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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다양한 생명체들의 상호 작용. 게임 컨셉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화성은 여러 외계 행성들 중에서 SF 소설의 단골 손님입니다. 독자들은 <우주전쟁>부터 시작해서 <붉은 별>을 거쳐 <화성의 존 카터>와 <화성 연대기> 등도 있고, <붉은 화성>이나 <멸종>도 그렇고, <마션> 같은 책에서도 화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고전과 최신작, 스페이스 오페라와 하드 SF, 서정적인 개척 이야기나 장대한 전쟁 이야기까지, 화성은 내용과 하위 장르를 가리지 않고 튀어나옵니다. 이는 비단 소설만 아니라 SF 영화나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화성의 인기 요인은 크게 두 가지일 겁니다. 일단 가깝습니다. 화성은 지구의 이웃 행성이기 때문에 비교적 금방(?) 도달할 수 있죠. 게다가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물이 흘렀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과거 화성에는 물줄기가 흘렀고, 그래서 어쩌면 생명체가 살았을지 모르죠. 지구의 이웃 행성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했을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찰은 상상으로 이어지고, 상상은 각종 SF 작품으로 나타나죠.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웨이킹 마즈>도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한 게임입니다.
<웨이킹 마즈>,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깨어나는 화성> 정도 되려나요. 정확히 말하면, 화성의 생명체가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이 게임은 '화성에 생명체가 살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으로 출발하고, 그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인디 게임이고 게임 플레이가 비교적 가볍기 때문에 설정이나 플롯 역시 그렇게까지 깊지 않습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세 명인데, 주인공인 리앙 박사, 연구 기지에서 리앙을 보조하는 아마니 롱가 박사, 인공지능 아트입니다. 아마니와 아트는 어디까지나 조연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리앙만 조종할 수 있습니다. 장르는 2D 플래포머이며, 배경은 대부분 화성의 깊숙한 지하 동굴입니다. 리앙은 화성의 어떤 동굴을 조사하던 중 고립됩니다. 리앙은 탈출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지만, 그 와중에 기이한 생명체들을 발견합니다. 여태껏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던 생명체들이었죠. 리앙 박사는 미지와의 조우에 성공하고, 곧이어 그 생명체들의 생태를 밝히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휴면기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동굴 속에는 점막이 존재했고, 그 점막을 뚫어야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점막은 동굴 생명체들의 화학 작용에 반응합니다. 만약 화성의 지하 생명체들이 대량으로 번식한다면, 그 생물들의 화학 작용이 점막을 얇게 만들 겁니다. 그러면 리앙 박사는 점막을 지나서 점점 지상에 가까워질 수 있겠죠. 리앙 박사는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한편으로 화성의 지하를 조사하기 위해 점막을 얇게 만들어야 하고, 따라서 생명체들의 번식을 도와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게임 플레이의 주된 요소이죠. 플레이어는 리앙 박사를 조종하고, 다양한 화성 생명체들을 대량으로 번식시키고, 동굴의 여기저기를 탐사해야 합니다. 생명체들은 대략 10가지 정도인데,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플레이어는 생명체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그 작용 방식을 이용해 생태계를 풍부하게 키워야 합니다. 화성 생명체의 가상 생태계가 마치 퍼즐처럼 구현되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조합하는 재미가 두드러집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수분을 공급해야 하고, 수분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꽃을 심어야 하고, 그 꽃이 더욱 왕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퇴비를 뿌려야 하고, 퇴비를 구하기 위해 포식 식물을 찾아야 하고, 그 포식 식물에게 먹이를 줘야 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다른 초식 동물을 키워야 하고….
[생명체에게는 저마다 특징이 있고, 이런 특징을 퍼즐처럼 조합해야 합니다.]
이런 먹이 사슬 구조 혹은 되먹임 구조가 아기자기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마치 농사를 짓는다는 느낌도 듭니다. 리앙은 농부이고, 화성의 지하 동굴은 논밭이고, 각종 생명체는 작물이고, 초식 동물들은 가축인 셈이죠. 동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는 한두 가지 종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만 번식시킨다면 생태계를 풍부하게 키울 수 없습니다. 지하 동굴의 환경은 다양하고, 플레이어는 주변 환경과 다른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산성 방울이 떨어지는 동굴에 일반 식물을 심어봤자 금방 죽고 말겠죠. 마그마가 튀어오르는 환경에서는 열에 강한 식물을 심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물들은 점막과 화학 작용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을 골고루 심어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한편으로 영양 성분을 바꾸는 포자가 떠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제거해야 하고, 포식 식물이 초식 동물들을 너무 많이 잡아먹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죠. 만약 이 게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소규모 생태계 퍼즐'이 어떨까 싶습니다.
생태계 번영은 그렇게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인디 게임이고 게임 플레이가 그렇게 깊지 않거든요. 30분 정도 플레이하면,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동굴 지리를 대강 둘러보면, 어디에 뭘 심어야 할지 금방 눈치챌 수 있어요. 또한 생명체 종류가 많은 편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생명체가 어떤 생명체와 엮이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난이도가 쉽다고 해서 재미까지 달아나지 않습니다. 각종 생명체들이 우글우글(?)거리고 서로 되먹임 구조를 이루는 광경을 보노라면…. 뭐라고 할까요. 생태계의 복잡한 순환 구조를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낀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적막하고 썰렁한 동굴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과정 역시 보람 있고요. 그저 죽은 공간인 것처럼 보이던 동굴에 온갖 식물들과 동물들이 번성하는 광경은 나름대로 생명의 활력이나 경이를 느끼게 합니다. 생태계 시뮬레이션… 이라고 하기에는 깊이가 상당히 얕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퍼즐로만 치부하기에도 아깝군요. 그만큼 아기자기하면서 연결 고리가 확실합니다.
캐릭터 조작 역시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식물들이 씨앗을 사방으로 퍼뜨리기 때문에 리앙이 직접 날아가서 잡아야 합니다. 그냥 땅에 떨어지는 씨앗도 있지만, 충격을 받았을 때 터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씨앗들도 있습니다. 멋대로 떠도는 와중에 기존 환경을 함부로 바꾸는 포자들도 있고요. 천장에서는 산성 방울이 떨어지는가 하면, 암석 틈새에서 마그마가 튀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리앙의 우주 탐사복은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종자를 잡거나 마그마를 피하거나 하는데, 능숙한 손놀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2D 플랫폼 게임에 쥐약인 사람이라고 해도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우주복의 제트팩을 업그레이드하면, 나중에는 정지 비행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조작 난이도는 더욱 낮아집니다. 참고로 원래는 영문 게임이지만, 우리나라 유저들이 우리말 패치도 만들었습니다. 게임 내용이 간단하기 때문에 영어의 압박은 크지 않지만, 이왕이면 우리말로 하는 편이 훨씬 낫겠죠. (번역하느라 고생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한 마디를 보냅니다. 과학 용어가 좀 튀어나와서 번역하기가 낯설지 않았을까 싶군요.)
[비록 그래픽은 단순하지만, 분위기나 배경 구성 등은 나름대로 볼만하더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플롯의 결말이 좀 모호한다고 할까요. 세상의 격변을 다루는 SF 특유의 재미는 있지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느낌…. 떡밥을 회수하지 못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좀 갑작스럽게 끝난다고 느꼈습니다. 아울러 인디 게임이기 때문에 그래픽이나 비쥬얼은 단순한 편입니다. 그래도 화성의 황량한 풍경이나 낯설고 기이한 동굴 구조 등은 볼만하더군요. 동굴 절벽에서 머나먼 풍경을 바라볼 때, 2D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외계 행성의 장대한 적막함도 살짝 느껴볼 수 있고요.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전형적인 백인 남자가 아니라서 좀 놀랐습니다. 리앙은 중국계 남자이고, 아마니 롱가는 아프리카계 여자이고…. 이런 게 뭐 놀랄 일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래도 백인 남자 주인공에 익숙하기 때문에 신선한 캐릭터 구도였습니다. 생태계 퍼즐부터 캐릭터까지 여러 모로 기억에 남을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