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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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이 이야기를 써야할지 고민하다가 별이 흐르는 카페에 이야기를 씁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샘이네요.
Who becomes meat?
Chapter 1.
[(Who becomes meat?)누가 고기가 되어야 하는가? 강제로 먹여지고, 강제로 살찌워지며 끝없이 자손을 낳아 고기로 바쳐야 하는 것. 따스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동자 무시한 채, 그들이 잡아 먹힐 고기로 팔아야 하는 삶. 태양이 주었다는 찬란한 생명 전체가 포식자의 먹이 감이 되는 운명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온갖 소중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가지고도, 우린 언젠가는 반드시 도축장의 긴 줄어 서야만 한다. 그래서 묻는다. 누가 고기가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누가 동물의 운명을 정하는 것인가?]
회색과 흰색이 섞인 털을 가진 늑대인 스테돌프는 앞발에 들려있는 다람쥐 크기에 맞을 직사각형 종이를 읽어보았다. 어느 정도 정돈된 활자와 말라붙은 잉크로 보아 도시의 공장 같은 시설에서 인쇄된 종이가 분명했지만 금속활자 인쇄조합원들의 정교함이나 세세함 같은 것 없는 거친 글이었다. 마치 목이 물려 숨이 멎는 사냥감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종이는 인쇄 조합원들의 P 문양도 없었고 글자도 불순물이 잔뜩 섞인 날 것 같은 철로 만든 것처럼 거칠었다. 무엇보다도 고기를 먹는 동물인 스테돌프의 신경을 긁은 건 인쇄지 뒷면의 그림이었는데 그들이 하는 짓이라는 제목 아래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웃고 떠들면서 산더미 같이 쌓인 고기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목판으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 놈 들의 운명은 당연히 고기가 되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야. 게다가 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적이 있기는 한가?/ 스테돌프는 늑대의 발톱이 달린 앞발로 그 종이를 찢어버리다 구겨서 흙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케이크와 고기가 가득한 그 만찬을 벌이는 그림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늑대로 보이는 형체였는데, 그 형체는 아무 걱정 없이 게걸스럽게 양손으로 고기와 케이크를 잡아 뜯어먹고 있었다. 자신의 종족이 바로 그 늑대인 스테돌프는 삶 전체에서 한번도 그렇게 풍족하게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스테돌프 자신의 기분이 언짢아진 이유일 것이다.
“저건 뭐지? 광고 풍선이 바람을 타고 잘못 날아와 떨어진 광고지라도 되는 건가?” 일행 중 선두에 서있던 사자가 말했다. 암사자였고, 스테돌프보다 두 배는 키가 컸으며 연대장의 상징인 황금색과 진홍색이 수놓아진 띠가 반달모양의 이각모의 금박 배지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별 내용 없는 광고지겠죠.” 스테돌프와 같은 종족인 사코 모자를 쓴 부사관 늑대가 말했다. 그들의 대화처럼 회색의 폐지 같은 종이들이 일행 주변에 몇 장 흩어져 있었다.
늑대 부사관이 교활하기로 유명한 여우처럼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는 동안 말 두 마리가 끄는 수래 위에 담비 하나와 9 마리의 다람쥐들 중 하나가 수래 아래쪽으로 내려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사기조차 없어 술을 마시고 군부의 비상식량으로 쓰이는 녀석들이 긴 여행자 호위 임무에 지쳐 심심해졌던 모양이다.
여행자 호위 임무에 파견된 군부의 다람쥐들은 늘 그렇듯이 발효된 도토리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대며 종이를 읽어 내려갔고 그것이 부사관을 자극했다.
“이 멍청한 총알 방패들아 내가 전방 경계를 하라고 수래 위에 앉혔지 노닥거리라고 행군을 안 시키는 건 줄 알아? 술을 마시는 건 괜찮아. 하지만 그 입에 담지 못할 반역스러운 종이를 볼 자유를 주신 않았을 텐데? 당장 내놔라. 가장 가까운 주방에서 오늘의 특선 요리 겨자를 가득 친 다람쥐 구이가 되기 전에.”
부사관 늑대가 종이를 빼앗고 프라이드 랜드를 지배하는 섭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나눠지는 것. 포식자들을 위해 다른 모든 동물들은 고기가 되어야 하는 것 그건 당연한 이치였다.
“반역스러운 내용이라, 도대체 뭐가 쓰여져 있기에 그러는 거지? 부사관. 내가 확인해 봐야 되겠군.”
여행자 무리를 이끄는 호위 분대의 지휘관인 암사자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녀가 일행의 제일 앞에 서있었기에 삐그덕 거리는 수레의 소리와 함께 일행은 멈추었고 순식간에 다람쥐들은 모두 조각상이라도 된 듯 굳어버렸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옅은 바람이 다람쥐들의 털들을 조금 움직이지 않았다면 진짜로 석조 조각이라 믿어도 될 정도였다.
프라이드 랜드의 존귀한 사자들은 언제나 군생활을 연대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사자들은 가장 고귀한 피를 가진 높으신 분들이었고, 여행자 호위 분대라는 부하들도 별로 없고 군부에서 낮은 수준의 일을 한다 해도 목소리 한마디에 분위기를 순식간에 가라앉히고 차가운 얼음장처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 상관없는 광고지였습니다. 반역스러운 내용이라. 포식자들은 언제든지 피식자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믿음을 관리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저 술이나 마시는 다람쥐들을 혼내주러 겁을 준거 아니겠습니까.”
순간 부사관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걸 황급히 덮으려 했다. 반역이라니 프라이드 랜드에서 절대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닌가? 땀 냄새가 나는 부사관의 주둥이에서, 포식자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가느다란 수염 가닥이 왠지 모르게 움직이는 듯 했다.
“내가 확인해 보지.”
암사자가 말했다. 부사관의 변명은 실패했다. 들고 있던 종이를 빼앗긴 부사관이 거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으며 한 숨을 내쉬는 동안 종이를 읽는 암사자의 얼굴이 밝았다가 어두워졌다가 붉어졌다.
프라이드 랜드의 섭리를 어기는 내용. 사실 그것만큼 사자들을 화나게 할 것은 없었다. 달콤한 케이크와, 초콜릿과, 과자와 그리고 값비싼 최상품의 정원(The Garden)산 돼지고기 먹을 수 있는 사자들은, 충분히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고기를 먹지 못해 굶지는 않았다.
그런 맨 얼굴이 들어났기 때문인지, 단순히 자부심이 가장 많은 종족이기 때문인지 암사자는 종이를 읽었던 다람쥐를 할퀴었다. 갈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짜증이 잔뜩 나 있었다.
“이 불경한 것들을 증거로 수거해. 그리고 프라이드 렌드 시(City of PrideLand)에 도착한 바로 다음에 교회의 이단 심문회에 연락을 넣어야겠어. 태양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런 글을 만들어내고 인쇄해낸 동물들은 희생의 제단에서 스스로의 몸뚱어리를 바치는 것으로 값을 치러야 해.”
사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저기 연대장, 그리고 분대의 지휘자시여. 말씀하기 죄송하지만 이런 사항은 군부의 감찰 부서에 넘기는 걸로 끝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부르는 건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합니다. 단순히 기초교육을 받은 피식자 노동자들의 불만이라면 군부의 처형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부사관이 고개를 약간 숙이며 말했다. 지금 프라이드 랜드시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 20마리가 조금 넘는 여행자들과 13마리의 군부 출신 호위대는, 이번 임무가 군부의 첫 임무인 신참 암사자에 의해 지휘 받고 있었다. 복잡한 사자 상류층 사회의 일이 무엇이 되었든, 암사자의 삶에 어떤 이야기가 있든 이 암사자는 아무 경험이 없었다.
순수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은 분노를 낳는다. 스테돌프의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듯이 분노는 피를 먹이로 삼는 또 다른 동물이었다. 공장과 농업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현 사자 왕의 아버지인 샤드리 왕이 내린 교육 칙령 때문에 이제 일부 피식자들도 알파뱃을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방적기와 넓은 토지는 프라이드 랜드의 동물들을 먹여 살렸고, 반항적인 피식자들의 몰래 글을 쓰는 것은 불편하지만 감안해야 할 약한 부작용이었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암사자의 목소리였다. 부사관은 몸을 조금 떨었다. 경험있는 사자라면 지금 이 일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군부에 넘겼으리라. 하지만 교회의 이단 심문회를 부르는 건, 일상생활과 스케줄, 각 동물들의 성격, 제산과 소유물 문제 그리고 낡은 고문 틀들이 가득한 지하 감옥을 동반했다. 문제가 더욱 꼬이는 것이다.
“아, 아닙니다. 군부의 일은 군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의였습니다.”
부사관이 답변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일행은 프라이드 랜드시로 향하고 있었고 도시에 도착한 다음 사단이 벌어져 버릴 태였다. 거의 법률처럼 정해진 관례로, 암사자가 자비롭게 일을 넘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사자들의 역정을 받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프라이드 랜드시를 향해 두 배로 빠르게 걷는다. 그리고 다람쥐들 너희는 자신의 주재를 알아야 할거야.”
암사자가 단호하게 끊어 말한 뒤 고개를 돌렸다. 다람쥐들은 더러운 연두색 군복에 주석으로 된 제분소 모양 장식을 단 군모를 쓰고 왼쪽 허리에 탄약 가방을 매고 있었다. 다람쥐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프라이들 랜드의 섭리는 다람쥐들을 도축되어 고기가 되어야 하는 피식자로 규정했다. 그들이 하모니카 권총으로 무장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군부의 특별 규정 덕분이었고 그들의 신분은 가장 낮은 전선의 소모품이었다. 따라서 다람쥐들에겐 이렇다 할 권리가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암사자에게 상처를 입고도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이유였다.
“모두 이동.”
부사관이 암사자 대신 말했다. 사실 신참이라도 암사자는 뭔가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3대의 수레가 흙 바닥과 잔돌을 밀어내며 만들어내는 거친 소리와 함께 일행은 프라이드 랜드시를 향해 이동했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다람쥐 하나는 허리춤에 찬 많은 가죽 주머니 중에서 하얀색 파우더를 꺼내 얼굴에 발랐다. 그 다람쥐는 지휘관 암사자가 할큄을 넘어서 자신의 눈에 구멍을 낼까 걱정하고 있었다.
헐떡이는 말들을 포함해 여행자 일행은 지쳐 있었고 오직 하급 포식자에 포함되는 단비만이 지금 벌어진 일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밑바닥의 삶이라고 해도 담비는 고기를 먹는 작은 포식자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일행은 분당 사자걸음 서른 네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다. 스테돌프도 사자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버겁긴 마찬가지였지만, 여행자 일행의 양쪽을 지키고 있는 폭동 진압용 독소탄 발사기를 찬 스컹크들과 이제 막 도시로 상경하고 있는 라쿤 가족들같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동물들은 빨라진 사자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하루 종일 나무들 사이로 난 흙 길을 걷느라 지친 스테돌프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시에 도착할 시간을 생각하면 이 걸음도 감안 할만 했다. 늦가을의 짧은 해는 져가고 있었고, 이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숲과 산채로 동물을 잡아먹는 노상강도들에 대한 기이한 소문보다는 다리가 아픈 게 나았다.
“무슨 냄새지?”
기분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암사자가 말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어쩜 아까의 일로 자기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깎여나갔을지 걱정하는 것일 수도.
아주 오래 전 숲을 뛰쳐나와 수십 세기 동안 문명 생활을 하면서 코가 무뎌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갑자기 흘러나오는 톡 쏘는 냄새는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이 썩은 새의 알에 누군가가 토한 구토물 그리고 똥과 고무가 탄 냄새라면 더 그랬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폭동 진압용 독소탄의 깡통이 조금 녹아 내린 것 같습니다. 절대로 제가 길가에다 아무렇게나 싼 건 아닙니다.” 길고 검은 색의 두꺼운 소가죽 방호의와 연두색으로 염색한 염소 가죽 벨트를 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가죽의 마스크를 쓴 스컹크가 말했다.
엉덩이의 분비 샘에서 독하고 역한 분비액을 만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받는 스컹크들은 대부분 군부에서 활동했다. 폭동을 진압하는, 냄새를 흩뿌리는 그들에게 알맞은 자리에서 말이다.
“그 냄새를 막을 만한 건 없나?”
암사자가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끈적거리는 접착용 고무도 없고 냄새가 나는 독소탄 깡통을 틀어막을 여분의 가죽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탄약 깡통을 길가에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암사자여.”
스컹크가 암사자와 일행의 다른 동물들이 주는 경멸과 멸시를 당연하는 듯이 받아들이며 말했다. 암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컹크의 분비액은 스테돌프 대에 개발된 군용설탕과 합쳐져 동물들을 독소로 덮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 깡통 탄환을 버린다는 건 초보 장교인 그녀에게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인 듯 했다.
스테돌프가 어머니와 누나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직접 보았던 것처럼 올해의 작황을 좋지 않았고, 이맘때는 무엇이든 약탈하고 훔치는 노상강도들이 대담해질 때였다. 고기로 구워먹고 남은 뼈와 죽은 동물의 조각을 장대에 꽂다 놓고 피에 젖는 나무 울타리 망루를 집이라고 부르는 그런 족속들은 그랬다.
그런 그들에게 흙 길에 뭔가 버려서 무기나 하나 더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오후지만 날이 저물어 갑니다. 저희 업무는 로프 쓰레드로(Rope thread road)를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호위하는 일인데 다람쥐 두 마리 정도는 여행자들 후열에 배치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부사관이 쓸쩍 테니스 공으로 담을 넘기는 것처럼 말했다. 최대한 암사자가 아까의 불미스러운 종이에 대해 잊기를 바란 모양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군부는 잘 만들어진 최선의 무기로 무장한 채 질서를 지켰지만, 여행자들은 호위하는 동물들은 최근의 흉년 이후 기승을 부리는 노상강도들을 대비하기엔 충분한 수가 아니었다. 강도들 중 일부는 배고픔이 극에 달해 반쯤 미쳐버렸다는 이야기가 스테돌프가 속한 노동자 조합 계급의 육식동물들에게서도 돌았으니까.
“감히 미친 동물들이라도 프라이드의 높은 혈통을 해치지는 않아. 나는 지금 상황이 괜찮다고 보는데.” 암사자가 맞받아쳤다. 지금 임무가 분명 첫 번째 군사임무일거라는 사실만 뺀다면 암사자의 말도 맞았다.
프라이드의 인원인 사자를 죽인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아무리 대담한 노상강도 무리라도 사자를 해치지 않을 거였다. 강도들이 과연 태양이 내린 명확한 섭리를 어길 만큼 대담하던가? 혹여 그런 대담한 동물이 있더라도 교회에 의해 찢기고, 갈라지고 내장이 뽑히는 운명을 맞이 할 만큼 용감하던가?
일행이 저 멀리 다음 언덕에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형체와 물건 더미를 발견한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스테돌프는 말들이 끄는 전열의 짐 수레 근처에 있었으므로 저 멀리 있는 물체들을 잘 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짐 덩어리인 게 분명한 직사각형 모양이 종류들 그리고 옷가지 비슷한 다양한 색깔의 더미였다.
“소형 동물 분대원 전원 하차. 사격 대형으로 변경.”
늑대 부사관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는 코를 킁킁거렸고 늑대의 검은 코는 땀으로 약간 젖어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좀 더 가까이서 보기만 하면 돼.”
암사자가 말했다. 스테돌프는 그 말이 암사자의 직감에서 나온 건지 그녀의 경험 없음을 설명해주는 건지 궁금해졌다.
수레를 끌던 여섯 마리의 말들과 여행자 일행들이 동요하며 몸을 흔들었다. 독소탄 깡통에서 새는 메케한 냄새와 함께 그들의 움직임은 척박한 땅에서 죽어가는 밀과도 같았다. 불안정한 움직임, 이상한 징조, 그 둘은 안전하지 않은 여행길과 합쳐져 가슴속에 불안을 심지 않았던가?
암사자는 거친 눈초리로 일행에게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일행이 움직이자 가죽과 철 그리고 못으로 보강된 나무상자와 알록달록한 색의 더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직사각형 모양의 더미는 확실히 짐이었다. 여행이나 이사를 갈 때 쓰는 하지만 지금은 버려진, 아니다, 그 말은 틀렸다. 그건 짐 근처에 널려있는 형형색색의 옷가지 때문이었는데 대부분 붉은 피로 얼룩져 있는 그 옷가지들은 사실 동물들의 몸뚱이였던 것이다.
“재기랄. 다람쥐들, 담비 모두 짐 수레에서 내려서 하차하고 사격 대형을 만들어라.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해.”
늑대 부사관이 연대장 계급의 암사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치 쇠뇌에서 쏘아진 강철 볼트와 같은 속도로 말을 내뱉었다.
스테돌프는 꽤 질 좋은 피를 타고난 고양이과 동물은 아니었지만 단단히 단결하는 조합들, 그 중에서도 방직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
프라이드 랜드를 새운 건 사자들이었지만 지금은, 사자들의 옷가지에서 레이스가 사라지고 드레스에서 값비싼 파스텔 톤 염료가 쓰이지 않게 된 것처럼 사자들의 권위는 신에서, 바늘에 걸린 실 한 오라기가 옷가지에서 풀려나오듯 한 겹쯤 낮아져 있었다. 마치 세월이 모든 걸 마모시키듯.
사자에게서 초월적인 신의 권위가 사라진 것 때문인지 아니면 경험 많은 전사의 감각이었는지 부사관은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런 늦가을의 길들이 위험하다는 건 들어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연대장이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목소리에서는 두려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권위는 조금씩 깎여나갔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존귀하고 건드릴 수 없는 프라이드의 암사자였으니까.
“일단 조사해 봐야겠지만, 조심하십쇼. 연대장이여. 강도들이 아직 여기를 떠나지 않았을 수 있거니와, 눈 먼 총알에 다치실 수 있습니다.”
늑대 부사관은 일행의 양쪽을 호위하던 스컹크 둘에게 언제든 필요하다면 전방에 독소탄 발사기를 쏴도 된다고 명령했다. 그의 시점은 마치 잘 그려지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유화를 바라보는 듯한 암사자의 눈과는 달랐다.
스테돌프에게 있어서도 이제 도로는 긴장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정확히 습격이 언제 일어났는지 몰랐기에 아직 그 강도들이 근처 숲가에 숨어 있을 수 있었으니까.
“전진해서 조사할까요?”
군부에 소속된 군인으로서 내릴 답은 그것 딱 하나이긴 했지만 이번에 부사관은 암사자에게 물어보았다.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자에게 먼저 허락을 받는 게 프라이드 랜드의 예의였다.
“조심히 조사하게. 하지만 기본적인 호위 업무는 잊지 말고 말이야.”
암사자가 답했다. 그게 경험이 전무한 암사자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지만 말이다.
하모니카 같이 긴 철 탄창의 무게로 권총을 비스듬히 조준한 다람쥐들이 앞장선 가운데 일행은 눈앞에 펼쳐진 살육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정체 모를 끈적거림과 함께 사악한 피 냄새가 퍼졌다. 죽어 시체가 된 동물들 중에서 멀리서 가장 잘 보이는 것이 소나 사슴 같은 큰 동물들이었기에 일행 속에 속해있는 사슴과 소들이 더욱 불안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을의 냉기가 지면을 덮었고 피로 뒤덮인 현장은 퇴폐한 예술과도 같은 불쾌함을 자아냈다. 그런 예술들의 뒤에 항상 음침한 화가들이 있듯 무언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의지가 그곳을 장악한 듯 했다.
스테돌프는 아까 퍼졌던 냄새가 단순히 스컹크의 밀봉이 샌 독소탄에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만조 때의 해안에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파도가 밀려오듯 그 냄새는 이 죽음의 현장에 대한 전조가 아니었을까?
수레 4대가 서로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길 전체에 왼쪽 구석에서 시작된 피 웅덩이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피들은 공업용 절삭유 같은 부자연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일행들 속에 섞여있는 초식동물들은 구역질 난다는 듯이 앞발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스테돌프는 달랐다. 오랫동안 군인으로 복무하신 어머니가 말씀했듯이 모든 상황은 차분하게 볼 필요가 있었다.
스테돌프는 마음을 다잡았다. 습격 받은 다른 여행자 무리를 보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지만, 스테돌프의 집이 있는 프라이드 랜드시가 앞에 있었다.
죽은 피식자들 그러니까 고기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마치 가시가 돋친 열매 같이 부서지고 갈라진 짐 수레와 바퀴 사이에 말이다.
이 사건이 대체 언제 일어났으며 노상강도들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거라는 머릿속의 생각과는 달리 스테돌프의 주둥이에는 침이 고였다. 신선한 고기들이었다. 초식동물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 말이다.
/정신을 차려야지/ 그가 생각했다. 위장이 꾸르륵거리며 배고픔에 대한 본능을 상기시켜 주었지만, 문명 있고, 교양 있는 동물들은 식탁에서 잘 조리된 고기를 먹지 바닥에 떨어진 잡동사니를 주워먹진 않았다.
문명과 사회는 결코 야수성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스테돌프는 믿고 있었다.
말, 여우 그리고 오소리들의 몸뚱이들이 짐과 함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끔찍하다는 말이 걸맞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도살장이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고기와 달랐다. 적어도 그런 곳들은 깨끗하고 깔끔하게 살점을 발라내고, 피를 빼고 내장을 정리했으니까.
동물들의 얼굴들은 뭔가에 놀란 듯 눈을 뜨고 있었으며 그 초점 없는 눈동자들에선 일말의 공포심이 전혀졌다. 짐 수레를 끌었을 게 분명한 앞선 여행객 일행의 말과 초식동물들은 온몸에 칼로 베듯이 심하게 갈라진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내장과 노란 체액은 너저분하게 가죽 밖으로 나와있었다. 여우 같은 동물들은 가죽이 깊게 파여 두개골의 분홍색 뼈가 보였다.
“무장하고 있는 여행객 들은 총을 꺼내기 바랍니다. 피가 신선한데 아직 강도들이 도망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늑대 부사관이 고개를 돌려 여행자 일행에게 말했다. 그는 피를 앞발로 찍어먹어 보지 않고도, 바로 앞에서 냄새를 맡지 않고도 고기와 시체의 썩은 정도를 눈치챌 수 있는 듯 했다.
/어머니가 항상 그랬지. 오래된 도로를 순찰하는 이들은 경험만으로 사소한 것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스테돌프는 생각했다.
총 그러니까 무력을 가질 권리는 늑대 같이 제대로 된 육식동물들에게만 있었으니 아까 부사관이 말한 뜻은, 여행자 일행의 스테돌프와 갈색 곰 하나 그리고 여우 셋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행자 무리의 동물들은 좀 더 안전한 여행길을 위해 굳이 시간을 기다려 가면서까지 군부의 스케줄에 맞춰서 이동했다. 안전에 대한 군부의 약속이 금이 간 건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갈색 곰은 짐짓 이 상황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퍼커션 캡 블린더버스를 들고 일행의 뒤로 향했다.
“너희들은 내 부하를 도와서 앞으로 나와줬으면 좋겠군.”
암사자가 일행의 여우들과 스테돌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암사자는 거의 정확히 스테돌프의 붉은색이 살짝 섞인 푸른 눈을 노려보았다.
스테돌프는 신참 암사자가 완전히 고집불통의, 늘 그렇듯, 너무 고귀한 피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망상이 가득한, 그런 종류의 사자는 아니라는 점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방적 기계 사이에서 넣는 한 방울의 석유 같은 융통성이 없었다면 암사자는 경험 있는 부사관이 자기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그걸 가지고 훈계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태니까.
전열의 다람쥐들이 난해한 표정으로 양 옆의 숲을 슬쩍 보며 정면을 조준하는 동안 스테돌프와 부사관 그리고 여우 셋은 사자를 따라 피 웅덩이를 밟고 시체들 곁에 바짝 다가갔다. 피 웅덩이의 질척하면서도 첨벙 하는 느낌이 양가죽 뒷발 보호대 안쪽으로 느껴졌다.
“귀중품들이 다 그대로군. 짐들은 뒤져지지도 않았어.”
암사자가 죽은 여우가 품고 있던 은박 회중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부서진 수레위에 실려있는 여행자들의 짐은 금이 가고 부서지고 넘어졌지만 어디에도 내용물을 열고 금화나, 수공예품 그리고 기계장치를 가지고 간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고기를 노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사관이 말했다. 수레를 끌 때 쓰는 가죽 하네스(Harness)가 여전히 몸에 붙어있는 죽은 일행의 말들과 초식동물들은 분명히 심한 상처가 있었다. 온몸 가득 어지럽게 칼로 베인 흔적이 말이다. 하지만 어디도 엉덩이 살이나, 허벅지 살 그리고 갈비뼈가 사라진 흔적은 없었다.
칼에 배인 흔적 이외에 시체들에 난 다른 상처는 둥그런 구멍 모양이었고 그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모여 이상하게도 집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또한 주변의 피 웅덩이와 대비되게도 피부는 마치 몸 속의 피가 빨려 사라진 것처럼 파랗고 창백했다.
도로 왼쪽에 뒤엉켜있는 포식자들과 피식자들의 피는 웅덩이를 이르다 흘러 반대편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숲은 대구경의 공성용 대포보다도 커다란 것이 지나간 듯 나무들이 휘어져 쩍 벌어져 있었다. /훔친 대포를 쓴 것일까?/ 스테돌프는 노상강도들이 군부에서 훔친 대포를 썼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들이 빽빽한 숲 전체를 헤치며 그렇게 큰 대포를 끌고 다녔을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군부는 절대 공성포를 잃어버릴 만큼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고.
피식자들 사이로 간간히 섞여있는 오소리나 여우 같은 포식자들의 시체는 스테돌프를 불편하게 했다. 스테돌프는 어디까지나 소모품 같은 피식자들과 귀중한 자원인 포식자들은 다르다고 알고 있었다.
그들의 주둥이 부서져 두 동강 나있었고 그 속으로 코를 이루는 연골과 혀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마치 눈물을 흘리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 겨우 종족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붉은 여우는 죽어 차가워진 속에 리볼버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저항을 했다.
“잔혹한 도둑들이로군. 부사관 이 현장을 기록해 두도록. 이단 신문회에 설명한 아까의 그 불경스러운 종이들에 대해서도 잊지 말고. 그런데 말이야, 그자들, 노상강도들이 아직도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나?”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저도 이런 건 뭐라고 설명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강도들이 단순히 살육만을 원했을 수는 있어도, 숲가에 난 뭔가가 뚫고 지나간 저 넓은 흔적은 그들이 만들어 낸 거라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들은 대게 두꺼운 참나무 뒤에서의 기습을 선호합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옛길의 노련함을 가진 부사관이 말했다. 그는 상관인 암사자에게 대답하는 동안에도 코트 속에서 클립보드를 꺼내 사건을 적어가고 있었다.
스테돌프가 살짝 훑어보니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첫 번째. 왕령에 어긋나는 문서들. 이단 심문회의 조사 요청이 필요함.
두 번째. 특이사건, 노상강도의 습격. 그러나 재화와 고기가 약탈당하지 않음. 주변 나무들이 부서진 정상적이지 않은 흔적. 시신들의 상처는 총상이나 아이언 클로가 아닌 칼 그리고 둔기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보임. 송곳니 자국이 있음. 장소: 로프 쓰레드로, 프라이드 랜드시 초입 약 6.5km 근방. 추가 조사 필요.]
흑연 연필로 적은 짤막한 글에는 [감찰 부서 소관의 일반적인 조사]이라는 단어가 두 줄로 그어져 지워져 있었다. 스테돌프가 읽은 불경스러운 종이를 언급한 부분에서 말이다. 사자가 태양의 교단을 끌어들여 일을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관철된 셈이었다.
북방 야만족인 스테돌프의 혈통이 문명 사회에 들어 온지도 십 수 세대가 넘었다. 그 동안 교회는 실수로 교단의 의식에 한 두 번 빠지거나 설교 때 대놓고 자는 것까지 봐줄 만큼 관대해졌지만 그들의 권위가 손상되는 일에 대해서 만큼은 여전히 민감했다. 괜히 그 종이를 집어 읽었다는 이유로 스테돌프는 짜증나게 교단의 동물들에게 시간을 빼앗길 터였다.
그 클립보드가 스테돌프의 마음을 잠시 사로잡았으나 곧이어 나타난 불안이 그 마음을 덮어버렸다. 뒤바뀐 소금기 가득한 바다의 조류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노상강도들이 하는 일은 약탈과 식사를 위한 초식동물의 도축 그리고 암시장에 그 둘을 내다팔아 금화를 버는 일이었다. 노상강도들이야 살육을 즐기는 종류들이었지만 일반 동물보다 궁핍한 그들이 낭비할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노련한 부사관처럼 스테돌프도 이 사건을 결코 평범하게 느낄 수 없었다.
스테돌프의 마음은 안정을 원했지만 늑대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일말의 불안과 의혹은 포식자의 용감함을 빗겨나가 독소처럼 느리지만 확실히 의혹을 만들어냈다.
“전체이동. 다시 속도를 유지할 것. 계속 움직이되 경계하도록.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야.”
신참 암사자가 드디어 이치에 맞는 말을 했다. 6.5km. 날은 저물어가고 불운한 일을 보았지만 그만큼만 걸으면 프라이드 랜드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테돌프는 슬며시 들고 있기 귀찮은 황동탄피 권총을 총집에 집어넣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스테돌프 근처의 세 여우가 그러는 것처럼 언제든지 쏠 수 있게 들고 있는 게 낮겠다 싶었다.
이 숲에는 뭔가 불안함이 존재했다. 이재는 스테돌프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다리는 마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듯 뒷발을 굴렀다. 일행은 이동했고 곧 오래된 흙길의 다음 언덕에 도착했다. 그들은 죽어버린 다른 일행을 수습하지 않았는데 현장을 보존해야 했거니와 실제로 수습하려면 많은 말들과 그만큼의 호위대 그리고 빈 수레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길 양 옆을 둘러싼 숲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겨 나오기는 했지만 노상강도들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요해진 바람처럼 모든 게 다시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포식자는 지배하고 피식자는 섭리에 따르고. 스테돌프와 같은 종류의 동물들은 여전히 사자나 고양이과 동물의 눈치를 봐야 했지만 그건 프라이드 랜드에서 감안해야 할 일이었다. 스테돌프는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갑자기 뒤쪽 50m쯤에서 거칠면서 하강하는 독수리 척탄부대의 활강소리보다도 높은 톤의 비명이 들려왔다. 정확히 다른 여행자 일행이 습격 당한 곳이었다.
“여기서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계십시오.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암사자여.”
늑대는 현장 지휘관의 경험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초겨울 석양이 일행을 비췄다.
“그 권총 엠렛왕께서 살아 계시는 지금 시대에 만들어진 최신 군용이지. 어떻게 그런 물건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도 함께 내 부하를 따라 나섰음 좋겠군.”
암사자가 스테돌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테돌프는 이 상황을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고 뒤로 되돌아가야 한다니/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자의 명령을 거절할만한 좋은 핑계는 없었다. 암사자가 스테돌프가 들고 있는 구하기 어려운 군용권총을 보고 명령을 내린 이상 그녀는 스테돌프가 꽤 유용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단발식 황동탄피 권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스테돌프는 마지못해 부사관을 따라 뒤돌아 가야 했다. 음습함과 스산함이 있는 그 현장으로 말이다. 명령을 내리는 암사자의 얼굴은 석양의 그림자로 가려져 있었다.
스테돌프와 늑대 부사관 그러니까 늑대 둘 그리고 스테돌프보다도 더 마지못해 끌려 나온 다람쥐 둘이 다 마신 도토리 술병을 바닥에 던지며 뒤편으로 향했다.
날카로운 소리의 진원은 부서진 수래 맞은편에서 났는데 분명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치 성대를 초의 심지로 꼬아 불태우는 것 같은 비명이었다.
“살아있었으면 왜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때 말을 하지 않은 거지? 끈질기고 지치지 않는 말 나으리. 대답해. 무슨 일이 있었지?”
“공포. 절망. 굶주림.”
부사관의 질문에 몸이 차갑게 식어가며 벌어진 옷 사이로는 튀어나온 내장이 비치는 말이 소리쳤다. 말이 내는 소음은 어떠한 고문 틀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스테돌프는 권총을 꽉 잡았다. 스테돌프가 가진 단발식 황동탄피 권총은 장거리 사격에 알맞은 물건으로 스테돌프의 가문이 할머니의 할머니 대부터 군부에서 군인으로 봉사했기 때문에 스테돌프가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군인이었던 어머니가 선물한 물건이었다.
“공포. 공포. 뒤섞이는 공포. 그것은 맥동하며 지금까지 살아있어.” 계속되는 부사관의 다그침에도 말은 입에서 침을 쏟아내며 기이한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자네 일행에서 응급 키트를 가지고 올 수 있겠나? 그것 첫 번째 수레에 있어 수레에 올라탄 담비 녀석에게 말하면 그걸 줄 거야. 빨리 가져와야겠어.”
늑대 부사관이 스테돌프에게 말했다. 얼굴 가죽은 반쯤 벗겨지고 눈 하나는 터져버려 탁한 액체를 흘리는 말에겐 그게 필요했다. 말의 증언을 듣기 위해선 우선 치료가 필요했다. 그 순간 말이 끊어진 앞발 관절을 억지로 일으켜 새우 입을 열었다.
“느낄 수 있어. 그게 지금 다가오고 있어.”
말은 다시 쓰러졌고 하나 남은 멀쩡한 눈은 다시 뻥 뚫린 공허가 되었다. 강한 격류가 휩쓸고 지나가듯 갑자기 길에서 한기가 빨려 들어갔다. 어딘가로.
“로저스, 베이컨 뒤를 맡아라. 보이는 게 있으면 쏴버리고.” 늑대 부사관이 두 다람쥐에게 명령했다. 다람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무저갱 같은 길 뒤편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다시 분대와 합류해야겠어. 걸음을 서둘러야지. 안 그런가?”
폭풍처럼 습기 있는 따듯함이 한기가 빨려 들어간 빈 공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이 쥐 녀석이 우릴 따라와있지?”
분대장 늑대와 스테돌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우연히 그들 뒤에 누군가의 유품인 피 묻은 은박 시계를 들고 있는 쥐를 보았다. 그 쥐의 재킷 아래는 다람쥐들의 것보다 조금 큰 구경의 하모니카 권총이 달려 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스테돌프는 그 쥐가 기이하면서도 기묘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평범한 회색에 때가 탄 하얀 셔츠와 붉은 재킷을 입은 평범한 쥐였다.
스테돌프는 포식자 노상강도들이 작은 동물들을 부하로 부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이 쥐는 여행자 일행에 속해 있었던 시종일관 급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 그 쥐였다.
“재가 뭔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시계가 버려두기엔 값비싸 보여서.”
쥐가 당황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그 쥐의 더러움만큼이나 얼핏 교활해 보이는 목소리는 부드러운 낭랑함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쥐는 지금 도둑질을 했으며 피식자에게는 불법인 총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감히 이런 중요한 자리에 끼어들어 함부로 물건이나 줍고 있었다니. 그리고 네놈이 들고 있는 그 총은-.”
“저기”
쥐가 소리쳤다. 빠른 열기와 함께 순간의 스침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거대한 것이 부사관과 스테돌프를 지나쳤다. 그건 금방 방향을 틀어 나무가 찢어지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숲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옛길에 익숙한 부사관이 가슴에 매고 있던 표준 군용 바늘총을 잡아들던 순간이었다.
형체가 잠깐 멀리 떨어진 일행들 사이로 보였다.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으나 그것은 곳 다시 사라졌고 순간 멀쩡해 보이던 언덕 위 암사자의 머리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몸 쪽에서 분리돼 떨어져 나갔다. 피가 뿜어져 나왔고 머리 없는 몸통이 잠시 앞으로 움직이다가 고꾸라졌다.
“습격이다. 총을 쏴.” 부사관이 멀리 떨어진 일행에게 소리쳤다. 날씨는 밤이 되었는지 어두워졌고 이상한 보랏빛 광채와 함께 하늘의 별이 빛났다. 이렇게 갑자기 한밤중이 될 일은 없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아직은 초저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순식간에 드높은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한 죽은 사자의 몸뚱이처럼 칼날 같은 바람의 움직임과 함께 벌어졌다. 저 언덕에서 십 수 게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뛰어요. 자, 어서 서둘러서.” 쥐가 소리치며 마치 집단주의 본능에 이끌리듯 남아있는 일행을 행해 달렸다. 스테돌프와 부사관도 그렇게 했다. 부사관은 자신의 바늘총을 단단히 잡으며 일행을 지휘하기 위해. 스테돌프는 혼란 속에서.
어떤 존재가 있었다. 무더운 습기와 차가운 한기가 칼날 같이 뒤섞이는 존재가 저 멀리 일행들 사이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뛸 때마다 총성의 숫자는 잦아들었고 비명소리는 늘어갔다. 군부의 다람쥐들은 사방으로 총을 난사했고 주위는 다급한 스컹크들이 무작위로 쏘아 올린 독소탄에 오염 돼 매퀘 한 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마침내 다람쥐들은 물론 한 마리 있던 담비의 비명소리조차 멎은 다음에야 셋은 미쳐 도망가지 못한 여행자 무리에 낄 수 있었다. 일행들 중에 강인한 육식동물이 끼어 있었음에도 일행 모두는 마치 겁먹은 초식 동물처럼 한 군대에 모여있다. 이건 공포였다.
“다람쥐들.”
“로저스, 베이컨 뛰어.”
쥐와 부사관이 동시에 외쳤다. 그러나 큰 동물에 걸음에 맞추지 못한 채 뒤쳐졌던 두 다람쥐의 몸통은 잠깐 하늘로 날라가더니 이내 조각이 되어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동물들은 독소탄의 매스꺼운 냄새를 맡으며 따가운 눈을 부여잡고 혼란스러워 했다.
이번엔 그것이 하얀 독소탄 구름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곰이 블린더버스로 커다란 납 구슬 산탄들을 쏘아버렸지만 그것을 멈추진 못했다. 그것은 일행의 정 중앙을 지나면서 마치 출산의 자취를 남기듯 끈적이는 타르 같은 점액을 남겼다.
일행의 절반이 쓰러졌다. 먼저 습격을 당했던 불안한 여행객들과 같은 모습으로 칼로 배듯이 심하게 갈라진 상처와 이빨자국들 또 뭔가 둥그런 집합체들에게 피를 빨린듯한 원형의 자국들. 똑같았다.
스테돌프는 눈 점막을 자극하는 메케한 독소탄에 저항하면서 겨우 눈을 떴다. 부사관은 일행의 주위를 도는 그것을 잡으려 바늘총을 조준하고 장전했지만 실패했다. 곰이 다시 산탄을 장전하려던 순간 그것이 곰의 팔과 총을 날려버렸다. 곰은 비명을 질렀고 다음순간 먹이로 집어 삼켜졌다.
스테돌프는 눈앞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행들을 덮치는 그것을 봤을 때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그것은 제대로 된 형체가 없었다. 아니 형체를 말한다면 너무 끔직할 터였다. 수 많은 눈이 달린 털 없는 촉수로 된 매끈한 머리가 언뜻 보였다. 촉수는 살을 가르고 부속지는 피를 빨았다. 그 끔찍한 것이 스테돌프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테들프 옆에 있던 부사관은 가슴이 뚫리며 쓰러졌고 스테돌프는 어떻게든 총을 쏴 그것의 눈알 하나를 맞췄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행자 일행과 호위대는 끝장났다. 스테돌프가 마지막이었다.
그들은 옛길의 진부한 위험과 마주친 게 아니었다. 그들은 공격한 대상은 이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스테돌프의 마음은 공포에 잠식돼 혼미해졌고 그는 울고 웃으며 벗어날 수 없는 보라 빛 어둠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P.S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Joy SF 복귀한 Kardien Lupus입니다. 많은 것이 바꼈지만 여전히 란 솔롱고스 같은 분들은 활동하고 계시는군요. 반가운 일이네요. 제가 처음 여기에서 글을 쓰기 위해 설정을 물어보기 시작한 2008년 이후로 그동안 이야기를 몇 편 썼습니다. 하지만 큰 진전은 없었죠. 레즈비언이라는 제 정체성 문제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남들은 3-4년에 끝내는 사춘기의 고민을 15년이 넘에 끌고나서야 어느정도 자아를 찾아달까요.
SF 판타지 도서관이 발전하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초창기 도서관이 그립기도 하네요. 좁은 방에 모여서 매주 보드 게임을 하거나 관장님이신 표도기님과 함께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배웠죠. 지금에 와선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그때가 그리워 지는데, 지금 이시간이 되어서야 본격으로 글을 쓸만큼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끝나고 나서야 성숙해졌다고 느낀다면 우연이 아니겠죠.
지금 쓰고 있는 야야기는 영어로 글을 내기로 계획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지난번에 영어로 글을 쓰려고 시도해서 배운 교훈, 모국어인 한국어로 먼저쓰고 영어로 셀프 번역하는 게 더 좋다는 교훈을 얻고 한국어로 초벌 글을 씁니다. 나중에 글이 완성 되면 제글을 제가 영어로 번역해 책으로 낼 생각이에요.
그리고 혹시 이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의견을 남겨주실 수 있나요. 정말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다른 분들의 리뷰가 절실하거든요.
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