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품이든 주제가 존재하고, 플롯은 그 주제를 부각합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전체주의와 기술 독점을 경고하고 싶다면, 미래 도시에서 정체성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죠. 그 인물은 모두가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몇몇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에 진저리를 칠 테고요. 독자는 그런 과정을 읽으며, 작가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대개 창작물은 이런 식으로 주제와 플롯이 이어집니다. 창작물 속의 플롯은 주제를 향해 뻗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더러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플롯의 일부분만 주제와 이어지고, 나머지 부분은 그저 보조 역할에 머물거나 혹은 독자적인 주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주제로 이어지는 플롯들의 방향성이 너무 제각각이라면, 독자가 연결 구조를 헛갈릴 수 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런 구성의 창작물을 가리켜 풍부하다고 호평하거나 아니면 산만하다고 비판합니다. 만약 작가가 뛰어난 필력으로 다방면의 이야기를 펼친다면, 풍성하고 읽을거리 많은 작품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는 쉽게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처럼 플롯의 방향성이 너무 다양하면 그 모두가 주제를 가리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창작물 하나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느라 욕심을 내면, 이렇게 산만한 구조가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넘치는 것보다 모자라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작가가 욕심을 버리고 좀 더 명확한 플롯만 골라서 배치하면, 독자 입장에서도 주제를 이해하기 훨씬 쉽겠죠. 문제는 작가가 사건을 전개하는 도중 주화입마에 빠져서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는 그냥 횡설수설 산만한 플롯이 나오기 십상이에요. 혹여 엄청난 대작이 나온다고 해도 괴작이라거나 읽기 힘들다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울 겁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으로 <백경>이 대표적입니다. <백경>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포경선 피쿼드가 흰 고래 모비 딕을 추격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줄거리와 연관이 없는 챕터들도 수두룩합니다. 고래학장이나 온갖 철학적 담론들이 그렇죠. 솔직히 고래 해부학이나 철학 담론을 덜어내도 줄거리 전개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겁니다. 실제로 아동 판본은 그렇게 나오고요.


허먼 멜빌을 연구하는 문학가들은 이렇게 쓸데없는(?) 부분을 고래학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멜빌이 도대체 고래학장을 왜 집어넣었는지 고민합니다. <백경>은 난잡한 책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죠. 주제면에서도, 줄거리면에서도 하등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거든요. 과도한 지방이 축척된 비만 환자가 아닐까 싶은 정도인데, 다이어트만 하면 훨씬 날씬하고 보기 좋을 겁니다. 실제로 고래학장이나 여타 상징투성이 챕터는 그냥 빼고 읽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줄거리 이해도 훨씬 쉽고, 페이지도 술술 넘어가겠죠. 사실 따지고 보면, <백경>의 줄거리는 뭐 그리 대단할 게 없습니다. 포경선이 물 건너 바다 건너 싸돌아다니던 중 어느 날 모비 딕을 만나고 신나게 쌈박질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고래 추격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줄거리입니다. 하지만 멜빌은 이 간단한 줄거리 외에 온갖 군살을 덕지덕지 붙여서 장대한 서사시를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그대로 출판한 편집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멜빌이 그런 군살을 빼고 출판했다면, 깔끔하고 보기 좋을지 몰라도 오늘날처럼 대작 대접을 못 받았을 겁니다.


<백경>의 풍성함 혹은 산만함이야 워낙 유명합니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백경>이 아니라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이었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쓴 괴기 소설이자, 스팀펑크이자, 바이오펑크이자, 디스토피아입니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도시, 그 도시를 통치하는 절대권력 시장, 그 시장과 연계하는 깡패, 깡패가 키우는 괴생명체, 그런 시장을 타도하려는 지하 저항 조직, 그리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들, 그 종족들 외에 음지에서 활동하는 각종 마법사와 개조 생명체와 이계 존재들, 이제 막 각성하기 시작한 인공지능, 그 모든 것과 이어지는 어느 과학자까지…. <퍼디도 정거장>은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을 담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혹은 난잡하기 때문에 줄거리 전개가 깔끔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 소설은 <백경>이 그런 것처럼 과도한 지방을 빼고 다이어트를 쌈빡하게 해도 될 겁니다. 그래도 줄거리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몇 페이지에 걸쳐 남루하고 번잡한 도시 풍경을 샅샅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줄거리 전개에 별 지장이 없잖아요.


사실 <퍼디도 정거장>의 핵심 줄거리는 괴생명체 추격입니다. 일련의 과학자, 마법사, 로봇이 징그러운 괴물을 쫓아서 없애는 내용입니다. <백경>이 향유고래 추격인 것처럼요. 하지만 차이나 미에빌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고, 자신이 집어넣을 수 있는 온갖 설정과 이야기와 담론을 퍼부었습니다. 이 책은 미에빌의 두 번째 소설인데, 둘째 소설부터 이렇게 엄청난 설정을 때려박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걸 출판한 편집부도 대단한 것 같고요. 덕분에 이 소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헛갈리는 독자도 많았을 겁니다. 막상 괴물 추격이라는 본론은 한참 지나서야 나오고, 그 전까지는 도시 풍경을 여기저기 보여주느라고 정신이 없거든요. 게다가 정작 괴물 추격을 시작한 이후에도 군더더기가 계속 끼어듭니다. 만약 차이나 미에빌이 그런 군살을 쫙 빼고, 담백하고 기름기 없이 소설을 썼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분량이 1/3 정도 줄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독자가 읽기는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다만, 지금처럼 뭔가 풍부하고 장대하다는 느낌은 없어졌겠죠.


저는 소설이 그저 일직선 고속도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깔끔하고 빠른 줄거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만 보여줄 수 있지만, 그런 줄거리가 소설의 전부는 아니겠죠. 풍성한 묘사와 사변이 들어간다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 독립된 세계로 존재하고 싶다면, 그런 풍성한 묘사와 사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가령, <백경>에서 주인공은 수많은 장소를 거칩니다. 항구의 여관부터 포경선 돛대와 고래 뱃속을 거쳐 망망대해의 섬까지 여러 곳을 들립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거나 이런저런 사물들을 관찰합니다. 이런 과정은 모비 딕 추격과 별 상관이 없지만, 소설 속 세계를 더욱 상세하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각종 철학과 사변은 그 세상을 더욱 독특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퍼디도 정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나 미에빌이 그토록 도시 풍경 묘사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면, 뉴크로부존 도시는 활력과 생기를 잃었을 겁니다. 미에빌이 다소 장황하게 묘사한 덕분에 독자가 가상의 스팀펑크 도시를 실감할 수 있었죠.


풍성한(산만한) 이야기와 깔끔한 이야기는 나름대로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성향과 필력과 관심에 따라 풍성한 이야기가 어울리는 작품도 존재하고, 그 반대 경우도 성립할 겁니다. 독자 역시 둘 중 하나를 보다 선호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플롯은 깔끔하고 읽기 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정작 끌리는 쪽은 풍성한(산만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들이 결말을 향해 아우토반 고속도로처럼 신나게 질주하는 이야기도 좋지만…. 여기저기 샛길로 빠지면서 그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도 좋습니다. 특히 장르 문학은 그러한 입체적인 면모를 발휘하기 좋습니다. 장르 작가들은 어느 정도 가상 세계 설정을 머릿속에 구성했을 겁니다. 꼭 주제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작가가 그런 설정을 풀어놓으면, 독자 역시 해당 세계를 다채롭고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일반 순문학과 다르게 장르 문학은, 특히 SF 및 판타지는 작가의 상상력이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설령 주제와 잠시 멀어진다고 해도 대신 작가의 상상력을 제시할 수 있죠. 그게 SF 창작물을 보는 재미 중 하나일 테고요.


※ 풍성한(산만한) 책의 진짜 큰 문제는 너무 무겁다는 겁니다, 하하.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힘들어요. 요즘에야 전자책이 그나마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이미 구입한 책은 어쩔 수 없잖아요. 게다가 단번에 읽기 힘들고 여기저기 샛길로 빠지는 터라 앞 내용을 좀 까먹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