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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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에 1편 DVD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는데, 당시 T-800의 집요함과 잔인함은 딱 호러물에 등장하는 살인마 그 자체인 듯하더군요. 주인공의 친구와 가족은 물론 동반자까지 죽인데다가 경찰서에서 중화기로 경관들을 학살하는 장면도 단순 액션으로 보기에는 몸서리쳐질 정도입니다. (실제였다면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히고도 남았을 정도...)
2편은 또 1편에서의 상황을 비틀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1편의 잔혹한 기계 살인마가 불살주의의 아군이 되고, 사라를 도와주러 온 것 같은 미래에서 온 존재가 알고보니 1편을 능가하는 살인기계였고, 쫓기면서 당하기만 하던 여주인공이 목숨걸고 덤비면서 아들을 끝까지 지키려하는 '엄마'로 변신한 모습 등이 그렇죠.
그리고 워낙 1, 2편이 인상직이어서 3, 4편은 영화관에서 한 번 본 이후론 다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왠지 '이건 터미네이터가 아니다'라는 인상이 느껴져서요. 그나마 제니시스는 이번엔 그나마 신경 좀 썼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반응들을 보니 '이걸 봐야되나'하는 고민이 생깁니다. 감독이나 제작사 측에서는 카메론 감독이 1, 2편에서 그저 단순히 액션만 추구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줬을텐데도 그걸 잘 모르는 인상을 주는 것 같더군요.
1편과 2편은 사실 거의 동일한 이야기 구성입니다.
1편의 사라와 2편의 존은 모두 미래로부터 온 경호원이자 메신저인 카일과 t800을 만나기 전엔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암살자들 덕에 오히려 각성한다는 구조를 갖고 있죠.
3편부터가 얘기가 달라지는데 3편을 관통하는 중심 이야기는 운명이 바뀔 수 있는가입니다.
전쟁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전쟁 자체는 운명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게 중심 주제가 되죠.
스토리 자체가 주인공의 각성과 성장과 연결되던 전작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미래의 간섭이 오히려 변화를 촉진시켜 미래를 규정하게 된다는 타임 패러독스 자체의 특수성 자체도 여기서 깨지게 되죠
4편은 스스로가 기계인줄 인식 못하는 암살자라는......SF로 보자면 약간 진부하긴 해도 나름 쓸만한 소재이긴 하지만 사실 이걸 "터미네이터"라고 불러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2편까지 터미네이터의 핵심 주제는 다 써먹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터미네이터를 그냥 냡뒀으면 하는 바람인데 돈 되는 프렌차이즈를 그냥 냅둘리가 없죠
제네시스가 1편부터 이어진 기본 줄기 자체를 갈아 엎겠다는 것도 결국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더이상은 노답이니 갈아 엎겠단 걸로 보이는데 타임리프물이라 가능함 거겠죠.
일례로 얼마전엔 X맨 시리즈가 시간 여행으로.....전작이 싸지른 똥을 잘처리한 경력이 있으니까요.
근데 X맨은 본래 타임 리프물이 아니라서 그런 리셋이 신선했고 또 작품 자체가 성공적이었다면 제네시스는 솔직히 그리 기대가 안 됐습니다
게다가 예고편에서 너무 많은걸 까발리기도 해서요
3 4편 모두 극장 가서 보고너무 실망한탓에 제네시스는 극장 가서 볼 엄두가 안 남
사실 터미네이터1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죠. 묵시록적 미래가 다가오기 전의 시점으로 사람이 타임루프하지만 그 사람의 목적은 묵시록적 미래를 막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묵시록의 미래를 너머 다시 한번의 반전을 앞둔 기계가 자신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타임루프를 하고 인간은 그 변화를 막는 것에 치중합니다.
그렇다보니 터미네이터1은 평범한 삶을 살던 사라코너가 터미네이터로부터 살해당할 위기를 겪고 그 위기에서 벗어나는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음에도 막상 묵시록적인 미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특이한 이야기가 됩니다.
반면에 터미네이터2는 좀 더 적극적으로 미래를 바꾸려고 하죠.
터미네이터1의 결말이 미래를 바꾸려는 행위가 결국 언젠가 찾아올 희망의 미래(존코너라는 전사의 탄생)를 만드는 그리스비극의 역전적 재해석이라면, 터미네이터2는 운명이나 미래 자체가 타임루프를 무너뜨리는 구조입니다.
사실 그 이야기 자체가 미래의 전쟁을 막는 것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전의 공포적인 느낌보다는 좀 더 활달하고 밝은 느낌이 강할 수 밖에 없죠. 미래의 위협이 1편보다 강력해졌지만, 미래에서의 조력자도 훨씬 강력해졌을 뿐더러 현재의 중심인물들도 이전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게 준비되어있으니까요.
사실 2편은 3편이 나오고 4편에 이어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미 타임루프가 아니죠. 고리를 깨어버리는 내용이니까요. 1편의 경우에 메신저는 미래의 구원자를 낳고 미래의 킬러는 미래의 위협을 낳는 절대적이기까지한 순환구조를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1편과 2편의 차이는 참 재밌습니다.
한편으로 카일리스는 꽤 매력적인 입장의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인 모습만 보면 미래버전의 존 맥클레인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상대해야할 적은 좀 더 절망적이긴 해도)... 한편으로 미래에 대한 암울함과 희망을 동시에 간직한 인물이자 끝까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죠.
사라코너를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자신의 역할 말이죠.
보통 2편을 최고로 치겠지만, 개인적으론 1편을 좀 더 좋아합니다. 거의 이길 가망없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을 홀로 목숨 던져가며 상대했던 카일이 시리즈 중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져서요.
욕많이 먹은 3편은 개인적으론 그냥 저냥 괜찮게 봤습니다. 전편들 보다는 확실히 떨어지지만..., 그 후 두 편은 아직 보질 못했는데 요즘은 그닥 관심이 가지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