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D&D'에 나오는 직업들 중에서 드루이드를 가장 좋아합니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말하자면, 드루이드
때문에 'D&D'를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늑대나 표범 같은 동물들과 함께 살고 싸우는 점이 매력적
이라서요. (그래서 'AD&D'보다 동물 친구 피트가 생긴 'D&D 3'을 더 좋아합니다. 'AD&D'도 동물 소환하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요.)

그래서 <발더스 게이트 2>에서도 메인 캐릭터를 드루이드(동물 소환 중심의 토템 키트)로 정했습니다. 그
리고 열심히 진행해서 챕터 2의 중반까지 도달했죠. 그런데 한창 진행하고 나니까 한 가지 의문이 들더군
요. '과연 내 캐릭터는 얼마나 비중이 있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판타지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역할이 나뉩니다. 전사가 공격이나 방어를 맡고, 도둑은 함정
을 탐지하거나 문을 따거나 뒷치기를 하고, 마법사는 일행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주문을 준비하죠. 그러
다 보니 상대적으로 메인 캐릭터(드루이드)보다는 전사, 도둑, 마법사 쪽에 더 손길이 많이 갑니다. 썬드라
는 드루이드에게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드루이드로서가 아니라 전사를 대체할 워울프로 변신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거 가끔씩은 메인 캐릭터가 도둑인지 드루이드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물론 드루이드도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합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고, 동물을 불러서 방패 대용으로도 쓰고….
특히 동물들을 잘만 불러내면 거의 피해없이 적들과 싸울 수 있죠. 하지만 어쩐지 다른 직업들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통 판타지 작품들을 보면 드루이드가 별로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데,
게임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저 동물 퀘스트를 위한 배경으로만 존재한다고 할까요.

저는 실제 RPG에서 드루이드가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잘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플레이를 잘못하고 있거
나 괜한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드루이드가 인상적으로 나온 판타지 작품이 없다는 걸 보면
확실히 직업의 무게감이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역시 주역은 전사, 도둑, 마법사, 성직자 정도. (드루이드도
성직자 계열이긴 합니다만, 자연에 더 특화되어 있으니 역할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애착이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드루이드가 나오는 판타지 작품이 없으니 그만큼 애착이 가는군
요.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필사적인 느낌이랄까요. 'D&D'라는 멋진 세계관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입니
다. 소설 같은 작품으로 즐기지 못하고, 게임으로만 즐긴다는 게 아쉽습니다만, 어쩔 수 없죠. 마이너한 걸
좋아하는 게 죄이니.

어쨌거나 오늘도 실바누스의 가호를 빌며 표범을 데리고 트롤을 향해 뛰어갑니다. (그러다가 뒤로 빠져서
상처 치료나 담당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