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게임 리뷰로 찾아뵙는 네드리입니다. 제 돈 벌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벌써 먹고살기 힘들면 어쩌라는 건지. 스트레스 풀려고 글 쓰는데 글 써서 스트레스 더 쌓이진 않겠죠 아마. 글 자체는 쓴지 좀 됐는데, 게시판에 이야기 나온 김에 좀 다듬고 마무리지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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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발더스 게이트로 양키 CRPG의 재부활을 이뤄낸 바이오웨어는 아직도 RPG 명가로서 장사 괜찮게 하고 있고 매스 이펙트 또한 바이오웨어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었습니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독자적으로 잘 재구축해낸 구공화국 기사단이 한 방 날리고 매스이펙트가 대중적으로 인기 끌며 연타 넣고 좀 더 매니악한 RPG 게이머들을 위해 드래곤 에이지까지 내놓은 다음에 앞으로는 그 후속작들을 줄줄이 내놓아 굳히기에 들어갈 예정인걸요. 내년 1월에 매스 이펙트 2가 나오고, 애초에 삼부작 기획이라 매스 이펙트 3도 이후에 제작 들어갈 테고, 구공화국 온라인과 드래곤 에이지 2 또한 많은 기대를 모으며 초기 제작에 들어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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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 중앙에 주인공 쉐퍼드하고 사렌이 나오고 배경으로 우주와 우주선이 깔리는 건 이해가 가는데, 양쪽에 나오는 인물들은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동료 넣으려면 다 넣어주던가 하지 왜 별 비중도 없는 저 두 명을...

 셋 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물건이지만 오늘의 주제는 매스 이펙트이고 하니 이 녀석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앞뒤 집어치우고 제일 먼저 느낀 개인적 감상으로는, 솔직히 게임 자체는 구공화국 기사단과 비슷한 요소가 좀 느껴지긴 했습니다. 아, 물론 같은 바이오웨어에서 만든 거니까요. 그래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분위기상 비슷한 요소들을 좀 짚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부에 다양한 성계를 돌아다닐 수 있고 스토리 중간에 나름 반전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인 인터페이스도 그렇고, 한 번에 3명만을 데리고 다닐 수 있고 우주선 선내를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파티원이냐, 도박의 존재, 상자나 인터페이스, 아이템 디자인, 그리고 당연히 빠질 수 없는 연예질 등등. 애초에 구공화국 기사단이 콘솔에 맞추어 적절히 수정된 시스템의 RPG였다면 매스 이펙트는 이걸 계승 발전시킨 셈입죠.

MassEffect__013.jpg  -게임의 주요 배경인 시타델 우주 정거장의 내부. 갈 수 있는 공간은 대단히 좁지만 보여주는 공간은 넓은 전형적 비디오게임 공간입니다만 그래도 폼은 꽤 납니다. 근데 잘 보면 뭣보다, 저 타겟 표시부터 구공화국 기사단의 그거하고 많이 닮았죠. 얼핏 들은 소리로 바이오웨어에는 개발팀이 2개가 있어서 각각 프로젝트 하나씩 맡아서 동시에 개발한다던데, 아마 두 게임은 같은 개발팀이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 드래곤 에이지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건 다른 팀에서 해서일 테고.

 물론 세계관도 스토리도 다르고 대화시스템을 좀 더 진보시키고 전투도 TPS로 바꾸고 해서 후속작이라던가 우려먹기라던가 하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사실 내실이 다르니 장식만 비슷해 보이고 완전히 다른 게임이며 좀 더 가벼워졌다고 해야겠죠. 전반적으론 전투가 3인칭 슈팅이라 액션이 많이 강조된 RPG, 그러니까 ARPG 계열에 넣을 수 있겠고요. 요즘은 복합장르란 단어도 지겨울 정도니 이런 거 따져 뭐하겠습니까만, 그래도 RPG에서처럼 캐릭터 육성하기 위해 스킬 찍고 대화 중에 복잡한 선택지 고르고 아이템 사고팔고 장비하고 동료들 챙기고 각종 이벤트 참여하고 하는 요소들은 다 있습니다. 기본은 어디까지나 RPG이지, 슈팅이 아니거든요. 때문에 처음부터 요란하게 쏘고 터뜨리는 걸 기대하는 분이라면 아마 좀 지루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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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에서 잡아타고 우주 돌아다니게 되는 노르망디호. 의외로 크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기수에 랜딩기어 비슷한 것도 없는데 후방 엔진만으로 저렇게 지탱하고 서 있는 장면은 좀 이상하더군요.

 일단 배경은 22세기의 미래고 인류는 늘 그렇듯이 다양한 외계 종족과 마주했으며 그네들이 만든 우주 동맹에 가입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우주 저편에서 사악한 악의 세력이 몰려오는 거죠. 이걸 누가 막을까요. 주인공 쉐퍼드입니다. 지구군 장교로서 노르망디호 하나 잡아타고 우주를 종횡무진하며 외계 괴물들 때려잡고 스펙터(SPECTRE, SPECial Tactics and REconnaissance, 은하 표준어가 지구 영어라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SWAT도 아니고...)라는 우주 동맹 직속 비밀요원 자격 따서 우주적 위기를 막는 영웅이 되는 겁니다. 판타지에서조차도 익숙한 이야기고 SF로서도 꽤나 전형적이란 느낌이긴 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많이 봐왔던 잘 빠진 우주선하고 쫄쫄이 우주복하고 인간하고 별다른 차이점이 없고 영어 유창하게 잘 하고 헤어스타일만 좀 다른 미남미녀나 좀 귀여운 외계인들이 마구 튀어나오죠. 뭐 그렇다고 스토리가 지겹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녜요. 구현은 잘 되어 있고 적당히 뻔하지만 동시에 적당히 플레이어의 뒷통수를 때려 골치아픈 선택을 강요하거나 반전을 제공합니다. 은하 동맹이란 게 인류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것인가가 스토리의 주요 갈등축으로서 등장하기도 하고요, 이벤트 연출들도 깔끔하고, 대화도 길진 않지만 감칠맛 있고. 그 정도면 좋은 거긴 한데.

MassEffect__016.jpg  -간단한 캐릭터 만들기. 기본적으로 정해진 캐릭터가 있지만 몇 가지 커스텀이 가능학디ㅗ합니다. 얼굴의 경우 완벽한 변경이 가능한 건 아니고 어느 정도 프리셋을 주고 거기에 따라서 조작하는 방식이긴 한데, 그래도 프리셋 자체가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개성은 많은 편입니다.

  주인공 쉐퍼드는 성별과 얼굴형태를 고를 수 있고 이름조차 맘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게임상에선 성만으로 호출하니 의미가 없지만...시작 직업 또한 단순 총질만 하는 군인에서부터 해킹이 가능한 엔지니어나 초능력자 등으로 바꿀 수 있으며 배경 스토리도 고아였다느니 전쟁영웅이라느니 약간의 선택이 가능합니다. 플레이어의 직업에 따라 데리고 다닐 파티원(플레이어가 이미 담당하고 있는 직업을 또 데리고 다닐 필욘 없잖아요?)과 전투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게 될 테고, 주인공의 배경이 달라지면 거창한 차이는 없지만 플레이 와중에 가끔 약간 다른 대사가 나오죠. 물론 사악한 대사 고르면 악으로 물들고 착한 대사 고르면 선으로 캐릭터가 변하는 선/악 시스템도 약하긴 하지만 있긴 하고요, 아무튼 RPG는 RPG니까요.

MassEffect__010.jpg  -요즘 3인칭 슈팅 게임이면 이런 엄폐 시스템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 정도입니다.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이게 1인칭 게임하곤 또 다르죠.

 그럼 RPG가 아닌 TPS 전투 파트. 구공화국 기사단의 전투는 기존의 발더스 게이트 같은데서 잘 써먹었던 D&D 스타일을 많이 간략화시킨 세미 리얼타임 턴방식이었지만, 여기서는 더 간략화를 추구해 아예 기어즈 오브 워 스타일의 본격 TPS로 나갑니다. 적이 나타나면 말 그대로 그냥 총 뽑아서 막 쏘면 돼요. 2명의 분대원을 데리고 다니면서 엄폐물 뒤에서 몸 내밀고 총질하고 수류탄 투척하고 근접전에서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기고 권총, 산탄총, 돌격소총, 저격총의 네 무기를 번갈아 가며 쓰는 게 빼도 박도 못할 그쪽 물건입죠. 물론 클래스에 따라서 ‘마법’에 가까운 좀 더 다양한 특수기술을 쓸 수 있어서 분위기가 달라지긴 하는데요....친숙한 재장전 개념을 내다 버리고 탄창은 무한이지만 과열이 되면 못 쏘는 개념을 도입한 데다 무기를 4종류로 고정해서 못 박은 점.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다양한 특수능력이 존재하고 일시정지해서 분대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등의 눈여겨볼만한 요소들이 있지만. 어쨌건 훨씬 더 간단하고 손쉽게 바꾼 형태며 최고급은 아닐지라도 박진감이라던가 하는 기본적 측면에선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합니다. 총쏘고 돌아다니는 게임 누가 싫어한다고. 물론 분대원들하고 적들 AI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긴 하고, 전투시 연출을 보면 다소 뻣뻣한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만 뭐 이게 모던 워페어는 아니니까요.

MassEffect__005.jpg  -일시정지 상태에서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주거나 특수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바이오웨어 RPG의 나름 전통이랄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시점도 한계가 있고 시스템이 좀 불편하긴 합니다.

 더 이후에 나온 드래곤 에이지에는 좀 딸리지만, 매스 이펙트의 대화 연출 또한 대단히 좋습니다. 바이오웨어의 기존 RPG들이 단순히 캐릭터 위에 대화창 몇 개 띄우는 정도였다면 구공화국 기사단에서 와이드스크린으로 캐릭터를 클로즈업해서 아래에 자막을 띄워 흡사 영화처럼 대화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했었는데, 그걸 더 발전시켜서 완벽하진 않지만 대화 나누면서 말하면서 인상도 막 쓰고 손짓도 하고 부드럽게 캐릭터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좀 하다 보면 같은 동작들이 반복된다는 걸 느낄 수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자체는 상당히 자연스럽기에 좀 더 그럴듯한 분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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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에서는 선택지가 존재하긴 하는데, 간단한 짧은 문장을 고르면 주인공이 좀 더 길게 언급하는 식입니다. ‘그건 싫어’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주인공이 ‘너의 그런 생각에는 영원히 동의할 수 없을 것 같군.  미안하지만 그 제안은 거부하겠어.’ 따위로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거죠. 별 차이 아닌 것 같지만 발더스 게이트나 토먼트에서처럼 긴 대사를 직접 선택창에서 고르는 방식에 비하자면 나름 특징이 있다 싶은데요, 일단 골라도 다음 순간에 구체적으로 뭔 대사가 나올지는 알 수 없고 덕택에 생각과 다른 대사가 나와서 당황할 때도 있긴 합니다. 대신 상황에 맞춰 주인공이 무슨 대사를 하느냐를 비중 있게 보여줄 수 있고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읽어나가는 맛은 훨씬 좋은 것 같아요.

MassEffect__002.jpg  -지나가는 엑스트라와 대화. 한국사람 이외엔 정씨 성이 없지 않나요? 허나 불행히도 일본사람처럼 생긴데다가 악역입니다.

 사실 네버윈터 나이츠나 폴아웃 같은 데선 주인공이 하는 말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직접 하는 말’로 간주하기 때문에 음성 더빙이 되어있지 않고 별다른 연출조차도 없죠. 흡사 일본 미소녀 게임에서 남자 주인공은 더빙이 안 되어 있는 것처럼, 이스의 아돌이나 하프라이프의 고든이 엄청나게 과묵한 것처럼 말예요. 하지면 여기선 선택지 고를 때마다 주인공이 꽤 길게 떠들어대고 플레이어는 적당한 간극을 두고 주인공을 보게 된다 싶습니다. 플레이어와 주인공을 좀 더 분리해내는 건 롤플레잉이란 개념엔 좀 안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게임 치고 플레이어가 100%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데다가 그 반대급부로서 쉐퍼드는 게임 플레이 와중에 폼은 잔뜩 잡을 수 있게 됩니다. 애초에 제작사 목표가 주인공에 플레이어를 이입시킨다기보다는 마스터 치프나 마커스 피닉스처럼 세퍼드를 게임을 상징하는 별도의 캐릭터로서 만들어 내세우려는 거니 그럴 수밖에 없죠.


 -특히 중반부의 연설 장면 같은 게 이런 수법을 잘 살린 좋은 예죠. 플레이어가 선택하면 대사가 부드럽게 이어져 나가는 과정을 잘 보시길.

  그래픽이야 전 개인적으로 별 신경 안 쓰는 요소지만 필름 입자 효과를 넣은 건 분위기를 확실히 잘 살려줍니다. 스크린샷만 보셔도 아실 테죠, 애초에 추구하는 바가 영화 같은 분위기고 적당히 흐릿한 화면은 좀더 진지하면서도 분위기 잡는덴 딱 좋다 싶네요. 쫄쫄이에 현란한 색감과 온갖 반짝이는 광선으로 무장한 미래시대 배경 연출이건 캐릭터 모델링이건 디자인에서도 흠잡을 구석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대화 장면이건 총질할 때건 아주 부드럽게 잘 넘어갑니다. OST도 뛰어나고, 거의 70여 명이 동원되었다는 성우들 연기도 최고급입니다. 주인공 역시 남자건 여자건 목소리 잔뜩 깔고 말 잘 합니다. 그러고보니 여자 쉐퍼드 목소리 맡은 제니퍼 헤일이 구공화국 기사단의 바스틸라 샨(찾아보니 사라 파커도 이 아줌마가 했군요!)이네요.

 칭찬은 할 만큼 했고, 그럼 제가 좋아하는 단점 이야기로 가볼까요. 므흐흐흐. 제가 언제 객관적 글 따위 썼었어요. 대충 몇 가지 불만 요소만 짚어보겠습니다.

MassEffect__001.jpg  -탐사차량을 타고 달 표면에서 올려다본 지구.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건 물론 훌륭하긴 합니다만...

 TPS적 요소 이외에도 차량을 이용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TPS/FPS 장르에서 탈것을 쓰는 스테이지가 나오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기에 뭐 특이한 선택은 아닙니다만, 시나리오상 차량 전투를 벌이는 이외에도 탐사용으로서 어디 사람 거주하지 않는 행성에 착륙하면 차량으로 돌아다니는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죠. 행성 탐사용으로서 차량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싶지만 사실 조작감이 좀 엉망입니다. 해당 행성의 중력이 얼마이냐 신경써주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조그만 장애물에만 걸려도 플라스틱 RC카처럼 통통 튀어버리고 제멋대로 돌아버립니다. 수직 아래로 분사되는 로켓은 설정상으론 착륙시 역추진용이겠지만 써 봐야 통통 튀고 제멋대로 도는데 일조할 뿐이라 왜 넣은 건지 알 수 없죠. 차라리 그냥 부스터 개념으로 써서 가파른 절벽을 올라갈 수 있다거나 혹은 추락하는 중에 자세를 안정시키거나 하는 기능을 넣었으면 싶은데 그런 것도 아니고. 더 큰 문제는 플레이어에게 지나가라고 주어진 지형은 황당할 정도로 험준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플레이 와중에 이 녀석을 타고 다닐 일이 좀 많다는 거죠.

MassEffect__007.jpg  -한 70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무식한 등판능력은 바이오웨어에서 티셔츠를 팔 정도로 의도하고 넣은 부분이긴 하지만. 그만큼 플레이어가 돌아다녀야 하는 지형은 지나치게 험준하고 또 험하기만할 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단조롭습니다. 배경 행성은 다양하지만 어쨌건 대충 험악한 산악지형 아무데나 목표물 찍어두고 여기까지 알아서 가봐라 하는 건 변하지 않아요.


 -평지에서조차도 저렇게 무게감 없이 방방 튑니다. 험지에서는 말도 못하죠. 개인적으로 FPS/TPS 게임에서의 오프로드 차량은 헤일로의 워쏘그 정도가 딱 좋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약간 짧고 약간 진부하다는 걸 빼면 메인 스토리는 뭣보다 연출이 좋기에 재밌게 진행할 수 있지만 대신 서브퀘스트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주어지는 상황이야 다양하지만 내용은 X 행성의 Y 지점까지 (그 끔찍한) 장갑차를 (그 끔찍한 지형 위로) 타고 가서 나타나는 적들 때려잡아라 정도가 고작이고 심지어는 사용되는 건물 내부도 종류가 서너 가지일 뿐 구조가 완벽히 동일하며 단지 적과 장애물의 위치만 바꿔놨을 뿐이죠. 그러니 퀘스트 내용이 다르면 뭐 해요, 구성이 다 똑같은데. 그 이외엔 노가다 퀘스트가 몇 종류 있어서 보이는 행성마다 찾아가서 희귀 아이템이란 걸 수집하는 것만 지겹게 반복하는 게 고작입니다. 베데스다의 폴아웃 3에서처럼 메인 스토리 내다 버리고 서브퀘스트 스토리만 엄청나게 꾸며대는 게 또 좋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솔직히 이 정도면 지나치게 무성의하다고 해야 합니다. 덕분에 게임은 안 그래도 (바이오웨어 요즘 트렌드가 그렇듯) 메인 스토리부터가 직선적인데 더욱 직선적이고 파들어갈 거리가 부족해져버렸죠. 보통 이런 게임에서는 서브퀘스트가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상세를 드러내줘야 하는데, 이 부분이 완전히 죽어버려서 깊이가 많이 얕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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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에 앉은 게 나름 괜찮은 캐릭터였던 조커. 근데 이 친구는 플레이어가 직접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동료도 아니고 그냥 노르망디호의 파일럿일 뿐입니다. 게임상에서 캐릭터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활약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 덕에 플레이어의 동료들은 숫자만 여섯이지 별 인상을 남기진 못하죠. 차라리 조커처럼 잠깐 나와서 활약하는 게 더 인상깊지...

 서브퀘스트가 그 모양이니 동료들의 개성도 상당히 약한 편입니다. 대충 특징들은 있지만 충분히 심도깊게 파고들만한 플레이 시간이 애당초 없어요. 동료가 주는 퀘스트는 그나마 좀 뭔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배경 이야기만 나올 뿐 패턴은 또 똑같은 그것. 물론 캐릭터의 성향과 배경에 따라, 그리고 동료 조합에 따라 이런저런 미묘하게 전개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동료 2명을 골라서 데리고 다니는 방식이니 특정 상황에 누구를 데리고 있느냐에 따라 각각 하는 말이 다른 게 당연하긴 하지만, 그 이외의 거창한 차이는 없고요. 물론 인류가 우주 연방의 일원이 되어야 하느냐, 혹은 홀로 살아남아 자립할 능력을 가져야 하냐는 이야기의 나름 인상깊은 주된 소재고 게읨의 결말까지 이어지긴 합니다만 그뿐이죠. 가볍다는 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바로 이런 파트에서입니다. 적어도 RPG라면 동료 중에 버릴 캐릭터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게 좋은 거고, 구공화국 기사단 이야기 자꾸 꺼내긴 진부하지만 처음에 라이트 사이드로 엔딩 본 후 다크 사이드로 다시 해봤을 땐 '변화'라는 게 정말 충격적이었는데...쩝.

MassEffect__003.jpg  -주요 항목은 음성 더빙까지 되어있는 코덱스. 항목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대신 그래도 나름의 자존심인지 뭔지 몰라도, 게임 플레이하면서 보는 대사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 설정 텍스트는 어마어마하게 많고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도 많습니다. 대충 보고 넘기기 일쑤인 수많은 행성들만 해도 뭐하러 저렇게 공 들였나 싶을 정도죠. 물론 전 다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MassEffect__012.jpg  -나이트크럽에서 총 4자루 메고 춤추면 손님들이 좋아할...까요? 개인적으론 이외에도 단점이랄까 불만인 부분들이 좀 밟히긴 합니다. 이를테면 대사 스킵하고 선택지 선택하고 같은 키를 쓴다는 것. 대사 스킵하려고 스페이스바 눌렀더니 때맞춰 튀어나오는 선택지를 멋대로 골라버리질 않나. 아 이건 제 성격이 급해서 그렇군요.

MassEffect__009.jpg  -고작 두 명뿐인 동료는 가끔가다 이유도 없이 저렇게 플레이어를 따라오지 않고 멈춰서버립니다. 어디 장애물에 직접적으로 걸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길찾기가 엄청 복잡한 곳도 아닌데...AI에 좀 문제가 있습죠.

MassEffect__008.jpg  -혹은, 전투 중에는 여타 액션 게임에서 많이 봐온 게이지 소모해서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달리는 기능이 있습니다. 기어즈 오브 워에서 폼나게 시점을 아래로 깔고 달리는 것과 여러 모로 비슷하지만 속도가 무지하게 빠른데요, 전투가 끝나고 나면 이 기능을 못 써요. 물론 구역별 로딩도 잔뜩 있지만, 맵 디자인 중에 쓸데없이 긴 통로나 엘리베이터가 자주 나오는 걸로 봐선 아마 심리스(Seamless) 로딩 방식이라서 일부러 천천히 긴 거리를 이동하게 만들어 그 동안 로딩하는 방식인 것 같고 그래서 전투가 끝나고 나면 달리기를 못하게 한 것 같긴 합니다. 허나 전투 중이 아닐 땐 달리기를 쓰면 시점만 바뀌고 속도는 그대로입니다. 처음엔 전투 중보다는 약간 느리지만 그래도 빠르게 달리는 건줄 알고 계속 썼는데 시간 재보니 거의 차이가 없어요. 그럴 바에야 시점은 왜 바꾸는 거죠, 사람 착각하게스리.

MassEffect__011.jpg  -엘리베이터에서는 저장이 안 되는 것도 아마 로딩 관련 이유에서겠죠. 같은 이유에서 엘리베이터는 많고 길며 지겹습니다. 시타델에선 그나마 대화도 하고 방송도 나오고 했었는데.

MassEffect__014.jpg  -단지 영웅이 부러울 뿐인 소시민 콘라드 베르너씨가 시가지 한복판에서 무기를 꺼내든 쉐퍼드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맘에 안 드는 녀석은 주요 NPC를 제외하곤 언제 어디서나 다 쏴죽일 수 있는 폴아웃도 아니고, 도시 내에서 무기 꺼내서 아무데나 막 쏠 수 있는 이윤 또 뭔가요. 그냥 못 쓰도록 시스템적으로 막아놓는 게 자유도는 떨어지더라도 게임진행상으론 더 현실적일 텐데.

MassEffect__015.jpg  -게다가 줌 좀 땡겼다고 이 눈아픈 광원 효과라니. 이건 버그인지 제 그래픽 카드 문제인지 모르겠긴 합니다만...

MassEffect__006.jpg  -항성계에 들어가서 보이는 모든 행성을 다 클릭하고 survey 누르기를 한참 반복하면 보상으로 경험치 조금 주는 희귀 가스 탐색 퀘스트에서……질소를 발견했습니다. 질소가 우주에서 6번째로 풍부한 원소고 지구 대기의 78%를 차지하고 있는데도요?

MassEffect__004.jpg  -늘 그렇듯 잠겨있는 상자를 따려면 미니게임을 해야 합니다. 대충 프로거네요. 근데 왜 광물 채취하는 데도 똑같은 미니게임을 해야 하는 거죠? 광물 채취 중인데도 위에 Decrypting이라고 나오는 이유는 또 뭐죠? 미니게임 하나 더 만드는 게 그렇게 귀찮았나요.


 -미니 게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매스 이펙트의 Mira AI 퍼즐. 프로그래밍이나 퍼즐에 관심이 있다면 잘 아실 법한 하노이의 탑(Tower of Hanoi)이긴 한데...


 -가만, 구공화국 기사단에도 똑같이 나왔던 거잖아요? 전작에서 써먹었던 안 그래도 진부한 퍼즐을 또 갖다 써요?

 이런 잡다한 거 말고 좀 더 큰 문제라면...흠, 적어도 제가 보기에 요즘 시대의 대세는 콘솔이고 라이트유저입니다. PC로 현란한 마우스 컨트롤에 키보드 키 잔뜩 눌러가면서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면 얼마 지나잖아 마이너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몰라요. 그렇기에 매스 이펙트는 철저히 전자에 맞춰서 만들어진 게임이고, PC 버전의 인터페이스가 콘솔용에 맞춰져 있어 무진장 불편하게 되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대신 각종 버그가 난무합니다. 스크린샷에서 눈치 채신 분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 컴퓨터에서는 그림자가 마구 깨져서 나오는데 (그리고 광원도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은데) 이유를 모르겠군요. 설정 유틸리티는 실행시키자마자 튕기고 가끔 아무 키도 안 먹거나 다운먹지 않나. 혹시나 싶어 공식 포럼에 찾아갔더니 버그가 너무 많아서 게임 사놓고 1년째 패치만 하다 실행조차 못하고 있다는 이야길 읽고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아 맞다. 늘 하던 음악 걸기를 안 했군요. Jack Wall의 메인 테마는 적절합니다. 전체적으로 굳이 거창하게 튀는 음악은 없는 편이지만 뭐 그것도 나쁘지 않죠.

 매스 이펙트에서 바이오웨어는 나름 신선한 시도를 했고 이만큼 잘해낸 건 충분히 칭찬해낼만 합니다. 다만 늘상 한쪽만 파다가 외도를 하는데는 아무래도 좀 아쉬운 부분이 남기 마련이다 싶어지네요. 늘 덧붙이는 식의 소리지만, 매스 이펙트는 바이오웨어가 요즘 트렌드에 맞춰 적당히 가볍게 잘 만든 하이브리드 RPG이긴 합니다. 플레이하면서 짜증은 약간 났지만 그래도 전체적 완성도는 결코 무시 못하겠다 싶고요. 머리아프게 일시정지 눌러가며 전략 짜고 대화만 이십 분쯤 하는 RPG도 있지만 분기고 골치 아픈 전술이고 없이 시원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것도 좋은 거죠. 저도 캐주얼 게이머로 접어들어야 할 시기가 슬슬 오는 것 같긴 하니까 이걸 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도 어차피 3부작으로 만드는 물건이라니까, 내년 1월에 나올 매스 이펙트 2에서는 같은 주인공에 같은 배경에 같은 세이브파일조차 사용할 테니 아마 동료나 캐릭터도 좀 더 파들어갈 테고 분량도 늘릴 테고...조금만 더 손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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