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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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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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다시 봐도 가치가 남기에 고전입니다. 어떤 분야의 원형을 알아보거나 사조를 파악하고 싶을 때는 고전을 보는 게 최선이죠. 그렇다고 훌륭한 고전이 항상 보기 편한 건 아닙니다. 너무 옛날 작품이라서, 묘사 방법이 구식이라서, 지금 보기에 낡은 가치관을 담아서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혹은 고전의 요소들이 후대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친 나머지 고전 그 자체가 클리세가 되었을 수 있죠. 그러면 이게 뭐가 대단하냐는 생각도 들 겁니다. 아마 <뉴로맨서>도 그런 축에 속할 겁니다. 흔히 사이버펑크 흐름은 진작 소멸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사이버펑크 창작물은 꾸준히 나오며, 특히 영화나 게임 등 영상물에서는 단골 손님입니다. 가령, 약 일주일 전에 출시한 <새틀라이트 레인>이란 게임이 있습니다.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도시에서 해결사 요원 4명이 온갖 정보 수집, 통신망 침투, 유전자 조작, 산업 첩보, 총격전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폭력과 살인 로봇, 퇴폐적이고 일본 색깔이 진한 풍경은 소설 묘사를 빼다 박았죠.
<새틀라이트 레인> 같은 사례를 보면, 깁슨이 얼마나 대단한 책을 썼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비단 이 게임만 그런 건 아니죠. 부슬부슬 내리는 산성비, 가타카나를 번쩍이는 네온 간판, 카타나와 기관단총을 휘두르는 조직 폭력배, 기업들이 서민을 지배하는 암울한 인생, 온갖 로봇과 유전자 조작 괴물이 판치는 뒷골목,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이 안 가는 모조 인격, 입체 영상으로 설계한 가상 데이터베이스…. 사이버펑크에서 신나게 우리는 모든 요소들이 저 소설 한 권에 빼곡히 담겼죠. 사이버펑크는 윌리엄 깁슨 한 사람이 태생시킨 장르가 아니고, 깁슨 이전에도 거창한 사이버펑크들이 나왔으며, 온전히 <뉴로맨서>만 영광을 차지할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깁슨이 전형적인 요소들을 버무리는 한편, 자신만의 현란하고도 복잡한 설정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케이스가 가상 현실에 접속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화려한 필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공지능의 실체,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전개 등은 입이 딱 벌어집니다.
소설에서 나오는 가상현실은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인터넷 서핑과는 지향점이 전혀 다릅니다. 인터넷의 대두 때문에 사이버펑크 소설이 낡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고,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만. 막상 <뉴로맨서>를 읽으면, 차라리 마약을 빨고 황홀경을 보는 듯한 기발함과 거창함 때문에 탄성을 지르기 마련입니다. 통신망으로 거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다는 근본적인 기술은 똑같지만, 소설의 가상 공간과 현실의 인터넷은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현실의 인터넷은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소설의 가상 공간은 차라리 이세계에 비유할 법합니다. 러브크래프트 소설의 주인공이 꿈과 잠재의식으로 드림랜드나 얀스레이 같은 이세계를 체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혹은 다크 판타지의 그림자 세계로 비유해도 좋겠죠. 단순히 정보를 빠르고 편리하게 주고 받는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현실 같지만, 전혀 현실이 아니고, 그러면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입니다. 인터넷이 어떻게 발달하든 소설 속의 가상세계는 낡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은 가상 공간이 아닙니다.
이렇게 평가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뉴로맨서>는 과학적인 이계진입물 같습니다. 이계를 창조한 존재가 고대신이나 악마가 아니라 프로그래머인 셈입니다. 이계로 넘어가는 방법은 주문이나 흑마술이 아니라 컴퓨터 장치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신경 중추와 직접 이어지는 장치입니다. 가상 공간에는 유령이나 좀비가 아닌 다른 접속자와 인공지능이 돌아다닙니다.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기괴하면서도 대단한데, 여기에 깁슨의 정신 사나운 필력을 덧붙여 골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물론 이 소설이 다크 판타지의 변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크 판타지가 생각날 정도로 독특하고 기발하다는 뜻입니다. 세월을 감안한다고 해도 가상 공간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여전히 눈이 핑핑 돌아갑니다. 어쩌면 사람들 생각과 달리 사이버펑크는 낡은 게 아닐 겁니다. 그보다 진부해졌다고 하는 표현이 옳겠죠. 어떤 장르가 너무 유행하다 보면, 진부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그래서 비판을 많이 받았죠. 사이버펑크 역시 그런 전철을 밟았을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옛날 SF 설정은 대개 골동품입니다. 굳이 사이버펑크에게만 장르 해체이니 하는 걸 뒤집어 씌울 이유가 없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하도 까는 사람이 많은 터라 SF 장르에서 퇴출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허나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 같은 식으로 거듭났고,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았고, 낡았다고 하지 않죠. 사이버펑크 역시 밀레니엄 이후로 수많은 창작물에서 진부함을 깨는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가령, 피터 와츠가 2006년에 쓴 <블라인드 사이트>는 어딜 보더라도 사이버펑크입니다. 한 사람에게 몇 개의 인격을 우겨넣고, 인간이 기계를 연결해 로봇을 수족처럼 부리고, 두뇌가 컴퓨터인지 생체인지 구분도 안 가는 과학자가 나오는 마당이잖아요. 소설 주제도 진정한 실체를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요. 문학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단점이지만, 2000년대 이후에 나온, 뒷통수 때리는 사이버펑크이죠. 가상 현실은 구닥다리가 아닙니다. 너무 인기를 끌고, 너도 나도 사용하는 설정이라 그렇게 보일 따름입니다.
게다가 가상 공간 발상이 낡았다고 해도 깁슨의 화려한 표현과 묘사는 지금 봐도 어지럽습니다. 솔직히 가상 공간이라는 발상보다 깁슨의 필력에 더 눈길이 갈 정도입니다. 아니, 단지 가상 공간 묘사만 아니라 추악한 도시와 복잡한 의식을 설명하는 부분까지 버릴 구석이 없습니다. 저녁 하늘이 꺼진 텔레비전 같았다는 첫 문구부터 독자마저 토하고 싶게 만드는 약물 부작용이나 환상, 인공지능이 떠드는 뼈대 있는 대사까지. 장르 소설이 아닌, 그냥 소설로도 상당한 필력을 자랑하죠. SF 소설은 문학적 완성도가 낮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윌리엄 깁슨을 내밀어도 좋을 겁니다. 솔직히 디스토피아의 퇴폐적인 미학을 이렇게 우아하게 쓰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다만, 너무 현란한 나머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기 힘들다는 단점도 함께 따라다니죠. 도대체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봤습니다. 이거야 가상과 현실의 혼돈을 다룬 사이버펑크라면 당연히 떠안아야 할 단점(?)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도 내용보다는 문체와 사변 때문에 인상적이었네요.
주인공 케이스는 가상 카우보이, 그러니까 전문적인 해커입니다. 일종이 산업 첩보원인데, 정보를 훔쳐서 고용인에게 가져다주는 일로 먹고 살죠. 당연히 거대 기업들은 이 소설에서 악의 축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악의 축이 또 하나 생기니, 바로 인공지능입니다. 절망적인 세상이라 나쁜 놈들은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큰 악당 둘은 거대 기업과 인공지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서민을 지배하고, 서민들이 발악해봤자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이 짙게 배었습니다. 케이스의 해킹 솜씨는 뛰어나지만, 영웅적인 활약보다 그저 사건 흐름에 안주한다는 성향이 강합니다. 이미 케이스보다 더 뛰어난 플랫라인(일직선)이라는 해커까지 주연으로 나오고, 케이스가 그 자를 부러워한다고 언급까지 할 정도니까요. 허나 일직선조차 대규모 인공지능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사상이야 오래된 주제지만, 가상 세계와 디스토피아 분위기 덕분에 그게 한층 더 우울하게 다가옵니다. 코즈믹 호러가 아니라 인공지능 호러라고 해야 하나.
이런 암울함이 상당히 어필했는지, 이후 사이버펑크에도 비슷한 주제를 반복합니다. 심지어 테이블 게임인 <쉐도우런>에서는 아예 용, 그러니까 드래곤(!)까지 등장시켜 대기업, 인공지능과 쌍수를 겨루죠. 상당한 호평을 받은 <드래곤폴>의 주제도 그런 것이었고요. 용의 압제에서 인류가 벗어날 수 있느냐, 벗어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결국 인류는 주인이 누구든 간에 암울한 지배를 받을 운명이다 등등. 이렇듯 뭔가 압제한다는 공포는 사이버펑크의 주요한 논쟁거리이며, 그런 관점에서 여전히 사이버펑크는 함의가 풍부한 장르라고 봅니다. 가끔 너무 가상 공간이란 소재 하나에만 매달려서 거시적인 시각을 놓치는 경우도 있어요. 가상 공간이 수많은 나무라면, 절대 권력의 압제는 거대한 숲이 아닌가 합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숲이 되어야 하는데,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것과 비슷하죠. 사이버펑크에서 가상 현실 말고 이야기할 것도 많잖아요. <뉴로맨서>를 단순히 가상 현실을 등장시킨 소설 정도로 단순화시키는 것도 오류겠죠.
이것저것 떠들었는데, 결론이라면 <뉴로맨서>가 다시 봐도 대단한 고전이라는 겁니다. 사이버펑크 해체 선언 같은 것도 그렇고, 종종 골동품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쉬워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요. <새틀라이트 레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문득 생각나서 이야기해봤습니다.
대학시절 제가 읽던 책 제목이 뉴로맨서인걸 보고 친구가 했던 말.
"넌 뭐 안어울리게 연애소설을 보고있냐"
Neuro-mancer를 New-Romancer로 이해했던겁니다.
그 생뚱맞은 기억이 오래가네요.