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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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두 거목, DJ 와 YS . 마지막 남은 거목까지 쓰러졌군요.
YS 는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와 맞서 싸운 걸출한 야당지도자였죠. 뚝심도 패기도 있고, 돌파력도 탁월했습니다. 후배 정치인들을 조직하고 수족처럼 부리는 보스감각도 뛰어났구요.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실행한 개혁은 군부를 봉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회를 척결하고 군 장성들을 짤라버렸죠. YS 이후에 군부의 압력에서 자유로와진 민선정권이 안정적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업적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집권을 위해서 군부정당이었던 민정당과 야당이 통합해서 민주화를 위해서 싸워왔던 야당 정치인까지 오염(?) 시키는 탁월한 공로가 컸습니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도 민주화를 위해서 싸워온 야당정치인과 전두환때 군부정권에 부역한 정치인들이 섞어지다 보니 모두 군부정권 정치인들과 닮게 되어버린거죠. 그래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야권 지도자들이 민주화를 부정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식의 발언을 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많이 벌어지게 되죠.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힘썼습니다만, 이상하게 보수언론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그랬는지 대북강경책으로 달려가더군요. 그 다음 집권한 DJ 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국민들의 환호를 받자, 재임초 북한 교류, 지원 정책을 했던 YS 는 퇴임 이후에도 DJ 의 북한 정책에 끊임없이 험담합니다. 참 안타깝더군요.
DJ 가 민주 진보진영에서 끝까지 지도자로 남은 반면에, YS 는 보수 진영에서도 웃음거리로 취급하게 됩니다. DJ 와의 라이벌 갈등이 너무 심한 나머지 거의 광기어린 수준으로 DJ 에게 모진 말을 뱉지요. 비판과 독설도 정도가 지나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DJ 에 대한 편집증적인 저주로 스스로를 깍아내린것이지요. DJ 가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의 맹목적인 질투심은 극을 달했습니다. 아무리 정적이라도 한국을 빛내는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사감을 잠시 접어두고 축하해줘야 할 일인데, 마치 초등학생 레벨로 떨어진 그를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지도자의 정신적인 퇴행....
처음에는 그가 마냥 미웠지만, 생각해보니 이해할 부분도 있다 싶습니다. YS 는 자기가 업적에 비해 DJ 보다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참을수 없을 만큼 억울했나 봅니다. 그나마 잘해왔던 국정을 IMF 한방으로 망국대통령으로 찍히게 되었으니 억장이 무너졌겠죠. 그래서 그가 낸 자서전은 자화자찬으로 도배되었고, 그의 망가진 자존심꽈 긍지의 단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자서전은 그가 쌓아올린 독설의 양만큼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죠. 재미있는 것은 자서전으로 그나마 있는 평판까지 날린 대통령이 또 하나 있다는 겁니다. MB 라고 ...
망가지는 YS 는 DJ 에 끊임없는 독설을 쏟아내면서 많은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내놓습니다. 언론은 무척 행복했겠죠. 이런 살아있는 이슈메이커이자 트러블 메이커가 알아서 자기를 개그의 소재로 전락시키면서 기사거리를 만들어 주니 참 이뻣겠죠. 그리고 그의 충실한 심복인 박중웅 의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사람은 덤 앤 더머로 한때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지요. YS 가 치매걸렸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DJ 에 대한 그의 극심한 열등감과 미움은 DJ 가 타계하기 직전에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의 죽음이 주는 무게에 그의 망가져가는 이성이 조금이나마 치유된 것일까요. 의식이 혼미한 DJ 를 본 순간 아마도 충격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이후로 그 말많던 YS 는 입을 닫아 버리고 DJ 에 대해서 일절 말을 하지 않더군요. 그렇게 몇년을 조용하게 살았고 세간에서 YS 는 잊혀져 갑니다. 그러다 오늘 갑자기 YS 라는 단어가 뜨길래 봤더니 왠걸....
그는 그렇게 갔습니다. 현대사의 거목이었습니다. 그는 빛과 그림자가 그의 숙적이었던 박정희 만큼 분명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그가 싸웠던 박정희와 공화당은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했고, 그가 키운 후배들은 보수정권 새누리당의 든든한 인재풀이 되어 신 공안정권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싸워온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요.
박정희와 싸워온 YS , 이제 적장의 딸이 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릅니다. 참으로 역사는 재미있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대가 바로 희망이다.
별세 소식을 듣고 난 반응이 양편으로 갈리더군요. 물론 어느 사람에게든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은 김영삼만큼 그게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군부 시절의 민주화 희망이었다는 평가도 있고,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나라 살림을 거덜냈다는 저주도 있고…. 사실 둘 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요즘처럼 전체주의 광기가 휘몰아치는 시점에서는 (군부 시절의 저항이) 살짝 그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비록 작금의 수구 꼴통을 만든 장본인이라도.
그리고 사족으로 느낀 점은 언제나 역사적 행위와 인물은 다양하다는 겁니다. 김영삼이 완전한 민주화 투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자기 욕심만 챙긴 사람도 아니었던 것처럼요. 그런데 그런 다양성을 말살하려는 지금 정부 윗대가리들은 뭐….
새시대를 연 사람중에 하나이지만... 민주주의의 회복을 방해했고, 민족사 청산을 방해한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전 그중에서 이 분 제일 싫었던 때가 MB지지한다 발언했을 때라 허허...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여파는 너무도 크군요.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결국에는 큰 실수를 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치인들의 음과 양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YS가 대통령이 된 후, 입이 닳도록 떠든 테마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1. "갱~제를 알아야 한다" + 2. "세계화"
실은 포인트를 잘못 잡지 않았습니다 - 백 번 옳은 말이었죠.
문제는 YS라는 인물은 평생 경제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세계화에 대해서도 피상적인 단어만 알았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몰랐다는 겁니다.
심지어 신군부의 전두환보다도 경제를 몰랐고, 노태우보다도 세계화를 잘 몰랐다고 여깁니다.
YS가 집권하였을 때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실은 IMF 사태의 정의는 단순합니다 - 현금 흐름을 전혀 살피지 않고 살다가,
일시적으로 현금이 부족한 판에 빛을 상환하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는데도 갚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임시 변통으로 값비싼 이자로 돈 빌려주는 은행을 이용하여 갑작스러운 파산을 막은 것이었죠.
DJ는 YS와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 DJ는 본래 사업을 크게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YS가 거부의 아들로 태어나 별다른 돈 걱정 없이 청년시절부터 정치에 뛰어든 것에 반하여,
DJ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맨주먹으로 장사하고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DJ는 상당히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되었던 시점에서 정계에 뜻을 두어 정치에 입문하였죠.
이후 수 십 년 한국 정치판에서 뒹굴렀지만, DJ는 본래 사업가 출신이고 YS는 본래 부자집 도련님이었죠.
YS의 이런 면모가 IMF 때 결정적인 패착을 불러왔습니다 - YS는 외화 현금 흐름의 중요성을 잘 몰랐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가가 현금을 잘 간수하지 못해서 부도가 나기까지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실은 IMF 사태 이전에 훨씬 더 심각하게 한국이 외화 현금 부족으로 코너에 몰렸던 때가 있었는데,
OPEC 결성에 의한 석유파동이 처음 터졌을 때였습니다 - 느닷없이 석유값이 5배 이상 뛰니 답이 없었고,
당시 박통은 매일같이 거의 실시간으로 외환 보유고를 챙겼다고 합니다. 매일 그 건으로 관료들을 쪼았죠.
이에 반해 YS는 나라가 파국으로 치닫는데 그냥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죠.
한국 정치인들은 IMF 사태가 터지고 거의 20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쓰는 정책에만 관심이 있고 돈을 거두는 정책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경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제 1원칙도 모릅니다 -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초인데,
무려 국가를 운영하는 국회의원들이 돈을 쓰는 예산에만 관심이 있고 국가 수입에는 아무 관심 없습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금 흐름에 대해 눈꼽만큼이라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 국회에 있기는 하나 싶습니다.
IMF라는 대파국 이후 대략 20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정치인들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겁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싸움만 잘하지 여전히 "경제"를 잘 모르고, 수입과 지출의 균형조차 신경쓰지 않습니다.
YS는 그런 한국 정치인들의 대장 겪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용감하였고, 투사였고, 목소리 컸고, 그렇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거물로 정치판에서 오랫 동안 활약했죠.
그런데, 그런 국가의 리더급 인사가, 무려 경제 원리를 전혀 몰랐습니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라는 작은 가정에서도 적용되는 아주 단순한 경제 원칙,
현금 흐름을 항상 살펴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행동하고 돈을 써야 한다는 기본도 몰랐습니다.
평생 그런 거 하나도 몰라도 한국의 정치판에서 설치고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각고의 노력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었죠.
입으로 "(이제부터라도)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다닌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체질적으로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한국 정치판에서 그런 체질이 굳어진 사람이었거든요.
IMF 사태 이후 20 년 동안 여전히 한국 정치가들은 수입 지출 균형의 중요성조차 잘 모릅니다.
그러니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쳐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고,
심지어 그 반대 당은 무상 급식으로 재미보고 이제 무상 보육에 무상 의료까지 떠들어대는 것이죠.
그거 다 좋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쓸지만 떠들뿐 어떻게 거두어 들일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심지어 재정 균형에 대해서는 말도 못꺼내게 하고 입을 봉하려고 듭니다 - 무식의 극치라 할 수 있죠.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인들이고, YS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로부터 눈꼽만큼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YS... "투사"였고, "정치인"으로 오래 활약한 노 정객이었지만,
애당초 "경제를 몰라도 목소리만 크면 되는 한국의 정치판"에서나 통할 수 있었던 사람...
YS가 가지고 있었던 뚜렷한 한계, 그 바보같은 면이 여전히 한국 정치인들 대부분에게 적용 가능하니,
IMF라는 아픔을 겪고도 여전히 정치인들이 발전하지 않은 것이 더 한스러울 뿐입니다.
사실관계는 정확히 해야 하겠죠.
박근혜는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박근혜는 증세도 안하지만 복지도 안하고 있습니다. MB 때 깍아준 법인세, 아직까지 계속 깍아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민세, 각종 범칙금, 담배값을 올려서 사실상 서민증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문재인은 증세 있는 복지를 주장했습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까지 말하지만 법인세 인상 또한 주장했습니다. 깍아준 법인세만 원래대로 돌려도 년 50조가 들어옵니다. 어떻게 거둘지에 대해서 대안이 있는 겁니다. 복지하겠다고 큰소리만 뻥뻥치고 부자 증세 대신 서민들만 쥐어짜는 박근혜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복지정책 재원 마련에 대안이 있는 쪽과 그냥 아껴서 복지하면 된다고 주먹구구 하는 쪽과는 같이 도맷금으로 묶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그의 무능과 허세로 인해 외환위기라는 재앙이 일어났고 저는 그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저 사람을 전두환 다음으로 증오합니다. 만일 그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했다면 증오까지는 하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모든 책임을 어처구니없게도 DJ탓이라고 돌렸죠.
개인적으로는 김영삼을 추모할 일말의 마음도 없고, 오히려 잘 죽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개인적으론 공과 과라는 게 무슨 가계부처럼 정산해 보니 공이 과를 덮었더라 ㅇㅋ 해도 되는 종류의 가치는 아니라고 보는 입장에서, 잘 죽었다고까지 하긴 뭣 해도 죽거나 말거나 수준은 된달까, 솔직히 쥐박이와 닭머리 아니었으면 SNS고 뉴스고 이렇게 후끈후끈할까 싶네요.
김영삼... 김영삼만큼 이것만 안 했으면 좋을텐데... 했던 사람도 없었죠. 나무가 크면 큰 만큼 그림자도 큰 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그래도 군부를 숙청한것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탈린 시절처럼 마구 남산으로 끌고 갈수도 없으니 그정도면 훌륭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