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736년 3월 24일에 개최된 "자동인구조절시스템(Autonomous Demographic Control System, ADCS) 도입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공학자 알리스타 크리스텐벡이 발언한 축사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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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구조절시스템, ADCS가 도입된지도 벌써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가 ADCS의 개발에 참여한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가는군요. 당시에 저는 ADCS가 인류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키리라는 꿈에 사로잡힌 애송이 과학자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삶은 시궁창이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꼈죠(청중 웃음).


그렇다고 해서 ADCS의 개발이 아주 헛된 일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ADCS가 도입되면서 경제성장률과 구매력지수 같은 경제적 수치를

바탕으로 출산율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결국 인류의 전반적인 복지 증진에 기여하였으니까요. 게다가 출산이 더 이상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완전자동인큐베이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류는 출산으로부터 야기되는 각종 부작용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각국 정부도 더 이상 인구감소나 인구과밀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하지만 ADCS가 가져온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높은 실업률과 사회적 불만, 낮은 교육수준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는 ADCS 도입 이후에도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ADCS의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ADCS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무시한 채 ADCS의 신속한 도입에만 치중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인간 정신에 내재된 변동성에 기인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ADCS를 도입하기만 하면 이러한 변동성이 감쪽같이 사라질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적 특성, 교육, 고용과 같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분야들이 죄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아닌 변덕스러운 인간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출산만을 자동화한다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류의 보존과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쳐온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전

2. 출산

3. 노동

4. 안전

5. 교육


위 5개의 요소 중 인공지능 시스템이 통제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2번 - 출산 뿐입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인간이 담당하고 있지요. 최근에 곳곳에서 반사회적 범죄집단이 생겨나고 있는 이유는 일부 인간이 1번 - 유전을 자기 마음대로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노예노동이나 불법해고가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은 것은 3번 - 노동의 내용을 인간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지역에서 교육 수준이 떨어지거나 극단주의적인 사상이 주입되는 것은 5번 - 교육에 인간이 참여하여 학부모들의 신뢰를 악용하기 때문이죠.


4번 - 안전의 경우는, 인간이 아직도 사회의 치안 및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고 있죠. 따라서 국방예산의 대부분이 검은돈으로 빠져나가거나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와도 무시하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위 5가지 요소 중 ADCS가 인간의 영향을 제거한 것은 출산 1가지에 불과하며, 나머지 4가지는 모두 신뢰해야 하는 인간이 존재하였고, 그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입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ADCS는 인간의 내재적인 변동성을 제거하였으므로 더 이상 사회적 문제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홍보하고 다니는 것은 사실상 말장난에 불과하죠. 왜냐하면 출산 부문에만 제한되어 있는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요소를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완전자동화시키면 되는 것이죠. 이 4가지 요소를 자동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그토록 오래된 숙원이었던 '완전무신뢰사회', 즉 인간을 신뢰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사람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그나마 인간이 만든 조직체 중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주체였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주체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출산을 인간으로부터 해방시킨 ADCS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어떻게 해야 위에서 언급한 나머지 4가지 요소에서 인간을 배제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유전


아직까지도 태아의 유전자 개조는 인간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유전자/생체개조상담시스템(Genetic and Organism Modification Advisor, GOMA)의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므로, 약 5년 후에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놓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유전자, 생체구조 및 생리기제를 조정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 출산


이는 ADCS가 해결을 했죠. 현재 출산은 ADCS가 전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인간이 출산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미미합니다.


3. 노동


고용, 해고, 이직, 임금책정과 같은 노동문제들도 노동력배치최적화시스템(Workforce Allocation Optimizer)와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만약 노동부문에서 인간의 영향을 배제한다면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근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안전 


사실 안전문제는 인간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의 원천이라 자기자신도 믿을 수가 없지요. 아마 안전 부문은 인간이 자신의 '자기결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문제 해결을 바라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10,000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스스로의 신변안전이나 외부활동을 개인안전보조시스템(Personal Security Assistant)에 맡기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개시되면서 이 문제도 곧 개선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5. 교육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하여 사람들을 교육 및 평가하면 극단주의적 사상의 전파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의 주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수십 개의 초중고 학교에서 일반교육지도시스템(General Education Guidance System)이 도입되어 고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만, 최소한 학교폭력 방임이나 심각하게 낮은 교사의 질 등은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인간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명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ADCS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단계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ADCS만 도입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를 근절할 수 있다"는 식의 근거없는 논리가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ADCS는 출산 부문에서만 인간의 변동성을 제거할 수 있을 뿐임을 기억하고, 그 외에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도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여 인간을 배제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인지할 때에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에 관하여 많은 논의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 학술대회가 인류의 도약을 위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와 동시에 여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비록 지루한 축사였습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