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긱스님이 재미있는 발제를 하셨군요. 인간이 음악을 향유하는 이유.

사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뭔고하니 다른 발제에서도 여러번 나왔지만 '인간의 유니크함'을 말하는 지표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포함하는 예술이니까요.

먼저 짚고 넘어갈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창작은 유니크함의 결과이지 그 증거는 아니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 유니크 하므로 예술 창작이 가능하다'
는 것이지
' 예술 창작이 가능하므로 유니크하다'
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게, 예술의 창작과 향유(정확히는 감상)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거기에 하나 더하면 비평도 들어가지요.
이 세가지는 예술이라는 분야의 존재론적 지위를 메기는데 너무나도 커다란 몫을 담당하고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그것은 진짜 예술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피해갈 수 없게 만듭니다. (현대 미술을 설명하는데 너무나도 어렵고 긴 논문, 최소한 교양 다이제스트라도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해 성공적으로 답하는가 마는가는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 (참고로 말하면 대부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예술 향유의 목적'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하면 인간의 정서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수많은 대답이 있어 왔지만 '인간은 왜 특정 환경에서 선호할만한 모종의 정서를 갖는가?'라는 물음에는 아직까지 그 어떤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의 예술 철학이나 미학에서는 이 물음을 '수학에서 0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갖는것'처럼, 물을 필요가 없는 대전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 물음에 대답 하려 드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 이유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적절한 반성을 해 보면 그러한 정서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 가능하다'는, 버트란드 러셀이 정의한, 논리학에서의 '명제의 정의'를 받아 들이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거기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머리 좋은 사람들도 그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질문에 제가 대답할 재주는 없죠.)

저는 여기서 중점을
'인간이 최초의 예술을 행한 동기와, 그것을 인식한 때는 언제인가?'
라는 물음에 두려고 합니다.

다분히 고고학적일 수도 있는 물음입니다만, 전 역사에 문외한이고 여기서 그 시기가 몇만년전이다 하는 숫자는 중요치 않습니다.

일반적 견해는 최초 예술인 가무를 즐기는 과정이 사냥의 시뮬레이션이었고 그 안에서 체력을 키우고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의식속에서 자신감과 사기를 증강 시켜며 의식의 말미에 모의 사냥 대상을 잡는 행위등을 함으로서 훈련까지 겸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으로 나뉘었으며 전자가 사냥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고 사회형성에서 우위를 차지 하였다는 설명입니다. 한마디로 '예술은 필요에 의해 발생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 견해는 유목과 수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온 지극히 서구중심적인 해석이며 수렵 단계를 거의 단번에 건너뛰다 시피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농경으로 접어든 동남아의 그것은 적절히 설명해 내지 못합니다.

어찌 되었든간에 이러저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답하지 못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예술 작품의 창조와 향유는 별개의 문제임을 전제하면서) 예술에 대한 향유, 혹은 감상은 선험적인 것인가, 경험적인 것인가?'
라는 겁니다. 덧붙이면, 그 예술이란 것이 보편성을 득하는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향유시에 '인간의 정서에 모종의 바람직한 감정을 유발 시키는 것'이면 됩니다. (한마디로 베토벤인지 메탈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적어도 이 논의에서는 말입니다.)

먼저, 선험적이라고 보면 설명되는 것들(즉, 경험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들):
1. 음악이라고는 처음 듣는 아이나 강아지들도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신체를 동원하여 그 리듬을 타기 위해 노력합니다.
2. 어떤 예술작품(보통, 초현실 주의 회화나 조각, 혹은 고전주의, 고딕 양식의 건축.)의 경우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이 없는 갓난아이들 조차도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하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3. 시대와 문화 차이에 상관없이 특정 예술 작품들은 인간에게 경이와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4. 인간은 효율적 공간보다 감동적 공간을 더 선호 합니다. (적어도, 자신이 거기서 평생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5. 특정 자연현상등에 대해 겪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도 (최초임에도 불구하고)그것을 단지 지각 하는 것 만으로도 비슷한 정서를 갖습니다. (대체로 장엄함, 경이로움, 경건함.)

등등...

설명이 안되는 것들.(그러나 경험론으로는 설명이 가능한 것들.):
1. 분야를 막론하고 그 예술 분야에 대해 정보를 더 많이 가지는 등의 훈련으로 예술품의 깊이를 더 잘, 그리고 정확히 알게 됩니다.
2. 감상 능력은 종종 창조능력의 발견으로 이어 집니다.
3. 선험적으로 지각하는 예술들간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4.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 받을 경우 특정 분야의 예술품에 대해 아무런 정서를 갖지 않습니다.
5. 특정 예술 분야가 존재치 않는 문화-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조소'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가 그 분야를 접했을 경우도 예술 작품을 접할 경우의 정서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등등...

현재로서는 예술의 창조와 달리 감상은 선험적인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든 예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인데, 감상 능력을 선험적인 것이라고 간주 하지 않을 경우 예술 향유의 목적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는 경험론을 주장하는 학자건 선험론을 주장하는 학자건간에 '인간은 어찌 되었든 예술작품, 더 정확히는 미적 대상을 향유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예술 작품과 미적 대상은 다른 것입니다.)

이는 분석 미학자건 실험 미학자건, 해체 미학자건간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적 대상에 대해 무감동적인 인간'은 단 한명도 관찰된 적이 없어서 입니다. (다분히 경험적인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리라 믿는 학자는 없는것 같더군요. 이는 근본적으로 '미적 대상'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며 개인 정서에 의존한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

그 지각과 향유가 경험적이라면 훈련 없이는 그 대상에 대해 '정서'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정말로 선험적이라면 도대체 '언제부터' 선험적이었느냐 하는 겁니다. 즉, 인간이 목적없이 미적 대상에 대해 정서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정을 하지만 그 욕구는 생존 욕구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욕구의 지위가 생존욕 보다 저열하거나 양적으로 낮은 위치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지요.
생존의 어려움 속에서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행위는 사실 생물의 존재 본성에 크게 어긋납니다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필요하건 하지 않건, 배가 고프건 고프지 않건 예술 행위를 하며 그 향유도 했습니다. (비록 중세나 파시즘 체제 하에서 예술이 권력의 시녀가 되는 등의 암울한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서도 개인들은 그런 것들을 향유하려 노력 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예술 향유 욕구의 선험성을 말하는 가장 좋은 증거지요. 시대가 어려울 수록 그런 노력은 더했으니까요. 요즘에는 그것들에 스포츠, 스크린, 섹스가 침투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말이 길었군요. 그러니까 결론을 내려 보면 이런 겁니다.

'이유 없이 예술을 향유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고 말하려면 예술 향유의 선험성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예술 향유가 장차 미래에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즐긴다'
는 개념이 가능하려 해도 선험성이 필요해 집니다.

왜냐하면 후건 명제가 성립 하려면 최초로 예술을 즐기기 전부터 그 사실을 '본성적'으로 알고 있어야만 후일을 위해 당장의 '비생산적 에너지 투여'를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데 후자가 가능 하려면 그러한 정보를 물리적인 체계안에, 가령 유전자 안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만, 그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어떠한 문화권에서도 예술이라 불릴만한 행위가 존재 했으며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과, 어느정도 뇌 용적을 가진 동물들도 '지각'이라는 측면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볼때 만약 그 정보가 유전자 안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이전, 아주 오래전 부터 존재 해 왔음이 틀림 없습니다.

예술의 '창조'는 언감 생심, 꿈도 꾸지 못할 그 시절부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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