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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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룩스 데쿠사타[crux decussata]-?"
목소리의 힘은 중첩된 공간들을 뒤흔들고 듣는 이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의 음성에는 말로써 형용하기 힘든 불길함과 동시에 필멸자의 한계를 뛰어넘은 종족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태고부터 수없이 많은 멸종의 위기를 이겨내고 진화의 길을 걸어 극점에 도달한 종족의 일원으로써. 말라는 노래하듯 운을 떼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빛한점 찾아 볼 수 없는 칠흙의 공간.
필멸자들이 몸을 담은 3차원의 세계가 아닌 그 너머의 공간.
그러나 죽음보다 차가운 냉막한 공간.
이 우주의 태초보다 더 오래 전 종족의 역사가 시작된, 존재자의 의지로 인해 파문이 다시 일었다.
" 역십자가. 혹은 정치범의 사형집행용으로 쓰이던 X자형 십자가. 불의 일족중 소수민족계열인 네와르타족의 고대어에 속하는 고어던가요? 흥미롭군요. 당신들의 문화권내에서 그것은 매우 불길한 상징이라고 들었는데요."
[[ 사실입니다.]]
어둠속의 유일한 광원인 홀로그램속. 예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돌덩이같은 얼굴을 한 여자를 탐색하듯 바라보며 파탄 흄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인간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던가 눈을 깜박인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엔 그렇게 밖엔 묘사할 수 없는 유머러스한 분위기역시 스며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감정이입에 가까운 실수일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반응과 태도 어느 구석도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반면에 말라인 그에게 옴이란 성별이나 연령이란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들 비슷비슷해 보일 것이다. 하나의 이종족이 자신과 완전히 진화과정 자체가 다른 이종의 종족의 외모를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녀역시 마찬가지였다. 파탄 흄과의 오랜 접촉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일족을 구별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임을 여자는 이해했으며 언제나 그들을 대할 때 명심하곤 한다. 그래서 교단은 그녀를 이들과의 대화시 늘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막중한 임무였다.
말라- 파탄 흄은 다시한번 느리게 고개를 갸웃했다.
옴족의 여자는 자신이 한 제안을 과연 이 말라가 받아들일지에 대해 확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서둘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의 상대는 인내력이 강한 자였다. 그 만큼이나 역시 결코 서두르거나 초조함을 드러내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이 옴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말라가 다시한번 천천히 중얼거렸다.
" 하얀 이방인이라."
[[ 피빛 의혹과 모략, 원인불명의 급사뒤엔 늘 그녀(그)가 존재한다. 어떤 시간. 어떤 시대. 어떤 장소. 어떤 종족. 어떤 형상이든. 하얀 이방인. 전장의 학살자. 죽음과 파괴와 피를 부르는 왕(rex). 태양의 의지를 따라 무저갱에서 몸을 일으킨......]]
옴족 여자의 입에서 운율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라인 그가 듣기에 옴족의 언어란 건 벌레가 날개를 비벼내는 소리나 동물이나 조류가 짖어대는 음향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들린다. 그러나 하등동물의 울음소리에 비한다면 이 옴들이 사용하는 말이란 것은 좀 더 다층적이기도 하다. 조잡하고 원시적이지만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같은 경우. 목소리가 읊는 내용은 주변을 잠시지만 음침하게 뒤바꾸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 밤을 지배하는 왕. 태양신의 저주받은 전사들. 하얀 이방인이란 원래는 토라나 아카데미가 존재하던 행성 타클라마칸의 대해에 살고 있는 육식성 대형모래충들을 부르는 속어입니다. 외골격의 보호색- 무늬나 몸빛깔이 거의 모래바다의 빛과 같아서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광학미채나 거의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움직이면 모래바다가 출렁이는 듯이 보인다던가 하여튼 노련한 원주민들조차도 찾지 못한다죠. 그렇게 숨어있다 다가온 먹이를 덥치자말자 갈기갈기 찢어발겨 굴로 끌고 들어갑니다. 타클라마칸의 원주민들이 꿈에서 볼까 두려워하는 포악한 포식자로 행성 타클라마칸에선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위치하는 놈들입니다. 무리사냥의 명수들이죠.]]
강의조의 평이한- 다소 딱딱한 어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 ......"
[[ 그들의 외골격은......흑천의 우주최고라 불릴만한 복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력이 있는데다 두께도 엄청나게 두텁죠. 강도도 상당해서 150mm중형단침총따윈 쏘아봐야 흠집도 나지않는데다 네와르 해군특전단의 주력무기인 M56 스마트건정도는 되튕겨낼 정도입니다. 면도날에 필적하는 날이 선 5Wm짜리 낫형태의 앞발들은 강력한 무기죠. 게다가 거의 20Wm짜리 촉수들에 붙잡히면 거의 모든 동물들의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면서 몸뚱이가 터져나갑니다. 탐욕스럽고 사나운데다 교활하며 한번 찍은 먹이는 반드시 식도로 넘겨야 직성이 풀리는 집념이 무시무시한 악마들이죠.]]
" ......?"
[[ 중앙해에 반정부게릴라들의 소굴이 있다는 제보를 받은 라야의 황실강화 장갑병들 3개 대대가 투입된 적이 있었습니다. 엘리트군단이었으며 중무장한 상태였죠. 그러나 하필이면 착륙지점이었던 곳이 하얀 이방인들의 영역권에 속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하루도 않되어 통신이 두절되어 버렸죠. 구원부대가 도착했을 때는 종이짝마냥 찢겨지고 우그러진 강화복의 파편들과 박살난 무기들 뿐. 전멸이었죠.]]
" 제게......그 곤충에 대해 말씀하신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모래충과 토라나의 로챠나. 상당히 닮은 구석이 많은 존재들이니까요. ]]
말라의 가면같이 매끄러운 얼굴표면에 파문이 일었다. 다시한번 고개를 갸웃한 그는 망설임을 벗어던진것처럼 우아하게 몸의 일부를 내밀어 허공으로 뻗었다. 비록 말라가 망설임을 벗어던졌다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결정을 서둘진 않았다. 그러기에 그가 맡은 책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는 천성적으로 무척이나 신중한 성격의 말라였으니까. 일족은 바로 그 신중함과 적절한 판단력을 높이 샀기에 그에게 이번 임무를 떠맡겼다.
그는 조심스럽게 홀로그램속 여자에게 주의깊게 말을 건넸다.
적당한 의심과 적절한 수준의 관심.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반응과 태도로 진심을 꿰뚫기란 독심술사에게조차 무리인 일이다. 여전히 그의 태도는 관찰 혹은 탐색에 가까왔다. 더욱이 그의 대답은 대답이라기 보단 오히려 [ 제안 ]이란 측면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 흥미가 이는군요. 그러나 그녀가 과연 외계인인 나를 위해 일해 줄까요?"
여자가 짧게 웃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처음은 이 정도가 적절하다. 그래. 첫시작으로써는-
그녀는 말라식 인사를 하며 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그건 당신의 재량에 달린 것이겠지요.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조언이란 이 정도군요. 인간들의 격언중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 내게 충분한 길이의 막대기와 적절한 무게점을 준다면 지렛대로 타클라마칸역시 들어보이겠다." 라는. 흥미가 당기신다면 용이한 상황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흄. 가능한한 극한상황을 연출하는 편이 좋겠군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자에게 있어 그것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위기상황보다 그 인간의 가치와 진면목을 시험하기 좋은 것이란 없으니까요. 꽤나 색다른 유흥이 되실 겁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다. 지상에서는 벌써 일주일째 미친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모래태풍. 타클라마칸특유의 기상현상인 모래태풍은 그 존재자체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적이었다. 의인화된 모래태풍이 나는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 내 모든 행동에 악의는 없다고 항변한다하더라도 그 점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사실 그럴 일도 없긴 하지만. 진로를 예측할 수 없는 그렇기에 늘 느닷없이 닥치는 재난. 매년 아니 매달 이로인해 사람들이 얼마씩 꼭 죽어나감에도 인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재앙이다.
지상은 그 모래태풍이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명을 위협하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 이 기이한 곳은 정체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공기는 탁했으며 악취가 진동했다. 광원이라곤 없는 어둡디 어두운 공간. 바닥엔 기이한 액체가 출렁출렁 휩쓸고 지나가다 다시 제자리를 맴돌며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사방이 캄캄했기에 역시 주변과 마찬가지로 검은빛으로 보이는 그 괴기한 점액덩어리는 끓임없이 파도치며 움직여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역겨운 모습이었다. 모래충의 위압적이며 흉측한 모습조차도 이것에 비하면 화룡월태의 절세미인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을 뭐에 비할 수 있을까? 점액질과 아메바의 중간단계로 생긴 괴물이라고? 아니면 그저 하수구아래 고인 썩은 물과 쓰레기과 진흙이 뒤범벅된 액체일 뿐이라고 말 해야하는 걸까?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었다. 터널 전부를 자신의 몸뚱이로 뒤덮은 살아있는 점액. 자신의 허여멀건 반투명한 몸통속에서 뭔가를 느릿느릿 소화시키며 끓임없이 분해시키면서. 그것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그래왔듯이 지금도 살아있다. 마물이 자신의 전신을 걸친 이 곳은 어딘가의 지하로였다.
촥!- 촥!- 촥!
허......헉......하아......하악......!
지하로를 따라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미끄덩미끄덩 꽤나 미끄러울 것임에도 넘어지지도 않은 채 잘도 달려오고 있다. 더러운 오물이 튀거나말거나 점액질이 끈적하게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오거나 말거나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넓직한 등한가운데를 떠다니는 빨간 점이 반짝반짝 어둠속에서 빛을 발했다.
슈우우우우-! 파팡!
뭔가가 번쩍 하며 날아와 그 자의 바로 앞에서 강렬한 빛과 함께 터져나갔다. 조명탄이었다. 조명탄이 터지며 어둠속에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자의 얼굴이 희미하나마 드러났다. 눈물 콧물 범벅된 일그러진 얼굴은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조차 본체를 드러낸 라이칸슬롭족(늑대인간)의 전사임을 선명히 드러내는 중이다. 그가 뛰어가는 중인 하수도의 천장은 조금이라도 뛰어오르면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낮다. 증발한 수증기가 천정에서 방울져 뚜욱 뚜욱 떨구어져 내린다. 드러난 천장은 온통 이끼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종아리까지 차오른 점액으로 가득찬 하수도는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단단한 돌을 통채로 깍아 만들어진 하수도의 돌벽과 그 위를 방울져 흐르는 유연한 물자욱들. 딱딱한 돌바닥위를 꿈틀대며 먹이감을 고대하는 점액덩어리들. 빛이 미치지 않는 끝없이 뻗어나간 하수로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천장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앞과 뒤 그리고 양 옆쪽에도 뻥뚫린 지옥의 입구들이 그를 유혹하듯 팔을 벌리고 있었으니까. 이 하수로는 탈출이 불가능한 복잡한 미로였다.
죽음의 미로.
어둠속에서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튀어나올듯 하다.
라이칸슬롭 하리스의 전사는 자신의 뒤를 소리없이 따라오고 있는 죽음의 숨결을 섬뜩하게 그 순간 느끼고 있었다. 숨이 찼다. 숨이 차다못해 심장을 토해내기라도 할듯한 떡 벌리고 있는 입가에선 침이 질질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여야 한다.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쉬기라도 하면 악귀같은 조그만 짐승들이 떼를 지어 몰려든다.
실제로 그의 몸일부는 하수도에 사는 레팅들에게 갉아먹혀 너덜너덜했다.
그런 와중에 도망치지 않으면 추격당해 죽게 될 이 급박한 상황에서 조명탄이 느닷없이 코앞에서 터졌던 것이다. 암흑에 익숙해져 있다 작열하는 빛에 노출된 눈은 격렬한 통증과 함께 보이지가 않았다. 빌어먹을! 라이칸슬롭은 귀를 눕히고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 ......!!
비릿한 노린내가 탁한 공기속에 점점 짙게 배어들고 있었다. 이미 < 그것들 >이 지척에 다가온 것이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라이칸슬롭특유의 예리한 청각과 후각을 동원해 다가오는 적들의 체취를 눈치챈 라이칸슬롭은 몸을 뒤틀며 눈을 감고 곧 있을 전투를 대비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돗아났다. 몸을 곧추세우고 면도날과 같은 긴손톱이 달린 손을 위협적으로 흔들면서 그는 코너를 돌아 또다른 입구쪽에 몸을 숨기고 잠복하려 했다..
그러나 한발앞서 라이칸슬롭을 따라다니던 빨간 빛의 점이 위치를 슬쩍 이동했다.
뭔가 오고 있다!
피할 시간이 없다. 자신을 노린 무엇인가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는 것을 본능으로 짐작한 라이칸슬롭은 허리를 숙였다. 바람처럼 민첩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 그것들 중 하나 >가 노리고 있던 것은 라이칸슬롭의 목이 아니다.
썰컹! 철퍼덕!- 철퍽! 쿵!!
부드러운 무엇인가를 터트리듯 썰어내며 지나가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음향을 사방에 퍼뜨리며 지나간다. 따당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돌벽면에 무엇인가가 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은 그 이후였다.
라이칸슬롭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몸은 출렁거리는 액체속으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엎어지고 말았다. 라이칸슬롭을 집어삼킨 끈적대는 점액질은 벽면과 천장까지 튀어올랐다. 마치 새로운 먹이가 생긴것이 감격스러워 춤을 추는듯 하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소리없이 라이칸슬롭의 몸뚱아리를 뒤덮었다.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점액질속에 쓰러진것은 다리없는 몸통뿐이었다.
라이칸슬롭의 두 다리는 저 앞에 아직도 그대로 서 있었다. 선지피를 뿜어대면서. 뻣뻣한 것이 2개의 나무토막들 같다. 그녀를 덮친 것은 두개의 < 금속바늘 >이다. 음속을 능가하는 속도라 파공성조차 나지 않은 그것에 격중된 라이칸슬롭의 두 다리가 그 어둠속을 잠시동안 한낮의 지상처럼 밝게 비춰준 조명탄아래 허벅지로부터 떨어져나가 그대로 그 액체속에 몸통이 쳐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허벅지부분에서 깨끗하게 터져나간 다리들은 결국 쓰러졌다. 마치 자체가 생명을 가진 생물인양 저 먼곳에서 퍼덕거리며 라이칸슬롭 특유의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동맥이 끓긴 여자의 다리가 있던 허벅지단면에서 선지피가 점액속으로 번져 나왔다.
그러나 라이칸슬롭은 고집스럽게 입을 꽊다문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찍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전사는 부족에서 10명의 부족민을 살해한 중죄인이었다. 사기, 강간. 폭력. 인신매매. 마약등등 인간말종의 범죄란 범죄는 전부 저지른 악질 흉악범으로 감옥엔 뻔질나게 들락거리다 결국 사형수로 감옥에 보내져 올가미를 목에 걸고 공중에서 춤 출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간수장이 그녀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높으신 분들이 참여하는 무슨 시험에 그녀를 실험용으로 쓸 셈인데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면 사면해 줄 것이며 실패한다면 죽음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로써는 믿져야 본전 어짜피 도박이었다.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이 하수구 터널에서 생을 마치게 된 것이다.
- 빌......빌어먹을......내가.....이......내가!
칼질이나 쌈박질에는 자신이 있던 그녀였는데 손쓸 겨를 조차 없었다. 그건 이 < 실험 >에 동원된 다른 감옥에 수감되었었던 흉악사형수들의 운명조차 마찬가지였다. 무자비한 손들에 쓰러진 자들은 그자리에서 난도질되어 죽어갔다. 아인족이라곤 부를 수도 없는 고깃조각이 된 해체된 시신들은 굶주린 레팅들에게 뼈까지 갉아먹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이제 그녀뿐이다. 꿀꺽. 라이칸슬롭은 팔을 움직여 터널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억울해!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 이건 너무 억울해! 분노와 억울하다는 감정이 라이칸슬롭을 온통 휘감았다. 고통은 그만큼의 분노와 원한으로 변했다. 과거 자신이 죽인 자들역시도 자신과 같은 심정이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런 그들을 자신이 어떻게 죽였었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로.
그 분노가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라이칸슬롭은 강인한 팔과 팔꿈치를 이용하여 안간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기었다. 저 앞의 꺽어지는 코너를 돌아 몸을 숨긴후 다리를 지혈할 셈이었다. 어쨌든 일초라도 살 수 있다면 그녀는 살아남아야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미끄덩대는 점액질이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으나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몸통과 다리가 연결되었던 부분에서 번져나온 자신의 피로 인해 점액질속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그 < 괴물 >들에게 붙잡히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비참한 꼴로 토막나 죽게 될 것이다.
철벅......철벅......철벅......
그러나 라이칸슬롭의 마음이야 어땠든 저 멀리 어둠속에서 십여개의 번들거리는 눈들이 흔들흔들 다가오고 있다. 그녀를 이 지경까지 몰고간 자들이 철벅철벅 우아하게 터널을 걸어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인광으로 어둠속에서 활활타오르는 눈들. 그들의 손에 들린 날이 빠진 금속조각의 섬뜩한 반사광과 비릿한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 싫어! 난 죽기 싫어!"
분노와 원한은 이제 멈출수 없는 공포로 바뀌었다.
아무리 꿈틀대며 발악한들 죽음을 피할길이 없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했으며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것들은 아주 쉽게 라이칸슬롭을 금방 따라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도록 라이칸슬롭의 몸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암흑속을 쩌렁쩌렁 울리며 라이칸슬롭은 괴성을 토했다. 미친듯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며 손톱을 이리저리 내리그으며 자신을 에워싸는 괴물들을 상처입히려 했다. 그것은 구석에 몰릴대로 몰린자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고작 그 정도의 느려터진 움직임으로 그것들에게 타격을 준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심장이 얼어붙은 괴물들.
그녀를 위해 이 자리에 현신한 샤이탄들이었으므로.
" 살려줘! 살려줘! 날 보내주면 내가 마약을 숨겨놓은 장소를 가르쳐 줄게. 파......팔면 수억원은 받을 수 있는 최상품이야. 살려줘. 살려줘- 응? 제발......"
갑자기 불빛이 그 장소를 환하게 비추며 어둠을 밝혔다.
그 찬란한 불빛은 눈물 콧물 쏟아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다리가 잘려나간 추악한 라이칸슬롭을 비추고 있었을 뿐더러 그녀를 둘러싼 그 < 괴물 >들역시 그대로 비추었다. 그녀는 싸우는 것이 먹히지 않자 애걸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듯했다. 피를 철철 흘려 어짜피 그냥 놔두면 30분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 뻔함에도 비굴하게 애걸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자였다. 그러나 갑자기 어둠속을 비춘 불빛에도 눈하나 찌푸리지 않는 번들거리는 눈들은 무표정하다. 그들은 조용히 라이칸슬롭의 애걸하는 소리를 입도 벙긋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니 얌전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그들은 라이칸슬롭이 애걸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말을 너무한 나머지 목이 잠겨 제대로 목소리가 않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자신을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뜬구름같은 희망에 라이칸슬롭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그제서야 기다렸다는듯 움직이기 시작한 칼그림자들을 보았다. 퍽! 첫번째 금속의 차갑고도 두툼한 날이 옆구리를 푸욱 후벼파며 스핀을 주어 내장을 휘저었다. 라이칸슬롭은 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일그러진 비명을 터널이 떠나가라 질러댔다. 그러나 자비따윈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첫번째 칼날에 뒤이어 팍! 벅! 파팍! 팍! 라이칸슬롭을 비좁게 둘러싼 자들의 7개의 칼들이 한 사형수 라이칸슬롭을 자리에서 집요하게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즉사하지 않을 곳만 골라가며 헤집어대는- 라이칸슬롭은 자신의 뼈마디를 톱날같은 칼날이 갉아 부러뜨리는 굉음을 그 귀로 들었다. 성한 구석없이 자신의 내장과 근육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자들의 얼굴을 그 눈으로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핏방울이 연한 앙증맞은 손등을 타고 굴러떨어진다.
진주알마냥 사랑스러운 젓니들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며 자신들의 칼질으로 인해 튄 선혈이 똑똑 떨구어져 내린다.
불빛은 그들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가득한 젖살이 올라 너무나 귀여운 얼굴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사랑스럽도록 귀여운 얼굴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표정은 성스러운 작업이라도 하는양 진지하며 정성이 가득담긴 것이었다. 그들의 신중한 작업으로 인해 결과는 만족스럽게 진행중이다. 하늘과 같은 교관들께 그들이 받은 명령은 사냥감을 추적, 가지고 놀만큼 논 후 지치게 되면 자신들의 얼굴과 눈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해부해체작업을 병행하란 것이었다.
가능한한 최대한- 오래- 살려둔 상태로.
그들은 지금 임무를 수행중이다.
" 신기록이군요. 14번째 사냥감을 대상으로한 이번 헌팅에 걸린 시간은 56시간 48분 55초입니다. 저번 기록은 48시간 56분대였죠."
" 죄수이긴 해도 이번 실습용 사냥감은 훈련받은 전사였으니까. 더욱이 라이칸슬롭이 아닌가 말이다. 페트라 라이칸슬롭은 정말 강인한 종족이란 말이야. 아주......터프해. 대개는 저정도 뱃가죽이 찢겨서 내장이 다 밖으로 흘러나오면 슬슬 사는 걸 포기하고 죽는 쪽을 바라는데 말이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싸울 여력이 남았단 말인가? 맘에 들어. 정말 맘에 드는 종족이야."
" 흥. 잔소리말고 실습과정이 담긴 CD들이나 잘 챙겨둬라. 기록담당. 복사본은 기록으로 보관할 보관용과 장로회에 올릴 것까지 21개 떠 놓도록. 레벨 확실히 달아놔. 그리고 장로회의 요청이다. 이번 채점에 참여한 교관들 전부 이번 실습훈련을 관람한 보고서를 작성해 장로회로 올리도록. 공정에 공정을 기해야하니까."
" 또 보고서야?! 어떻게 된게 허구헌날 보고서야? -지겨워!"
푸르스름한 한쪽 벽면전부에 붙은 모니터속 광경을 바라보며 어딘지 야유에 가까운 시니컬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그 목소리들과 함께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메모를 위해 종이위를 스치는 필기구들의 사각이는 소리가 불티나게 들린다. 옆에 쌓아올려진 씨디들의 무더기를 열심히 챙기며 돌아다니는 여자의 발걸음역시 분주하다. 또 한차례의 실습이 끝났다.
그러나 이것은 무수한 과정들중의 하나일 뿐이다.
모니터속. 번들번들 튀긴 피와 살점을 무시하며 작업에 열중중인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종족이 각기 다른 남자아이마져 섞인 20살정도에서 50살정도의 아인족 어린이들이 그 속에 있었다.
[ 로챠나 ]. 인간 컴퓨터. 인간족이 만들어낸 병기들 중 으뜸이라 불리우는 존재들. 그 로챠나들을 키워내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로챠나 양성소 중- 최고중의 최고라 불리우는 5대 명문 아카데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최강의 소수정예 군전용의 특화 로챠나들만을 엄선해서 양성해낸다는 타클라마칸의 자랑이라 불리우는 곳, 아카데미<< 토라나 >>.
토라나의 제 84기 예비 로챠나생도들.
바로 이들이 < 토라나의 희망 >이라 불리는 아이들이다.
*레팅- 타클라마칸행성에 살고 있는 10Wcm~15Wcm정도 크기의 소형 설치류. 하수구나 주거구역의 쓰레기통 부근에 사는 짐승들이다. 노린내가 심하고 질기긴해도 고기는 먹을만하다. 타클라마칸의 원주민아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기간 레팅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견디기도 했다.
[[계속]]
목소리의 힘은 중첩된 공간들을 뒤흔들고 듣는 이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의 음성에는 말로써 형용하기 힘든 불길함과 동시에 필멸자의 한계를 뛰어넘은 종족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태고부터 수없이 많은 멸종의 위기를 이겨내고 진화의 길을 걸어 극점에 도달한 종족의 일원으로써. 말라는 노래하듯 운을 떼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빛한점 찾아 볼 수 없는 칠흙의 공간.
필멸자들이 몸을 담은 3차원의 세계가 아닌 그 너머의 공간.
그러나 죽음보다 차가운 냉막한 공간.
이 우주의 태초보다 더 오래 전 종족의 역사가 시작된, 존재자의 의지로 인해 파문이 다시 일었다.
" 역십자가. 혹은 정치범의 사형집행용으로 쓰이던 X자형 십자가. 불의 일족중 소수민족계열인 네와르타족의 고대어에 속하는 고어던가요? 흥미롭군요. 당신들의 문화권내에서 그것은 매우 불길한 상징이라고 들었는데요."
[[ 사실입니다.]]
어둠속의 유일한 광원인 홀로그램속. 예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돌덩이같은 얼굴을 한 여자를 탐색하듯 바라보며 파탄 흄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짜 인간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던가 눈을 깜박인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엔 그렇게 밖엔 묘사할 수 없는 유머러스한 분위기역시 스며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감정이입에 가까운 실수일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실 그의 반응과 태도 어느 구석도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진실인 것이다. 반면에 말라인 그에게 옴이란 성별이나 연령이란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들 비슷비슷해 보일 것이다. 하나의 이종족이 자신과 완전히 진화과정 자체가 다른 이종의 종족의 외모를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녀역시 마찬가지였다. 파탄 흄과의 오랜 접촉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일족을 구별할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임을 여자는 이해했으며 언제나 그들을 대할 때 명심하곤 한다. 그래서 교단은 그녀를 이들과의 대화시 늘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 막중한 임무였다.
말라- 파탄 흄은 다시한번 느리게 고개를 갸웃했다.
옴족의 여자는 자신이 한 제안을 과연 이 말라가 받아들일지에 대해 확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을 서둘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의 상대는 인내력이 강한 자였다. 그 만큼이나 역시 결코 서두르거나 초조함을 드러내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이 옴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말라가 다시한번 천천히 중얼거렸다.
" 하얀 이방인이라."
[[ 피빛 의혹과 모략, 원인불명의 급사뒤엔 늘 그녀(그)가 존재한다. 어떤 시간. 어떤 시대. 어떤 장소. 어떤 종족. 어떤 형상이든. 하얀 이방인. 전장의 학살자. 죽음과 파괴와 피를 부르는 왕(rex). 태양의 의지를 따라 무저갱에서 몸을 일으킨......]]
옴족 여자의 입에서 운율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라인 그가 듣기에 옴족의 언어란 건 벌레가 날개를 비벼내는 소리나 동물이나 조류가 짖어대는 음향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들린다. 그러나 하등동물의 울음소리에 비한다면 이 옴들이 사용하는 말이란 것은 좀 더 다층적이기도 하다. 조잡하고 원시적이지만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같은 경우. 목소리가 읊는 내용은 주변을 잠시지만 음침하게 뒤바꾸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 밤을 지배하는 왕. 태양신의 저주받은 전사들. 하얀 이방인이란 원래는 토라나 아카데미가 존재하던 행성 타클라마칸의 대해에 살고 있는 육식성 대형모래충들을 부르는 속어입니다. 외골격의 보호색- 무늬나 몸빛깔이 거의 모래바다의 빛과 같아서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광학미채나 거의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들이 움직이면 모래바다가 출렁이는 듯이 보인다던가 하여튼 노련한 원주민들조차도 찾지 못한다죠. 그렇게 숨어있다 다가온 먹이를 덥치자말자 갈기갈기 찢어발겨 굴로 끌고 들어갑니다. 타클라마칸의 원주민들이 꿈에서 볼까 두려워하는 포악한 포식자로 행성 타클라마칸에선 먹이사슬의 최상부에 위치하는 놈들입니다. 무리사냥의 명수들이죠.]]
강의조의 평이한- 다소 딱딱한 어투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 ......"
[[ 그들의 외골격은......흑천의 우주최고라 불릴만한 복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력이 있는데다 두께도 엄청나게 두텁죠. 강도도 상당해서 150mm중형단침총따윈 쏘아봐야 흠집도 나지않는데다 네와르 해군특전단의 주력무기인 M56 스마트건정도는 되튕겨낼 정도입니다. 면도날에 필적하는 날이 선 5Wm짜리 낫형태의 앞발들은 강력한 무기죠. 게다가 거의 20Wm짜리 촉수들에 붙잡히면 거의 모든 동물들의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면서 몸뚱이가 터져나갑니다. 탐욕스럽고 사나운데다 교활하며 한번 찍은 먹이는 반드시 식도로 넘겨야 직성이 풀리는 집념이 무시무시한 악마들이죠.]]
" ......?"
[[ 중앙해에 반정부게릴라들의 소굴이 있다는 제보를 받은 라야의 황실강화 장갑병들 3개 대대가 투입된 적이 있었습니다. 엘리트군단이었으며 중무장한 상태였죠. 그러나 하필이면 착륙지점이었던 곳이 하얀 이방인들의 영역권에 속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하루도 않되어 통신이 두절되어 버렸죠. 구원부대가 도착했을 때는 종이짝마냥 찢겨지고 우그러진 강화복의 파편들과 박살난 무기들 뿐. 전멸이었죠.]]
" 제게......그 곤충에 대해 말씀하신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모래충과 토라나의 로챠나. 상당히 닮은 구석이 많은 존재들이니까요. ]]
말라의 가면같이 매끄러운 얼굴표면에 파문이 일었다. 다시한번 고개를 갸웃한 그는 망설임을 벗어던진것처럼 우아하게 몸의 일부를 내밀어 허공으로 뻗었다. 비록 말라가 망설임을 벗어던졌다고는 하나 그는 여전히 결정을 서둘진 않았다. 그러기에 그가 맡은 책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는 천성적으로 무척이나 신중한 성격의 말라였으니까. 일족은 바로 그 신중함과 적절한 판단력을 높이 샀기에 그에게 이번 임무를 떠맡겼다.
그는 조심스럽게 홀로그램속 여자에게 주의깊게 말을 건넸다.
적당한 의심과 적절한 수준의 관심.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드러낸 반응과 태도로 진심을 꿰뚫기란 독심술사에게조차 무리인 일이다. 여전히 그의 태도는 관찰 혹은 탐색에 가까왔다. 더욱이 그의 대답은 대답이라기 보단 오히려 [ 제안 ]이란 측면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 흥미가 이는군요. 그러나 그녀가 과연 외계인인 나를 위해 일해 줄까요?"
여자가 짧게 웃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처음은 이 정도가 적절하다. 그래. 첫시작으로써는-
그녀는 말라식 인사를 하며 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그건 당신의 재량에 달린 것이겠지요.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조언이란 이 정도군요. 인간들의 격언중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 내게 충분한 길이의 막대기와 적절한 무게점을 준다면 지렛대로 타클라마칸역시 들어보이겠다." 라는. 흥미가 당기신다면 용이한 상황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흄. 가능한한 극한상황을 연출하는 편이 좋겠군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자에게 있어 그것이 파괴될 위기에 처한 위기상황보다 그 인간의 가치와 진면목을 시험하기 좋은 것이란 없으니까요. 꽤나 색다른 유흥이 되실 겁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다. 지상에서는 벌써 일주일째 미친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모래태풍. 타클라마칸특유의 기상현상인 모래태풍은 그 존재자체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적이었다. 의인화된 모래태풍이 나는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 내 모든 행동에 악의는 없다고 항변한다하더라도 그 점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사실 그럴 일도 없긴 하지만. 진로를 예측할 수 없는 그렇기에 늘 느닷없이 닥치는 재난. 매년 아니 매달 이로인해 사람들이 얼마씩 꼭 죽어나감에도 인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재앙이다.
지상은 그 모래태풍이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명을 위협하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 이 기이한 곳은 정체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공기는 탁했으며 악취가 진동했다. 광원이라곤 없는 어둡디 어두운 공간. 바닥엔 기이한 액체가 출렁출렁 휩쓸고 지나가다 다시 제자리를 맴돌며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사방이 캄캄했기에 역시 주변과 마찬가지로 검은빛으로 보이는 그 괴기한 점액덩어리는 끓임없이 파도치며 움직여대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역겨운 모습이었다. 모래충의 위압적이며 흉측한 모습조차도 이것에 비하면 화룡월태의 절세미인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을 뭐에 비할 수 있을까? 점액질과 아메바의 중간단계로 생긴 괴물이라고? 아니면 그저 하수구아래 고인 썩은 물과 쓰레기과 진흙이 뒤범벅된 액체일 뿐이라고 말 해야하는 걸까?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었다. 터널 전부를 자신의 몸뚱이로 뒤덮은 살아있는 점액. 자신의 허여멀건 반투명한 몸통속에서 뭔가를 느릿느릿 소화시키며 끓임없이 분해시키면서. 그것은 오랜 과거에서부터 그래왔듯이 지금도 살아있다. 마물이 자신의 전신을 걸친 이 곳은 어딘가의 지하로였다.
촥!- 촥!- 촥!
허......헉......하아......하악......!
지하로를 따라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미끄덩미끄덩 꽤나 미끄러울 것임에도 넘어지지도 않은 채 잘도 달려오고 있다. 더러운 오물이 튀거나말거나 점액질이 끈적하게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오거나 말거나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넓직한 등한가운데를 떠다니는 빨간 점이 반짝반짝 어둠속에서 빛을 발했다.
슈우우우우-! 파팡!
뭔가가 번쩍 하며 날아와 그 자의 바로 앞에서 강렬한 빛과 함께 터져나갔다. 조명탄이었다. 조명탄이 터지며 어둠속에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자의 얼굴이 희미하나마 드러났다. 눈물 콧물 범벅된 일그러진 얼굴은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조차 본체를 드러낸 라이칸슬롭족(늑대인간)의 전사임을 선명히 드러내는 중이다. 그가 뛰어가는 중인 하수도의 천장은 조금이라도 뛰어오르면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낮다. 증발한 수증기가 천정에서 방울져 뚜욱 뚜욱 떨구어져 내린다. 드러난 천장은 온통 이끼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종아리까지 차오른 점액으로 가득찬 하수도는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단단한 돌을 통채로 깍아 만들어진 하수도의 돌벽과 그 위를 방울져 흐르는 유연한 물자욱들. 딱딱한 돌바닥위를 꿈틀대며 먹이감을 고대하는 점액덩어리들. 빛이 미치지 않는 끝없이 뻗어나간 하수로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천장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앞과 뒤 그리고 양 옆쪽에도 뻥뚫린 지옥의 입구들이 그를 유혹하듯 팔을 벌리고 있었으니까. 이 하수로는 탈출이 불가능한 복잡한 미로였다.
죽음의 미로.
어둠속에서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튀어나올듯 하다.
라이칸슬롭 하리스의 전사는 자신의 뒤를 소리없이 따라오고 있는 죽음의 숨결을 섬뜩하게 그 순간 느끼고 있었다. 숨이 찼다. 숨이 차다못해 심장을 토해내기라도 할듯한 떡 벌리고 있는 입가에선 침이 질질 흘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여야 한다.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 쉬기라도 하면 악귀같은 조그만 짐승들이 떼를 지어 몰려든다.
실제로 그의 몸일부는 하수도에 사는 레팅들에게 갉아먹혀 너덜너덜했다.
그런 와중에 도망치지 않으면 추격당해 죽게 될 이 급박한 상황에서 조명탄이 느닷없이 코앞에서 터졌던 것이다. 암흑에 익숙해져 있다 작열하는 빛에 노출된 눈은 격렬한 통증과 함께 보이지가 않았다. 빌어먹을! 라이칸슬롭은 귀를 눕히고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릉거렸다.
- ......!!
비릿한 노린내가 탁한 공기속에 점점 짙게 배어들고 있었다. 이미 < 그것들 >이 지척에 다가온 것이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라이칸슬롭특유의 예리한 청각과 후각을 동원해 다가오는 적들의 체취를 눈치챈 라이칸슬롭은 몸을 뒤틀며 눈을 감고 곧 있을 전투를 대비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돗아났다. 몸을 곧추세우고 면도날과 같은 긴손톱이 달린 손을 위협적으로 흔들면서 그는 코너를 돌아 또다른 입구쪽에 몸을 숨기고 잠복하려 했다..
그러나 한발앞서 라이칸슬롭을 따라다니던 빨간 빛의 점이 위치를 슬쩍 이동했다.
뭔가 오고 있다!
피할 시간이 없다. 자신을 노린 무엇인가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는 것을 본능으로 짐작한 라이칸슬롭은 허리를 숙였다. 바람처럼 민첩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 그것들 중 하나 >가 노리고 있던 것은 라이칸슬롭의 목이 아니다.
썰컹! 철퍼덕!- 철퍽! 쿵!!
부드러운 무엇인가를 터트리듯 썰어내며 지나가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음향을 사방에 퍼뜨리며 지나간다. 따당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돌벽면에 무엇인가가 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은 그 이후였다.
라이칸슬롭이 경악하거나 말거나 몸은 출렁거리는 액체속으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엎어지고 말았다. 라이칸슬롭을 집어삼킨 끈적대는 점액질은 벽면과 천장까지 튀어올랐다. 마치 새로운 먹이가 생긴것이 감격스러워 춤을 추는듯 하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소리없이 라이칸슬롭의 몸뚱아리를 뒤덮었다.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점액질속에 쓰러진것은 다리없는 몸통뿐이었다.
라이칸슬롭의 두 다리는 저 앞에 아직도 그대로 서 있었다. 선지피를 뿜어대면서. 뻣뻣한 것이 2개의 나무토막들 같다. 그녀를 덮친 것은 두개의 < 금속바늘 >이다. 음속을 능가하는 속도라 파공성조차 나지 않은 그것에 격중된 라이칸슬롭의 두 다리가 그 어둠속을 잠시동안 한낮의 지상처럼 밝게 비춰준 조명탄아래 허벅지로부터 떨어져나가 그대로 그 액체속에 몸통이 쳐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허벅지부분에서 깨끗하게 터져나간 다리들은 결국 쓰러졌다. 마치 자체가 생명을 가진 생물인양 저 먼곳에서 퍼덕거리며 라이칸슬롭 특유의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동맥이 끓긴 여자의 다리가 있던 허벅지단면에서 선지피가 점액속으로 번져 나왔다.
그러나 라이칸슬롭은 고집스럽게 입을 꽊다문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찍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전사는 부족에서 10명의 부족민을 살해한 중죄인이었다. 사기, 강간. 폭력. 인신매매. 마약등등 인간말종의 범죄란 범죄는 전부 저지른 악질 흉악범으로 감옥엔 뻔질나게 들락거리다 결국 사형수로 감옥에 보내져 올가미를 목에 걸고 공중에서 춤 출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간수장이 그녀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높으신 분들이 참여하는 무슨 시험에 그녀를 실험용으로 쓸 셈인데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면 사면해 줄 것이며 실패한다면 죽음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로써는 믿져야 본전 어짜피 도박이었다.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이 하수구 터널에서 생을 마치게 된 것이다.
- 빌......빌어먹을......내가.....이......내가!
칼질이나 쌈박질에는 자신이 있던 그녀였는데 손쓸 겨를 조차 없었다. 그건 이 < 실험 >에 동원된 다른 감옥에 수감되었었던 흉악사형수들의 운명조차 마찬가지였다. 무자비한 손들에 쓰러진 자들은 그자리에서 난도질되어 죽어갔다. 아인족이라곤 부를 수도 없는 고깃조각이 된 해체된 시신들은 굶주린 레팅들에게 뼈까지 갉아먹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이제 그녀뿐이다. 꿀꺽. 라이칸슬롭은 팔을 움직여 터널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 억울해!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 이건 너무 억울해! 분노와 억울하다는 감정이 라이칸슬롭을 온통 휘감았다. 고통은 그만큼의 분노와 원한으로 변했다. 과거 자신이 죽인 자들역시도 자신과 같은 심정이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런 그들을 자신이 어떻게 죽였었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로.
그 분노가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라이칸슬롭은 강인한 팔과 팔꿈치를 이용하여 안간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기었다. 저 앞의 꺽어지는 코너를 돌아 몸을 숨긴후 다리를 지혈할 셈이었다. 어쨌든 일초라도 살 수 있다면 그녀는 살아남아야한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미끄덩대는 점액질이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으나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몸통과 다리가 연결되었던 부분에서 번져나온 자신의 피로 인해 점액질속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그 < 괴물 >들에게 붙잡히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비참한 꼴로 토막나 죽게 될 것이다.
철벅......철벅......철벅......
그러나 라이칸슬롭의 마음이야 어땠든 저 멀리 어둠속에서 십여개의 번들거리는 눈들이 흔들흔들 다가오고 있다. 그녀를 이 지경까지 몰고간 자들이 철벅철벅 우아하게 터널을 걸어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인광으로 어둠속에서 활활타오르는 눈들. 그들의 손에 들린 날이 빠진 금속조각의 섬뜩한 반사광과 비릿한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 싫어! 난 죽기 싫어!"
분노와 원한은 이제 멈출수 없는 공포로 바뀌었다.
아무리 꿈틀대며 발악한들 죽음을 피할길이 없다.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했으며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것들은 아주 쉽게 라이칸슬롭을 금방 따라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도록 라이칸슬롭의 몸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암흑속을 쩌렁쩌렁 울리며 라이칸슬롭은 괴성을 토했다. 미친듯이 마지막 안간힘을 다 쓰며 손톱을 이리저리 내리그으며 자신을 에워싸는 괴물들을 상처입히려 했다. 그것은 구석에 몰릴대로 몰린자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고작 그 정도의 느려터진 움직임으로 그것들에게 타격을 준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심장이 얼어붙은 괴물들.
그녀를 위해 이 자리에 현신한 샤이탄들이었으므로.
" 살려줘! 살려줘! 날 보내주면 내가 마약을 숨겨놓은 장소를 가르쳐 줄게. 파......팔면 수억원은 받을 수 있는 최상품이야. 살려줘. 살려줘- 응? 제발......"
갑자기 불빛이 그 장소를 환하게 비추며 어둠을 밝혔다.
그 찬란한 불빛은 눈물 콧물 쏟아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다리가 잘려나간 추악한 라이칸슬롭을 비추고 있었을 뿐더러 그녀를 둘러싼 그 < 괴물 >들역시 그대로 비추었다. 그녀는 싸우는 것이 먹히지 않자 애걸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듯했다. 피를 철철 흘려 어짜피 그냥 놔두면 30분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 뻔함에도 비굴하게 애걸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자였다. 그러나 갑자기 어둠속을 비춘 불빛에도 눈하나 찌푸리지 않는 번들거리는 눈들은 무표정하다. 그들은 조용히 라이칸슬롭의 애걸하는 소리를 입도 벙긋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니 얌전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그들은 라이칸슬롭이 애걸하며 목숨을 구걸하는 말을 너무한 나머지 목이 잠겨 제대로 목소리가 않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자신을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뜬구름같은 희망에 라이칸슬롭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그제서야 기다렸다는듯 움직이기 시작한 칼그림자들을 보았다. 퍽! 첫번째 금속의 차갑고도 두툼한 날이 옆구리를 푸욱 후벼파며 스핀을 주어 내장을 휘저었다. 라이칸슬롭은 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일그러진 비명을 터널이 떠나가라 질러댔다. 그러나 자비따윈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첫번째 칼날에 뒤이어 팍! 벅! 파팍! 팍! 라이칸슬롭을 비좁게 둘러싼 자들의 7개의 칼들이 한 사형수 라이칸슬롭을 자리에서 집요하게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즉사하지 않을 곳만 골라가며 헤집어대는- 라이칸슬롭은 자신의 뼈마디를 톱날같은 칼날이 갉아 부러뜨리는 굉음을 그 귀로 들었다. 성한 구석없이 자신의 내장과 근육을 갈갈이 찢어발기는 자들의 얼굴을 그 눈으로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핏방울이 연한 앙증맞은 손등을 타고 굴러떨어진다.
진주알마냥 사랑스러운 젓니들을 분홍색으로 물들이며 자신들의 칼질으로 인해 튄 선혈이 똑똑 떨구어져 내린다.
불빛은 그들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가득한 젖살이 올라 너무나 귀여운 얼굴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사랑스럽도록 귀여운 얼굴들. 그래서 그들은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표정은 성스러운 작업이라도 하는양 진지하며 정성이 가득담긴 것이었다. 그들의 신중한 작업으로 인해 결과는 만족스럽게 진행중이다. 하늘과 같은 교관들께 그들이 받은 명령은 사냥감을 추적, 가지고 놀만큼 논 후 지치게 되면 자신들의 얼굴과 눈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해부해체작업을 병행하란 것이었다.
가능한한 최대한- 오래- 살려둔 상태로.
그들은 지금 임무를 수행중이다.
" 신기록이군요. 14번째 사냥감을 대상으로한 이번 헌팅에 걸린 시간은 56시간 48분 55초입니다. 저번 기록은 48시간 56분대였죠."
" 죄수이긴 해도 이번 실습용 사냥감은 훈련받은 전사였으니까. 더욱이 라이칸슬롭이 아닌가 말이다. 페트라 라이칸슬롭은 정말 강인한 종족이란 말이야. 아주......터프해. 대개는 저정도 뱃가죽이 찢겨서 내장이 다 밖으로 흘러나오면 슬슬 사는 걸 포기하고 죽는 쪽을 바라는데 말이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싸울 여력이 남았단 말인가? 맘에 들어. 정말 맘에 드는 종족이야."
" 흥. 잔소리말고 실습과정이 담긴 CD들이나 잘 챙겨둬라. 기록담당. 복사본은 기록으로 보관할 보관용과 장로회에 올릴 것까지 21개 떠 놓도록. 레벨 확실히 달아놔. 그리고 장로회의 요청이다. 이번 채점에 참여한 교관들 전부 이번 실습훈련을 관람한 보고서를 작성해 장로회로 올리도록. 공정에 공정을 기해야하니까."
" 또 보고서야?! 어떻게 된게 허구헌날 보고서야? -지겨워!"
푸르스름한 한쪽 벽면전부에 붙은 모니터속 광경을 바라보며 어딘지 야유에 가까운 시니컬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그 목소리들과 함께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메모를 위해 종이위를 스치는 필기구들의 사각이는 소리가 불티나게 들린다. 옆에 쌓아올려진 씨디들의 무더기를 열심히 챙기며 돌아다니는 여자의 발걸음역시 분주하다. 또 한차례의 실습이 끝났다.
그러나 이것은 무수한 과정들중의 하나일 뿐이다.
모니터속. 번들번들 튀긴 피와 살점을 무시하며 작업에 열중중인 그들은 괴물이 아니다. 종족이 각기 다른 남자아이마져 섞인 20살정도에서 50살정도의 아인족 어린이들이 그 속에 있었다.
[ 로챠나 ]. 인간 컴퓨터. 인간족이 만들어낸 병기들 중 으뜸이라 불리우는 존재들. 그 로챠나들을 키워내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로챠나 양성소 중- 최고중의 최고라 불리우는 5대 명문 아카데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최강의 소수정예 군전용의 특화 로챠나들만을 엄선해서 양성해낸다는 타클라마칸의 자랑이라 불리우는 곳, 아카데미<< 토라나 >>.
토라나의 제 84기 예비 로챠나생도들.
바로 이들이 < 토라나의 희망 >이라 불리는 아이들이다.
*레팅- 타클라마칸행성에 살고 있는 10Wcm~15Wcm정도 크기의 소형 설치류. 하수구나 주거구역의 쓰레기통 부근에 사는 짐승들이다. 노린내가 심하고 질기긴해도 고기는 먹을만하다. 타클라마칸의 원주민아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기간 레팅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견디기도 했다.
[[계속]]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중의 하나. 그러나 이 취향으로인해 주위사람들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슬픔이 있었으니-왜 다들 사람들은 sf를 어렵다고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