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헝클어진 기분과 해야 할 일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젯밤 진과 잔 것은 도피에 지나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다. 최소한 그녀의 몸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복잡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노인과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부터 나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어젯밤 진과 술을 마실 때에도 빈속에 맥주만 들이켰을 뿐이었다. 심지어 팝콘에도 손대지 않았다. 제대로 식사를 한 지 하루가 지났어도 허기를 느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서류 봉투의 자료를 반복적으로 검토하며 모든 사항을 암기했다. 백유석을 비롯한 류의 가족들을 처리하기 위한 회사의 자료가 모두 들어 있었다. 디데이는 나에게 지시된 날이었고 투입되는 요원은 무려 여덟 명이었다. 비무장 민간인 가족 세 명, 그것도 가장을 제외하면 여자와 어린애임에도 불구하고 여덟 명이나 투입된다는 사실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나와 류의 관계를 모를 리 없었다. 따라서 내가 류 일가를 처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것도 계산에 넣은 것 같았다.
회사에서 들이닥치기 전에 류에게 미리 연락하는 방법은 애당초 배제했다. 내가 류에게 연락하는 모든 내용은 감시와 도청을 통해 파악될 테니 그들이 시간과 장소를 바꾸기만 하면 나는 막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닥치는 시간에 맞춰서 류 일가를 살리는 방법이 가장 나았다.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류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미끼로 쓴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집 전화선을 뽑고 핸드폰을 끄고 노트북과 랩탑의 전원을 켜지 않았다. 혹시 몰라 총을 늘 꺼내 놓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일기 따위는 쓰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언제 일기를 마지막으로 쓴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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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명으로 자동차를 빌렸다. 회사의 손이 미치지 않는 흥신소가 있는 법이다. 류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는 동안 혹시라도 내 차를 알아본 녀석들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빌린 자동차의 창문을 짙은 색으로 코팅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했다.
회사의 명령을 거부한 나 대신 직원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새벽 3시로 되어 있었다. 노인이 나에게 거짓 정보를 주었을 확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믿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새벽 1시부터 류의 집이 보이는 골목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주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2층의 서재를 제외하면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자 서재의 불도 꺼져 류의 집은 어둠에 휩싸였다. 청담동 골목에는 가로등 외에 불 밝혀진 곳이 없었다.
3시 10분 전 나는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담을 넘어 곰 인형과 비치볼, 야외용 식탁이 놓인 정원을 재빨리 지나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먼저 2층에 올라가 불을 켜지 않고 류의 딸을 안았다. 조용히 움직인 탓에 아이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온기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가, 남의 아이를 품에 안고 뛰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부성애 같은 것이 깨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2층에 다른 인기척은 아직 없었다.
1층의 침실로 내려가 불을 켜지 않고 류와 백유석을 깨웠다.
“어서 일어나요! 어서!”
류와 백유석은 어둠 속에 갑자기 나타난 내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지만 다행히 침착했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당신은...?”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요!”
백유석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자 류가 알아차렸다.
“조!?”
“그래, 밖으로! 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류와 백유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나마 둘의 옷차림은 꼴사나운 것은 아니었다. 백유석은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보며 놀라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결혼식장에서 먼발치에서 그를 보았을 때 외에는 나는 그를 본 적은 없었고 수많은 하객 중에서 스쳐간 내 얼굴을 그가 기억할 리 없었다. 창문에 비치는 불빛이 흔들렸다. 나는 백유석의 등 뒤의 창문으로 세 발을 발사해 두 명의 직원을 제압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박살났고 일직선의 라이트 불빛이 하늘 위로 향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아이가 깨어났지만 다행히 울지 않았다. 류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아이를 맡아요!”
나는 아이를 백유석에게 넘겨주고 왼손에도 권총을 쥐었다. 아이를 받은 백유석과 류는 침대 옆에 엎드렸다. 나는 침실 문 옆에 기댄 채 양손에 쥔 권총으로 현관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직원에게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쓰러진 직원들은 모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현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탄창을 교환하며 외쳤다.
“따라와요!”
아이를 안은 백유석과 류가 내 뒤를 따라 정원에 나왔을 때 담을 넘어 오는 세 명의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은 제압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한 녀석이 아이를 향해 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돼!”
백유석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딸을 안은 채 직원에게 등을 보였고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등에 이어 머리에 총을 맞은 백유석은 아이를 품에서 놓치지 않은 채 쓰러졌다. 백유석을 쏜 것은 검정색 정장을 입은 직원이었다. 녀석은 대상을 처리했다는 만족감에 방심하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에만 네 발의 총탄을 맞춰 짓뭉개버렸다. 이마가 터져 붉은 피가 미간과 코를 적시며 죽어갈 때에도 녀석의 미소는 여전했다.
백유석이 쓰러지자 류는 딸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금방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울 시간을 주지는 않았다. 아이가 힘없이 앞으로 넘어졌다. 마치 무언가에 걸려 넘었진 것 같았지만 원거리 저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빌라의 3층에 위치한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엄청난 덩치의 사나이가 이쪽을 향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방긋 웃는 표정으로 라이플을 겨누고 있었다. 살인을 즐기는 듯 여유만만한 표정의 사나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미 늦었음을 나는 직감했다.
류가 피투성이가 된 딸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지만 그것도 잠시, 류도 라이플의 희생양이 되었다. 류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뒤로 튕겨졌다. 저격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류를 향해 달렸다. 류의 하얀 얼굴은 더 하얀 달빛을 받아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결혼식 날... 봤어... 와줘서 고마워...”
그녀의 눈이 감겼고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저격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노인과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부터 나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어젯밤 진과 술을 마실 때에도 빈속에 맥주만 들이켰을 뿐이었다. 심지어 팝콘에도 손대지 않았다. 제대로 식사를 한 지 하루가 지났어도 허기를 느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서류 봉투의 자료를 반복적으로 검토하며 모든 사항을 암기했다. 백유석을 비롯한 류의 가족들을 처리하기 위한 회사의 자료가 모두 들어 있었다. 디데이는 나에게 지시된 날이었고 투입되는 요원은 무려 여덟 명이었다. 비무장 민간인 가족 세 명, 그것도 가장을 제외하면 여자와 어린애임에도 불구하고 여덟 명이나 투입된다는 사실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알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나와 류의 관계를 모를 리 없었다. 따라서 내가 류 일가를 처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것도 계산에 넣은 것 같았다.
회사에서 들이닥치기 전에 류에게 미리 연락하는 방법은 애당초 배제했다. 내가 류에게 연락하는 모든 내용은 감시와 도청을 통해 파악될 테니 그들이 시간과 장소를 바꾸기만 하면 나는 막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닥치는 시간에 맞춰서 류 일가를 살리는 방법이 가장 나았다. 가장 위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류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미끼로 쓴다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이틀 동안 나는 집 전화선을 뽑고 핸드폰을 끄고 노트북과 랩탑의 전원을 켜지 않았다. 혹시 몰라 총을 늘 꺼내 놓고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일기 따위는 쓰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언제 일기를 마지막으로 쓴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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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명으로 자동차를 빌렸다. 회사의 손이 미치지 않는 흥신소가 있는 법이다. 류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는 동안 혹시라도 내 차를 알아본 녀석들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빌린 자동차의 창문을 짙은 색으로 코팅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했다.
회사의 명령을 거부한 나 대신 직원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새벽 3시로 되어 있었다. 노인이 나에게 거짓 정보를 주었을 확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믿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새벽 1시부터 류의 집이 보이는 골목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주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2층의 서재를 제외하면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자 서재의 불도 꺼져 류의 집은 어둠에 휩싸였다. 청담동 골목에는 가로등 외에 불 밝혀진 곳이 없었다.
3시 10분 전 나는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담을 넘어 곰 인형과 비치볼, 야외용 식탁이 놓인 정원을 재빨리 지나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먼저 2층에 올라가 불을 켜지 않고 류의 딸을 안았다. 조용히 움직인 탓에 아이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온기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가, 남의 아이를 품에 안고 뛰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부성애 같은 것이 깨어난 것인지도 몰랐다. 2층에 다른 인기척은 아직 없었다.
1층의 침실로 내려가 불을 켜지 않고 류와 백유석을 깨웠다.
“어서 일어나요! 어서!”
류와 백유석은 어둠 속에 갑자기 나타난 내 목소리에 놀란 것 같았지만 다행히 침착했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당신은...?”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요!”
백유석의 질문에 내가 대답하자 류가 알아차렸다.
“조!?”
“그래, 밖으로! 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류와 백유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나마 둘의 옷차림은 꼴사나운 것은 아니었다. 백유석은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보며 놀라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결혼식장에서 먼발치에서 그를 보았을 때 외에는 나는 그를 본 적은 없었고 수많은 하객 중에서 스쳐간 내 얼굴을 그가 기억할 리 없었다. 창문에 비치는 불빛이 흔들렸다. 나는 백유석의 등 뒤의 창문으로 세 발을 발사해 두 명의 직원을 제압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박살났고 일직선의 라이트 불빛이 하늘 위로 향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에 놀란 아이가 깨어났지만 다행히 울지 않았다. 류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아이를 맡아요!”
나는 아이를 백유석에게 넘겨주고 왼손에도 권총을 쥐었다. 아이를 받은 백유석과 류는 침대 옆에 엎드렸다. 나는 침실 문 옆에 기댄 채 양손에 쥔 권총으로 현관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직원에게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쓰러진 직원들은 모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현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탄창을 교환하며 외쳤다.
“따라와요!”
아이를 안은 백유석과 류가 내 뒤를 따라 정원에 나왔을 때 담을 넘어 오는 세 명의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은 제압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한 녀석이 아이를 향해 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돼!”
백유석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딸을 안은 채 직원에게 등을 보였고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등에 이어 머리에 총을 맞은 백유석은 아이를 품에서 놓치지 않은 채 쓰러졌다. 백유석을 쏜 것은 검정색 정장을 입은 직원이었다. 녀석은 대상을 처리했다는 만족감에 방심하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에만 네 발의 총탄을 맞춰 짓뭉개버렸다. 이마가 터져 붉은 피가 미간과 코를 적시며 죽어갈 때에도 녀석의 미소는 여전했다.
백유석이 쓰러지자 류는 딸에게 달려갔다. 아이는 금방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울 시간을 주지는 않았다. 아이가 힘없이 앞으로 넘어졌다. 마치 무언가에 걸려 넘었진 것 같았지만 원거리 저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빌라의 3층에 위치한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엄청난 덩치의 사나이가 이쪽을 향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방긋 웃는 표정으로 라이플을 겨누고 있었다. 살인을 즐기는 듯 여유만만한 표정의 사나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미 늦었음을 나는 직감했다.
류가 피투성이가 된 딸 앞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지만 그것도 잠시, 류도 라이플의 희생양이 되었다. 류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뒤로 튕겨졌다. 저격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는 류를 향해 달렸다. 류의 하얀 얼굴은 더 하얀 달빛을 받아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결혼식 날... 봤어... 와줘서 고마워...”
그녀의 눈이 감겼고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저격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런...주인공에게 하나의 인연이 생기자 마자 오랜 숙제같은 인연이 매듭지어지고 마는군요.
완급조절의 신이십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