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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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탐사나 비경 탐험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가볍게 읽어볼만한 주제입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SF물의 고전적인 테마입니다. 고대 유적에서 돌연변이를 만나거나, 미래 도시에서 로봇을 발견하거나, 외계 우주선에서 생명체를 찾아내기도 하죠. 무엇이건 간에 인류는 온갖 새로운 존재와 마주치고 충격과 경외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이런 존재와 접하려면, 어딘가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미지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할 상황도 많아요. 남극 밑에 잠든 고대 생명체를 깨우거나, 지하 세계의 돌연변이를 확인하거나, 머나먼 우주의 지적 존재와 소통하는 등등.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덕분에 무언가와 조우하려면 탐험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배낭을 꾸리고, 특수 복장을 입고, 무기를 챙겨서 탐사선이든 우주선이든 출발해야죠. 따라서 SF물은 일부분 탐험물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창작가들은 미지의 존재를 설정하기 위해 가상 세계를 만들고, 등장인물은 그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목도합니다.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이 이 장르의 근본적인 감수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실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행위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항상 알지 못하는 장소를 방문하곤 합니다. 지도를 만들면서 다른 대륙을 찾아갔고, 항해술이 생겨나자 바다를 건너고, 항공기를 만들어 하늘로 떠올랐죠. 생존 장비가 늘어나자 고산지대나 무성한 밀림도 가봤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잠수함이나 우주선의 등장으로 심해와 우주까지 진출했죠.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SF물에서 탐험을 중시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든 하드 SF든 간에 산 넘고 바다 건너 우주까지 나가는 일련의 도전이 창작물에 반영된 셈입니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는데, 도대체 인류는 왜 그렇게 우주로 나가려는 걸까요. 극악한 환경에다 비용도 많이 드는데 대기권 밖을 꿈꾸는 이유는 뭘까요. 지구만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말입니다. 우주 사업을 추진할 바에야 그 돈으로 사회 경제를 지원하는 게 낫다는 비판도 있죠. 실제로 예산을 이유로 유인 비행이 지연된 사례도 있고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1월호의 주제는 바로 이겁니다. 125주년 창간 기념으로 ‘우리는 왜 탐험을 하는가?’란 발제를 내놓았습니다. 세계 지리와 자연을 탐사하는 잡지인 만큼, 어울리는 물음입니다. 고대부터 미래까지 여러 탐험가를 소개하는 한편, 아예 광고까지 이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네요. 그 중에서 중심 기사는 탐험 유전자입니다. 우리에게 광대한 영역으로 퍼져 나가는 기질이 있고, 그것이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근거로 유전자 변종, 큰 두뇌와 도구를 다루는 손, 유전자 퍼뜨리기, 유전자와 문화 사이의 상호관계를 설명합니다. 물론 일부 과학자들의 가정일 뿐, 완전히 공인된 이론은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는데 설득력이 있더라, 하는 수준이죠. 기사에도 이 주장을 반론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고 언급하거든요. 하지만 호기심이나 탐구심처럼 모호한 감성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살폈다는 점에서 가볍게 읽어볼 만합니다.
우선 소개하는 것은 변종 유전자입니다. 탐험 욕구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존재한다면, 그 주인공으로 DRD4가 있다고 합니다. 도파민을 조절하는 역할인데, DRD4-7R이라는 변이 유전자는 호기심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장소, 음식, 기회를 탐색하고, 이주와 변화, 모험을 수용하도록 한다고 하네요. 어느 연구에서는 이주민들에게서 7R이 자주 발견되었으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목 생활을 선호한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7R 보유자는 정착해서 살 경우 활기를 잃으며, 모험심을 유발하는 다른 유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인간의 탐험 활동을 이거 하나로만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반론이 뒤따릅니다. 유전자 하나가 그토록 복잡한 행동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면서요. 여러 유전자 무리가 복합적인 기질을 형성하고, 자리를 박차고 떠나도록 부추긴다는 거죠. 그저 먼 곳으로 가겠다는 욕구만이 아니라 역량이나 수단까지 고려하도록 말입니다. 아무리 역마살이 끼었다고 해도 적절한 도구나 장비가 없다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변종 유전자 다음으로 탐험 능력이 두뇌와 팔다리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이어집니다. 인간은 유인원과 다르게 재주 많은 손, 느리게 성장하지만 훨씬 큰 두뇌, 원거리 도보가 가능한 다리가 특징입니다.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더 활용할 상상력을 보태고, 오래 걷도록 다리가 튼튼해서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니스트 새클턴이 그런 능력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새클턴은 남극 여정 중, 빙하에 탐사선 인터어런스가 부서져 고립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기껏해야 30여 명의 대원들, 식량 조금, 구명정뿐이었죠. 하지만 부족한 도구로 구명정을 어떻게든 개조해 일부 부하를 데리고 기약하지 못할 항해를 떠났습니다. 10m도 채 안 되는 조각배를 타고 엘리펀트 섬에서 사우스조지아까지 1300km를 건너간 겁니다. 누가 보더라도 미친 짓이었지만 새클턴은 끝내 해냈고, 도움을 요청해 탐사대 전원이 생존했죠. 기사에서는 탐험 역사상 위대한 실패로 유명한 이 일화는 인간의 진보와 탐험 동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손재주와 상상력이 결합해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고 합니다.
또한 이주는 친화적인 유전자가 퍼질 기회이기도 합니다. 개척 집단은 한 장소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앞으로 나갑니다. 그러면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개체를 만나 짝을 짓습니다. 후손은 비슷한 기질이 있어 다시 앞으로 나가죠. 이런 일을 반복하면, 결국 개척 유전자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잡지에 나온 유전학자는 이를 ‘유전자 파도타기’라고 부르더군요. 이런 현상을 통해 호기심과 모험심, 위험 감수에 우호적인 다수의 유전자가 선택되었을 거라면서요. 탐험 행동 자체가 자기강화 고리를 만들어 원동력이 되는 유전자와 기질을 확대하고 전파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퀘벡 벌목꾼을 들었습니다. 퀘벡의 한 마을을 분석하니, 개척자 집안은 고향에 남은 사람들보다 일찍 결혼하고 자식도 빨리 낳았다고 합니다. 그 자식들도 일찍 결혼했고, 당연히 더 많은 세대를 낳았습니다. 개척자 부부 한 쌍이 고향에 남은 부부보다 20%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고 하네요. 이런 상황이 고대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졌고,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가 그렇게 많은 거라고요.
유전자와 문화 사이에 발생하는 지속적인 상호 관계도 여정을 자극합니다. 유전자는 인류 문화를 결정하고, 그 문화에 따라 다시 유전체를 형성합니다. 잡지에서는 이 문화의 의미를 좀 다르게 정의하는데, 지식이나 관행 혹은 기술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환경에 적응할 때 서로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데, 이것이 유전 기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유전 기질은 다시 기술을 창조하도록 도와준다는 겁니다. 이 역학 관계는 인간 행위에서 다방면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탐험에서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고대인은 뼈나 석기 등의 도구를 이용해 생존했습니다. 그러니 손재주가 있고, 도구를 만들 머리가 되는 유전자를 선호했겠죠. 유전자가 퍼질수록 도구가 더 늘어났을 테니, 문화도 더욱 급속도로 발전했고요. 이러한 관계가 돌고 돌아 지도와 일지, 나침반, 수레와 썰매, 선박 등을 만들어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 결국 우주선을 만들어 화성까지 내보냈고요. 이는 도구를 제작하고 상상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가설인 ‘두뇌와 팔다리’와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잡지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가설도 저것이었습니다. 인류가 지금처럼 지구 곳곳으로 이동하고, 심해와 우주까지 나간 까닭은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만들면서 그 활용도를 짐작하고, 새로운 발견으로 귀결합니다. 몸뚱이 하나만 이끌고 오지를 정복하는 경우도 다수입니다만. 흔히 탐험기는 생존과 직결되는 장비를 동원하기 마련입니다. 탐험과 관련된 책을 펼쳐보면, 그런 장비들 사진을 나열하곤 합니다. 낡고 닳은 지도, 처음 보는 생물을 그린 그림, 오래도록 보관하게끔 만든 비상식량, 튼튼하고 강인하게 개량한 동물, 개조한 썰매와 수레, 육분의와 망원경, 인데버와 인듀어런스, 프람 등 각종 선박들까지…. 탐험의 역사는 장비 발달의 역사라고 하겠습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이 <콩고>에서 과학의 발달이 탐험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말했던 게 생각나네요. 우리가 노틸러스 같은 잠수함이나 엔터프라이즈, 디스커버리 등 각종 우주선, 각종 강화복이나 우주복에 열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물론 탐험의 이유가 항상 호기심이나 모험심처럼 심리적인 이유인 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 더 크죠. 우리나라에서 흔히 위대한 탐험가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그렇잖아요. 위인전을 보면, 콜롬버스는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 사명을 띠고 출발한 것으로 나오곤 합니다. 15세기 당시, 유럽에서는 아무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믿지 않았는데, 그걸 밝히기 위해 도전했다고요. 하지만 진짜 목적은 (당연하게도) 인도 항로를 개척해 황금과 보물을 들여오는 거였죠. 그 바람에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해 현재 남아있는 후손이 거의 없다고까지 하니, 원. 냉전 시대의 우주 진출도 미화되는 때가 있지만, 그 이면은 꽤 어두웠습니다. 우주의 동경 같은 게 아니라 강대국끼리 우위를 점하려고 싸웠으니까요. 특히 소련은 첫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 우주정거장 발사라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이 때문에 희생된 우주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서방 쪽에서는 스푸트니크를 보고 저만한 기술이면 탄도 미사일이 날아올 거라고 벌벌 떨었으니 낭만과는 거리가 좀….
게다가 우주는 고산지대나 밀림, 사막, 대양 등과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극악한 공간이죠. 대기권을 벗어나는 것만 해도 최첨단 장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고요. 이러다 보니, 우주 탐험은 호기심이나 탐구심 같은 단어로 수식하기엔 너무 거창합니다. 마침 1월호 잡지에는 우주 여행 가능성에 관한 기사도 실렸습니다. 거기에 보니, 경제 목적 때문에 우주로 나갈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더군요. 우리 게시판에도 가끔 올라오곤 하는 자원 재취 이야기 있잖아요. 얼마 전에도 투자자들이 앞날을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지지했다고 했죠. 지구 밖에는 온갖 자원이 널렸으므로 그걸 가져올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익이 된다고요. 솔직히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과연 50년이나 100년 이내에 그걸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는 걸요. 상업성이 높아도 진출이 쉽지 않은 마당에 호기심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감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옳지는 않겠지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런 열정으로 연구를 하는 중일 테니까요.
뭐, 어쩌면 창작가들이 탐험 소설을 쓰거나, 독자들이 그걸 읽는 이유도 탐험 유전자가 배어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SF 작가나 독자를 분석해보면 저런 유전자를 다량 포함할지도? 이런 주제로 기사를 써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