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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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케리다까지 가는 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혹시나 또 키란을 노리고 달려드는 현상금 사냥꾼이 있을까 싶어 날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요란한 것은 역시 아침마다 레이켄과 을루트가 벌이는 소란 뿐이었다. 여정은 일주일은 넘게 걸려, 가는 동안 날이 갈수록 점점 풍경은 전원적이 되다 못해 황량해져갔다. 하케리다는 정말로 한적한 촌동네였다. 북적한 장터도, 경비병들이 지켜 선 관문도, 뒷골목의 담벼락도, 점잔 빼는 교회당도 없었다.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늘어지는 풍경이랄까, 아, 물론 그건 좋게 말했을 경우고, 나쁘게 말한다면 지겨운 풍경이다. 산도 없이 그저 야트막한 언덕들만 늘어서, 언덕, 언덕, 언덕, 그리고 나서 또 언덕이다. 언덕 위에 드문드문 흩어진 나무들이 간신히 서서, 숲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미안한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 언덕 사이의 골로는 물이 흐르다 말라버린 자국도 보이고, 나머지는 바싹 마른 풀이 누렇게 덮었다. 언제나 푸른 때가 있었겠냐만은, 나뭇잎도 풀잎도 죄다 황량한 먼지 얹은 갈색이다. 이래저래 보고 있는 내 마음까지 삭막해지는 것 같구만.
이런 동네이다 보니까 사람이 많을리도 없다. 집 하나 있고 나서 그냥 언덕이 두 세 개 지나야 겨우 하나 있고 하는 식이다. 그것도 다 떨어져가는 낡은 집들. 흙이 척박한 편인데다가 땅에 돌이 많아서 경작도 영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다른 곳과 교역할 만한 곳도 아니고 해서 살림이 궁색하다. 보아하니 여기서 제일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부유하다는 말을 상당히 크게 고쳐서 쓴다면) 술집 주인일 것 같다. 그나마 어떻게 벌은 돈으로 싸구려 술을 마시러 사람들이 모여드니. 우리가 탐문하러 주점에 들어갔을 때 아마도 하케리다 일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 같았지만 그게 더 휑뎅그레했다. 역시 소득은 적었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진 것은 술집 주인 뿐이었을 것이다. 글쎄, 이런 동네에 과연 대지의 주물이 봉안된 곳이 있을까? 아무리 봐도 이 곳은 암흑시대나 원소론자들의 보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나마 낙천적이라면 최소한 도굴꾼은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하루종일 일대를 탐방하고 나서 지도를 펼쳐 봤을 때는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이 일대에는 산이 없다- 오로지 언덕 뿐이다. 그냥 눈으로 볼 때는 무엇이 이상한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더 넓은 축척의 지도를 가져다 두고 비교해봤을 때 부자연스러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케리다는 굳이 말하자면 제국 동부다. 대산맥에서 갈라져내려온 크고 작은 산줄기들은 거침없이 뻗어 내달린다. 그런데 지형상으로 보았을 때, 하케리다는 거의 정확히 분수령 위에 위치하고 있어야한다. 문제는 산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지. 힘있게 뻗어내려오던 산줄기가 문득 점점 기세가 수그러들더니 이윽고 땅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 다음은 하케리다, 울퉁불퉁한 언덕들. 하케리다를 지나고 나면, 갑자기 조그맣게 다시 솟아나는 산줄기가 점점 올라가서 내달려 원래의 높이에 이를 때까지 올라가다가 점차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건 제일 큰 산줄기만 두고 봤을 때 한 이야기고, 무수하게 갈라지는 다른 맥들 역시 하케리다에 이르면 땅 속으로 숨어드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다. 가로 세로 100여 km이상의 넓은 정사각형 꼴의 대지가 이런 모양이다. 게다가, 이 언덕들의 크기가 일정하다.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높이 차이는 대략 50m 정도. 언덕의 직경은 널찍널찍하게 900m에서 1000m 정도. 이런 언덕들이, 일정한 모양을 그리며 배열되어 있다. 물론 바둑판 모양처럼 한눈에 봐도 어색해서 금방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언덕들이 이룬 모양은 거대한 소용돌이 같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우리가 답사할 하케리다의 오래된 무덤이 있다. 어때, 이 정도라면 충분히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물론 이렇게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이 곳에 대지의 주물이 있을 거라고 이미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보았다면 이상하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그냥 거참 신기한 지형이네,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테지. 산줄기를 끌어내리고 언덕들을 배치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대지의 주물 말고 뭐가 있겠어? 아무리 원소론이 자연철학파의 일부였다 해도, 기본적인 생각은 자연철학파의 본류와 크게 다르다. 원소론에서 자연은 그저 원소들이 일정한 비율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배합이 달라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니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라든가 그런 건 염두에 둘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배치는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자연철학파들이라면 펄쩍 뛸 일이지만.)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거나 혹은 어떤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는 자에게 보일지어다'하는 식으로.
마을은 정사각형꼴의 하케리다의 넓다란 대지에서 완전히 변방은 아니고 조금 가에 치우친 곳에 있다. 그래도 하케리다의 오래된 무덤까지는 꽤 떨어진 거리라,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어차피 탐사에 필요할 만한 도구들은 미리 챙겨왔기에 별로 더 살 것은 없었다)난 뒤 출발하기 전날 밤에는 어중간한 언덕에 기대선 관목숲 곁에서 야영을 했다. 일찌감치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는데도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간 후였다. 역시 주위의 다른 언덕들하고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언덕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아보니 동서남북으로 오래된 돌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아마 이 안으로 따라 내려가면 지하에 주물이 안치되어 있을 것이다. 땅의 주물이라면 역시 그게 어울리지. 그리고 주물이 있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장치나 함정 등이 준비되어있을 터이다. 그보다는 대지의 원소계에서 끌어온 힘들이 토굴 안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서 그런 종류에 대비한 채비를 해 오긴 했지만 말야.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할까? 마법사의 비밀 실험실을 들이치는 거라면 별로 깊지 않겠지만, 이번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대지의 주물이 봉안된 사원을 건설하는데는 아무래도 그 주력이 아낌없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을지도 짐작할 수가 없다. 얼마나 깊게 내려가야하는지도 모른다.
북쪽의 문은 갱도가 무너져서 막혀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일지도 모르나 다른 문들의 보존 상태를 볼 때 솜씨가 어설프긴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로 막혔을 거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문이 4개 있다는 것은 4원소를 상징할테고, 다른 3원소의 문이면 몰라도 대지의 원소는 이곳에 봉안되어 있는데 문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 그래도 이 문의 폐쇄가 결정된 것은 가장 마지막의 일 같다. 아예 문이 만들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만들고 나서 부순 거니까.
남쪽의 문은 관목숲에 파묻혀있었는데, 사람이 최근에 뚫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내가 굳이 레인져가 아니더라도, 어수선하게 부러져 늘어져있는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쪽의 문은 훤히 드러나있었지만, 물 한 사발 붓기라도 한 듯 그 앞이 온통 물바다였다. 볼 것도 없이 물의 주물을 가진 녀석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서쪽 뿐 - 상대가 뒤에 어떤 함정을 깔아두었거나 매복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뒤를 밟는 것은 위험하다. 어차피 목적지는 땅의 주물이 봉안되어있을 유적의 중심부다. 더군다나 만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격'을 증명해야한다면, 우리 힘으로 앞길에 기다리고 있는 위험은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서쪽 문을 통과하기로 했다. 문은 간단한 것으로, 모난 돌 네 개를 짜맞추어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만한 크기이다. 문이 사각형이란 것은 역시 땅을 상징하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마모된 돌에, 옅게 삼각형이 새겨진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가 불의 원소를 상징하는 문이니 그렇다면 그런대로 고대의 원소론자들의 뜻을 따르는 게 되겠군.
문 안을 들여다보던 레이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이봐, 마법사씨. 저 안에 땅을 움직이는 물품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어이, 그러면 우리가 이 안으로 잘못 들어가면 갑자기 문이 떡쿵 닫히거나 아니면 복도가 확 줄어들어서 사람을 깔아뭉개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이 곳은 전체가 함정인 곳은 아닙니다. 이곳에 분명히 우리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만한 것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대지의 주물이 있는 곳까지 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침입자를 무조건 죽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거봐, 이 희여멀개서 겁만 많은 놈아, 마법사님께서 안전하다고 하시잖아! 언제까지고 벌벌 떨고 있을거냐?"
...레이켄과 을루트가 치고받고 하는 것은 하케리다까지 오는 내내 지겹게 들었다. 그 둘을 무시하고 키란과 피고양이에게 몸을 돌렸다. 키란은 불꽃이 울울 타오르는 칼을 짚고 서 있고, (칼 끝이 닿은 바닥에 약간 흠집이 나는 것을 유심히 봐두었다.) 피고양이는 무심한 건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게 가늘게 눈을 뜨고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저도 나름대로 대지의 원소계에 대해서 조사했고, 또 그리로부터 끌어내어지는 힘을 대비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어느정도 준비는 되어있지만, 제 주문들로 대응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키란의 칼은 불의 주물이니 원소계에서 비롯된 힘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피고양이, 당신도 마법적인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 두 사람은 원소계와 물질계를 잇는 주력을 상대하게 될 겁니다. 레이켄과 을루트는 그 주력으로 형상화되는 물질들을 타격하게 되겠죠."
"주력으로 형상화되는 물질이란 건 뭐죠?"
"대지의 원소계에서 비롯된 존재가 물질계에 현신하려면 역시 물질로 이루어진 구성요소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물질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으니까요. 움직이는 석상이니 흙으로 된 난장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입니다. 주력이 파괴될 경우 그 물질들은 도로 원래 상태로 돌아갈 테고, 물질로 이루어진 상을 부술 경우에는 일단 형체가 깨지니까 마찬가지로 활동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 상대하게 되지? 당신하고 같이 온 저 꼬맹이는?"
"일단 저는 이 안에서 움직이는 동안 일행 전체를 통솔할 겁니다. 뭐가 튀어나올지는 그나마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 주문은 상을 이룬 물질 및 물질을 조종하는 주력 양쪽 모두에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상대할지는 상황을 보아서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해야죠.
그리고 아헨은 성직자이니 선두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고 주력의 잔재를 몰아낼 겁니다."
피고양이가 납득한듯 고개를 끄떡였지만 나는 아무래도 저 자가 불안하다. 키란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를 고용한 걸까? 그냥 모험가들
만 적당히 끌어들여도 되는데, 이렇게 완전히 돈으로 움직이는 자까지 한패거리가 되다니.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말리고 사원으로 돌입할 채비를 갖춘다. 레이켄은 방패를 들고 칼 손잡이의 가죽끈을 졸라맨다.
을루트는 일단 쇠몽둥이는 아낄 셈인 듯 가방에 달아 두고 오는 내내 깎았던 나무 몽둥이들 중 하나를 꺼내든다. 키란은 벌써부터 기세가 풀풀 매서운 게 당장이라도 물의 주물을 가진 작자의 목을 따낼 듯하지만, 피고양이는 죄어맨 끈을 끄르고 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을 뿐이다. 아헨을 쳐다보니 걱정말라는 듯이 싱긋 웃어준다. 그것만으로도 난 준비가 충분한 것 같다.
키란이 먼저 슥 고개를 숙이고 안에 들어가보고, 이상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거야 원, 느닷없이 전설로 들어가는 셈이니-암흑시대의 이야기니- 어째 긴장되는걸. 레이켄과 을루트도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보고있다. 문에서 곧장 이어지는 회랑은 다져진 흙으로 되어있다. 거의 완벽한 토굴 수준이니 이단으로 몰려 몰살당한 고대 학파의 사원이라기 보다는 어디 조그마한 고블린 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복도가 메워지고 도로 열리는데는 숨을 들여마시는 시간만큼도 필요하지 않겠지. 느닷없이 땅에서 흙으로 된 거인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발 밑이 확 꺼져들 수도 있다. 한참 들어가자니, 이상하게도 지하로 들어가는데도 전혀 어둡지가 않고 도리어 점점 밝아진다. 어디선가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키란의 불꽃이 타오르는 검이 있어도 그냥 혹시 하고 을루트에게 횃대를 만들게 하고 나는 따로 작은 등을 가져왔는데 별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정지.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자, 여태까지의 쭉 뻗은 통로와는 다르게 어느정도 가다가 양 옆의 벽이 파여나가서 길이 갑자기 넓어진다.
"뭘까요?"
"...지형상 뭔가 매복시켜두기 좋아보이는군요. 토굴에서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것은 분명한 함정의 징조지만, 거꾸로 넓어지는 것도 무언가 다른 게 있다는 신호죠. 물론 단순히 지반이 변했다거나 하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멈추도록 합시다."
대지의 원소계에서 끌어내어진 힘이 어떤 방식으로 현신하는지 3일동안 억지로 머릿속에 우겨넣었던 것들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친다. 금방이라도 흙이 무언가로 변해서 일어날 것 같다. 레이켄과 을루트가 긴장해서 전투할 태세를 갖춘다.
"저... 오빠, 무슨 자갈 같은 게 흩어져 있는데요."
아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거 참, 난 맨날 어둠침침한 지하 실험실에서 곰팡내나는 책하고 씨름하고 화학물질 증기 속을 들여다보니 눈이 나빠져서 뭐가 보여야지.
"그렇군. 길 양 옆에만 자갈이 있는데."
을루트가 중얼거렸다. 이건 또 무슨 경우람? 끌어내어진 힘이 현신한다는 것은 사실 땅을 매체로 구현되는 것이라서 정확히 한두가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술사나 샤먼이라면 정령이라고 구체적으로 이름붙이는 것들이 있다만, 원소차원에서 현신한 존재들은 꼭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많이 취하기 마련이고 이것에 대해서 분류해 두는 것인데, 상대는 얼마든지 원소계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원소론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뜻밖의 것을 만나게 될지 모른단 말야... 바닥에 흩어진 자갈들이라니, 뭘까? 길 옆에만 놓여있다는 것 부터가 수상한데.
"그냥 자갈 아냐? 내가 보기엔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레이켄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미쳐 말리기 전에 불쑥 앞으로 나서서 쑥쑥쑥 걸어갔다. 그리고 수탉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섰는데...
잡설------------------------------------------------------------------
또 설정이 없습니다. =_-
개인적으로 하케리다의 풍광 묘사가 좀 어설퍼서 맘에 안 듭니다. 자그마치 암흑시대의 전승이 간직된 한적한 촌동네라(...)
아, 그리고 내일부터 10박 11일로 농활이고=_= 그 후는 집으로 내려가니, 그 때는 또 부모님께 치여서 컴퓨터를 오래 손에 대지는 못할 듯 하고... 해서 한동안은 못 올릴 지도 모르겠군요... -_- 그 동안 머릿속으로 구상이나 더 많이 해 놓으렵니다 ㄱ-
이런 동네이다 보니까 사람이 많을리도 없다. 집 하나 있고 나서 그냥 언덕이 두 세 개 지나야 겨우 하나 있고 하는 식이다. 그것도 다 떨어져가는 낡은 집들. 흙이 척박한 편인데다가 땅에 돌이 많아서 경작도 영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다른 곳과 교역할 만한 곳도 아니고 해서 살림이 궁색하다. 보아하니 여기서 제일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부유하다는 말을 상당히 크게 고쳐서 쓴다면) 술집 주인일 것 같다. 그나마 어떻게 벌은 돈으로 싸구려 술을 마시러 사람들이 모여드니. 우리가 탐문하러 주점에 들어갔을 때 아마도 하케리다 일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 같았지만 그게 더 휑뎅그레했다. 역시 소득은 적었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진 것은 술집 주인 뿐이었을 것이다. 글쎄, 이런 동네에 과연 대지의 주물이 봉안된 곳이 있을까? 아무리 봐도 이 곳은 암흑시대나 원소론자들의 보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나마 낙천적이라면 최소한 도굴꾼은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하루종일 일대를 탐방하고 나서 지도를 펼쳐 봤을 때는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이 일대에는 산이 없다- 오로지 언덕 뿐이다. 그냥 눈으로 볼 때는 무엇이 이상한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더 넓은 축척의 지도를 가져다 두고 비교해봤을 때 부자연스러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케리다는 굳이 말하자면 제국 동부다. 대산맥에서 갈라져내려온 크고 작은 산줄기들은 거침없이 뻗어 내달린다. 그런데 지형상으로 보았을 때, 하케리다는 거의 정확히 분수령 위에 위치하고 있어야한다. 문제는 산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지. 힘있게 뻗어내려오던 산줄기가 문득 점점 기세가 수그러들더니 이윽고 땅 밑으로 숨어버린다. 그 다음은 하케리다, 울퉁불퉁한 언덕들. 하케리다를 지나고 나면, 갑자기 조그맣게 다시 솟아나는 산줄기가 점점 올라가서 내달려 원래의 높이에 이를 때까지 올라가다가 점차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건 제일 큰 산줄기만 두고 봤을 때 한 이야기고, 무수하게 갈라지는 다른 맥들 역시 하케리다에 이르면 땅 속으로 숨어드는 강물처럼 사라져버린다. 가로 세로 100여 km이상의 넓은 정사각형 꼴의 대지가 이런 모양이다. 게다가, 이 언덕들의 크기가 일정하다.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높이 차이는 대략 50m 정도. 언덕의 직경은 널찍널찍하게 900m에서 1000m 정도. 이런 언덕들이, 일정한 모양을 그리며 배열되어 있다. 물론 바둑판 모양처럼 한눈에 봐도 어색해서 금방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언덕들이 이룬 모양은 거대한 소용돌이 같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우리가 답사할 하케리다의 오래된 무덤이 있다. 어때, 이 정도라면 충분히 뭔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물론 이렇게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이 곳에 대지의 주물이 있을 거라고 이미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보았다면 이상하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그냥 거참 신기한 지형이네,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테지. 산줄기를 끌어내리고 언덕들을 배치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대지의 주물 말고 뭐가 있겠어? 아무리 원소론이 자연철학파의 일부였다 해도, 기본적인 생각은 자연철학파의 본류와 크게 다르다. 원소론에서 자연은 그저 원소들이 일정한 비율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배합이 달라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니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라든가 그런 건 염두에 둘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나서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배치는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자연철학파들이라면 펄쩍 뛸 일이지만.)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거나 혹은 어떤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는 자에게 보일지어다'하는 식으로.
마을은 정사각형꼴의 하케리다의 넓다란 대지에서 완전히 변방은 아니고 조금 가에 치우친 곳에 있다. 그래도 하케리다의 오래된 무덤까지는 꽤 떨어진 거리라,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어차피 탐사에 필요할 만한 도구들은 미리 챙겨왔기에 별로 더 살 것은 없었다)난 뒤 출발하기 전날 밤에는 어중간한 언덕에 기대선 관목숲 곁에서 야영을 했다. 일찌감치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는데도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간 후였다. 역시 주위의 다른 언덕들하고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언덕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아보니 동서남북으로 오래된 돌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아마 이 안으로 따라 내려가면 지하에 주물이 안치되어 있을 것이다. 땅의 주물이라면 역시 그게 어울리지. 그리고 주물이 있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장치나 함정 등이 준비되어있을 터이다. 그보다는 대지의 원소계에서 끌어온 힘들이 토굴 안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서 그런 종류에 대비한 채비를 해 오긴 했지만 말야.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할까? 마법사의 비밀 실험실을 들이치는 거라면 별로 깊지 않겠지만, 이번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대지의 주물이 봉안된 사원을 건설하는데는 아무래도 그 주력이 아낌없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을지도 짐작할 수가 없다. 얼마나 깊게 내려가야하는지도 모른다.
북쪽의 문은 갱도가 무너져서 막혀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일지도 모르나 다른 문들의 보존 상태를 볼 때 솜씨가 어설프긴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로 막혔을 거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하다. 문이 4개 있다는 것은 4원소를 상징할테고, 다른 3원소의 문이면 몰라도 대지의 원소는 이곳에 봉안되어 있는데 문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 그래도 이 문의 폐쇄가 결정된 것은 가장 마지막의 일 같다. 아예 문이 만들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만들고 나서 부순 거니까.
남쪽의 문은 관목숲에 파묻혀있었는데, 사람이 최근에 뚫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내가 굳이 레인져가 아니더라도, 어수선하게 부러져 늘어져있는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쪽의 문은 훤히 드러나있었지만, 물 한 사발 붓기라도 한 듯 그 앞이 온통 물바다였다. 볼 것도 없이 물의 주물을 가진 녀석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서쪽 뿐 - 상대가 뒤에 어떤 함정을 깔아두었거나 매복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뒤를 밟는 것은 위험하다. 어차피 목적지는 땅의 주물이 봉안되어있을 유적의 중심부다. 더군다나 만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격'을 증명해야한다면, 우리 힘으로 앞길에 기다리고 있는 위험은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서쪽 문을 통과하기로 했다. 문은 간단한 것으로, 모난 돌 네 개를 짜맞추어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만한 크기이다. 문이 사각형이란 것은 역시 땅을 상징하는 것일까. 오랜 세월에 마모된 돌에, 옅게 삼각형이 새겨진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가 불의 원소를 상징하는 문이니 그렇다면 그런대로 고대의 원소론자들의 뜻을 따르는 게 되겠군.
문 안을 들여다보던 레이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이봐, 마법사씨. 저 안에 땅을 움직이는 물품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어이, 그러면 우리가 이 안으로 잘못 들어가면 갑자기 문이 떡쿵 닫히거나 아니면 복도가 확 줄어들어서 사람을 깔아뭉개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이 곳은 전체가 함정인 곳은 아닙니다. 이곳에 분명히 우리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할 만한 것들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대지의 주물이 있는 곳까지 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침입자를 무조건 죽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거봐, 이 희여멀개서 겁만 많은 놈아, 마법사님께서 안전하다고 하시잖아! 언제까지고 벌벌 떨고 있을거냐?"
...레이켄과 을루트가 치고받고 하는 것은 하케리다까지 오는 내내 지겹게 들었다. 그 둘을 무시하고 키란과 피고양이에게 몸을 돌렸다. 키란은 불꽃이 울울 타오르는 칼을 짚고 서 있고, (칼 끝이 닿은 바닥에 약간 흠집이 나는 것을 유심히 봐두었다.) 피고양이는 무심한 건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게 가늘게 눈을 뜨고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저도 나름대로 대지의 원소계에 대해서 조사했고, 또 그리로부터 끌어내어지는 힘을 대비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어느정도 준비는 되어있지만, 제 주문들로 대응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키란의 칼은 불의 주물이니 원소계에서 비롯된 힘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피고양이, 당신도 마법적인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 두 사람은 원소계와 물질계를 잇는 주력을 상대하게 될 겁니다. 레이켄과 을루트는 그 주력으로 형상화되는 물질들을 타격하게 되겠죠."
"주력으로 형상화되는 물질이란 건 뭐죠?"
"대지의 원소계에서 비롯된 존재가 물질계에 현신하려면 역시 물질로 이루어진 구성요소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물질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으니까요. 움직이는 석상이니 흙으로 된 난장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그런 것입니다. 주력이 파괴될 경우 그 물질들은 도로 원래 상태로 돌아갈 테고, 물질로 이루어진 상을 부술 경우에는 일단 형체가 깨지니까 마찬가지로 활동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 상대하게 되지? 당신하고 같이 온 저 꼬맹이는?"
"일단 저는 이 안에서 움직이는 동안 일행 전체를 통솔할 겁니다. 뭐가 튀어나올지는 그나마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 주문은 상을 이룬 물질 및 물질을 조종하는 주력 양쪽 모두에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상대할지는 상황을 보아서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해야죠.
그리고 아헨은 성직자이니 선두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고 주력의 잔재를 몰아낼 겁니다."
피고양이가 납득한듯 고개를 끄떡였지만 나는 아무래도 저 자가 불안하다. 키란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를 고용한 걸까? 그냥 모험가들
만 적당히 끌어들여도 되는데, 이렇게 완전히 돈으로 움직이는 자까지 한패거리가 되다니.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말리고 사원으로 돌입할 채비를 갖춘다. 레이켄은 방패를 들고 칼 손잡이의 가죽끈을 졸라맨다.
을루트는 일단 쇠몽둥이는 아낄 셈인 듯 가방에 달아 두고 오는 내내 깎았던 나무 몽둥이들 중 하나를 꺼내든다. 키란은 벌써부터 기세가 풀풀 매서운 게 당장이라도 물의 주물을 가진 작자의 목을 따낼 듯하지만, 피고양이는 죄어맨 끈을 끄르고 속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을 뿐이다. 아헨을 쳐다보니 걱정말라는 듯이 싱긋 웃어준다. 그것만으로도 난 준비가 충분한 것 같다.
키란이 먼저 슥 고개를 숙이고 안에 들어가보고, 이상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거야 원, 느닷없이 전설로 들어가는 셈이니-암흑시대의 이야기니- 어째 긴장되는걸. 레이켄과 을루트도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보고있다. 문에서 곧장 이어지는 회랑은 다져진 흙으로 되어있다. 거의 완벽한 토굴 수준이니 이단으로 몰려 몰살당한 고대 학파의 사원이라기 보다는 어디 조그마한 고블린 굴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복도가 메워지고 도로 열리는데는 숨을 들여마시는 시간만큼도 필요하지 않겠지. 느닷없이 땅에서 흙으로 된 거인이 일어날 수도 있고, 발 밑이 확 꺼져들 수도 있다. 한참 들어가자니, 이상하게도 지하로 들어가는데도 전혀 어둡지가 않고 도리어 점점 밝아진다. 어디선가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키란의 불꽃이 타오르는 검이 있어도 그냥 혹시 하고 을루트에게 횃대를 만들게 하고 나는 따로 작은 등을 가져왔는데 별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길이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정지. 조심스럽게 방향을 틀자, 여태까지의 쭉 뻗은 통로와는 다르게 어느정도 가다가 양 옆의 벽이 파여나가서 길이 갑자기 넓어진다.
"뭘까요?"
"...지형상 뭔가 매복시켜두기 좋아보이는군요. 토굴에서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것은 분명한 함정의 징조지만, 거꾸로 넓어지는 것도 무언가 다른 게 있다는 신호죠. 물론 단순히 지반이 변했다거나 하는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멈추도록 합시다."
대지의 원소계에서 끌어내어진 힘이 어떤 방식으로 현신하는지 3일동안 억지로 머릿속에 우겨넣었던 것들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친다. 금방이라도 흙이 무언가로 변해서 일어날 것 같다. 레이켄과 을루트가 긴장해서 전투할 태세를 갖춘다.
"저... 오빠, 무슨 자갈 같은 게 흩어져 있는데요."
아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거 참, 난 맨날 어둠침침한 지하 실험실에서 곰팡내나는 책하고 씨름하고 화학물질 증기 속을 들여다보니 눈이 나빠져서 뭐가 보여야지.
"그렇군. 길 양 옆에만 자갈이 있는데."
을루트가 중얼거렸다. 이건 또 무슨 경우람? 끌어내어진 힘이 현신한다는 것은 사실 땅을 매체로 구현되는 것이라서 정확히 한두가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술사나 샤먼이라면 정령이라고 구체적으로 이름붙이는 것들이 있다만, 원소차원에서 현신한 존재들은 꼭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많이 취하기 마련이고 이것에 대해서 분류해 두는 것인데, 상대는 얼마든지 원소계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원소론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뜻밖의 것을 만나게 될지 모른단 말야... 바닥에 흩어진 자갈들이라니, 뭘까? 길 옆에만 놓여있다는 것 부터가 수상한데.
"그냥 자갈 아냐? 내가 보기엔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레이켄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미쳐 말리기 전에 불쑥 앞으로 나서서 쑥쑥쑥 걸어갔다. 그리고 수탉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섰는데...
잡설------------------------------------------------------------------
또 설정이 없습니다. =_-
개인적으로 하케리다의 풍광 묘사가 좀 어설퍼서 맘에 안 듭니다. 자그마치 암흑시대의 전승이 간직된 한적한 촌동네라(...)
아, 그리고 내일부터 10박 11일로 농활이고=_= 그 후는 집으로 내려가니, 그 때는 또 부모님께 치여서 컴퓨터를 오래 손에 대지는 못할 듯 하고... 해서 한동안은 못 올릴 지도 모르겠군요... -_- 그 동안 머릿속으로 구상이나 더 많이 해 놓으렵니다 ㄱ-
티끌 같은 세상속에 작은 모래알 하나,
한바탕 미친 바람 불고 나면 그 간 곳을 모르온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