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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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일본 경제의
위협을 반영한 미래 LA의 게이야 광고.]
1980년대까지 근미래
SF의 화두 중 하나는 일본 경제였습니다. 소니, 토요타, 니콘 등이 대표하는 일본 산업은 서구(미국)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죠. 2차 대전 시기에
두들겨 맞았던 전범 국가가 엄청나게 성장해 도리어 세계 시장을 지배하니까요. 일본인들이 알짜배기 토지를 대부분 매입했다거나, 보이지 않는 일본의
큰손이 돈줄을 쥔다거나, 언젠가 서구인들이 일본인 밑에서 종업원 취급이나 당할 거라는 우려가 떠돌았습니다. 덕분에 80년대 사이버펑크물의 길거리는
히라가나 네온사인이 장식했죠. <블레이드 러너> 같은 명작부터 <로보캅 3> 같은 졸작까지 이런 사상을 두루두루 반영했습니다.
다만, 1990년대가 지나면서 거품 경제가 꺼지기 시작합니다. 한때 서구 사회를 흔들었던 일본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어요. 여전히 강대국이자
선진국으로서, 또한 신비로운 동양이자 갖가지 문화 수출국으로 명성이 드높긴 합니다만. 예전보다 위상이 떨어진 게 사실이죠.
2000년대가 지나자,
일본 대신 또 다른 동양 대국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태양이 아니라 용입니다. 중국이 마침내 회생하여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때가 왔습니다.
러시아와 줄다리기도 하고, 미국와 불꽃도 튀깁니다. 유럽은 중국에 상대가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에요. 당연히 SF 창작물에도 중국의 강성한
이미지를 반영합니다만. 그 모습은 1980년대 일본과 사뭇 다릅니다. 사이버펑크에서 일본은 서구 사회를 돈줄로 잠식했습니다. 눈 째지고 키 작은
동양인들은 굉장히 위협적이었죠.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구 창작물들은 중국인들의 비위를 살살 맞춰줍니다. 덕분에 한국이나
북한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봅니다. 소설 <세계대전 Z>는 좀비 감염지가 중국이었지만, 영화판은 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게임
<크라이시스>의 적대 국가는 원래 중국이지만, 뜬금없이 북한이 튀어나오도록 수정했죠. 모든 SF 창작물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쩐지
중국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강하긴 합니다.
[중국 비위를 맞추려고,
이런 골 때리는 테크노 스릴러도 나왔습니다.]
똑같이 아시아 강대국이라도 80년대 일본과 밀레니엄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아마 일본과 중국의 산업 진출 방식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두 국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일본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며, 속과 겉이 달라 믿을 수 없고, 치밀하고 계산적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은 갈라파고스
경제라서 순환이 안 되고, 자기네 상품만 이용합니다. 반대로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자원, 땅덩이가 강점입니다. 비교적 폐쇄적인 사회이고, 비리나
부패도 많고, 낙후된 부분도 많아서 거래하기 꺼림칙합니다. 그래도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해서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죠. 즉, (서구
입장에서) 일본은 침략자에 가까운 이미지입니다. 쳐들어오기만 하고, 쳐들어갈 수 없어요. 허나 중국은 잠재력 있는 시장이자 기회입니다. 실제로
영화, 게임 분야는 중국 자본과 시장 덕분에 대작을 제작하거나 흥행에서 성공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러니 서구 근미래 SF물이 중국을 함부로
대하기가 껄끄러울 겁니다. 돈줄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물론 단순히 저런 이미지나 진출 방식 말고
다른 이유도 있을 겁니다. 경제에 문외한이라서 그저 수박겉핥기로 분석했을 수도 있죠. 뭐, 솔직히 경제 부문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블록버스터가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거나, 온라인 게임들이 중국 때문에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글쎄요, 저런 이유가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닐 듯합니다. <홈프론트>의 제작진이 중국을 건드리지 못해서
북한을 악당으로 설정했다는 말까지 나오니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만큼 근미래 SF물의 주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나오더라도 북한에 끼어서 덤핑으로 나오죠.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도 위상이 높아지긴 했는데, 그렇다고 주적으로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강렬한 편은
아니라서요. 과연 우리나라가 일본, 중국만큼 위상이 올라가면, 근미래 SF물에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미 '대중국'의 일개 지방으로 나온 작품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