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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어쌔신 크리드> 표지. 손에서 튀어나온 칼에 주목하세요]


클럽에서 많이 오가는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무기와 기술력이죠. 밀리터리 SF는 아니지만, 암기 이야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는 암살자가 주인공인 게임답게 무기 사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인공 암살자 알타이르가 쓰는 무기 종류는 모두 4개인데, 우선 긴 샴시르가 있습니다. 칼싸움을 할 때 주로 사용하죠. 다음으로 재빨리 뽑을 수 있는 짧은 샴시르가 있습니다. 길이는 짧지만 대신 다루기가 편하죠. 접근전 무기만이 아니라 원거리 무기도 있는데, 먼 거리에서 궁수들과 대적할 때 쓰기 좋은 투척용 단검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무기는 바로 'Hidden Blade'라고 불리는 암기입니다. 알타이르는 왼팔 건틀렛에 자그마한 칼을 숨기고 다니는데, 새끼 손가락에 낀 반지를 이용해 칼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손목 보호대 속에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반지를 조작하면 작은 칼이 튀어나와 목표물의 숨통을 끊는 거죠. <어쌔신 크리드>의 표지 대부분은 알타이르가 암기를 꺼내드는 모습으로 제작진은 이 숨겨진 칼을 암살자의 상징으로 삼을 마음이었나 봅니다. 심지어는 알타이르가 암기를 쓰는 모습만을 담은 예고편이 있을 정도고, 이 예고편에서는 암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까지 보여주죠. 생긴 건 별 것 아니지만, 복잡한 조작 방식이 있다는 점과 암살자에 어울리게끔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점이 이 암기의 매력인 듯합니다. 2편 제작 소식이 떴는데, 2편의 암살자 역시 손목에서 튀어나오는 칼이 있는 걸로 보아서 제작진은 시리즈의 맥을 이 암기로서 이으려나 봅니다. 하긴 암살자의 상징이 암기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 암기 제작 동영상 :
http://www.youtube.com/watch?v=6uuOx_DAURI 

※ 알타이르의 암기 예고편 :
http://www.youtube.com/watch?v=nkPRO4jQv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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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의 작동방식]

게임 제작진은 컨셉아트를 공개할 때 이 암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림으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일단 손목 보호대 안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칼집 3개가 겹쳐 있습니다. 알타이르가 새끼 손가락에 끼운 반지를 당기면, 겹쳐진 칼집 3개가 망원경 펼쳐지듯 차례차례 튀어나옵니다. 큰 칼집에서 조금 더 작은 칼집이,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칼집이 일렬로 펼쳐지는 식이죠. 제일 작은 칼집이 튀어나오면 마침내 칼날이 튀어나옵니다. 이 작동 방식이 큰 호기심을 끌었는지 YouTube 등지에는 암기를 실제로 만들어 보여주는 동영상이 숱하게 많습니다. 프레데터의 칼처럼 도대체 무슨 원리로 튀어나오는지 애매하지 않아서 좋긴 합니다만. 문제는 과연 제3차 십자군 침공 당시에 저런 방식의 암기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탄력성 있게 튀어나오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용수철이 필요할 듯한데… 용수철은 15세기가 지나야 제대로 작동하는 물건이죠. 알타이르가 십자군들을 찌르고 다니던 시절에 용수철을 대중적으로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용수철 없이도 저런 식의 암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들 수야 있죠. 하지만 용수철이 없다면 아무래도 튀어나오는 순발력이 늦을 테고, 평소 숨겨둘 때도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목 보호대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들려면 역시 용수철이 필요할 테고요. 어쩌면 산중노인이 은거하는 암살자 본거지 마샤프는 당시 중세 과학보다 진보한 기술력을 보유했을지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이번 2편의 무대는 베네치아던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주인공 암살자(이름은 에찌오)에게 여러 암살 도구를 만들어준다는 설정입니다. 마샤프 역시 독특한 곳이고, 산중노인도 보통 인물이 아니므로 용수철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유저는 <어쌔신 크리드>가 SF인 이유는 유전자 기억 재생기인 애니머스 때문이 아니라 저 암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중세 사라센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기술이니 SF라는 거죠. 여하튼 게임 제작진이 암살과 기발한 작동 방식을 연결시켜 독특한 무기를 탄생시킨 건 사실인 듯합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궁금하지만, 시리즈가 지나갈수록 저 암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있을 것 같습니다.

※ 이 숨겨진 칼은 본래 암살용이지만,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은 전투할 때도 암기를 사용하곤 합니다. <어쌔신 크리드>는 싸움 조작이 쉬운 탓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암기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장검과 대적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저렇게 작은 암기를 가지고 장검과 겨룬다는 건 자살행위겠지만요.

※ 암기를 사용해 상대를 제거하면 화면이 충격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더욱 짜릿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들 장검이나 단검보다는 암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 알타이르는 저 암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넷째 손가락을 잘라 냈습니다. 칼날이 그 방향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 2편의 암살자 에찌오는 양쪽 손목에 암기를 두 개 가지고 다닙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암살자답게 꽤나 화려하더군요. (하지만 알타이르만큼 고독한 멋은 별로 없어서 아쉽습니다) 참고로 알타이르와 에찌오는 둘 다 '독수리'란 뜻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