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학엔 함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SF나 판타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품은 함의는 대부분 당대의 사회를 강하게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순간, SF계에선 인류를 통치하는 기계가 도덕적 사회를 구성한다는 소재가 흔히 쓰였습니다. 우린 이게 당대의 어떤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압니다. 국제연합을 만들어 참여하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입니다. 

판타지는 어떨까요? 어느 순간 마법의 위력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마법 한방에 국가가 통째로 쓸리거나 심지어 행성이 작살나기까지 합니다. 이게 어디에서 영향받았는지 파악하는건 아까보다 더 쉽습니다. 냉전이죠. 

기왕 마법에 대해 화두를 던졌으니 조금 더 나가죠. 장르를 불문하고 마법은 대대로 욕망을 현실화 시키는 사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덕분에 마법의 선악을 따지는건 간단했죠. 악당이 쓰면 나쁜것. 영웅이 쓰면 좋은것입니다. 이런 힘을 아무나 쓰면 재미없겠죠? 그래서 마법은 현자나 영웅의 전유물로서 그들의 초인적인 힘을 강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도식은 지금에 와선 거의 사라졌습니다. 마법은 능력만 되면 누구나 쓸수 있는 편리한 힘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마법은 잘못 사용하면 우주적인 재앙을 일으키는 강력하지만 위험한 힘으로도 비추어집니다. 이건 현실의 어느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을까요?

바로 현대의 과학문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현대문명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합리적인 이성은 광기로 돌변했으며 기대하던 과학은 뜻밖의 큰 부작용을 동반했습니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시각이 판타지의 마법에 투영된 것이죠.

(주제를 다소 벗어난 말이지만, 바로 위와 같은 이유로 기계가 인류를 압제하는게 주류가 된건 무척 안타깝습니다. 도덕적인 혹은 도덕을 추구하는 기계라는 멋진 소재가 묻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당시 국제연합에 대한 기대는 신앙에 가까웠다는걸 -대통령마저 영매같은 초상능력의 힘을 빌려서까지 국제연합에 기대를 걸었으니 말이죠- 감안해야겠지만 이런 훌륭한 소재가 시대의 유행으로만 그칠만한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제가 이토록 문학이 현실의 반영임을 강조한 것은 양판소에도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욕구에 충실한만큼 양판소야말로 독자의 심리를 여과없이 보여줄 수 있죠.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제게 양판소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양판소가 품고있는 함의를 분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릇 문학이란 주인공 혹은 화자의(궁극적으로는 작가의) 가치관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이러한 흐름을 따지면 양판소의 함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석한 양판소의 진정한 문제점은 지식의 부재도, 상상력의 빈곤도 아닙니다. 지식은 배움으로서, 상상력은 흥미의 창출로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양판소의 진정한 문제는 이런 사소한(?) 부분이 아닙니다. 제가 꼽는 양판소의 진정한 문제점.... 그것은 양판소에서 흔히 나오는 정신분열증입니다. 그래요. 양판소가 반영하는 가치관은 병들어 있습니다. 

양판소의 주인공들은 거의 항상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싫어합니다. 특히 권력자에 대한 미움은 거의 맹목적인데, 이것은 상당부분 그들의 위선과 악행 그리고 천박한 출세지향적인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양판소의 악역들은 거의 항상 이중적이고, 선의를 짓밟으며, 자신의 출세를 그 어떤 것보다 우선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암울하게도, 이러한 악역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주역이 힘을 얻으면 그순간 사라져버립니다. 

힘을 얻은 양판소의 주역들은 (마치 당하고(?) 살았던 것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타인을 짓누르고, 더 많은 힘을 탐하고,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 합니다. 심지어 더 강한 힘에 깨달음이 필요하답시고 제시한 그 '깨달음'은 항상 '나는 언제나 옳다' 혹은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등등의 자기합리화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이쯤되면 설정된 주역과 악역의 진정한 차이는 '주인공이라서 그 행동이 용납되느냐, 아니냐'밖엔 없습니다. 주인공이 행하면 (그것이 심지어 노예매매라 할지라도) 그 행동에 정당성을 얻으며, 악당이 행하면 주인공이 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을 지라도 악이 됩니다. 의심간다면 아무 책이나 떠들러보세요. 악당일때엔 항상 비난받던 음모와 궤계는 주인공이 사용하면 언제나 주인공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도구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정신분열증의 절정은 세계이동으로서 절대적인 힘을 얻은 주인공이 다른 곳도 아닌 학교로 되돌아간다는 것으로 정점을 찍습니다. 아니 왜? 칼 하나로 지진을 일으키는 검기를 쓰고, 주문 한방에 현실을 개변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하고 많은 곳을 다 놔두고 학교로 갈까요? 

이 지구, 탐구와 모험이 가득한 이 거대한 세계를, 능력과 기개를 펼칠 광활한 미래를... 그들은 전부 외면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벌이는 짓은 이세계에서 벌인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일의 반복입니다. 아니, 학교의 악역들은 이세계의 악역만큼의 힘이 없으니 이세계 깽판 이하로 천박하군요.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강자가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애들 상대로 이 무슨 짓입니까?

절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이 병든 정신세계의 작품들이 인기가 많다는 겁니다. 아니, 단순히 인기가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양판소 작품군집은 끊임없이 재생산을 반복하고 그에 맞춰 재소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작품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생활양식이 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보다 끔찍한 것은 끊임없는 재생산과 재소비의 루프에서 양판소는 그 나름대로 진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록 표절논란은 있으나) 소재는 늘어났고 단순한 활극에서 미스테리, 느와르등으로 장르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양판소의 행동심리는 보다 합리적으로 변했습니다. 인물의 행동에 정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양판소에 내재된 정신질환이 치유되기는 커녕 보다 깊어지고 보다 심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비극입니다. 문학에 대한 비극이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경험과 지식으로 해결가능한 문제니까요. 양판소의 비극은 작품군집 안에 깊이 뿌리내린 정신질환에 있으며, 이 병든 마음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소비군집에 있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병든 심리가 날이 갈수록 힘을 얻으며 퍼지는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정말 참혹한 기분만 듭니다.

[물고기군] 밤이면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사랑하고픈 사람과 별을 바라다 보고 싶을때 비오는날 우산들이 공허하게 스쳐갈 때 노래부르는 물고기가 되고 싶고 날개달려 하늘을 날고싶다. 아침의 차가운 바닥에서 눈을돌려 회색의 도시라도 사람의 모습을 느껴본다 부디 꿈이여 날 떠나지 마소서... [까마귀양] 고통은 해과 함께 서려가고 한은 갑갑하메 풀 길이 없네 꿈은 해와 함께 즈려가고 삶과 함께 흩어지네 나의 꿈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길을 밝혀 밤의 끝을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