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바람의 남자는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열어재꼈다. 창너머의 불빛을 본다. 한참동안. 그러던 남자는 바닥에 늘어진 옷들을 집어 들고 주섬주섬 옷을 차려 입는다. 그 소리에 남자의 동생은 잠에서 깬다. 동생은 형의 방의 문턱에 선다. "형, 뭐해? 오늘 휴일이야." 동생이 말하지만, 형은 대답이 없다. 그저 옷을 입을 뿐. 형의 이상한 분위기에 동생은 서서히 겁에 질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동생은 무언가를 기억해내고, 울상이 되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제발 장난치지마." 동생이 문턱에 섰다. 형은 옷을 다 입은 상태였지만 아무 옷이나 입은 나머지 스타일링은 개판이었다. 동생은 그 형을 바라보며 문턱에 섰다. "나가지 마. 제발." 그러나 형은 동생을 발로 차버렸다. 동생은 거실 바닥에 나뒹군다. 형은 그대로 자연스레 걸어나간다.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은 뒤에, 문을 연다.

"가지마, 만철 이 씨발 애비잃은 염병할 새꺄!" 동생의 외침을 뒤로하고 만철은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다. 쾅, 힘이 사라져 탄력을 잃은 현관문은 무심하게 폭력적인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게 마지막이다.


거리에는 행진이 이어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늘에 비친 무언가를 바라보며 걸었다. 눈 앞에 울타리가 있다면 돌아가거나 울타리를 넘는다. 그들은 아무 말없이 또렷하고 무언가를 바라보며 걷는다. 소름끼칠 정도로 고요한 기운이 행진을 감싸고 있다.

어느 운전자는 운전하다가 도롯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행진에 서행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어차피 더이상 운전할 수 없는 상황이니 운전자는 문을 열고 행진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곳을 따라 바라본다. 운전자가 바라보는 하늘은 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묵직하게 흐린 하늘이었다.




천둥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동생은 거실에서 울먹이고, 소란에 덩달아 잠이 깬 어머니는 다급히 방에서 나온다. "이게 무슨 소리니?" 동생은 메이는 목을 가다듬고 말한다. "형이 집을 나갔어요." 다시 가다듬고 말한다. "그게 또 시작했는데, 이번엔 형이에요." 어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았다. 장난이 아님을 의식하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조금 큰 소리의 천둥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비가 올 심산인가 보다. 동생은 점점 커지는 천둥소리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없어요..." 동생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말릴 수 없단 걸.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기에. 



아버지가 돌아갈 당시, 가족은 호숫가 캠핑장에 와있었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호수로 걸어가는 것이다. 이를 먼저 눈치챈 장남 만철은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만철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아버지는 계속 걸었다. 그 앞은 깊은 호수였다. 뒤이어 어머니가 일어났고, 뒤이어 동생도 일어났다. 전 가족은 무슨일인지 직감했다. 그래서, 3인의 가족은 아버지의 양 팔과 몸을 잡으며 말렸다.

캠핑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만철의 아버지만 그 빛을 보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캠핑장의 사람들 중에 몇몇이 호수를 향해 걸으려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가 그를 붙잡으려 하지만, 빛(호수)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완고했다. 그 중에 막 걷기 시작한 3살 아기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버둥대는 아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붙잡으며 절규했다.

아버지는 호수를 걸었고, 상반신까지 물에 잠겼지만, 아버지는 끝내 빛만 보며 걸어나갔다. 누군가가 전화로 이 상황을 신고했지만, 건너편의 답변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빛을 본 사람들을 어떻게 뜯어말릴 수가 없다. 하루는 족쇄와 사슬로 묶어봤지만 빛을 본 이들은 자신을 탈골시키고 찢으면서까지 족쇄에 묶인 자신의 몸을 풀어, 빛을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약을 주입해도 어느샌가 깨어서 계속 버둥거렸다. 끝없는 의지와 근성을 가진 그들은 철창과 쇠문, 시멘트벽으로 가로막혀 밖을 볼 수 없는 방이라도 그들은 계속 빛이 있는 방향으로 걸으려고 했다. 식음조차 전폐하면서.

빛을 본 이들은 과격하고 자기 신체훼손의 방식을 다하면서까지 그들은 빛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즉, 그들의 살생을 막기 위해 그들을 묶거나 가둔다고 해도,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더 잔혹하게 죽여버리는 것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만철네 가족들은 아버지의 팔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의 손길에서 해방된 아버지는 점점 호수 밑으로 잠겨져 갔다.

몇 시간 후, 호수 위에는 익사하여 죽은 자들의 시체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모두 빛을 봤거나, 빛을 본 이들을 말리려다 같이 물에 빠져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이로부터 하루 뒤, 형인 만철과 동생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한잔씩 주고받고 있었다. 둘은 그 빛이 설마 보이더라도 애를 쓰고 최선을 다해서 따라 가지 않기로 서로 결심했다. 




오늘날, 만철네 집은  높은 층의 아파트라서 창 밖 멀리를 볼 수 있었다. 창 밖에는 흐린 하늘 너머로 줄줄이, 빽빽히,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짐짓 숭고해보이지만, 짐짓 섬뜩한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영혼없이 빛을 바라보며 걷다가 어딘가에 걸리거나, 걷다가 지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철은 일주일 후에 도롯가에 뺑소니 사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허리가 바퀴에 깔려 내장이 짓이겨진 상태로 죽어있었다. 찢어진 살갗 사이로 살짝 쏟아진 내장이 보이기도 했다. 지나가다 발견한 운전병의 말로는, 그가 내장을 쏟은 상태에서도 약 반 시간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버둥거렸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눈을 번뜩이며. 눈을 번뜩이며. 눈을 번뜩이며. 





장례식을 치른 후에 동생은 TV를 들어 과학 계열 박사들이 이 상황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 심리학부터 우주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가지 분명한 건, 이게 외계인의 소행은 아니란 겁니다. 아니, 워낙 그런 이야기들이 돌아서 언급했었어야 했어요. 그렇게 말하면 이해가 쉽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아니에요. 바이러스에 대한 일도 아니고, 광우병같은 질병, 박테리아에 의해 뇌손상이 일어나서 생긴 일은 아닙니다. 기생충도 아니고요. 집단 히스테리일 가능성도 낮습니다."

"그럼 대체 이건 무슨 일인 건가요? 원인이 무엇인가요?" 진행자가 물었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추하기로는, 우주적인 관점의 일인 것 같아요. 우리들의 과학지식과 관측법으로 우주가 어떻다라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는 우주의 티끌만 보고 이해한 것일 뿐, 우주 자체는 우리의 이론밖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 우주의 의지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모호하군요. 그럼 그들이 보는 빛은 무엇일까요?" 진행자가 물었다.

"우리도 모릅니다. 아마도 어떤 우주 현상일 겁니다." 박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긁으며 답변했다.

그냥 이상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