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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롤플레잉은 일반 전략 게임과 달리 샤프슈터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예전에 전술 롤플레잉 게임은 특성상 소규모 전투 위주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전술 롤플레잉은 캐릭터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략 게임처럼 다수 유닛이 등장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소수의 캐릭터들이 다수의 적에 대항해서 지속적으로 전투를 펼치기 마련입니다. <폴아웃 택틱스>처럼 적들의 숫자는 많지만 플레이어가 조종할 수 있는 캐릭터들은 4~6명 안팎입니다. 가끔 <엑스컴>처럼 10명이 넘어가는 인원을 조종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은 5명 정도에 머무릅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특히 전장에서 교전을 펼치는 동안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지에 돌아가면 인원을 보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캐릭터 대체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고참 캐릭터와 신병 캐릭터는 엄연히 다릅니다. 레벨과 경험치와 기술과 무장이 다릅니다. 그나마 전사자의 무기와 장비를 신병에게 넘겨줄 수 있지만, 경험치와 기술은 그렇지 않죠. 신병은 고참처럼 되기 위해서 꾸준히 교전에 참가하고, 승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술 롤플레잉은 보병 전투 위주입니다. 얼마 전에 알파 플레이를 보여준 <배틀테크>처럼 보행 전차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전술 롤플레잉의 주인공들은 보병입니다. 전면전을 치르든 편법으로 싸우든 아군도 보병이고, 적군들도 당연히 보병 비중이 높습니다. 아군 캐릭터들은 4~6명만 투입이 가능하고, 게다가 캐릭터가 한 번 죽으면 대체가 힘듭니다. 덕분에 실내전이든 야전이든 대부분 보병들끼리 총격전을 펼칩니다. 기갑이나 항공 전력도 종종 나오지만, 이들은 사실 보스 캐릭터와 마찬가지입니다. 몇 명 안 되는 아군 캐릭터들이 계속 밀려오는 기갑 유닛과 적대할 수 있겠어요. 반면, 전술 롤플레잉과 달리 일반적인 전술 게임은 캐릭터가 아니라 유닛 위주입니다. 그래서 유닛의 종류가 보다 다채롭고, 보병부터 시작해서 각종 차량, 기갑, 항공, 함선 등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몇 십 기에 이르는 유닛들이 우르르 맞붙는 회전은 전략 게임의 꽃이며 가장 큰 재미입니다. 그러나 전술 롤플레잉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습니다. 설사 <엑스컴>처럼 조종 캐릭터가 많아도 적군 기갑들이 다수 튀어나온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1편의 섹토포드나 2편의 자퀴드처럼 거대 유닛이 아예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비중이 높다고 할 수는 없죠. 엑스컴 대원들도 로봇을 한 대만 데려가는 편이고요.
그런 이유 때문인지 샤프슈터의 비중은 양쪽 장르에서 서로 다릅니다. 샤프슈터는 전술 롤플레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클래스입니다. 멀리서 적 보병들을 원샷으로 처치할 수 있고, 특성을 잘 찍으면 기갑 유닛들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쪽은 중화기 병과의 담당이긴 합니다.) 반면, 일반적인 전략 게임은 대규모 회전이 펼쳐지는 만큼 샤프슈터가 그리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샤프슈터가 활약하는 상황이 많지만,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샤프슈터는 보병을 잡는 병과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전략 게임에는 보병 이외에 각종 차량, 기갑, 항공, 포병 등도 많습니다. 전차들끼리 기갑 웨이브를 펼치는 와중에 샤프슈터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시야가 넓으니까 기껏 정보 제공이나 할 수 있을까요. 무한궤도에 깔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컴패니 오브 히어로즈 2> 같은 게임에는 각 진영마다 샤프슈터가 존재하죠. 소비에트 연방의 정찰 저격수든, 영국의 대전차 저격수든, 국방군 저격수든…. 그러나 그들이 항상 대활약을 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술 롤플레잉은 보병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덩달아 샤프슈터의 위상이 올라갑니다. 가령, <엑스컴: 롱 워>는 샤프슈터 없이 출동하지 못하죠.
<새틀라이트 레인> 같은 게임도 그렇습니다. 이 게임의 클래스는 딱 4개입니다. 솔져, 해커, 서포트, 어쌔신입니다. 솔져는 전형적인 전면전 총잡이, 해커는 말 그대로 전자전 담당, 서포트는 치유와 능력치 향상, 어쌔신은 암살을 맡습니다. 그리고 어쌔신은 다른 3개 클래스와 달리 유일하게 저격 소총을 사용합니다. 이 게임은 사이버펑크 메트로폴리스에서 요원들의 공작과 테러, 기습을 다룹니다. 당연히 적들은 경비병 위주이고, 적군 중에 보병이 많으니까 샤프슈터(어쌔신)이 활약할 수 있죠. 도심지에 전차나 항공기가 나올 수 없으니까요. 소형 로봇과 드론은 자주 튀어나오지만, 이런 놈들도 소총탄으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간혹 거대 보행 로봇이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보스 개념이며 주요 적군은 아닙니다. 다른 전술 롤플레잉들도 비슷합니다. <엑스컴>과 <새틀라이트 레인>처럼 보병과 보병의 총격전을 다루고, 그래서 샤프슈터가 활약할 여지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전략 게임에서 샤프슈터가 종종 찬밥 취급을 받는 것과 천지차이입니다. <컴패니 오브 히어로즈 2>의 대전차 저격수가 아무리 보이즈 소총으로 무장했어도 기갑 웨이브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일반 전략 게임에서는 기갑과 항공 등이 설치는데, 샤프슈터가 대체 뭘 할 수 있겠어요.]
물론 그렇다고 전술 롤플레잉 게임이 무조건 샤프슈터를 우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전략 게임이 항상 샤프슈터를 배척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두 장르에서 비중을 따지면, 전술 롤플레잉의 샤프슈터가 훨씬 두드러진다는 뜻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샤프슈터가 로망이라거나 대단한 병과처럼 말하지만, 사실 온갖 유닛들이 부딪히는 전략 게임에서는 그런 로망을 확인하기 힘듭니다. 샤프슈터를 이용한 작전을 제대로 펼치고 싶다면, 일반 전략 게임이 아니라 전술 롤플레잉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음.. 샤프슈터의 의미를 너무 축소해서 보시는건 아닐런지요? 물론 샤프슈터의 본질적인 의미는 보병병과의 하나에 있겠지만, 맡은 역할만 비슷하다면 충분히 샤프슈터라고 부르는 것도 어렵진 않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