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외계인 침입이 이 작품의 전부가 아닐 겁니다

SF 장르의 특징 중 하나는 미래를 예측한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SF 작가들이 그려낸 미래에서 살아갑니다. 유전 공학이 이루어지고, 가상 세계에 들어가고, 각종 다중 채널을 보고, 오염된 환경을 개선하며 사는 중이죠. 과거에는 바보 같다거나 황당하다고 비웃는 일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어요. 그래서 종종 뉴스나 과학 잡지에 ‘공상과학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는 문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요. 당장 황우석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도 SF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왔습니까.

그런데 이러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들이 미래 예측을 얼마나 정확히 하느냐를 작품성과 연결시킨다는 겁니다. SF라면 반드시 미래를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거죠. 만약 어떤 SF 작품에서 그려낸 미래가 지금에 와서 헛소리가 되어 버린다면, 그 작품은 쓸모가 없는 것으로 매도합니다. 평론가들이 논하는 걸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SF의 가장 큰 장점은 미래를 예측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SF는 단순한 미래학 서적이 아닙니다. 아무리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묘사한다고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SF는 상상 과학입니다. 그러나 상상 과학과 미래를 그리는 건 다릅니다. 상상 과학은 좀 더 큰 개념으로서 가능성을 타진하는 동시에 현실에 있는 우리를 비추기도 하거든요. <우주전쟁>에서 웰즈가 화성인을 묘사한 이유는 외계인이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만이 아닙니다. <화씨 451>를 읽고서 미래에 영상 미디어가 판칠 거라는 경고만 떠올린 사람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찾아내지 못한 거죠. SF라고 해서 당대 현실이나 사회 비판과 멀찍이 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일반 문학이 그렇듯 SF 역시 얼마든지 사회 비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상상 과학이 미래를 예측하는 건 맞지만, 그저 거기에만 매달리고 그쳐서는 안 될 겁니다. 그러면 SF 작가들은 전부 점쟁이가 되거나 예언이나 하며 살아야 하겠죠. 게다가 상당수 상상 과학이 그린 미래는 맞아 떨어질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가치가 있는 까닭은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논리로 일말의 가능성을 알아 보고,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문학 완성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상상력을 더한 과학으로 풀어간다 하더라도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그리는 판타지가 현실을 반영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가능성과 논리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정도로 SF의 가치를 축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여담으로 작품이 아니라 설정으로 평가를 원하는 사람은 늘 위와 같은 점을 간과합니다. 설정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라는 이유는 다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