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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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만큼은 매일 찔끔찔끔 읽기 보다 주말을 이용해서 한 호흡에 읽는게 좋은데 무엇보다 러시아식 이름이 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읽었던 경험을 토대로 주말에 즐겁게 읽은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소개합니다.
꽤 충격적인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은 기억은 데이빗 린치의 명불허전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몽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솔직히 너무 오래되어 지금 당장 스토리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이 TV 시리즈가 기억에 남는 건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 이상한 개그,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는 몽환적인 연출,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 함이 어린 제게는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스릴러로 시작해서 판타지, 유머, 역사 소설을 버무려 놓은 듯한 이 책에 대한 설명은 번역자의 작품 해설에 잘 드러납니다.
해석의 관점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텍스트가 풍부하다는 방증이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환상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고, 초기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를 풍자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 읽을 수 있으며 작가와 소설, 나아가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메타 텍스트로 볼 수도 있고, 앞에서 말한 대로 선과 악, 예수와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종교적인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을 모두 고려할 때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소비에트 정권 아래 통제되고 무능력한 모스크바 시민의 생활을 풍자한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2차세계대전 직후 점령지 폴란드인과 종전 후 독일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유머로 드러내는 '양철북'은 상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반성을 하자면, 벌거지님의 넘버 원 판타지 소설인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해 감히 요런 감상평을 남겼다는 겁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와 독일간의 관계 정도만 알고 있어서 솔직히 100%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갑자기 희곡이 등장한다거나 비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기대했던 만큼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CS 관련 서적이 아닌 문학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당시에 '양철북'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당연합니다. 그런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꽤나 심각한 글만 찾아 읽으려던 허영심에 따라 책을 골라 읽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다독하시는 분들이 더욱 존경스럽고 그런 분들이 책을 추천해주시면 고마울 수 밖에 없지요.
PS. 벌거지님 뿐만 아니라 joysf.com에서 추천 받아 읽은 좋은 책은 매우 많습니다. '러브 크래프트'라는 작가의 작품을 joysf.com 아니면 어디서 추천 받겠습니까?
답변 고맙습니다. '양철북'과 '트윈 픽스', 적어도 헛다리는 짚지 않았네요. 솔직히 말씀드려 '그로테스크한 풍자와 예술적인 느낌이 생생히 살아 있는' 작품이 어떤 건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 말씀해주신 작가들이 쓴 글을 접하게 되면 이번 '양철북'처럼 '아하!'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데이빗 린치! '블루 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좋은데 이 분이 만든 영화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로스트 하이웨이'입니다. 소위 요즘 말하는 감독이 '제대로 약 빨고 만든 것 같은 분위기의' 영화죠. 역시나 영화를 일부러 난해하게 만드는 감독이라 전하는 내용을 모두 흡수했을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분위기 하나는 끝내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사랑하는 20세기말을 대표하는 락 밴드들이 총출동해서 영화를 훨씬 더 암울하게 만들거든요.
커트 보네거트에 대해서 검색해봤는데 의외인 점이 클라크, 아시모프와 더불어 순수 SF 작가라는 평이 있네요. https://namu.wiki/w/%EC%BB%A4%ED%8A%B8%20%EB%B3%B4%EB%84%A4%EA%B1%B0%ED%8A%B8 가장 먼저 읽어볼만한 작품 추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단 작품은 <타이탄의 마녀들>, <내 영혼의 밤>이었습니다.
<제 5 도살장> 다음으로 비교적 높게 평가되는 작품이 <고양이 요람>, <제일버드>인데,
저는 다른 작품이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그로테스크한 풍자의 극점을 보이는 작품이라면, <챔피온들의 아침식사>와 <갈라파고스>였습니다.
커트 보네거트가 가장 자유롭게 써내려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챔피온들의 아침식사>였고,
<갈라파고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황에서 지식의 역할이 얼마나 무력한가 풍자하고 있는 대목이
지금까지 제가 평생 읽어 온 거의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이 약간 변태스러운 면이 있어서...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이 방면으로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츠츠이 야스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파프리카>, <나의 할아버지>는 비교적 정상적인 소설인데 반하여,
<소설 일본문단>, <다다노 교수의 반란>, 단편집 <인간 동물원>, <웃지마(=개조심)>은 상당히 엽기적입니다.
다만 이런 작품들은 그로테스크가 너무 전면에 나서는 바람에 아예 엽기적이어서...읽기 불편합니다.
마르셀 에메는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에서 주인공이 결국에는 벽에 갖히게 된다는 결말을 가지고
대단히 시적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로 장식했습니다 - 엽기적인 아이디어가 예술적인 대미로 인해 확 살아났죠.
츠츠이 야스타가는 <살려주소서>라는 작품에서 시간이 정지된 상황에서 혼자 돌아다니게 된 사나이를 묘사했는데,
온갖 짓을 하면서 까불고는 큰 길에서 퍼져 자다가 아주 느리게 시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필이면 길에서 잠을 자던 주인공 위로 대형 트럭이 올라와 움직이고 있다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마르셀 에메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아이디어를 내세우는 것이라던지 중간 전개 과정이 매우 유사한데,
아쉽게도 마지막 결말을 읽고 나면 "너무 엽기적이다"라는 불쾌감이 뇌리에 콱 박히게 됩니다.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요리하여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이... 진짜 하늘이 내린 천품이라는 얘기죠.
실은...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문예출판사 재출간 번역본에 수록된 작품 해설과
커트 보네거트의 <갈라파고스> 아이필드 재출간 번역본에 수록된 작품 해설은 제가 썼던 바 있습니다.
두 책 모두 그로테스크한 풍자와 유머 속에 삶의 애수를 담아내는 것을 장기로 하는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딴은 제가 이러한 유형의 작품을 상당히 선호한다는 증거가 되겠죠.
한국 작가 중에서 "풍자와 유머 속에 삶의 애수를 담아내기"의 1인자라면,
몇 년 전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를 꼽을 수 있습니다 -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작가였죠.
하지만 이문구의 작품들은 풍자와 유머와 해학과 애수가 가득하지만, 적어도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불가꼬프와 보네거트, 그라스의 작품들을 이문구와 동일 선상에서 함께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벌거지님이 일본쪽의 그로테스크 소설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에서 좀 공감하는 것이...
일본작품을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지만, 좁은 견식으로 경험한 작품들의 전반적인 인상은 '그로테스크'보다는 '엽기'라는 단어가 좀 더 들어맞는 느낌이 있습니다 (웃음)
-애초에 단어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분류법이 적용된 것이지만 말이죠.
유럽 쪽이 '정통 호러'라면 일본 쪽은 '슬래셔 호러'에 가까운 작품이 많다는 사적인 인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경험한 일본쪽 작품이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다보니,
그쪽 시장에서는 그것은 그것대로 잘 쓰여진 것인가...라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새로운 독서 리스트가 우후죽순으로 뻗어나갑니다. 최소한 '제 5도살장'과 '갈라파고스', 이문구 선생의 작품은 바로 구해서 읽어볼 예정입니다. 예술성에 대한 차고 넘침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네요. 선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천재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한번 놀랍니다. 컨설턴트시면서 문학 작품 해설까지 쓰셨군요. 벌거지님께서 글을 잘 쓰시는 이유, 드디어 알겠네요.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데 벌거지님 통해 다시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제목은 <거장과 마르가리타>지만, 사실상 제일 입체적이고 주연격인 인물은 볼란드가 아닌가 합니다. 사건을 제시하고 해결하고 다양하게 활약하는 인물이 바로 볼란드니까요. 물론 악마나 나오면, 당연히 신도 실과 바늘처럼 따라와야 하고, 악마와 신 가운데 끼인 인간도 등장해야죠. 그런 점에서 마르가리타와 예수도 중요하지만, 역시 볼란드만큼 돋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기실 이건 <실낙원>의 사탄이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도 그렇고요. 인간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악마는 서구 문학에서 꽤나 재미나게 나오는 것 같아요. 뭐, 신이 워낙 만능캐(…)이고, 인간은 휘둘리기 마련이니까 자연히 악마가 돋보이기 마련이지만. 작가가 좀 더 약을 빨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부분도 있는데, 베헤모스가 의외로 초라하게 나오는지라. 하긴 메피스토도 푸들이 되고, <멋진 징조들>에서는 지옥견도 동네 똥개로 나오는 마당이니까요, 뭐.
커트 보네거트는 풍자와 코믹과 SF를 결합한 양반이죠. 순수 SF라는 설명은 좀 아리송하지만, 거기에 제일 부합하는 거라면 <고양이 요람>일 겁니다. 과학자의 오만으로 지구가 몽땅 얼어버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죠. 물론 보네거트 소설답게 과학적인 엄정함보다는 풍자적인 색깔이 짙습니다. <갈라파고스>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데, 이쪽은 생명체 변화를 다룹니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시제가 상당히 복잡하고 산만한지라 선형적인 플롯은 약하죠. 그만큼 작가가 정신 나갔다는 듯한 느낌은 강렬해요. 처음 읽으면 뭔 소리인지 좀 헛갈릴 수도 있고요. <제5도살장>은 제일 참담하고 암울한데, 저 두 책보다 SF라는 이미지는 약합니다. 외계인도 등장하지만, 드레스덴 폭격의 참상을 회고하는 쪽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보네거트도 제임스 발라드처럼 종말 문학 작가라고 불릴 법하죠. 다만, 워낙 정신 산만한 책을 많이 써서 그런지 종말 문학 작가로 봐주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
미하일 불가꼬프와 귄터 그라스는 그로테스크한 유머의 대가라고 할 수 있죠.
일그러진 세상, 일그러진 사회를 작가 마음대로 희화화하고 신나게 풍자하고 있면서도,
나름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예술적인 감성도 잃지 않기 때문에... 결말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로테스크한 성격의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쓰여진 글은 자칫하면 마구잡이의 난장판이 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써도 추하게 느껴지는 볼품없는 쓰레기같은 작품이 되기 쉽죠.
한국 작가 중에도 그로테스크한 글을 쓴 사람이 그 동안 은근히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경우에도 제법 초현실적이고,
최인호의 <타인의 방>, <돌의 초상>, 이문열의 <두 겹의 노래>와 같이 이 작가들도 젊을 때는
다양한 소재와 분위기를 갖는 초현실주의 기법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단편을 제법 많이 썼습니다.
이외수는 <칼>, <들개>로 시작하여 <괴물>에 이르기까지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주력하기도 했죠.
하지만... 불가꼬프와 그라스가 거둔 성취에 비하자면, 이들 작가들은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미하일 불가꼬프와 귄터 그라스와 같은 작가가 진정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되는 점은,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내세우지만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겁니다.
이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 하늘이 내린 작가의 천품에 의한 것이죠.
그래서... 일반적인 글보다 그로테스크한 글은 좋은 작품을 써내기에 훨씬 더 어렵다고 봅니다.
심지어 불가꼬프가 쓴 작품의 경우에도...
중기에 쓴 중편 3부작 중 <개의 심장>은 더 그로테스크하고, <비운의 달걀>은 유머가 더 강합니다.
둘 다 좋은 작품이지만 작가를 대표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비하면 균형이 덜 잡혀 있는 편이고,
때문에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그렇습니다.
귄터 그라스 역시 평생 쉬지 않고 많은 글을 썼지만 장편 <넙치> 정도가 뛰어난 레벨의 작품이고,
결국 청년 시절에 쓴 데뷔작 <양철북>에 필적하는 작품을 죽을 때까지 끝내 써내지 못하였습니다.
<트윈 픽스> 이야기를 하셨는데...
데이빗 린치는 본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영상의 대가였습니다.
그의 선배가 <브라질>의 테리 길리엄이고, 그의 뒤를 이은 후배가 <가위손>의 팀 버튼이라고 하겠죠.
이런 쪽의 예술적 감성은 다른 이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 타고 나야 가능하죠.
사족으로...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즐겨 사용했던 또 한 명의 대가로는, 단연 '커트 보네거트'를 들 수 있습니다.
커트 보네거트의 경우 예술적인 감수성은 불가꼬프나 그라스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만,
유머 감각은 오히려 더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책을 읽는 내내 키득대게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