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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23
1.프롤로그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수많은 대도시가 그러하듯 카이로의 아침은 매우 분주하였다. 직장
에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바쁘게 움직이고, 외
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볼거
리들을 찍거나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상대로 가격과 관련해 흥정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 더 싸게 줄 수 없어요?"
"더 이상은 안돼. 그 이하로는 못내려. 이 가격만 해도 엄청 깎은
거야."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 달 일정으로 이집트를 관광하러 온 방춘석은 상인과 흥정을 하
는 중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서점에서 구입한 이집트 여행 안내
책자에 적힌 흥정을 통한 물건 깎기를 시도하는 그에게 질세라 상
인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사려는 물건은 간소한 공예품이
었는데 부모님에게 선물로 갖다주면 매우 좋아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 가격 아래로 조금 깎아줄게. 그 이하로는 더 못내려."
"좋아요. 여기 돈."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지독하다고 하더니만……."
"아저씨, 너무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비지니스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래. 비지니스라는 게 다 그렇지 뭐."
"많이 파세요."
춘석은 그런 다음 공예품을 들고 걷기 시작하였다. 아침을 못 먹은
탓에 그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KFC를 발견하고는
횡단보도 위를 따라 그리로 걸어가려했다. 바로 그때 가게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고, 급기야 부딪치고 말
았다.
"어이쿠."
"괜찮으십니까?"
"네. 당신은?"
"저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럼 이만."
낯선 아랍인은 영어로 그렇게 말하고는 뛰어가버렸다.
"참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일어선 춘석이 KFC로 가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과 폭풍이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춘석
은 급기야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
이마가 무언가에 맞은 기분이 든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킨 후 손
을 갖다대었고, 무언가 끈적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뭐가 묻었는지 확
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눈앞에 놓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것은
바로…….
'맙소사?'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피였
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간신히 화를 면한 다른 아랍인이 뛰어와 그
를 흔들며 말하였다.
"이봐요.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아요."
"제길, 가게가 완전히 날아갔어."
"누가 빨리 소방서에다 신고해!"
"벌써 신고했어!"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뒤섞여 울리는 가운데 춘석은 아수라장
이 된 가게를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응시하였다.
"시내에서 테러라고?"
"네. 각하. 현재 경찰이 현장을 수습중이라고 합니다."
"배후 세력은 확인됐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보고는 없습니다만, 이슬람 형제단이 이번 사
건의 배후 세력으로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그 작자들 지겹기 짝이 없군. 이젠 그만두고도 남을 때인데 뭐가
아쉽다고?"
나세르로부터 시작된 종신 대통령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금 사실상 이집트 국민이 직접 뽑은 최초의 민선 대통령인 알 샤즈
리 대통령은 테러 보고를 받았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
을 지었다. 여러모로 민감한 사안이 겹친 시기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당하는 자의 입장에선 매우 안 좋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
가 내일 이집트 경제 전반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외국인 투자
자들의 방문 문제가 겹쳐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일이
었다.
"군과 경찰 관계자들에게 내일 입국할 예정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호 문제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하게. 그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면 큰
손해야."
"알겠습니다."
춘석은 천장에 붙어있는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바람을
맞으며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집트 정보국 관
계자는 한국 대사관 직원이 합석한 가운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 KFC로 향하던 중에 거기서 황급히 뛰어
나온 사람과 부딪혔다고 말하셨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어땠는기 기
억하십니까?"
"사진이나 몽타쥬를 모아 놓은 게 있다면 누구인지 대답할 수 있습
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에서 쫓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사진을
모아놓은 명단을 보여드리죠. 한 번 뒤적여 보십시오."
관계자가 내민 명단을 살펴보기 시작한 춘석은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넘긴 끝에 누군가의 얼굴을 지목했다.
"이 사람하고 부딪쳤습니다."
춘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용의자의 얼굴 사진을 확인한 정보국
관계자는 안색이 그대로 창백해졌다. 그는 곧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전화기를 귓가에 대고 말하였다.
"나다. 어느 녀석의 짓인지 확인했다. 국내 목격자들의 진술과 일치
한다. 놈이 잠적하기 전에 빨리 서둘러."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이후 춘석에게 말하였
다.
"감사합니다. 귀하의 증언이 용의자 확인에 도움이 됐습니다."
"저……."
"말씀하시죠."
"그들은 대체 누굽니까?"
"그들이라니요?"
"테러를 일으킨 집단 말입니다. 저는 이곳 상황은 잘 몰라서……."
춘석의 물음에 정보국 관계자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사관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사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춘섭에
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대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춘석씨가 목격한 용의자는 이곳
의 자생 테러집단인 '이슬람 형제단'에 속한 자들 중 한 명 입니다.
조직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집트를 이슬람 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신정 국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자들입니다. 예컨데
이란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들이 저지른 테러 건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다 그들의 활동에 의한 희생자는 이
집트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있습니다."
"알 카에다처럼 무차별 테러를 일삼는 자들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습니까?"
"이해가 되네요. 이제 그만 가도 되죠?"
"그럼요. 심문이 끝났으니 귀하가 묵고 계시는 호텔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남은 기간 동안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직후 정보국 관계자와 춘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
다. 춘석은 대사관 직원과 같이 방을 나섰고, 그로부터 중요한 얘기
를 듣게 되었다.
"방춘석씨, 여기 남아서 계속 여행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죠. 돈 주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아쉽잖아요."
"쯧쯧… 아무한테나 하면 안 되는 얘기이지만, 특별히 얘기해 드리
죠. 카이로에 주재한 여러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곳마다 이곳 분위
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얼마 안 있으면 큰 일이
터질 거라는 얘기부터 아예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각
양각색이에요."
"설마요……."
"그 설마가 사람 잡는 겁니다. 그렇게 아시고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세요. 저희 대사관 직원들이야 외국으로 탈출할 수단을 구하는 게
쉽다지만, 교민들과 관광객들에겐 그런 상황이야말로 최악이나 다름
없죠."
직원의 말에 춘석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 하긴 정보에 접
근하기 비교적 용이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조만간 무언가 일
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얼마 후 밖으로 나오면서 직원이 손을 흔들며 말하였다.
"제 말 명심하세요.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16시 30분. 한국 서울
"현재까지 카이로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한국인 피해자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고 합니다."
"그자의 상태는?"
"놀랍게도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고 합니다."
"천만 중 다행이군."
중앙정보부의 비밀 회의실 한 곳에서 열리고 있는 긴급 회의에 참
석한 김석대 중앙정보부장은 한국인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보고를
받자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러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세. 최근 들어 남미 각국에서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 최근 여러 언론사들의 보
도를 살펴보아도 그쪽 문제는 잘 다루지 않던데……."
"현재 남미쪽은 상황이 워낙 혼미한지라 세계 유수의 여러 언론사
들조차 접근이 제한된 상황이어서 일반인들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남미 각국에서 지금도 활동중
인 우리 요원들과 여러 비공식 루트를 통해 입수되는 정보에 의하
면 각국 정부와 내전의 조기 종식을 위해 개입한 미군이 수렁에 빠
져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과 관련해 더 자세한 정보는?"
"안타깝게도 우리 요원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워낙 좁은지라 고
급스런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정찰 위성이 있다지만, 그것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아내는 건 불가능한 판국이니……."
김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두컴컴한 회의실 한 가운데에 떠오
른 홀로그램 지구본을 바라보았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3시 00분. 콜롬비아 칼리
콜롬비아의 번화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칼리의 새벽 하늘엔 일단
의 헬기가 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우범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차
처럼 위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날다가 섬광이 번쩍이는 지점을 발
견하기가 무섭게 로켓탄 세례를 퍼부었다. 엄청난 폭발의 화염이 치
솟는 것을 확인한 조나단 애쉬 준위는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좋아. 이 정도면 성공이야!"
-기뻐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요.
사수(Gunner)인 케니 힐 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이 타
고 있는 롱보우 아파치를 노리고 휴대형 지대공 미사일이 발사되었
다. 필시 그것은 센서를 냉각시키는 등 끈기 있게 기다린 어느 반군
이 쏜 것이 분명하리라…….
"용기는 가상하다만, 이녀석을 너무 얕잡아 봤어!"
곧 준위는 아파치를 다른 위치로 이동시켰고, 발사된 미사일의 시
커는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일명 블랙홀로 불리우는 아파치의 적외
선 유도 미사일 회피책 때문이었다. 적외선 유도 미사일은 이름 그
대로 헬기나 비행기의 엔진에서 내보내는 엄청난 열기를 쫓아 날아
가는데 아파치는 엔진이 배출하는 배기가스와 외부로부터 흡입한
공기를 같이 내보내 미사일의 효과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 가능했
다. 이것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적외선 방해기를 쓰기도 하
는데 이 장비는 아예 강력한 빛을 방사해 미사일의 시커를 바보로
만드는 장비였다.
이와 같은 성능을 지닌 기체이기 때문에 그는 아파치를 절대적으
로 신뢰했고,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미사일은 멋지게 빗나갔다.
"용감한 친구~. 이번엔 내 차례야."
곧 그의 아파치는 재빨리 선회해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
는 지점을 향해 로켓탄 서너발을 쏘았고, 곧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
다. 그로 인해 이전의 포격으로 크게 부서진 건물 한 채가 기어이
무너져내렸다.
"이 정도면 충분해. 돌아가자."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 둔탁한 충격이 가해지더니 이내 기체가 진
동하기 시작하였다. 운 나쁘게도 매복하고 있던 다른 반군이 쏜
RPG-7의 파편에 당한 것이었다. 1993년에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
서 벌어진 걸프전 승전 이후 미군이 벌인 최악의 전투였었던 '블랙
호크 다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했다!"
-이녀석 완전히 맛이 가기 일보직전입니다!
"바보같이 RPG에 당하다니… 일단 어떻게든 기지로 돌아가보자!"
애쉬 준위는 곧 조종간을 움직여 기수를 도시 남쪽으로 돌린 후
앞 뒤 재지 않고 아파치를 그리로 몰았다.
-이런 곳에서 떨어져 죽기는 싫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좌우지간 이녀석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경보가 울리는 가운데 기체가 계속 흔들거리자 두 사람은 식은 땀
을 쏟으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작전 중인 아군 헬기들을
위해 시가지 외곽에 마련된 헬기 이착륙장이 눈에 들어왔고, 준위는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비행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여지껏 잘 버텨준 꼬리 부분의 로터가 떨어
져 나간 것이다. 그대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아파치는 그 상태로
지면에 착지했고, 곧 엄청난 충격이 가해져 기체를 파손시켰다.
"케니야, 살았냐?"
-으… 그럭저럭입니다. 선배님은 어떠십니까?
"제길! 다리가 나갔어. 쳇, 병원에 입원하는 건 그 자체로 지겨운 일
인데…."
-잘 됐네요. 그걸로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셨잖습니까?
"닥쳐! 본국으로 돌아가서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는 건 질색이야!"
-그래도 여기보단 나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넌 몰라서 그래… 내 마누라가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데……."
준위가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는 가운데 급히 출동한 구조팀이 그
들을 꺼내주기 시작하였다.
"아파치가 한 방 맞았나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공중 지원은 언제입니까?"
"1분 후에 해군의 호넷이 폭탄을 투하할 거야."
그렇게 대답한 후 라이언 버그 소위는 아직 쓸 일이 없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의 조준기가 지닌 적외선 감시 기능으로 그의 지휘를
받는 소대 병력이 공격할 예정인 지점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사주
경계에 이상적인 곳마다 자리한 중화기 진지들이 눈에 들어오자 버
그 소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추후 있을 공
격에 나설 아군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엄청난 제트 엔진의 폭음이 상공에서 메아리쳤
고, 중위는 엎드린 상태에서 소리쳤다.
"모두 준비해라!"
언제나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날아와 강력한 화력을 쏟아
붓는 해군의 F/A-18F 호넷 전투기는 주익에 부착한 레이저로 유도
되는 GBU-24를 투하하였다. GPS에 의해 유도되는 JDAM이 배치
되어 있음에도 이 유도폭탄이 계속 쓰이는 것은 목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어야 쓸 수 있는 JDAM 계열의 유도폭탄과 달리 임의의
목표, 예컨데 작전 중이던 지상군이 맞딱 뜨린 적의 화력 거점 등에
대해 즉각 조준해 투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2차
걸프전 당시 JDAM보다 레이저 유도폭탄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았다. 곧 투하된 폭탄은 목표 지점 부근에 큰 오
차없이 떨어졌고,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중량이 무려 907킬로그램
에 달하는 폭탄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거리 한 개를 깨
끗이 날려버린 것이다.
"가자!"
이 때를 기다린 미군 병력은 곧 그들이 목표로 정한 지점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몇몇 곳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
치 않았다.
"으악~!"
"괜찮아?"
"다리를 맞았어!"
"부상자는 엄폐물 뒤로 옮겨! 1분대는 나를 따라와라!"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끈질기게 살아남은 반군 한 명이 RPG-7
을 쏘았고, 소대 후미에서 폭발이 일어나 서너명이 즉사해 버렸다.
나온지 오래되었다지만, 여전히 RPG는 보병간 전투에서 빠질 수 없
는 대전차 화기였다. 물론 당하는 자 입장에선 저주스러울 뿐이지만
…….
"이 망할 자식들아!"
RPG가 발사될 때 생기는 후폭풍을 본 유탄 발사기 사수가 자신이
들고 있는 M-4에 부착된 M-203 유탄 발사기를 쏘았다. 날아간 유
탄은 RPG를 쏜 반군이 숨어 있는 건물 창가에 명중해 폭발을 일으
켰다. 소대는 상대가 죽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틈도 없이 이제는
비어버린 가게에 숨어 있던 반군의 기관총 진지와 맞딱뜨리고 말았
다. 콜롬비아 정부군에게서 탈취한 것으로 여겨지는 M-2 중기관총
이 쏘아대는 중기관총탄 세례에 또 다시 사상자가 속출했고, 소대장
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새끼! 내가 꼭 잡고 만다!"
"위험합니다! 몸을 숨기십시오!"
부사관 한 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대장은 1인 돌격을 감행하였
다. 빗발치는 총탄을 무시하면서 달린 그는 기관총의 사각으로 몸을
숨겼고, 서스팬더에 매둔 수류탄의 핀을 뽑은 다음 진지가 있는 방
향으로 던졌다. 곧 반군 한 명이 이를 되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수
류탄은 그의 손에 들리기도 전에 폭발하였다. 요란한 폭음이 들려온
후 진지 안으로 뛰어 들어간 소대장은 의심스러운 지점에 한 두발
씩 총을 쏜 후에야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상황 끝!"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20분. 미국 워싱턴 D.C
초강국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자리한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 그곳
에서도 NSC(국가 안전보장 회의)가 열리는 회의실의 분위기는 그
리 좋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떨떠름한 표정들이었고, 몇
몇은 아예 안색이 창백할 정도였다. 대통령인 마이클 크리치거는 잠
시 헛기침을 한 후 그들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대체 어찌된 일이요? 남미 각국의 내전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지 않소?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누가
속시원하게 나한테 얘기해 보시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답답한 나머지 컵에 든 물을 마셨다. 얼
마 후 합참의장인 육군의 케이시 그렉 대장이 좌중이 침묵을 지키
는 가운데 말하였다.
"각하, 우리의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파병을 검토했을 때부터 우리 합중국 군대는
가장 강력하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소?"
"당시엔 반군이 빈약하다는 분석에 더 무게를 두고 그러한 적을 상
대로 싸우기에 적합한 부대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반군의 저항이 매우 거센데다가 그들의 무장 수준도 결코 조
잡한 수준이 아니어서 차질을 빚는 것입니다."
"단시간에 난국을 타개하기는 힘들다는 얘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소. 남미 각국이 불안정했다고는 하지만,
반군들의 전력이 그 정도로 저항할 만큼 강한 적은 없었다고 들었
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군이 자랑하는 여러 특수부대가 차
질없이 임무를 수행중인데다 다른 곳에서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 한
현재 우리가 투입한 전력만으로도 반군을 일소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시간이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단기간에 끝냈으면 좋겠소. 국민들이 지치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는 크리치거 대통령은 자기 앞에 놓인 자그마한 지
구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40분. 미국 뉴욕
"야, 경치 끝내준다. 이곳에 서게 되니까 여기가 뉴욕이라는 실감이
드는구나."
"그래 여기에 와야 뉴욕이 어떤 곳인지를 느낄 수 있지."
이미 오래전에 가장 높은 빌딩의 영예를 잃었지만, 끊임 없이 찾아
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곳의 최고층에서 주변을 찍던
'방지태'는 옆에 있는 유학생인 친구 '임태춘'과 담소를 나누던 중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였다. 경찰관 한 명이 아랍인으로 보이는 남자
를 불심 검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랍인이 건넨 신분증을 확인하더
니 그를 연행해가버렸다.
"뉴욕에선 아직도 저러냐?"
"놀랬지? 9.11 직후하고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거야. 요즘 경찰이
잡아가는 아랍인들은 대부분 밀입국을 했거나 신분이 불확실한 경
우가 대부분이야. 알-카에다가 저지른 테러의 여파가 아직도 저런
식으로 남아 있다는 엄청 기분나쁘지만……."
"야, 분위기 무거워진다.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
짧지 않은 시간을 움직인 끝에 밥을 먹기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었다.
"뉴욕에 직접 와서 엄청 놀랬어."
"왜?"
"지하철이 왜 그렇게 지저분한지……."
"원래 뉴욕의 지하철은 거의 100년전에 개통한 거야. 반세기도 못
넘긴 서울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돼."
"그래도 그렇지 그게 뭐냐?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게다가 냄새가 왜
그리도 지독한지……."
"뭐, 그건 어쩔 수 없다만……."
뉴욕 지하철의 지저분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지태는 주문
한 핫도그를 한 입 먹은 후 말하였다.
"이 나라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초강국의 대표적인 도시에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그냥 그러려니 해.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다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거야. 우리나라만 해도 문제가 많잖아?"
"그야 그렇기는 하다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곧 선글래스를 낀 동양인이 들어와 자리
에 앉고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손목에 찬
시계로 눈을 옮긴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말하였다.
"밀크쉐이크 하나."
"예."
곧 주문한 밀크쉐이크가 그의 앞에 놓여졌고, 그는 이를 마시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비행기표를 확인하였다. 바로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즉시 이를 받은 후 몇마디 대화를 나누더
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밀크쉐이크 값을 지불한 후 밖으로 나갔
다. 때마침 식사를 끝낸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랐다.
"좋아. 이번엔 어디로 가고 싶다고 했지?"
"미술관에 가보자."
금새 다음 관광 코스를 정한 두 사람이 마악 버스 정류장으로 향
했고, 때마침 그곳엔 선글래스를 낀 그 동양인이 서 있었다.
"저 사람 혹시 한국인 아닐까?"
"그렇다고 함부로 말은 걸지마라. 잘못하면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뭐가 어때서?"
"그러는 게 좋다고만 알아둬."
"너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한국인입니다."
"이야~. 교포분이신가요?"
"그럼요. 두 분은?"
"저는 관광객이고, 이쪽은 이곳에 유학온 제 친구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세 사람이 더 얘기하려는 찰나
저 만치서 정장을 입은 두 동양인이 버스 장류장으로 걸어오고 있
었다. 바로 그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검은 선글래스의 사
내가 품 안에서 마이크로 우지 기관단총을 꺼내더니 이를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가운데 정장 차림의 두 동양인 중 한 명이 쓰러졌고, 다른 한 명은
우체통 뒤로 숨어 권총을 쏘아댔다. 일이 벌어지기가 무섭게 바닥에
엎드린 두 사람은 벌벌 떨며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
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검은 선글래스의 사내는 그의 동료
들로 보이는 이들이 몰고온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현장을 떠났고,
정장 차림의 동양인은 권총을 쏘아대다가 이내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당신들과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두 사람이
다가오니까 총을 쏘아댔다는 겁니까?"
"네. 그게 우리가 본 전부에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전혀 모르시구요?"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두 사람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렸을까?'라고 생각하면
서. 곧 주미 한국 대사관 직원이 들어와 두 사람과 마주본 채 앉은
후 말하였다.
"두 분 고생하셨습니다. 곧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총을 쏜 겁
니까?"
"두 분도 잘 아실테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북한을 부활하는 것을
꿈꾸는 테러 단체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정
부도 그의 뒤를 쫓아다녔죠. 일단 미국에선 이례적으로 이번 사건을
관대하게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저희로서도 천만 중 다행이긴 합니
다만……."
거기 까지 말한 후 대사관 직원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마저 얘
기하였다.
"그렇게 아시고 기다리십시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7시 00분. 한국 황해도 재령
재령에 주둔하고 있는 5기갑사단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상 나팔 소리가 울리고, 거기에 맞추어 병사들이 잠에서
깨어나 연병장을 돈 후 세면장으로 가 세수를 한 다음에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그들대
로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는 등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도 참 바쁘게 돌아가는군."
"우리 일이란 게 늘 그렇지 않습니까?"
마악 서류를 들고 대대장 집무실에서 나온 안세준 대위와 김명철
소위는 대대 본부에서 나오자마자 간밤에 있었던 일에 관해 얘기하
기 시작하였다.
"중대장님, 얘기 들으셨습니까?"
"시내쪽에서 터진 일 말이지?"
"네. 참 엽기적이더군요. 여자애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어차피 지금 같은 세태에선 벌어지고도 남았을 일이야. 좌우지간
그 미군 참 바보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즐기러 왔으면 재
미만 보고 돌아가지 왜 애를 죽이냐고?"
두 사람은 재령 시내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관해 얘기를 나
누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시내에서
몸을 파는 여자 아이에게 싼 비용으로 성적인 재미를 보기 위해 북
부 지역으로 놀러온 미군이 아이와 흥정을 했고, 결국 성 관계를 갖
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미군이 약속을 어기고 변
태적인 성 행위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고, 미군은 화가 난 나머지 여자 아이의 자궁에 돌멩이를 손
에 잡히는 대로 집어 넣어 끝내 죽게 만들었다. 그 미군은 결국 신
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 일을 여러 언론
에선 어찌된 셈인지 크게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내 친한파들에
의한 유혈 쿠데타로 인해 이루어진 통일 이후 미군들의 북부 출입
이 잦아지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잦았던데다 그에 따라 언론들
이 많이 언급해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 고도의 정치적 합의를 하
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북부 지역인들은 별로 돈을 쓸 일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
는 한국군 병사와 달리 직업 군인인 관계로 금전적으로 다소 풍족
한 미군 병사들이 구린 목적으로 자기네들이 사는 곳에 들러 달러
를 뿌리고 가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면서 그들을 대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 일을 다루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들 스스로 달가워하
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이기만한 남쪽의 동포들이 이상하게 보는 정
도를 넘어 욕을 할지라도 그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부를 쌓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팔자 좋은 한국 정부의 태도도
그러한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애초에 북부 지역 내에서의 모든 매춘
을 근절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 한국 정부는 미군에 대해선
특별한 경우임을 인정해 살인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 관
계를 갖는 상대의 연령이 어찌되었건 금전적 대가만 잘 지불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고, 미국은 미국대
로 그런 문제들을 느긋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창피한 노릇이야. 그런 꼴을 보자고 통일을 한 게 아닌데
……."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후 그들은 신장이 160센치미터대인 홍석주 상사와 마주쳤다.
홍 상사는 재빨리 그들에게 경례하였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잘 주무셨습니까?"
"물론이죠. 상사도 잘 주무셨습니까?"
"그럼요."
그렇게 해서 구 북한군 출신으로 올해 40세인 홍 상사와 같이 걷
게 되어 식당으로 향하던 안 대위는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탁치며
물었다.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따님이 계시다고 했죠?"
"올해에 고등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남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도 거북하지 않은 문화어를 구
사하는 홍 상사는 약간의 혼동으로 중학교를 고등 중학교로 불렀지
만 아무도 거기에 개의치 않았다.
"어제 일 들으셨습니까?"
"알다마다요. 딸 키우는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지요."
"북쪽 사람들은 그런 일과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
는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요. 다를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북
조선도 원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만,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수많은
어려움 때문에 모든 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거기 까지 말하고는 홍 상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남한 출신의
두 장교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홍 상사의 표현에서 보여주듯
북한 사회의 도덕 체계나 사회 질서 등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한 것
은 극심한 식량난 때문이었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압록강 너머
중국으로 가서 돈을 벌려는 월경자가 급증했음은 물론이고 그들 중
에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으로 망명해 오기도 하였다. 여성들 중엔
아예 매춘 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거기엔 10대의 소녀들도 있
었다고 했으니 문제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결국엔 그러한 사태를 초래해버린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었던 북한 지도부에 대한 증오심의 폭발로 벌어진 유혈 혁명
에 따른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세태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갔
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그들 뒤
에서 걸어오는 미군 장교 한 명이 한국어로 말하였다.
"그렇게들 얘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들도 그 사건을 기분 나쁘게 받
아들이고 있습니다."
"중위, 오해하지 말게. 우리가 싫어하는 건 문제를 일으킨 개인이지
미군 전체가 아니야."
"중위님, 그러고 보니 그 문제 일으킨 녀석은 보고 왔습니까?"
"말도 마라. 어찌나 황당한 놈인지… 근무지에 조회해 보니까 엄청
난 문제아였어."
"군법에 회부되면 어떻게 될까요?"
"범행이 고의적이고 악질적이라 중형은 따놨어."
그렇게 말하고는 5사단에 파견된 주한 미군 장교인 엘리엇 스콧
중위는 한 숨을 쉬었다. 북부 지역의 각 도에 일개 사단씩 배치된
한국군 부대마다 미군 장교와 부사관이 서너명씩 배치되었는데 이
들의 임무는 해당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올라오는 미군에
의한 대민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즉시 현장으로 가 한국 경찰에 체
포된 그들을 심문한 후 이를 8군 사령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남쪽
에서 엄청 매운 맛을 본 주한 미군의 입장에선 북부 지역에서 벌어
지는 강력 사건들을 대단히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세 장교가 그 일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홍
상사는 예전 일이 생각나자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통일이 되기 전으로 그가 북한군 상사로 근무할 적에 일이
었다. 부하 하전사 중 한 명이 가족이 아사해버려 장례식에 참석하
기 위해 휴가를 갔는데 많이 야위어진 채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차
마 말하지 못했지만, 휴가를 다녀올 때 가져간 자기 몫의 식량을 가
족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여러 더한 경우를 보고 나서
북한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뒤집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평
양의 무능력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도부를 몰아내기 위한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부하들
을 끌어들여 전차 서너대를 몰고 주둔지를 이탈해 혁명군에 합류했
었다. 그때의 행적을 인정한 한국 정부는 그에게 통일 유공자 자격
을 주며 군에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덕분에 그는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8시 20분. 한국 서울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지고 있는 여러 아파트촌 가운데 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강철민은 땀이 비오듯 흐르는 가운데 다른 인
부와 같이 목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는 단단한 체격을 지닌 건장
한 사내였던데다 북에 있을 때에도 적지 않은 노력 동원 경험이 있
어서 그의 작업 능률은 눈에 띄게 좋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북부
출신 인부들과 남부 사용자들간에 빚어지는 임금 시비와는 상관 없
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적지 않은 일당을 받았다. 그로서도 이 일
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북에서는 작업 시간이 많았던데다 돈도 전혀
주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법정 근무 시간만 채우고 돌아가도 누가
뭐라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강씨, 고향 친구라는 사람이 당신을 찾는다는데?"
"네?"
"얼른 가봐."
친구가 찾아 왔다는 말에 의아해하면서 철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소장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곧 그는 상대를 확인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야, 너 여긴 왠 일이냐?"
"뭐긴 뭐겠어? 친구 만나러 왔지."
철민은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친구 지태천과 악수를 하고는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나 취직했다."
"진짜야?"
"그렇다니까."
"어디서 일하는데?"
"남조선 국회의원의 개인 경호원으로 들어갔어. 지금은 교대하고 집
으로 가는 길이야."
"너 출세했구나."
"출세라고 할 수가 없어. 일이 엄청 고된 편이야. 그나마 다행인 게
내가 경호하는 분은 평판이 좋아. 일하는 보람이 있어."
"그래 다행이구나. 그러면 나중에 만나서 한 잔 하자."
"좋아. 다음에 연락줄게."
국회의원 오세창은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고
르고 있었다. 그의 취미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참 특이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야, 저 아저씨 좀 봐. 이번 달에도 저거 사신다."
"뭐가 어때서? 군사 잡지하고 모형지를 사는데 그게 이상할 거리라
도 되니?"
"애는… 다 큰 어른이 장난감 만지작 거리는 게 정상으로 보이니?"
"결국엔 다 취미 생활의 일환이야.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데 그거
가지고 이렇다저렇다 하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얼마 후 책을 갖고 계산대로 온 오 의원이 여직원에게 물었다.
"이것들 다 합해서 얼마입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컴퓨터와 연결된 바코드 판독기로 책의 바코드에 저장된 가격
정보를 확인한 여직원이 말하였다.
"2만 7천원 입니다."
"여기 3만원. 거슬러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여직원으로부터 거스름돈을 받은 오 의원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
대로 서점에서 나왔다.
'책을 샀으니 이번엔 모형점에 가서 에나멜하고 락카나 좀 긁어모아
야겠다. 가만, 서페이서 사 둔 게 다 바닥났으니 그것도 좀 사야겠
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규모가 큰 모형점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
을 돌렸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9시 30분. 한국 경기도 평택
"오늘 훈련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시 정각에 우리 편대는 기지에서
이륙해 웨이포인트 알파를 거쳐 웨이포인트 브라보에서 광주 기지
로부터 이륙해 날아올 F-15K 편대와 합류한다. 그 다음 웨이포인트
찰리를 통해 북부 지역에 자리한 웨이포인트 델타로 향한다. 거기서
우리는 공격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 이륙할 황주 기지의 MiG-29를
저지해야 한다. 요격대를 전멸시켰거나 공격대가 가상의 지상 표적
을 파괴하는데 성공할 경우 임무를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고 반대로
요격대가 공격대를 저지하거나 호위를 맡은 우리를 전멸시켰을 경
우 그쪽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훈련이지만, 항상
실전에 임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질문 있나?"
질문이 없느냐는 물음에 아무 반응이 없자 편대장인 '이강돈' 소령
이 모두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모두 준비하도록. 자존심만 더럽게 센 북쪽 촌놈들한테 우
리 실력을 보여주는 거다!"
그의 독려를 들으며 이진성 대위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 이후 한국의 여러 언론 매체에선 그간 베일에 가려져온 -적어
도 그들의 입장에선- 북한 공군기들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때 인터
뷰에 응했던 북한 공군 출신 조종사들은 한국 공군기에 비해 자신
들의 전투기가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에 의한 원거리 공격에선 크게
밀릴지라도 근접전에선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곤 했
기 때문이었다.
"선배,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오늘 우리랑 맞붙는다는 황주 기지쪽 MiG-29 조종사들 중에……."
"설마……."
그렇게 말 끝을 흐리고는 이 대위는 기억을 떠올렸다. 황주 기지의
MiG-29 조종사들 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림길용
중령은 전선 종심이 극도로 짧을 경우에 생길지 모를 중거리 공대
공 미사일의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한 미 공군과의 가상 교
전에서 무려 2대의 F-15C를 가상 격추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
인이었다. 게다가 그 두 대의 F-15C를 몰았던 미 공군 조종사들 가
운데 한 명인 조지 페터슨 소령의 경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사용
이 일반화된 지금과 같은 때에 독파이팅을 벌여 적성국 전투기 두
대를 격추해 버린 인물이어서 그 여파가 매우 컸었다. 이 사건은 사
실상 흡수 통일에 가까운 한국과의 합병으로 그간 풀이 죽어 있었
던 북부 출신 군인들의 사기를 돋구었고, 미군이 오만하게 군다는
이유로 그들을 싫어하는 적지 않은 남쪽 젊은이들에게 큰 화제거리
가 되었다. 하지만, 여론의 그런 반응에 대해 림 중령 본인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그가 나온다면 더 재미있겠지. 이기기는 힘들테지만 말이야."
"제 생각엔 나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명관아, 결과가 너무 싱거우면 재미가 없는거야. 게다가 훈련은 늘
실전같이 하라는 말도 있잖아?"
선배인 진성의 말에 김명관 중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행거 안에 대
기하고 있는 자신의 KF-16의 상태를 차분하게 확인한 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종석에 몸을 실었다. 얼마 후 닷지사제 항공기 견인
차들이 오늘 훈련을 위해 이륙할 KF-16들을 견인하기 시작하였다.
주기장을 지나자 견인차들은 견인을 중지한 후 안전 위치로 이동하
였고 전투기들은 엔진 출력을 낮게 잡은 채 자력으로 활주로로 향
했다. 활주로 위에 자신의 기체를 진입시킨 이강돈 소령은 관제탑에
이륙 허가를 요청하였다.
"여기는 제주바위. 관제탑, 이륙허가 바란다."
-여기는 관제탑. 제주바위, 이륙을 허가한다.
이 소령은 곧바로 스로틀을 조작해 엔진 출력을 높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속한 KF-16은 활주로를 달리면서 서서히 기수를 치
켜올린 다음 이륙하였다. 이륙에 성공하기가 무섭게 랜딩 기어를 접
은 그는 다른 편대원들이 이륙할 때까지 적정 고도에서 맴돌며 그
들을 기다렸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편대를 형성한 KF-16 네 대
는 1차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9시 45분. 한국 평양
평양에 자리하고 있는 '학생소년궁전' 내에 자리한 공연장에선 학
생들의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들의 대부분은 한미 양국의 군 장성과 영관급 장교, 그들의
부인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인 정재석 대장은 자신들의 기량을 한
껏 뽐내듯 무용을 하는 소녀들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
국에선 거의 보기 힘든 구경을 하게 됐다면서 즐거워하는 주한 미
군 인사들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미
8군 사령관인 사이먼 엔딘 대장이 궁금한 나머지 절친한 친구인 그
에게 물음을 던졌다.
"여보게, 자네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
"변한 게 없어서."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아이들이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느
라 이상한 얼굴이 되는 일도 없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걸 강요받지도 않고……."
"그래도 이곳은 아직 멀었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어."
정 대장의 말에 엔딘 대장은 멎적은 표정을 지으며 공연중인 아이
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긴 그의 말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
었다. 이곳 평양의 학생궁전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선 통일이 된 지
금도 여러 가지로 얘기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
에도 불구하고 부지 10만 3천 제곱미터에 높이 60m에 이르는 이
건물을 지은 북한 당국이 북한 각지의 어린이들에게 이곳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리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엔딘 대장은 특
별한 가치를 부여받기 힘든 이 건물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만 아이들에 대해선 딱히 이렇다 할 악감정이 일지 않았다. 차마 말
하기 힘들지만, 애지중지하는 손주들 가운데 한 명을 사고로 잃어버
린 그로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씁쓸한 감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공연이 끝나면서 아이들은 '감사합니다.'와 'Thank You'가 적힌
카드를 들어보였고, 장군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장군들은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하였다. 곧
소년 궁전에서의 일정을 마친 방청객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
고, 엔딘 대장과 정 대장은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서로 대화를 나누
었다.
"자네도 알테지만, 워싱턴에선 사령부를 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싶어
하네."
"그러면 자네 나라에선 8군 주력의 북부 배치를 바라는 건가?"
"정책이 바뀌었거든."
"나는 동의하기 힘드네. 이곳 사람들이 김정일과 그 측근들에게 반
대했다고 해서 미국에 결코 우호적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말게."
"그걸 모를 리가 있겠나? 하지만, 우린 이리로 와야만 해. 윗 동네
가 딴 맘을 못 먹게 하려면 우리가 직접 이리로 오는 게 최선의 해
결책이란 말일세."
"어찌됐든 나는 자네들이 이리로 오는 거에 대해선 반대야."
"그렇다고 자네가 국가간에 있을 정치적 합의에 개입할 수는 없지
않나?"
"……."
"너무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게. 어쩌면 우리가 이리로 오는 게 이곳
사람들을 돕는 것이 될 지 누가 알겠나?"
그렇게 말한 후 엔딘 대장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 떠났다.
이를 지켜보던 정 대장은 곧 자신의 관용차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
였다. 차에 오르면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혁명으
로 김정일의 독재 체제가 붕괴하면서 북한인들은 정신을 추스리기
도 전에 혁명 정부의 개입 요청을 이유로 북에 진입한 미군과 한국
군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아야만 했었다. 적지 않은
북한인들이 두 나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들
이 받는 구호물자에 대해 감사하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그는 통일 한국의 장래에 대해 고민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있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아야 겠다는 생각
에 이르자 그는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바라보았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10시 10분. 황해도 멸악산
KF-16과 F-15K 편대로 이루어진 스트라이크 패키지는 황주 기지
로부터 이륙한 MiG-29 편대의 요격을 받게 될 멸악산 상공에 이르
렀다. 높이 816m에 달하는 이 산 어딘가에 설치된 공군의 레이더
사이트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 하나 체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
각에 이르자 김명관 중위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훈련의
실제 목적이 남북 군인들간에 일종의 기싸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훈련인만큼 충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명심해라. 이번 훈련에 에이왁스(AWACS -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의 지원은 없다. 우리 능력만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강돈 소령의 그와 같은 주의가 있은 후 편대원들은 KF-16의 눈
이라고 할 수 있는 AN/APG-81 레이더를 일제히 켰다. 그간 계속
된 개량을 거쳐 흠잡을 데가 없는 이 레이더로 자신들을 향해 접근
해오는 MiG-29들을 확인한 편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대응에 나섰
다. KF-16 편대가 이렇다 할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있음에도 자체
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반면 MiG-29들은 열악한 항전
장비 문제 때문에 지상 관제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 움직임엔 기민
함이 없었다. 얼마 후 마주친 두 편대의 가상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공을 시도한 쪽은 MiG-29 편대였지만, 이미 KF-16 편대는
유리한 위치를 점한 상태였다.
"간다!"
편대원들 중 가장 먼저 이진성 대위의 KF-16이 MiG-29의 꼬리를
노리고 덤볐다. 이 대위의 KF-16이 자신의 후방을 노리고 접근하자
목표가 된 MiG-29는 재빨리 옆으로 선회해 이를 피하였고, KF-16
도 여기에 맞서 선회하면서 두 기체는 시저스 기동에 들어가고 말
았다. 이렇게 서로가 반복된 기동을 하는 가운데 MiG-29의 조종사
가 끝내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대로 이탈해버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꼬리를 물려던 이 대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쫓기는 입장이던 MiG-29가 별안간 에어브레이크를 작동해 그의
KF-16이 추월하도록 만든 것이다.
"제길!"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는 이를 악물며 조종간을 잡아
당겼고, KF-16은 그대로 수직 선회를 하였다. 곧 KF-16은 MiG-29
의 꼬리를 완전히 무는데 성공했다. MiG-29의 조종사인 림길용 중
령은 상대인 KF-16의 조종사가 막판 뒤집기나 다름 없는 역전을
펼치자 황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3대 1로 가상 교전이
끝나자 전투기들은 다시 편대를 이루어 나란히 비행하였다.
-자네 정말 잘하는군! 이름이 어떻게 되나?
"대위 이진성 입니다."
-나는 림길용이네.
"예? 그러면 바로 그 림 중령님 이십니까?"
-나를 아나?
"지금 중령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에서 띄워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머리 속에서 잊혀지
는 법이야. 그러면 계속 수고하게.
-시간이 되신다면 공격대가 폭탄 투하를 하는 걸 보고 가지 않으시
겠습니까?
이강돈 소령의 제안에 대해 림 중령은 흔쾌히 응하였다.
-좋아. 기왕 왔으니 끝까지 보고 가도 나쁠 것은 없지.
곧 동쪽으로 기수를 돌린 전투기들은 그들 아래에 있는 F-15K편
대가 목표 지점에 파란색으로 도색된 훈련탄을 투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탄이 아니라고 하지만 약간이나마 폭발력을 갖고 있는
훈련탄들이 지면에 격돌한 후 일제히 폭발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렇게 오늘 훈련의 끝 마무리를 지켜본 전투기들은 곧 편대 단위
로 귀환하기 시작하였다.
1.프롤로그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00분. 이집트 카이로
수많은 대도시가 그러하듯 카이로의 아침은 매우 분주하였다. 직장
에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바쁘게 움직이고, 외
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볼거
리들을 찍거나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상대로 가격과 관련해 흥정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저씨, 더 싸게 줄 수 없어요?"
"더 이상은 안돼. 그 이하로는 못내려. 이 가격만 해도 엄청 깎은
거야."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 달 일정으로 이집트를 관광하러 온 방춘석은 상인과 흥정을 하
는 중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서점에서 구입한 이집트 여행 안내
책자에 적힌 흥정을 통한 물건 깎기를 시도하는 그에게 질세라 상
인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사려는 물건은 간소한 공예품이
었는데 부모님에게 선물로 갖다주면 매우 좋아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 가격 아래로 조금 깎아줄게. 그 이하로는 더 못내려."
"좋아요. 여기 돈."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지독하다고 하더니만……."
"아저씨, 너무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비지니스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래. 비지니스라는 게 다 그렇지 뭐."
"많이 파세요."
춘석은 그런 다음 공예품을 들고 걷기 시작하였다. 아침을 못 먹은
탓에 그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길 건너편에 있는 KFC를 발견하고는
횡단보도 위를 따라 그리로 걸어가려했다. 바로 그때 가게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고, 급기야 부딪치고 말
았다.
"어이쿠."
"괜찮으십니까?"
"네. 당신은?"
"저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럼 이만."
낯선 아랍인은 영어로 그렇게 말하고는 뛰어가버렸다.
"참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일어선 춘석이 KFC로 가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과 폭풍이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춘석
은 급기야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
이마가 무언가에 맞은 기분이 든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킨 후 손
을 갖다대었고, 무언가 끈적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뭐가 묻었는지 확
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눈앞에 놓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것은
바로…….
'맙소사?'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피였
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간신히 화를 면한 다른 아랍인이 뛰어와 그
를 흔들며 말하였다.
"이봐요.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아요."
"제길, 가게가 완전히 날아갔어."
"누가 빨리 소방서에다 신고해!"
"벌써 신고했어!"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뒤섞여 울리는 가운데 춘석은 아수라장
이 된 가게를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응시하였다.
"시내에서 테러라고?"
"네. 각하. 현재 경찰이 현장을 수습중이라고 합니다."
"배후 세력은 확인됐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보고는 없습니다만, 이슬람 형제단이 이번 사
건의 배후 세력으로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그 작자들 지겹기 짝이 없군. 이젠 그만두고도 남을 때인데 뭐가
아쉽다고?"
나세르로부터 시작된 종신 대통령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금 사실상 이집트 국민이 직접 뽑은 최초의 민선 대통령인 알 샤즈
리 대통령은 테러 보고를 받았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
을 지었다. 여러모로 민감한 사안이 겹친 시기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당하는 자의 입장에선 매우 안 좋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
가 내일 이집트 경제 전반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외국인 투자
자들의 방문 문제가 겹쳐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일이
었다.
"군과 경찰 관계자들에게 내일 입국할 예정인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호 문제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하게. 그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면 큰
손해야."
"알겠습니다."
춘석은 천장에 붙어있는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바람을
맞으며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집트 정보국 관
계자는 한국 대사관 직원이 합석한 가운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 KFC로 향하던 중에 거기서 황급히 뛰어
나온 사람과 부딪혔다고 말하셨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어땠는기 기
억하십니까?"
"사진이나 몽타쥬를 모아 놓은 게 있다면 누구인지 대답할 수 있습
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에서 쫓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의 사진을
모아놓은 명단을 보여드리죠. 한 번 뒤적여 보십시오."
관계자가 내민 명단을 살펴보기 시작한 춘석은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넘긴 끝에 누군가의 얼굴을 지목했다.
"이 사람하고 부딪쳤습니다."
춘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용의자의 얼굴 사진을 확인한 정보국
관계자는 안색이 그대로 창백해졌다. 그는 곧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전화기를 귓가에 대고 말하였다.
"나다. 어느 녀석의 짓인지 확인했다. 국내 목격자들의 진술과 일치
한다. 놈이 잠적하기 전에 빨리 서둘러."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이후 춘석에게 말하였
다.
"감사합니다. 귀하의 증언이 용의자 확인에 도움이 됐습니다."
"저……."
"말씀하시죠."
"그들은 대체 누굽니까?"
"그들이라니요?"
"테러를 일으킨 집단 말입니다. 저는 이곳 상황은 잘 몰라서……."
춘석의 물음에 정보국 관계자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사관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사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춘섭에
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대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방춘석씨가 목격한 용의자는 이곳
의 자생 테러집단인 '이슬람 형제단'에 속한 자들 중 한 명 입니다.
조직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집트를 이슬람 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신정 국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은 자들입니다. 예컨데
이란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들이 저지른 테러 건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다 그들의 활동에 의한 희생자는 이
집트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있습니다."
"알 카에다처럼 무차별 테러를 일삼는 자들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습니까?"
"이해가 되네요. 이제 그만 가도 되죠?"
"그럼요. 심문이 끝났으니 귀하가 묵고 계시는 호텔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남은 기간 동안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직후 정보국 관계자와 춘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
다. 춘석은 대사관 직원과 같이 방을 나섰고, 그로부터 중요한 얘기
를 듣게 되었다.
"방춘석씨, 여기 남아서 계속 여행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이죠. 돈 주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면 아쉽잖아요."
"쯧쯧… 아무한테나 하면 안 되는 얘기이지만, 특별히 얘기해 드리
죠. 카이로에 주재한 여러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곳마다 이곳 분위
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얼마 안 있으면 큰 일이
터질 거라는 얘기부터 아예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각
양각색이에요."
"설마요……."
"그 설마가 사람 잡는 겁니다. 그렇게 아시고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세요. 저희 대사관 직원들이야 외국으로 탈출할 수단을 구하는 게
쉽다지만, 교민들과 관광객들에겐 그런 상황이야말로 최악이나 다름
없죠."
직원의 말에 춘석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하였다. 하긴 정보에 접
근하기 비교적 용이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조만간 무언가 일
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얼마 후 밖으로 나오면서 직원이 손을 흔들며 말하였다.
"제 말 명심하세요.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16시 30분. 한국 서울
"현재까지 카이로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한국인 피해자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고 합니다."
"그자의 상태는?"
"놀랍게도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기만 하면
되는 정도의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고 합니다."
"천만 중 다행이군."
중앙정보부의 비밀 회의실 한 곳에서 열리고 있는 긴급 회의에 참
석한 김석대 중앙정보부장은 한국인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보고를
받자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러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세. 최근 들어 남미 각국에서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나? 최근 여러 언론사들의 보
도를 살펴보아도 그쪽 문제는 잘 다루지 않던데……."
"현재 남미쪽은 상황이 워낙 혼미한지라 세계 유수의 여러 언론사
들조차 접근이 제한된 상황이어서 일반인들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남미 각국에서 지금도 활동중
인 우리 요원들과 여러 비공식 루트를 통해 입수되는 정보에 의하
면 각국 정부와 내전의 조기 종식을 위해 개입한 미군이 수렁에 빠
져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과 관련해 더 자세한 정보는?"
"안타깝게도 우리 요원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워낙 좁은지라 고
급스런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정찰 위성이 있다지만, 그것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알
아내는 건 불가능한 판국이니……."
김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두컴컴한 회의실 한 가운데에 떠오
른 홀로그램 지구본을 바라보았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3시 00분. 콜롬비아 칼리
콜롬비아의 번화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칼리의 새벽 하늘엔 일단
의 헬기가 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우범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차
처럼 위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날다가 섬광이 번쩍이는 지점을 발
견하기가 무섭게 로켓탄 세례를 퍼부었다. 엄청난 폭발의 화염이 치
솟는 것을 확인한 조나단 애쉬 준위는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좋아. 이 정도면 성공이야!"
-기뻐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은데요.
사수(Gunner)인 케니 힐 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이 타
고 있는 롱보우 아파치를 노리고 휴대형 지대공 미사일이 발사되었
다. 필시 그것은 센서를 냉각시키는 등 끈기 있게 기다린 어느 반군
이 쏜 것이 분명하리라…….
"용기는 가상하다만, 이녀석을 너무 얕잡아 봤어!"
곧 준위는 아파치를 다른 위치로 이동시켰고, 발사된 미사일의 시
커는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일명 블랙홀로 불리우는 아파치의 적외
선 유도 미사일 회피책 때문이었다. 적외선 유도 미사일은 이름 그
대로 헬기나 비행기의 엔진에서 내보내는 엄청난 열기를 쫓아 날아
가는데 아파치는 엔진이 배출하는 배기가스와 외부로부터 흡입한
공기를 같이 내보내 미사일의 효과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 가능했
다. 이것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적외선 방해기를 쓰기도 하
는데 이 장비는 아예 강력한 빛을 방사해 미사일의 시커를 바보로
만드는 장비였다.
이와 같은 성능을 지닌 기체이기 때문에 그는 아파치를 절대적으
로 신뢰했고,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미사일은 멋지게 빗나갔다.
"용감한 친구~. 이번엔 내 차례야."
곧 그의 아파치는 재빨리 선회해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
는 지점을 향해 로켓탄 서너발을 쏘았고, 곧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
다. 그로 인해 이전의 포격으로 크게 부서진 건물 한 채가 기어이
무너져내렸다.
"이 정도면 충분해. 돌아가자."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 둔탁한 충격이 가해지더니 이내 기체가 진
동하기 시작하였다. 운 나쁘게도 매복하고 있던 다른 반군이 쏜
RPG-7의 파편에 당한 것이었다. 1993년에 소말리아의 모가디슈에
서 벌어진 걸프전 승전 이후 미군이 벌인 최악의 전투였었던 '블랙
호크 다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했다!"
-이녀석 완전히 맛이 가기 일보직전입니다!
"바보같이 RPG에 당하다니… 일단 어떻게든 기지로 돌아가보자!"
애쉬 준위는 곧 조종간을 움직여 기수를 도시 남쪽으로 돌린 후
앞 뒤 재지 않고 아파치를 그리로 몰았다.
-이런 곳에서 떨어져 죽기는 싫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좌우지간 이녀석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경보가 울리는 가운데 기체가 계속 흔들거리자 두 사람은 식은 땀
을 쏟으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작전 중인 아군 헬기들을
위해 시가지 외곽에 마련된 헬기 이착륙장이 눈에 들어왔고, 준위는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비행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여지껏 잘 버텨준 꼬리 부분의 로터가 떨어
져 나간 것이다. 그대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아파치는 그 상태로
지면에 착지했고, 곧 엄청난 충격이 가해져 기체를 파손시켰다.
"케니야, 살았냐?"
-으… 그럭저럭입니다. 선배님은 어떠십니까?
"제길! 다리가 나갔어. 쳇, 병원에 입원하는 건 그 자체로 지겨운 일
인데…."
-잘 됐네요. 그걸로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셨잖습니까?
"닥쳐! 본국으로 돌아가서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는 건 질색이야!"
-그래도 여기보단 나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넌 몰라서 그래… 내 마누라가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데……."
준위가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는 가운데 급히 출동한 구조팀이 그
들을 꺼내주기 시작하였다.
"아파치가 한 방 맞았나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공중 지원은 언제입니까?"
"1분 후에 해군의 호넷이 폭탄을 투하할 거야."
그렇게 대답한 후 라이언 버그 소위는 아직 쓸 일이 없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의 조준기가 지닌 적외선 감시 기능으로 그의 지휘를
받는 소대 병력이 공격할 예정인 지점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사주
경계에 이상적인 곳마다 자리한 중화기 진지들이 눈에 들어오자 버
그 소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추후 있을 공
격에 나설 아군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엄청난 제트 엔진의 폭음이 상공에서 메아리쳤
고, 중위는 엎드린 상태에서 소리쳤다.
"모두 준비해라!"
언제나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날아와 강력한 화력을 쏟아
붓는 해군의 F/A-18F 호넷 전투기는 주익에 부착한 레이저로 유도
되는 GBU-24를 투하하였다. GPS에 의해 유도되는 JDAM이 배치
되어 있음에도 이 유도폭탄이 계속 쓰이는 것은 목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어야 쓸 수 있는 JDAM 계열의 유도폭탄과 달리 임의의
목표, 예컨데 작전 중이던 지상군이 맞딱 뜨린 적의 화력 거점 등에
대해 즉각 조준해 투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2차
걸프전 당시 JDAM보다 레이저 유도폭탄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았다. 곧 투하된 폭탄은 목표 지점 부근에 큰 오
차없이 떨어졌고,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중량이 무려 907킬로그램
에 달하는 폭탄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거리 한 개를 깨
끗이 날려버린 것이다.
"가자!"
이 때를 기다린 미군 병력은 곧 그들이 목표로 정한 지점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몇몇 곳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
치 않았다.
"으악~!"
"괜찮아?"
"다리를 맞았어!"
"부상자는 엄폐물 뒤로 옮겨! 1분대는 나를 따라와라!"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끈질기게 살아남은 반군 한 명이 RPG-7
을 쏘았고, 소대 후미에서 폭발이 일어나 서너명이 즉사해 버렸다.
나온지 오래되었다지만, 여전히 RPG는 보병간 전투에서 빠질 수 없
는 대전차 화기였다. 물론 당하는 자 입장에선 저주스러울 뿐이지만
…….
"이 망할 자식들아!"
RPG가 발사될 때 생기는 후폭풍을 본 유탄 발사기 사수가 자신이
들고 있는 M-4에 부착된 M-203 유탄 발사기를 쏘았다. 날아간 유
탄은 RPG를 쏜 반군이 숨어 있는 건물 창가에 명중해 폭발을 일으
켰다. 소대는 상대가 죽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틈도 없이 이제는
비어버린 가게에 숨어 있던 반군의 기관총 진지와 맞딱뜨리고 말았
다. 콜롬비아 정부군에게서 탈취한 것으로 여겨지는 M-2 중기관총
이 쏘아대는 중기관총탄 세례에 또 다시 사상자가 속출했고, 소대장
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새끼! 내가 꼭 잡고 만다!"
"위험합니다! 몸을 숨기십시오!"
부사관 한 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대장은 1인 돌격을 감행하였
다. 빗발치는 총탄을 무시하면서 달린 그는 기관총의 사각으로 몸을
숨겼고, 서스팬더에 매둔 수류탄의 핀을 뽑은 다음 진지가 있는 방
향으로 던졌다. 곧 반군 한 명이 이를 되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수
류탄은 그의 손에 들리기도 전에 폭발하였다. 요란한 폭음이 들려온
후 진지 안으로 뛰어 들어간 소대장은 의심스러운 지점에 한 두발
씩 총을 쏜 후에야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상황 끝!"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20분. 미국 워싱턴 D.C
초강국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자리한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 그곳
에서도 NSC(국가 안전보장 회의)가 열리는 회의실의 분위기는 그
리 좋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떨떠름한 표정들이었고, 몇
몇은 아예 안색이 창백할 정도였다. 대통령인 마이클 크리치거는 잠
시 헛기침을 한 후 그들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대체 어찌된 일이요? 남미 각국의 내전이 잠잠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지 않소?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누가
속시원하게 나한테 얘기해 보시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답답한 나머지 컵에 든 물을 마셨다. 얼
마 후 합참의장인 육군의 케이시 그렉 대장이 좌중이 침묵을 지키
는 가운데 말하였다.
"각하, 우리의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파병을 검토했을 때부터 우리 합중국 군대는
가장 강력하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소?"
"당시엔 반군이 빈약하다는 분석에 더 무게를 두고 그러한 적을 상
대로 싸우기에 적합한 부대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반군의 저항이 매우 거센데다가 그들의 무장 수준도 결코 조
잡한 수준이 아니어서 차질을 빚는 것입니다."
"단시간에 난국을 타개하기는 힘들다는 얘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소. 남미 각국이 불안정했다고는 하지만,
반군들의 전력이 그 정도로 저항할 만큼 강한 적은 없었다고 들었
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군이 자랑하는 여러 특수부대가 차
질없이 임무를 수행중인데다 다른 곳에서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 한
현재 우리가 투입한 전력만으로도 반군을 일소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시간이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단기간에 끝냈으면 좋겠소. 국민들이 지치기 전에."
그렇게 말하고는 크리치거 대통령은 자기 앞에 놓인 자그마한 지
구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2010년 03월 05일. 금요일. 09시 40분. 미국 뉴욕
"야, 경치 끝내준다. 이곳에 서게 되니까 여기가 뉴욕이라는 실감이
드는구나."
"그래 여기에 와야 뉴욕이 어떤 곳인지를 느낄 수 있지."
이미 오래전에 가장 높은 빌딩의 영예를 잃었지만, 끊임 없이 찾아
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곳의 최고층에서 주변을 찍던
'방지태'는 옆에 있는 유학생인 친구 '임태춘'과 담소를 나누던 중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였다. 경찰관 한 명이 아랍인으로 보이는 남자
를 불심 검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랍인이 건넨 신분증을 확인하더
니 그를 연행해가버렸다.
"뉴욕에선 아직도 저러냐?"
"놀랬지? 9.11 직후하고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거야. 요즘 경찰이
잡아가는 아랍인들은 대부분 밀입국을 했거나 신분이 불확실한 경
우가 대부분이야. 알-카에다가 저지른 테러의 여파가 아직도 저런
식으로 남아 있다는 엄청 기분나쁘지만……."
"야, 분위기 무거워진다.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자."
짧지 않은 시간을 움직인 끝에 밥을 먹기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었다.
"뉴욕에 직접 와서 엄청 놀랬어."
"왜?"
"지하철이 왜 그렇게 지저분한지……."
"원래 뉴욕의 지하철은 거의 100년전에 개통한 거야. 반세기도 못
넘긴 서울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돼."
"그래도 그렇지 그게 뭐냐?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게다가 냄새가 왜
그리도 지독한지……."
"뭐, 그건 어쩔 수 없다만……."
뉴욕 지하철의 지저분한 환경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지태는 주문
한 핫도그를 한 입 먹은 후 말하였다.
"이 나라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초강국의 대표적인 도시에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그냥 그러려니 해. 이 세상 모든 나라가 다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거야. 우리나라만 해도 문제가 많잖아?"
"그야 그렇기는 하다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곧 선글래스를 낀 동양인이 들어와 자리
에 앉고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손목에 찬
시계로 눈을 옮긴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말하였다.
"밀크쉐이크 하나."
"예."
곧 주문한 밀크쉐이크가 그의 앞에 놓여졌고, 그는 이를 마시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비행기표를 확인하였다. 바로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리자 그는 즉시 이를 받은 후 몇마디 대화를 나누더
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밀크쉐이크 값을 지불한 후 밖으로 나갔
다. 때마침 식사를 끝낸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랐다.
"좋아. 이번엔 어디로 가고 싶다고 했지?"
"미술관에 가보자."
금새 다음 관광 코스를 정한 두 사람이 마악 버스 정류장으로 향
했고, 때마침 그곳엔 선글래스를 낀 그 동양인이 서 있었다.
"저 사람 혹시 한국인 아닐까?"
"그렇다고 함부로 말은 걸지마라. 잘못하면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있으니까."
"뭐가 어때서?"
"그러는 게 좋다고만 알아둬."
"너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한국인입니다."
"이야~. 교포분이신가요?"
"그럼요. 두 분은?"
"저는 관광객이고, 이쪽은 이곳에 유학온 제 친구에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세 사람이 더 얘기하려는 찰나
저 만치서 정장을 입은 두 동양인이 버스 장류장으로 걸어오고 있
었다. 바로 그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검은 선글래스의 사
내가 품 안에서 마이크로 우지 기관단총을 꺼내더니 이를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가운데 정장 차림의 두 동양인 중 한 명이 쓰러졌고, 다른 한 명은
우체통 뒤로 숨어 권총을 쏘아댔다. 일이 벌어지기가 무섭게 바닥에
엎드린 두 사람은 벌벌 떨며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
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검은 선글래스의 사내는 그의 동료
들로 보이는 이들이 몰고온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현장을 떠났고,
정장 차림의 동양인은 권총을 쏘아대다가 이내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당신들과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두 사람이
다가오니까 총을 쏘아댔다는 겁니까?"
"네. 그게 우리가 본 전부에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전혀 모르시구요?"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두 사람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렸을까?'라고 생각하면
서. 곧 주미 한국 대사관 직원이 들어와 두 사람과 마주본 채 앉은
후 말하였다.
"두 분 고생하셨습니다. 곧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총을 쏜 겁
니까?"
"두 분도 잘 아실테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북한을 부활하는 것을
꿈꾸는 테러 단체에 속한 자입니다.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정
부도 그의 뒤를 쫓아다녔죠. 일단 미국에선 이례적으로 이번 사건을
관대하게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저희로서도 천만 중 다행이긴 합니
다만……."
거기 까지 말한 후 대사관 직원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마저 얘
기하였다.
"그렇게 아시고 기다리십시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7시 00분. 한국 황해도 재령
재령에 주둔하고 있는 5기갑사단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상 나팔 소리가 울리고, 거기에 맞추어 병사들이 잠에서
깨어나 연병장을 돈 후 세면장으로 가 세수를 한 다음에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그들대
로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는 등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도 참 바쁘게 돌아가는군."
"우리 일이란 게 늘 그렇지 않습니까?"
마악 서류를 들고 대대장 집무실에서 나온 안세준 대위와 김명철
소위는 대대 본부에서 나오자마자 간밤에 있었던 일에 관해 얘기하
기 시작하였다.
"중대장님, 얘기 들으셨습니까?"
"시내쪽에서 터진 일 말이지?"
"네. 참 엽기적이더군요. 여자애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어차피 지금 같은 세태에선 벌어지고도 남았을 일이야. 좌우지간
그 미군 참 바보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즐기러 왔으면 재
미만 보고 돌아가지 왜 애를 죽이냐고?"
두 사람은 재령 시내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에 관해 얘기를 나
누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시내에서
몸을 파는 여자 아이에게 싼 비용으로 성적인 재미를 보기 위해 북
부 지역으로 놀러온 미군이 아이와 흥정을 했고, 결국 성 관계를 갖
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미군이 약속을 어기고 변
태적인 성 행위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고, 미군은 화가 난 나머지 여자 아이의 자궁에 돌멩이를 손
에 잡히는 대로 집어 넣어 끝내 죽게 만들었다. 그 미군은 결국 신
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 일을 여러 언론
에선 어찌된 셈인지 크게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북한내 친한파들에
의한 유혈 쿠데타로 인해 이루어진 통일 이후 미군들의 북부 출입
이 잦아지면서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잦았던데다 그에 따라 언론들
이 많이 언급해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과 고도의 정치적 합의를 하
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북부 지역인들은 별로 돈을 쓸 일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
는 한국군 병사와 달리 직업 군인인 관계로 금전적으로 다소 풍족
한 미군 병사들이 구린 목적으로 자기네들이 사는 곳에 들러 달러
를 뿌리고 가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면서 그들을 대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 일을 다루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들 스스로 달가워하
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이기만한 남쪽의 동포들이 이상하게 보는 정
도를 넘어 욕을 할지라도 그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부를 쌓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팔자 좋은 한국 정부의 태도도
그러한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애초에 북부 지역 내에서의 모든 매춘
을 근절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긴 한국 정부는 미군에 대해선
특별한 경우임을 인정해 살인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 관
계를 갖는 상대의 연령이 어찌되었건 금전적 대가만 잘 지불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고, 미국은 미국대
로 그런 문제들을 느긋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창피한 노릇이야. 그런 꼴을 보자고 통일을 한 게 아닌데
……."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후 그들은 신장이 160센치미터대인 홍석주 상사와 마주쳤다.
홍 상사는 재빨리 그들에게 경례하였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잘 주무셨습니까?"
"물론이죠. 상사도 잘 주무셨습니까?"
"그럼요."
그렇게 해서 구 북한군 출신으로 올해 40세인 홍 상사와 같이 걷
게 되어 식당으로 향하던 안 대위는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탁치며
물었다.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따님이 계시다고 했죠?"
"올해에 고등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남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도 거북하지 않은 문화어를 구
사하는 홍 상사는 약간의 혼동으로 중학교를 고등 중학교로 불렀지
만 아무도 거기에 개의치 않았다.
"어제 일 들으셨습니까?"
"알다마다요. 딸 키우는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지요."
"북쪽 사람들은 그런 일과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
는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요. 다를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북
조선도 원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만,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수많은
어려움 때문에 모든 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거기 까지 말하고는 홍 상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남한 출신의
두 장교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홍 상사의 표현에서 보여주듯
북한 사회의 도덕 체계나 사회 질서 등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한 것
은 극심한 식량난 때문이었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압록강 너머
중국으로 가서 돈을 벌려는 월경자가 급증했음은 물론이고 그들 중
에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으로 망명해 오기도 하였다. 여성들 중엔
아예 매춘 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거기엔 10대의 소녀들도 있
었다고 했으니 문제의 심각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결국엔 그러한 사태를 초래해버린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었던 북한 지도부에 대한 증오심의 폭발로 벌어진 유혈 혁명
에 따른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그러한 세태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갔
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그들 뒤
에서 걸어오는 미군 장교 한 명이 한국어로 말하였다.
"그렇게들 얘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들도 그 사건을 기분 나쁘게 받
아들이고 있습니다."
"중위, 오해하지 말게. 우리가 싫어하는 건 문제를 일으킨 개인이지
미군 전체가 아니야."
"중위님, 그러고 보니 그 문제 일으킨 녀석은 보고 왔습니까?"
"말도 마라. 어찌나 황당한 놈인지… 근무지에 조회해 보니까 엄청
난 문제아였어."
"군법에 회부되면 어떻게 될까요?"
"범행이 고의적이고 악질적이라 중형은 따놨어."
그렇게 말하고는 5사단에 파견된 주한 미군 장교인 엘리엇 스콧
중위는 한 숨을 쉬었다. 북부 지역의 각 도에 일개 사단씩 배치된
한국군 부대마다 미군 장교와 부사관이 서너명씩 배치되었는데 이
들의 임무는 해당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올라오는 미군에
의한 대민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즉시 현장으로 가 한국 경찰에 체
포된 그들을 심문한 후 이를 8군 사령부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남쪽
에서 엄청 매운 맛을 본 주한 미군의 입장에선 북부 지역에서 벌어
지는 강력 사건들을 대단히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세 장교가 그 일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홍
상사는 예전 일이 생각나자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통일이 되기 전으로 그가 북한군 상사로 근무할 적에 일이
었다. 부하 하전사 중 한 명이 가족이 아사해버려 장례식에 참석하
기 위해 휴가를 갔는데 많이 야위어진 채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차
마 말하지 못했지만, 휴가를 다녀올 때 가져간 자기 몫의 식량을 가
족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그것 말고도 여러 더한 경우를 보고 나서
북한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뒤집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평
양의 무능력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도부를 몰아내기 위한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부하들
을 끌어들여 전차 서너대를 몰고 주둔지를 이탈해 혁명군에 합류했
었다. 그때의 행적을 인정한 한국 정부는 그에게 통일 유공자 자격
을 주며 군에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덕분에 그는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8시 20분. 한국 서울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지고 있는 여러 아파트촌 가운데 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강철민은 땀이 비오듯 흐르는 가운데 다른 인
부와 같이 목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는 단단한 체격을 지닌 건장
한 사내였던데다 북에 있을 때에도 적지 않은 노력 동원 경험이 있
어서 그의 작업 능률은 눈에 띄게 좋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북부
출신 인부들과 남부 사용자들간에 빚어지는 임금 시비와는 상관 없
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적지 않은 일당을 받았다. 그로서도 이 일
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북에서는 작업 시간이 많았던데다 돈도 전혀
주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법정 근무 시간만 채우고 돌아가도 누가
뭐라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강씨, 고향 친구라는 사람이 당신을 찾는다는데?"
"네?"
"얼른 가봐."
친구가 찾아 왔다는 말에 의아해하면서 철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소장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곧 그는 상대를 확인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야, 너 여긴 왠 일이냐?"
"뭐긴 뭐겠어? 친구 만나러 왔지."
철민은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친구 지태천과 악수를 하고는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나 취직했다."
"진짜야?"
"그렇다니까."
"어디서 일하는데?"
"남조선 국회의원의 개인 경호원으로 들어갔어. 지금은 교대하고 집
으로 가는 길이야."
"너 출세했구나."
"출세라고 할 수가 없어. 일이 엄청 고된 편이야. 그나마 다행인 게
내가 경호하는 분은 평판이 좋아. 일하는 보람이 있어."
"그래 다행이구나. 그러면 나중에 만나서 한 잔 하자."
"좋아. 다음에 연락줄게."
국회의원 오세창은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고
르고 있었다. 그의 취미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참 특이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야, 저 아저씨 좀 봐. 이번 달에도 저거 사신다."
"뭐가 어때서? 군사 잡지하고 모형지를 사는데 그게 이상할 거리라
도 되니?"
"애는… 다 큰 어른이 장난감 만지작 거리는 게 정상으로 보이니?"
"결국엔 다 취미 생활의 일환이야.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데 그거
가지고 이렇다저렇다 하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얼마 후 책을 갖고 계산대로 온 오 의원이 여직원에게 물었다.
"이것들 다 합해서 얼마입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컴퓨터와 연결된 바코드 판독기로 책의 바코드에 저장된 가격
정보를 확인한 여직원이 말하였다.
"2만 7천원 입니다."
"여기 3만원. 거슬러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여직원으로부터 거스름돈을 받은 오 의원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
대로 서점에서 나왔다.
'책을 샀으니 이번엔 모형점에 가서 에나멜하고 락카나 좀 긁어모아
야겠다. 가만, 서페이서 사 둔 게 다 바닥났으니 그것도 좀 사야겠
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규모가 큰 모형점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
을 돌렸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9시 30분. 한국 경기도 평택
"오늘 훈련 일정은 다음과 같다. 10시 정각에 우리 편대는 기지에서
이륙해 웨이포인트 알파를 거쳐 웨이포인트 브라보에서 광주 기지
로부터 이륙해 날아올 F-15K 편대와 합류한다. 그 다음 웨이포인트
찰리를 통해 북부 지역에 자리한 웨이포인트 델타로 향한다. 거기서
우리는 공격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 이륙할 황주 기지의 MiG-29를
저지해야 한다. 요격대를 전멸시켰거나 공격대가 가상의 지상 표적
을 파괴하는데 성공할 경우 임무를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고 반대로
요격대가 공격대를 저지하거나 호위를 맡은 우리를 전멸시켰을 경
우 그쪽의 승리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훈련이지만, 항상
실전에 임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질문 있나?"
질문이 없느냐는 물음에 아무 반응이 없자 편대장인 '이강돈' 소령
이 모두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모두 준비하도록. 자존심만 더럽게 센 북쪽 촌놈들한테 우
리 실력을 보여주는 거다!"
그의 독려를 들으며 이진성 대위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 이후 한국의 여러 언론 매체에선 그간 베일에 가려져온 -적어
도 그들의 입장에선- 북한 공군기들에 대해 다루었는데 그때 인터
뷰에 응했던 북한 공군 출신 조종사들은 한국 공군기에 비해 자신
들의 전투기가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에 의한 원거리 공격에선 크게
밀릴지라도 근접전에선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곤 했
기 때문이었다.
"선배,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오늘 우리랑 맞붙는다는 황주 기지쪽 MiG-29 조종사들 중에……."
"설마……."
그렇게 말 끝을 흐리고는 이 대위는 기억을 떠올렸다. 황주 기지의
MiG-29 조종사들 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림길용
중령은 전선 종심이 극도로 짧을 경우에 생길지 모를 중거리 공대
공 미사일의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한 미 공군과의 가상 교
전에서 무려 2대의 F-15C를 가상 격추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장본
인이었다. 게다가 그 두 대의 F-15C를 몰았던 미 공군 조종사들 가
운데 한 명인 조지 페터슨 소령의 경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사용
이 일반화된 지금과 같은 때에 독파이팅을 벌여 적성국 전투기 두
대를 격추해 버린 인물이어서 그 여파가 매우 컸었다. 이 사건은 사
실상 흡수 통일에 가까운 한국과의 합병으로 그간 풀이 죽어 있었
던 북부 출신 군인들의 사기를 돋구었고, 미군이 오만하게 군다는
이유로 그들을 싫어하는 적지 않은 남쪽 젊은이들에게 큰 화제거리
가 되었다. 하지만, 여론의 그런 반응에 대해 림 중령 본인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그가 나온다면 더 재미있겠지. 이기기는 힘들테지만 말이야."
"제 생각엔 나오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명관아, 결과가 너무 싱거우면 재미가 없는거야. 게다가 훈련은 늘
실전같이 하라는 말도 있잖아?"
선배인 진성의 말에 김명관 중위는 머리를 긁적이며 행거 안에 대
기하고 있는 자신의 KF-16의 상태를 차분하게 확인한 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종석에 몸을 실었다. 얼마 후 닷지사제 항공기 견인
차들이 오늘 훈련을 위해 이륙할 KF-16들을 견인하기 시작하였다.
주기장을 지나자 견인차들은 견인을 중지한 후 안전 위치로 이동하
였고 전투기들은 엔진 출력을 낮게 잡은 채 자력으로 활주로로 향
했다. 활주로 위에 자신의 기체를 진입시킨 이강돈 소령은 관제탑에
이륙 허가를 요청하였다.
"여기는 제주바위. 관제탑, 이륙허가 바란다."
-여기는 관제탑. 제주바위, 이륙을 허가한다.
이 소령은 곧바로 스로틀을 조작해 엔진 출력을 높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속한 KF-16은 활주로를 달리면서 서서히 기수를 치
켜올린 다음 이륙하였다. 이륙에 성공하기가 무섭게 랜딩 기어를 접
은 그는 다른 편대원들이 이륙할 때까지 적정 고도에서 맴돌며 그
들을 기다렸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편대를 형성한 KF-16 네 대
는 1차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09시 45분. 한국 평양
평양에 자리하고 있는 '학생소년궁전' 내에 자리한 공연장에선 학
생들의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들의 대부분은 한미 양국의 군 장성과 영관급 장교, 그들의
부인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인 정재석 대장은 자신들의 기량을 한
껏 뽐내듯 무용을 하는 소녀들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
국에선 거의 보기 힘든 구경을 하게 됐다면서 즐거워하는 주한 미
군 인사들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미
8군 사령관인 사이먼 엔딘 대장이 궁금한 나머지 절친한 친구인 그
에게 물음을 던졌다.
"여보게, 자네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
"변한 게 없어서."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아이들이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느
라 이상한 얼굴이 되는 일도 없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걸 강요받지도 않고……."
"그래도 이곳은 아직 멀었네.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어."
정 대장의 말에 엔딘 대장은 멎적은 표정을 지으며 공연중인 아이
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긴 그의 말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
었다. 이곳 평양의 학생궁전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선 통일이 된 지
금도 여러 가지로 얘기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
에도 불구하고 부지 10만 3천 제곱미터에 높이 60m에 이르는 이
건물을 지은 북한 당국이 북한 각지의 어린이들에게 이곳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리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엔딘 대장은 특
별한 가치를 부여받기 힘든 이 건물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만 아이들에 대해선 딱히 이렇다 할 악감정이 일지 않았다. 차마 말
하기 힘들지만, 애지중지하는 손주들 가운데 한 명을 사고로 잃어버
린 그로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씁쓸한 감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공연이 끝나면서 아이들은 '감사합니다.'와 'Thank You'가 적힌
카드를 들어보였고, 장군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장군들은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하였다. 곧
소년 궁전에서의 일정을 마친 방청객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
고, 엔딘 대장과 정 대장은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서로 대화를 나누
었다.
"자네도 알테지만, 워싱턴에선 사령부를 평양으로 이동시키고 싶어
하네."
"그러면 자네 나라에선 8군 주력의 북부 배치를 바라는 건가?"
"정책이 바뀌었거든."
"나는 동의하기 힘드네. 이곳 사람들이 김정일과 그 측근들에게 반
대했다고 해서 미국에 결코 우호적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말게."
"그걸 모를 리가 있겠나? 하지만, 우린 이리로 와야만 해. 윗 동네
가 딴 맘을 못 먹게 하려면 우리가 직접 이리로 오는 게 최선의 해
결책이란 말일세."
"어찌됐든 나는 자네들이 이리로 오는 거에 대해선 반대야."
"그렇다고 자네가 국가간에 있을 정치적 합의에 개입할 수는 없지
않나?"
"……."
"너무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게. 어쩌면 우리가 이리로 오는 게 이곳
사람들을 돕는 것이 될 지 누가 알겠나?"
그렇게 말한 후 엔딘 대장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 떠났다.
이를 지켜보던 정 대장은 곧 자신의 관용차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
였다. 차에 오르면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혁명으
로 김정일의 독재 체제가 붕괴하면서 북한인들은 정신을 추스리기
도 전에 혁명 정부의 개입 요청을 이유로 북에 진입한 미군과 한국
군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아야만 했었다. 적지 않은
북한인들이 두 나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들
이 받는 구호물자에 대해 감사하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그는 통일 한국의 장래에 대해 고민이 싹트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있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아야 겠다는 생각
에 이르자 그는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바라보았다.
2010년 03월 06일. 토요일. 10시 10분. 황해도 멸악산
KF-16과 F-15K 편대로 이루어진 스트라이크 패키지는 황주 기지
로부터 이륙한 MiG-29 편대의 요격을 받게 될 멸악산 상공에 이르
렀다. 높이 816m에 달하는 이 산 어딘가에 설치된 공군의 레이더
사이트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 하나 체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
각에 이르자 김명관 중위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훈련의
실제 목적이 남북 군인들간에 일종의 기싸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훈련인만큼 충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명심해라. 이번 훈련에 에이왁스(AWACS -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의 지원은 없다. 우리 능력만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강돈 소령의 그와 같은 주의가 있은 후 편대원들은 KF-16의 눈
이라고 할 수 있는 AN/APG-81 레이더를 일제히 켰다. 그간 계속
된 개량을 거쳐 흠잡을 데가 없는 이 레이더로 자신들을 향해 접근
해오는 MiG-29들을 확인한 편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대응에 나섰
다. KF-16 편대가 이렇다 할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있음에도 자체
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반면 MiG-29들은 열악한 항전
장비 문제 때문에 지상 관제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 움직임엔 기민
함이 없었다. 얼마 후 마주친 두 편대의 가상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공을 시도한 쪽은 MiG-29 편대였지만, 이미 KF-16 편대는
유리한 위치를 점한 상태였다.
"간다!"
편대원들 중 가장 먼저 이진성 대위의 KF-16이 MiG-29의 꼬리를
노리고 덤볐다. 이 대위의 KF-16이 자신의 후방을 노리고 접근하자
목표가 된 MiG-29는 재빨리 옆으로 선회해 이를 피하였고, KF-16
도 여기에 맞서 선회하면서 두 기체는 시저스 기동에 들어가고 말
았다. 이렇게 서로가 반복된 기동을 하는 가운데 MiG-29의 조종사
가 끝내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대로 이탈해버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꼬리를 물려던 이 대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쫓기는 입장이던 MiG-29가 별안간 에어브레이크를 작동해 그의
KF-16이 추월하도록 만든 것이다.
"제길!"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는 이를 악물며 조종간을 잡아
당겼고, KF-16은 그대로 수직 선회를 하였다. 곧 KF-16은 MiG-29
의 꼬리를 완전히 무는데 성공했다. MiG-29의 조종사인 림길용 중
령은 상대인 KF-16의 조종사가 막판 뒤집기나 다름 없는 역전을
펼치자 황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3대 1로 가상 교전이
끝나자 전투기들은 다시 편대를 이루어 나란히 비행하였다.
-자네 정말 잘하는군! 이름이 어떻게 되나?
"대위 이진성 입니다."
-나는 림길용이네.
"예? 그러면 바로 그 림 중령님 이십니까?"
-나를 아나?
"지금 중령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언론에서 띄워주는 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머리 속에서 잊혀지
는 법이야. 그러면 계속 수고하게.
-시간이 되신다면 공격대가 폭탄 투하를 하는 걸 보고 가지 않으시
겠습니까?
이강돈 소령의 제안에 대해 림 중령은 흔쾌히 응하였다.
-좋아. 기왕 왔으니 끝까지 보고 가도 나쁠 것은 없지.
곧 동쪽으로 기수를 돌린 전투기들은 그들 아래에 있는 F-15K편
대가 목표 지점에 파란색으로 도색된 훈련탄을 투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실탄이 아니라고 하지만 약간이나마 폭발력을 갖고 있는
훈련탄들이 지면에 격돌한 후 일제히 폭발하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렇게 오늘 훈련의 끝 마무리를 지켜본 전투기들은 곧 편대 단위
로 귀환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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