 말이다. 그러나 회의장안의 말라들은 그 순간 느닷없이 바뀐 주변 에너지의 흐름변화를 눈치채고 침묵했다.

마-하'라는 순순히 대답을 실어보냈다.

- 물론, 않될 이유가 없죠.

두손을 모아 가슴앞에 가져다 대며 마- 하'라는 자료들의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에너지의 흐름이 생성되며 공동의식이 개방되었다.

- 파탄 흄. 외교와 정치쪽 임무를 맡고 있는 파탄계급의 유망한 젊은이죠. 최고의회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은 재원입니다. 온건적 사상을 가진 사교성이 뛰어난 말라죠. 공동수사가 벌어지는 동안 그는 우리 말라와 옴"들의 권력층과의 교섭임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에 대한 자료는 공동의식을 통해 원하시는만큼 지금 당장이라도 다운받으실 수 있도록 조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번 임무의 중추를 담당하게 될 민계급의 0831의 자료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하'라가 허공에 손을 긋자 빛무리가 짙어지며 젊은 말라의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위 현란한 속도로 낯선 기호들이 빗발치듯 빠르게 흘러떨어졌다.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으며 흘러떨어지는 유성우처럼.

다음순간 영상은 다시 바뀌어 황량한 모습의 낯선 행성들의 배경으로 변해 있었다. 온통 붉고 푸른 불타는 가스덩어리로 이루어진듯한 모습. 보기만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어딘지 음침한 악몽이 연상되는 그런 곳이었다. 0식민령이라 불리우는 곳.

천장과 말라들의 주변공간 전부가 뒤바뀌며 무중력의 우주공간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별들이 빙글빙글 움직이기 시작했다.

- 민 0831. 4차원계와 5차원계에 존재하는 0식민령에서의 임무수행으로 생의 대부분을 보낸 말라입니다. 아시다시피 0식민령은 말라들의 식민지 예비지역들 중에서도 최악의 열악한 환경으로 유명한 곳이죠. 그 지역의 민계급원들이 스스로를 [Appat'i bhaya"(아파티이'브하야")]로 자칭할 정도니까요. 100세타르에 걸쳐 5차원계의 831우주구역내에서 이 말라가 쌓은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죠. 그는 식민령의 원주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끌어냈습니다.

마- 하'라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 과연 기록이 화려하군요. 그러나 민계급은 전투능력이 터무니없이 취약한 계급이잖습니까? 우리들의 우려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일전은 불가피하게 될 텐데요. 이 점은 어떻게 대비할 계획이시며 어떻게 준비중이신지?

- 민이라는 계급특성상 전투력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에 타행성에서의 임무수행시 생존율이 경이로울만큼 높은 계급이란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와 적대관계에 놓인 종족들이 지배하는 행성에서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의 우려가 사실로 밝혀지고 전면전이 불가피해진다면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단 정도만 알려드리죠.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실로 밝혀질 경우임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마-하'라에게서 뻗어나온 파장이 회의실을 뒤흔들었다. 회의실에 모인 말라들은 신중히 마-하'라가 전하는 정보에 귀기울였다.

- 적어도 그 순간이 닥치기전까진 라챠비와의 우호를 위한 외교활동이 모든 것에 최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필요한것은 전사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은 속내야 어떻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양의 탈을 뒤집어 쓸 줄 아는 유능한 외교관입니다. 민계급의 재능은 원시종족들에 대한 유연한 적응력과 이해력을 바탕으로 원시종족들을 회유하고 길들여 결국 우리 종족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는 사고 조작능력의 빼어남이죠. 그는 그의 계급원들중 가장 막강한 사고조작능력의 소유자입니다. 더욱이 그는 옴"들의 영역에 가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적격자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죠.

공중에 떠 있는 자세를 유지하던 말라들의 몸이 기울어지며 그들의 머리위로 빛의 링이 생기기 시작했다. 겹쳐지는 원과 원들. 큰원과 작은 원. 비스듬히 타원을 그린 원과 동그란 원. 일그러진 원과 원들. 처음 머리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원들은 말라들의 머리위에서 발치아래로 흘러내리며 우주공간......아니 자료실의 바닥에 닿자마자 사라진다.

머리위에 나타나는 링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계속]]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중의 하나. 그러나 이 취향으로인해 주위사람들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슬픔이 있었으니-왜 다들 사람들은 sf를 어렵다고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