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과 우산.

...................................................................................


샤웨가 통신채널의 볼륨을 높였다.


[제군들도 알다시피. 알로하 기지의 적은 방어선을 구축한 채 밖으로 고개를 내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군은 적의 화력이 집중된 기지의 정면을 우회하여 평원의 서남단에 주력 전차부대를 공중 강습시키고자 한다.]


군사작전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에도 유난히 짜증이 나는 작전이 있는 법이다.
이번 작전이 나에게 그렇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남에게 밝힐 정도로 떳떳한 이야기도 아니어서 혼자 슬슬 가슴 아파하다가 말아야 한다.
뭐 사실 세상일이 다 그렇긴 하지만.

쳇.

부하의 말투를 닮아간다는 느낌이 드는군.

[이번 작전은 이제껏 제군들이 참여한 모든 작전들 가운데 가장 대규모의 것이 될 것이다.]

대대장의 목소리는 가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력이 부족한 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카랑카랑한 편에 속한다.

[후방의 알파 공격대가 이번 작전에 참여할 계획이며 작전의 총 지휘권은 그 유명한 듀크 장군이 맡게 된다.]

브리핑 중인 대대장의 목소리는 단조로우면서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힘을 싣고 있다.
잠을 자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환경이 심히 불편하다.

“야. 샤웨.”
“예?”
“꺼.”
“뭘.....요?”
“시끄럽잖아.”

째진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아니, 노려보는 것인가?
샤웨는 나의 포수이며 이미 반년 동안이나 내 밑에서 포를 만지작거린 꼬맹이다.

“적어도 작전 중에 뭘 할 건지는 알아야 되잖아요.”
“그건 내가 다 알아.”

말 해놓고도 우습다. 나 혼자 속으로 웃는데 이 녀석의 눈초리가 자못 엄격하다.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아니까 이따가 나한테 물어 보라구, 응?”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되는군요. 상사님. 듣기 싫으시면 그냥 잠이나 자두시죠.”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자잖아.”
“보통 땐 잘 자잖아요. 포격 중에도 잘 잤잖아요. 것 보단 훨씬 조용하다구요.”

그랬던가.

“그건 적응이 된 소음이고 이건 아직 적응이 안 된 종류야. 그러니까 잘 수가 없어.”

하핫. 합리적인 대답이다. 내가 이런 논리적인 말을 하다니 놀랍다.

“..........”
“이봐. 어때. 내 말이 맞지?”
“.........”
“이봐. 샤웨.”
“.........”
“샤웨?”

이제 보니 열심히 작전 브리핑을 듣고 있군. 갑자기 전차 안이 덥게 느껴진다.



[강하!]
[근접지원, 엄호하라!]
[접근을 저지하라! 마린 레드 소대는? 어딜 간거냐! 젠장! 자리를 지켜. 지휘관이 누구야!]
[강하위치를 변경해야합니다!]
[미친 새끼들! 그냥 뛰어내려!]

수 십여 대의 공격기가 비단 색깔 대기에 가로세로의 줄무늬를 수놓는 가운데 거대한 드롭 쉽으로부터 전차부대가 강하하기 시작한다. 그 무게도 무게려니와 낙하하는 높이가 웬만한 건물 두셋 높이인지라 전차가 땅을 딛는 순간 가슴 철렁하는 스릴감이 있다.
땅에 닿는 순간 완충장치가 터지면서 충격을 흡수한다.
거대한 전차가 거칠게 지면에 착지하는 모습은 단 한 대만으로도 시각적인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그 수가 백 대 이상이 되면 보는 사람은 거의 오줌을 지릴 정도가 된다. 철컹철컹 떨어져 내리는 전차들의 우박에 대지가 순식간에 곰보로 변해버린다. 물론 직접 그 장관을 연출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멋있다는 말은 목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다.

완충 풍선이 터지는 소리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풍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물건이지만.
콰드드드....

“스노켈 점검해라 샤웨. 왼쪽에 빙판이 있다.”

작전의 시작은 언제나 통신기를 가득 메우는 혼잡한 명령들로 범벅이 된다.
그래서 나는 대개 통신기를 끄고 전장에 뛰어든다.
손수 스위치를 내리자 갑자기 정적이 시작되었다.
조용한 가운데 비로소 엄숙하고도 진지한 마음이 우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강하작전은 처음이던가?”
“아뇨. 3개월에 한번, 그리고 그 전에 한번.”
“그래?”
“두 번 다 저 위대하신 툴 베이리갈 상사님의 관심어린 충고와 함께였습니다.”
“.............그랬나?”
“그러고 보면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죠?”
“죽어라.”

요즘 왠지 뒤통수를 치기가 미안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참을 수 없다.

“그만 때려요. 아파 죽겠어요.”
“하극상에 대한 처벌은 즉결. 알긴 아냐?”

사람이 놀아도 기계는 쉬지 않는다.
디스플레이가 뭔가 기호들을 출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쳐들어가는데 적들이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적입니다.”
“나도 알아.”

전투는 먼저 자리를 잡은 중대장 리겔 대위의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순간적으로 초점이 이동하는 240도 파노라마식 광각 감시경은 34배로 적의 모습을 확대하여 보여준다. 이미 시체로 변해버린 적은 헬멧부분을 제외하고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확실히 조각나버렸다. HMD(helmet mounted display)시스템은 이게 문제다. 보기 싫은 장면까지 다 눈에 들어온다.

“기습도 뭣도 아니잖아! 누가 이걸 기습이라고 했어.”

이건 그야말로 인해전술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많이 실어 나른 다음 적진 앞에 떨어뜨리고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적의 저항이 의외로 따끈따끈한데요?”
“전진하자. 다음 엄폐물은 2시 방향의 바위.”

저음 케터필러가 돌돌돌 하는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방음 처리된 차안에서 듣는 캐터필러 소리는 자못 평화스럽다.

“시야를 확보하겠습니다.”
“우린 슬슬 놀면서 해도 돼.”
“예?”
“상황판을 봐. 공중부대가 오고 있다.”

이건 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병사의 직감이다. 일단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전투기들이 적진을 유린하기 시작하면 우리들 지상군은 할 일이 없어진다. 물론 한 가지 꼭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2-7-0 지점 확대.”

나는 큐폴라에 고개를 들이밀고 감시경을 작동시켰다.

“있군. 역시.”

샤웨는 내 말에 대강 감을 잡고 탄종을 전환시키고 있었다.

“샤웨. 터렛이다.”
“예.”
“위치를 잡겠다. 포 맡아라.”

전차의 무음 캐터필러가 얼음을 바스락거리면서 깔아뭉갰다.

레이스 공격기가 돌격하면 웬만한 부대는 손쉽게 요리할 수 있다.
예외가 있다면 적이 지대공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는 경우다.
그럴 때 우리들 지상군은 대공 화기를 공격해서 레이스의 활동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이건 뭔가. 젠장 위치가 없다. 잘난 컴퓨터는 지형도를 빨갛게 떡칠 하고 있다.
아니, 녹색이 있긴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는 위치다.
절벽 건너편까지 돌아서 가라는 이야긴데 시간이 없다.
발사각을 얻어내야 한다.

“바위에 걸쳐야겠다.”
“뒤집어질 수도 있는거 아시죠?”
“안 뒤집을 정도로 걸치면 돼.”

속도를 높이자 갑자기 엔진소리가 뒤통수에 울리기 시작했다.
차체가 덜컹거리면서 심하게 요동을 쳤다. 이건 나의 전매특허다.
사격각을 잡기 힘들 경우에는 근처에 있는 바위나 비탈에 차체를 들이받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쉽게 목표를 잡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자장비들이 윙윙거리면서 위치를 잡는 소리로 눈이 돌아갔다.
젠장 빨리 끝나라. 시간이 없단 말이다.
다섯을 세자 자세와 위치를 확인한 전자장비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대충 얽어놓은 위장망 아래 지대공 미사일 포대가 네 개나 무더기로 지어져있는 모양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몸이 허둥거린다.

“시즈모드로 전환해.”
“하고 있습니다.”
“끝나는 대로 발사해.”

수 분 뒤 미사일 터렛 들은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아군의 레이스들이 들이닥쳤다.
역시 내가 있으면 안 될 일도 된다.


작전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났다. 나는 손을 뻗어 스위치를 올렸다.

[.....상사! 베이리갈 상사! 베이리갈 상사!]

통신기의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흘러나오는 이 목소리는 리겔 대위의 것으로 추정된다.

“옛!”

내 대신 샤웨가 얼른 대답했다. 조용히 하란 말이야! 내 입 모양을 보고 샤웨가 웃었다.

[상사는? 상사! 대답해라.]

“.........대답하시죠. 상사님.”
“너 이따가 죽을 줄 알아.”
“상사? 상사!”
“험험. 아......예. 베이리갈입니다.”

[또 통신기 고장인가?]

“아......흠.....예. 그렇군요.”

[작전 중에 통신기를 끄는 미친놈이 어디 있나? 지휘차로 뛰어와라. 지금 당장!]

“옛! 대위님!”

이렇게 또 한 번의 전투가 끝났다.


폐허가 된 알로하 기지에 남은 것은 잔해뿐이었다.
부서진 기계 또는 사람들의 잔해 말이다.
이들은 맹스크가 지휘하는 혁명군에 동조한 자들이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맹스크의 본대와 합류하고자 했으나 알파 스쿼드론이 한발 빨랐다. 반란군의 아지트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고 단 한사람의 생존도 허용되지 않았다.
막 해가 떨어진 폐허의 그림자 사이로 동체에 섬뜩한 무늬를 그려 넣은 골리앗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린들은 날개 없는 까마귀 떼처럼 살아남은 적을 찾아 폐허 속을 뒤지고 다녔다. 아직도 불타고 있는 건물들의 잔해에서 지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차에서 내려 대지를 딛자 허리에 뻐근한 감각이 전해졌다.
좌석에 오래 몸을 파묻고 있어서 생기는 통증.
아마도 제대하면 의료시설의 신세를 꽤 오래 져야 할 것이다.

행성의 두터운 대기층 아래 펼쳐진 평원이 어두침침한 수묵화폭처럼 펼쳐져있었고 파괴된 막사의 잔해위에 웅크린 전차는 괴물처럼 음산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샤웨!"
"옙?"
"넌 여기 있어라. 난 대위 만나고 올 테니까."
"넵."

샤웨는 전차의 캐터필러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았다.
아마 귀에는 음악채널을 꽂고 있을 것이다. 금지된 곡들도 가끔 흘러나오는 그런 채널 말이다.
안 그래도 작은 그녀의 몸집이 더 작아져서 전차 바퀴 속으로 굴러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샤웨. 너 그러고 있다가 우리 편한테 총 맞으면 난 책임 안 진다."

샤웨는 들은 건지 못들은 건지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거렸다.



중대장의 지휘차는 폭격으로 무너진 커멘드 센터의 앞에 정차되어있었다.
커멘드 센터의 통신용 안테나가 반란군의 운명을 말해주듯 반쯤 기울어져 남쪽으로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테나 아래 장교들이 모여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가가서 경례하자 리겔 대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이번 전투 결과에 대해 장군님께서 아주 흡족해하고 계신다는 군. 그런데 말야..베이리갈 상사"

대위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 정보부에서 전갈이 왔는데, 일이 조금 묘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야."
"묘하게 돌아간다 하심은.. 어떤...? 오늘 보셨다시피 코랄 녀석들의 저항은 미비한 수준 아닙니까?"
"음. 코랄과 맹스크의 문제가 아냐. 저그라고 불리는 외계종족이 이 지역에 출몰하는 모양이야."
"저그라고 하셨습니까?"
"음 그래. 아마도 작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그럼 진격을 중단하고 퇴각하는 겁니까?"
"그렇진 않겠지만, 당분간 상황을 예의주시해. 그리고 저그란 녀석들의 정보를 넘겨줄 테니 자네 밑의 애들에게도 확실히 전달하라고."

중대장은 잠시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오늘 밤은 이 곳에서 묵게 될 것 같으니까 부대원들에게 경계태세 철저히 하라고 전달하고."
"네, 알겠습니다. 뭐 늘 하던 거니까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럼 가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래."

돌아서서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잊고 있었다는 듯 중대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참. 상사! 전투 중에 통신기 좀 끄지 마. 한번만 더 그러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전차로 돌아오자 샤웨는 여전히 음악을 귀에 꽂은 채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봐. 직속상관이 오면 아는 체 좀 하지?"
샤웨는 그러나 나의 기대와 달리 경례를 하는 대신 오른손을 내밀었다.
샤웨의 손바닥 위에는 어딘지 낯익은 물건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둥근 금속조각으로 한쪽 면에 사람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샤웨에게서 넘겨받자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잠시 잊고 있던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게 뭐야! 이거 어디서 났어?"

샤웨는 폐허를 가리켰다.


그렇다. 샤웨가 주은 것은 동전이다.
그리고 동전과 연관된 기억은 단 하나 뿐이다.
나의 부하이자 친구였다가 이제는 적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녀석.

[상사님. 이거 보세요. 신기하죠? 동전이라는 겁니다.]
[뭔데? 이거 어디서 난 거야?]

동전. 낡은 동전.

그는 오래된 물건들을 좋아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 이상 우산이 필요 없다.
그리고 그는 그런 우산 같은 사람이었다.
전사와는 거리가 먼, 하지만 동면에서 해제되자마자 군대로 보내진,
그의 이름은 초이.
초이는 샤웨가 오기 전까지 나의 파트너였다.


뒤숭숭한 시절이며 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얼굴 없는 희망들을 위해 죽어가는 시절.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서 때로 일상적인 것과 거리가 먼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그런 시기란 뜻이다.

초이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시민이었다.
몇몇 임무에서 그는 열심히 싸웠지만 늘 어딘지 텅 비어버린 사람처럼 크고 작은 실수들을 저질렀다.
나는 끊임없이 그를 꾸중해야 했고 감싸주어야 했다.
급기야 그가 보병부대로 보내질 처지에 놓였을 때 나는 그를 감싸기 위해 나를 신임하는 상관에게 대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탁월한 영웅이라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그를 이유 없는 혼란에서 끄집어낼 수 없었다.
그의 물러터진 정신세계를 나도 모르게 혐오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코랄의 아들들과 어울릴 때 나는 그를 말리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런 시궁창 같은 곳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초이는 나와 함께 몸담았던 알파 스쿼드론을 떠나 맹스크가 이끄는 코랄의 아들들에 가담했다.
현직 군인. 그것도 최정예 부대인 알파 스쿼드론을 등지고 혁명군에 가담한 인물인 만큼 그는 그 곳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혁명군의 세력이 불길처럼 번지고 마침내 테란연방이 혁명군에 대한 탄압을 개시할 즈음에 이르러서도 그와 나는 음성 메세지를 통해 서로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물론 그의 열정적인 메세지에 내가 마지못해 응답해주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 게다.
내가 그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알파 스쿼드론의 진압작전 투입이 결정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음성 메세지속에서 그는 쇠잔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파 스쿼드론이 진압군으로 파견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툴. 당신도 이제 곧 이 안티가 프라임의 대지를 볼 수 있겠군요. 그래요.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입니까. 당신과 내가 적으로, 그것도 진압군과 혁명군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툴. 당신도 전혀 몰랐겠죠. 나처럼. 그래 우린 미래를 알 수 없죠. 하지만 미래를 위해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난 지금 알로하 기지에 있습니다. 이곳은 아주 춥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족해요. 오직 맹스크가가 약속한 미래의 천국만이 넘쳐나고 있죠. 어제는 탄약을 분배받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탄약은 고작 120발. 아마도, 전투가 개시되고 5분도 안 되서 다 바닥나버리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아요. 동면장치에서 잠을 자다가 필요가 생길 때만 깨어나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 운명이라면, 사람과 기계의 차이가 대체 뭐죠? 나는, 아니 우리들은 그저 그리운 겁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았다던 옛 적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내가 여기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죽어간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나는 그저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지금 나의 소망은 당신의 손에 죽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바뀔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그가 소망한 것처럼 지금 나는 알로하 기지의 잔해 위에 서있다.

자, 초이. 뭘 보여주겠다는 거냐.

그리고 너의 죽음에 그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거냐.

난 알 수 없다. 물론 알고 싶지도 않다.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우울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중에도 유난히 심각한 우울함에 젖어드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바로 지금이 나에게 그렇다.  

손 안에서 잠시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초이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그 동전일까?
만일 그렇다면 기가 막힌 우연일 것이다.

역시 나는 네가 혁명군에 가담하겠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가지 말라고 붙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네가 웃는 모습 때문에, 그 망할 미소 때문에 너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너의 바램과 달리 불행히도 나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샤웨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야. 샤웨! 일어나! 지금 통신기 켜서 내 밑으로 다 집합시켜!"

우울한 날에는 역시 부하들을 괴롭히는 것이 제일이다.






부대는 날이 밝자마자 다음 작전지역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코랄의 잔존세력들은 이미 저항할 의지를 잃어버린 것인지 구멍을 파고 숨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했다.
다음 전투 역시 싱겁게 학살로 끝나버린다면, 나의 우울증은 점점 더 심각해질지도 모른다. 제발 처절하게 저항해다오. 나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으로써 나의 죄책감이 덜하도록.

전투의 폭풍이 지나간 대지는 희미한 철회색으로 연한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08시까지 이동을 완료해야 하니까 느긋하게 가자.”
“그러다 뒤처지면 또 대위님한테 혼나잖아요.”
“괜찮아.”

그래 괜찮고말고. 초이.
너는 네가 죽고 싶은 대로 죽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행복한 놈이다.
살아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혹 살아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명복을 빌어주마.
죽은 뒤에라도 잘 먹고 잘 살아보란 이야기다. 별로 의미가 없나?

후우.

이 안티가 프라임의 대지는 얼마의 피를 더 먹어야 만족할까.

필요 없는 물건들이 언제나 가장 먼저 없어진다.
쓸 일이 없으니까 안 만든다. 있어도 버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들이 먼저 죽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차가 굴러가는 소리는 덩치에 비해 놀랄 만큼 작지만 그렇다고 소음과 흔들림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자장가처럼 돌돌거리는 그 소리를 듣다보면 어느 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샤웨.”
“예?”
“난 좀 자야겠다. 이따 깨워라.”

이 망할 시대에 동전이 필요 없는 것처럼 이 빌어먹을 행성에는 우산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언제 다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
적어도 언젠가는 다시 필요하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야하니까.
필요한 때가 왔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

이 행성에 비가 내릴 리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차마 우산을 버리지 못하는 그런 마음.

내가 맞게 이해한 거냐?

너는 죽은 사람이니까 세상만사를 다 알 수 있겠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서는 샤웨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너. 착하냐?”
“예?”






..............................................................................................


안티가 프라임 미션을 하다보면 맹크스가 이끄는 코랄의 아들들이 혁명을 일으킨 뒤, 테란연방의 알파스쿼드론이 이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초반에는 듀크 장군의 알파 스쿼드론이 코랄의 아들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지만 맹스크의 계략에 의해 정신파발생기를 향해 몰려든 저그로 인해 알파 스쿼드론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듀크의 기함마저 격추되어버립니다. 맹스크는 저그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듀크를 구조함으로써 테란연방의 최정예부대인 알파 스쿼드론을 혁명군에 끌어들입니다.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막 진입한 알파스쿼드론의 일원인 툴과 샤웨의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